534. 챕터64. 진입하다 (8)
뜻을 함께 모은 조선, 몽골남부연맹 군대 3만은 거침없이 남하를 시작했다.
사실 거용관을 뚫었다면 북평으로 가는 길이 훤히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 말을 타면 고작해야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니까.
하지만 이번 북평부 정벌에 있어서 북평은, 오히려 가장 나중에 처리해야할 도시 아닌가.
그랬기에 북평만 쏙 빼놓고, 북평 서쪽을 휩쓸며 내려갔다.
이걸 다행이라고 할지, 아니면 아쉽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의 북평은 미래의 대도시인 북경보다 훨씬 작지 않나.
북평과 태행산맥까지의 거리는 충분히 멀어서, 북평을 건들지 않고도 요왕부를 비롯한 원정군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잘게 찢어져 마을과 도시를 접수하고 있는 요왕부 군대를 뒤로하고, 조선 연합군이 향한 곳은 관안현이라 불리는 곳.
북평에서 남쪽으로 말을 타고 달리면 3일이면 도착할 지점이자, 천진으로 갈 수 있는 최단경로에 위치한 현이었다.
“와아아!”
“몰아쳐라!”
두두두. 물경 3만에 이르는 기병대가 한번에 움직이니, 관안현이 이 근방에서 가장 큰 현이든, 여기에 호족이 살든, 호족사병이 아직 남아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성벽보다는 담벼락에 가까운 나지막한 성벽이 솟아 있었지만, 조선군과 몽골남부연맹군은 거침없이 성벽을 에워싸고 화살비를 날리기 시작.
성벽 위에 올라와 있던 수비군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웅크리고만 있었고, 그 틈에 사방의 성문 모두에 조선군이 달라붙었다.
적들이 쏘아낸 화살 쯤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연합군의 화살비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았다.
“이거로 될까요?”
“되지 않겠나? 화약을 이렇게 많이 담아놨는데.”
소대장은 소대원의 물음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연신 손을 놀렸다.
조선군 연대에는 본래 야전화포를 끄는 화기대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번 원정에는 다른 연대병과 같은 무장하고 움직였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야전화포를 끌고 다니면 요왕부나 몽골남부연맹의 기병과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
제자리를 굳건히 사수해야 하는 동부전선과는 정반대로, 북부에서 시작된 싸움은 전선과 전장이랄 게 없다.
그저 보이는 도시와 마을을 무작정 쳐들어가서 호족 및 지역유지들을 참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해 군량과 말먹이를 채운다.
만만한 적이라면 무작정 가서 짓밟고, 만만치 않은 적이라면 미련 없이 꽁무니를 말고 뒤로 빠진다.
이러니 전장이니, 지휘부니, 전략목표니 하는 게 있겠나. 그저 바람 따라 강물 따라 달리면서 사방을 헤집어 놓는 거지.
그리고 조선군 또한 이에 맞춰야 했기에, 화기대는 야전화포 대신 다른 물건을 준비했다.
“화포에 쓸 때보다 몇 배에 달하는 화약을 넣어놨으니까, 충분히 효과가 있겠지. 이런 나무 성문 따위가 버티겠나?”
“그렇겠죠?”
“그럴 거다.”
소대장은 성문 안쪽에서 들리는 괴성을 무시하고, 소대원에게 얼른 화약통을 성문에 부착하게 시켰다.
그야말로 원시 그 자체인 폭탄으로, 화약과 자갈을 섞어놓은 물건.
이런 무식한 물건을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적을 밀어붙여 느긋하게 설치할 시간이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
이들은 감히 성 밖으로 화살조차 쏘지 못하게 밀어붙이는 엄호를 받으며, 성벽 안쪽으로 움푹 파여 있는 성문까지 안전하게 도착.
이후 경첩을 비롯한 성문의 이곳저곳에 폭탄을 부착했다.
말이 부착이지 그냥 튼튼한 바구니를 못으로 박아 고정시킨 후에, 그 안에 폭탄을 넣어둔 것에 불과했다.
“끝났습니다!”
“철수!”
“빨리 비키라고 해라!”
소대장은 성벽 바로 앞에서 빙글빙글 돌며 화살을 쏴대는 조선군과 몽골군에게 목청껏 소리쳤고, 호각소리를 들은 조선군들은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려 성벽에서 멀어졌다.
몽골군은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바로 옆에 있던 조선군이 빠지는 걸 못 알아봤겠나. 그들 또한 눈치껏 뒤로 빠졌고, “공격 잘 하다가 갑자기 왜 빠지지?”라는 눈길을 숨기지 않았다.
치익. 이윽고 성문 이곳저곳에 붙여 놓은 화약통의 도화선이 타들어가기 시작.
“가자.”
소대장과 소대원들은 냉큼 말 위에 올라타, 냅다 줄행랑을 쳤다.
성문에서 이런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성벽 위에 있던 북평군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성문이 있는 곳에서야 잠시 공격이 멈췄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화살비가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성문 안쪽에서 만약을 대비하고 있을 병사들도 있겠지만, 온 사방이 난장판이 났는데 성문 밖에서 못질하는 소리가 들렸을까.
나아가 성문 밖에서 폭탄을 설치하는 걸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걸 막으려면 성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런 바보짓이 또 어디 있겠나.
이윽고 화기대원들이 성문에서 한참 먼 곳까지 빠져나왔을 때 쯤.
도화선이 완전히 타들어가 불꽃은 화약통 안으로 들어갔고. 콰쾅! 서문에서 가장 먼저 폭음이 터지자, 쾅쾅쾅! 순번을 맞춘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머지 세개 성문 모두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와!”
“제대로 터졌나 본데요?”
“양이 적당했나 본데?”
화기대장은 부하의 말을 들으며, 먼지구름과 검은 연기가 뒤섞인 성문을 망원경으로 유심히 살폈다.
녀석의 말대로 폭약의 양을 적당히 한 게 오히려 주효했나 보다.
천만다행이도 성문 위의 성루와 성벽은 그나마 멀쩡했지만, 성문은 완전히 박살나서 움푹 파인 성문구멍의 양옆으로 파편이 비산해 있었다.
성문 밖까지 성문조각이 튀어나왔을 정도면, 성문 안쪽도 마찬가지로 개판이 되었을 게 분명.
“화약을 얼마나 써야하는지, 보고서는 작성해 놨지?”
“물론입니다.”
“좋아. 신호탄을 쏴라!”
“옙!”
소대장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기대원 중 한명이 하늘로 폭죽을 피어 올렸고, 펑펑펑! 서문에서 먼저 붉은 색 폭죽이 피어오르자, 다른 성문에서도 폭죽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돌격!”
“진군하라!”
우르르!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걸까? 거대한 성벽을 감싸고 빙글빙글 돌면서 전마의 몸을 풀고 피를 달구고 있던 후속부대가, 활을 쏘고 있던 전위대를 제치고 성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병력만 1만이 훌쩍 넘었는데, 선두에선 이들은 적들이 보든 말든 느긋한 속도로 말을 몰아 성문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지휘막사도 없이, 그저 게르 부품을 활용해 간이로 만들어 놓은 지휘탑에 올라 있던 연오랑과 사단장들.
“끝났군.”
“성공했습니다!”
연오랑은 망원경으로 전장을 살피며 중얼거렸고, 사단장 하경복은 히죽 웃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화약을 저렇게 폭탄으로 만들어 쓰는 건, 이번이 첫 실전 아닌가. 꽤나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광산에서도 저런 화약을 꽤나 써먹었잖아? 성공이야 당연한 거지.”
연오랑은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라고 말하듯,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과거. 거용관에서 철수할 때. 이미 그 시절부터 화약을 폭탄처럼 활용해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았나.
그때도 그저 무작정 날려버린 건 아니고, “얼마나, 어떻게 해야 더 잘 부실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나름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후 광산개발 및 토목건설 기반작업에 화약이 동원되면서, 이 보고서는 더욱더 개량되어갔다.
나름 폭발학, 화약학이라고 불러야 될 정도로 발전해서, 이젠 산길에 대로를 놓을 때 어지간한 암반쯤은 사정없이 펑펑 날려버릴 정도로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거지.
그러니 저런 성문을 날려버린게 뭐 어렵겠나.
“그래도 실전은 또 다르지 않습니까. 어찌됐건 성공은 성공입니다.”
다만 이 계획을 입안하고 책임진 게 하경복이라서 그런지, 그는 꽤나 만족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별거 아니긴 한데... 너무 좋아하니까, 딱히 할 말이 없네.’
연오랑은 아이처럼 방방 뛰는 하경복을 보며, 차마 기를 죽일 수 없어서 속으로만 웃고 말았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세종의 아이돌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착호군 1기 시절 연대장들은 다들 서로에 대한 호승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활에 남다른 재능과 조예가 있던 조비형은 저격연대를 창설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 돌격대장 성격이 짙은 이순몽과 유은지는 기병조련술에 심취해 자신만의 특성을 깨우쳤다.
황보인은 오래전부터 군수보급에 일가견이 있어 행보관을 거쳐 군수부장이 되었고.
김종서는 대병을 움직이는 작전능력이 뛰어났고, 최윤덕은 북방에서 하도 구르면서 공성 및 수성, 축성능력을 갈고 닦았지.
이에 질세라 하경복 또한 뭔가를 이룩하고자 했는데, 그가 관심을 보인 건 다름 아닌 화포와 화약.
이번에 원시적인 폭탄을 활용해 공성을 하게 된 건, 그의 의중이 깊게 담겨 있었다.
‘뭐... 나쁠 건 없지.’
나름 좋은 쪽으로 경쟁하는데, 굳이 쓴 소리를 할 필요 있나. 연오랑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저 정도 위력이면 북평에서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찌 보십니까?”
“글쎄... 화력 자체는 괜찮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군.”
곰곰이 고민하던 연오랑은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이곳 관안현의 성벽은 수성을 위한 각종 수성기구가 없고, 해자도 없고, 수성을 할 때 흔히 쓰는 끓는 기름이나 끓는 물을 쏟아낼 수 있는 성문구멍도 없고, 요충지의 성에서 흔히 보이는 이중성문도 없다.
“하지만 북평은 다르지. 거기는 저런 식으로 화약통을 가지고 성문에 접근조차 못할 걸?”
“음...”
“그럴 겁니다.”
연오랑의 반문에 하경복은 아쉬운 표정을, 조비형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것만 있으면 어지간한 작은 도시와 마을쯤은 가뿐히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예. 아마 요왕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을 겁니다.”
하경복은 요왕부 군대에 섞여서 활동하고 있을 자신의 부하들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들의 공이, 다 자신의 공으로 바뀌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어째 적들에게 화포가 없군. 광안현은 나름 큰 현이고, 꽤 중요한 현일 텐데 말이야.”
이곳 광안현은 북평과 천진을 삼각형으로 만들었을 때. 한쪽 꼭짓점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 말은 북평이나 천진으로 갈 때. 최단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무조건 여길 거쳐 가야 한다는 뜻.
“예. 병력은 그렇다쳐도, 화포는 있을 줄 알았는데...”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곧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조비형은 성 내로 진입한 병사들이 알아서 취조를 해올 거라 생각하는지, 걱정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저 친구들만 신나게 됐군요.”
“뭐...”
조비형은 저 멀리 보이는 낯익은 깃발을 가리켰고, 다들 피식 웃으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 옆에는 요왕부 병사들이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으니까.
저들은 앞으로 광안현을 다스릴 이들인데, 조선과 몽골남부연맹이 대신 처리해 주니 그보다 더 좋을 게 있을까. 지금도 뻔질나게 달려와서 고맙다고 공치사를 날려주는 중이었다.
“쟤들에게 맡겨두면 언제 끝날지 모르잖아? 빨리 끝내고, 우린 자형관에서 올 병사들을 때려잡아야지.”
“예.”
“특전대와 몽골군 정찰병이 함께 돌고 있으니,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걱정마시지요.”
“그래야 할 거야.”
연오랑은 먼지구름이 피어나는 관안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저 먼 서쪽을 굽어봤다.
요왕부야 작전목표가 따로 없지만, 조선연합군은 자형관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다른 도시와 마을을 무시하고 이곳 관안현으로 곧장 달려와 때린 건, 다 계산된 작전인 거지.
동부전선이 열렸고 북평에 보고가 들어갔으면, 북평은 사방에 지원군을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을 거다. 거용관도 그래서 병력을 차출해 동부전선으로 보냈으니까.
거용관에서 북평, 자형관에서 북평까지의 거리는 대략 2배 정도 차이가 나니, 전령이 오가는 시간과 병력이 행군하는 시간을 대략 계산하면 자형관의 지원군이 얼마쯤 왔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자형관의 지원군이 북평으로 갈지, 아니면 바로 동부전선인 천진으로 갈지는 모르지 않나.
해서 그 교차점이라 할 수 있는 관안현을 먼저 점거한 후. 정찰병을 뿌려 자형관의 지원군을 찾으려 했던 것.
‘겸사겸사 군량과 말먹이도 보충하고 말이야.’
조선군과 몽골남부연맹의 병력이 대략 3만정도 된다지만, 전마의 수는 그 두 배가 넘는다.
전쟁터에 나갈 때. 꼴랑 말 한 마리 끌고 다니는 거 봤나.
게르 부품을 비롯한 각종 보급품을 실은 예비마 한 마리쯤은 당연히 데리고 다녔고, 진짜 제대로 된 원정군이라면, 예비마 한 마리가 아니라 4,5마리를 끌고 다녔을 거다.
괜히 말먹이 때문에 허덕였던 게 아니지.
그랬기에 나름 큰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관안현을 털어서, 보급도 함께할 생각이었다.
“문제 아닌 문제라면 자형관에서 올 지원군이 몇이나 되느냐 하는 점인데...”
연오랑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용케도 그의 생각을 읽은 두 사람이 의견을 내놨다.
“아무리 못해도 만명은 오지 않겠습니까?”
“북쪽에서 내려온 저희의 움직임을 모르는 이상, 자형관은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을 보낼 겁니다.”
“아무래도 자형관은 안전할 테니까 말이지?”
“예.”
연오랑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또 조정관료들과 군부참모들이 머리를 굴려 예상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아가는 정황을 봐선... 틀리지 않을 거야.’
그는 다시금 기억을 뒤적여, 자형관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전에 말했듯, 명나라처럼 거대한 나라라면 거용관을 비롯한 관문도시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병력을 쏟아 부울 수 있다.
당장 이곳에선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돈과 사람을 뽑아 보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명이 망하고 각 성별로 쪼개진 이상, 북평부는 거용관, 산해관, 자형관 등에 무작정 병력을 투사할 수가 없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으면 병사는 잉여신세를 면치 못하고, 농사짓고 일을 해야 할 인력이 헛되이 낭비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