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535화 (535/538)

535. 챕터64. 진입하다 (9)

그랬기에 거용관, 천진이 요충지임에도 한직이 되었지만, 자형관은 사정이 달랐다.

명이 망하고 나서, 북직례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곳은 산서뿐이다.

산서와 북직례 상인이 이동하는 관문에선 당연히 통행료를 비롯한 뒷돈이 오가기 마련이니, 여긴 그냥 관문도시를 넘어서 훌륭한 이권 그 자체였던 거지.

문제는 산서와 북직례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면서, 당연히 전쟁이 벌어질 일도 없게 되지 않았나.

그럼 자형관에 굳이 많은 병력을 주둔시킬 까닭도 없어졌는데... 여기에 정치논리가 끼어들었다.

북평부는 호족,군부파벌의 연합체고, 군부파벌의 힘은 곧 밑에 두고 있는 병력의 수에서 나온다.

병력의 수를 늘리는 방법은 군호를 더 많이 지정하는 것 뿐.

허나 군호를 너무 많이 지정하면, 생업에 종사할 사람이 줄어들어 든다. 나라의 사정에 맞춰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한데, 자형관은 산서와의 무역수입으로 자금을 충당할 수 있지 않나.

해서 거용관과 산해관이 북직례 전체에서 모집한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자형관은 자형관 후방지대에서만 병력을 모집했다.

거용관의 보급기지라 할 수 있는 남구처럼, 자기 휘하의 병력을 불리기 위해서 자형관의 보급기지 구역을 억지로 만들어낸 셈이지.

“그러니 아마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많이 끌고 나왔을 거야. 이번 기회에 공을 세운다면, 어쩌면 파벌의 힘을 더 키울 수도 있을 테니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조비형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그러고도 남을 놈들일 걸. 북평부 놈들 중에서, 이번 싸움에 명운을 걸고 싸우려는 놈들이 몇이나 있을까. 동부전선이 뚫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테고, 우리가 지쳐 나가떨어질 거라고 믿고 있지 않겠어? 그러니 음흉한 놈들은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그리며 새판을 짜고 있을 걸.”

“...”

연오랑이 신랄하게 북평부를 까내렸다.

이 모든 건 정보의 부족에서 벌어진 일. 북평부가 동북방의 사정을 모르는 한, 저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는 뻔히 보일 수밖에 없다.

“뭐가 됐든 상관없잖아? 동부전선이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전력을 다해 끌고 나왔을 거고, 이번 전쟁 후에 더 많은 이권을 탐하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끌고 왔겠지. 품을 들인 만큼 뜯어낼 자격을 얻는 법이니까.”

“그래서 많이 끌고 올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그럼... 자형관의 병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군요.”

“그래. 아마 곧 알려올 거다. 우리나 저들이나 결국 관안현 일대에서 만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연오랑은 그리 중얼거렸고,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관안성벽 위에 조선군기가 솟아 흔들리는 게 보였다.

조선군과 몽골군 연합군이 시원하게 관안성을 박살냈지만, 의외로 사상자는 그리 크지 않았다.

조선군이야 요왕부에게 얌전히 넘겨줘야 하니 당연한 처사였고, 몽골남부연맹 입장에선 약탈도 못하는데 굳이 나서서 잔당처리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

전투가 일단락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요왕부 병력이 관안성을 접수했고, 그들은 관안성 및 관안성 일대의 마을을 휩쓸며 호족과 지주들을 때려잡았다.

그렇게 후속정리를 하면서 숙영지를 구축했을 때.

사방으로 흩뿌린 조선군 특전대와 몽골남부연맹의 정찰병들이 목을 빼고 기다렸던 소식을 알려왔다.

“일만 오천. 관안성에서 대략 반나절 거리에서 숙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만 오천이라... 얼추 다 끌고 나온 것 같지?”

연오랑이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하듯 히죽 웃자.

“예. 적어도 자형관의 병력은 전부 끌고 나온 모양입니다.”

“잘 됐습니다!”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형관을 함락시켜야 하는데, 자형관 내부의 수비군이 적으면 적을수록 편하니까.

“병종은?”

“대략 기병 오백에 나머지는 보병. 그리고...”

“그리고?”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화포를 실은 걸로 보이는 수레가 꽤 많다고 알려왔습니다.”

“음... 그게 확인이 되나?”

“예. 보급품을 실은 수레와는 확실히 차이가 났을뿐더러, 애초에 적들은 보급품을 많이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이렇게 늦는다고?”

“저들을 우리 기준으로 보면 안 되지. 무려 만오천의 보병일세. 하루에 움직여봐야 얼마나 움직일 수 있겠나. 그것도 한 덩어리로 움직이려면 말이야.”

조비형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지만, 오히려 하경복은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북평부 정벌의 기본개요 자체가, 적들이 동부전선의 지원군을 중구난방으로 보낼 거라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이 말은 조선군만큼 충실한 보급부대를 운용하지 않고, 각 도시와 마을을 끼고 움직이는 행군로를 계획해서 그 도시에서 숙식을 해결하겠다는 뜻.

그러니 제대로 된 막사도 몇 없을 거고, 보급품을 실은 수레나 마차도 몇 없을 거다.

또한 북평부도 다른 호족연맹과 마찬가지로, 바퀴 달린 포가는 물론 제대로 된 포가조차 없다.

결국 화포를 옮기기 위해서는 그저 수레에 실어서 끌고 가는 수밖에 없는데... 화포는 부피는 크게 차지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론 더럽게 무거워서, 수레에 실으면 티가 너무 많이 났다.

멀리서 보면 “저거 왜 빈 수레를 끌고 가는 거지?”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잘못보진 않았을 거야.’

정찰을 나간 특전대는 연대병 중에서도 정찰에 특화된 이들.

지난 수년간 그 일을 도맡아 했으니, 척하면 척으로 알아봤을 거다.

몽골군 정찰병도 마찬가지. 약탈이 일상이고 또 약탈을 막는 게 일상인 이들이야 말로, 어쩌면 위력정찰대이자 정찰병에 특화된 자들이다.

그들은 비록 조선군처럼 망원경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초원에 사는 이들이 눈이 좋은 건 주지의 사실.

그런 이들 중에서 더욱 눈이 좋은 이들을 가려 뽑은 정찰병이 확인했다면...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정보다.

“화포라...”

“북평이 아니라 천진항으로 가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조비형의 대답에, 연오랑은 머릿속에 자형관 병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전에도 말했듯 화포와 화포병은 어지간한 자금력으론 유지하기 힘든 병과고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위협적인 병과다. 특히나 기병을 잡는 데는 최고의 물건이기도 하고.

다만 이번 전쟁에선 화포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화포가 아무리 강력해도 모여서 화망을 형성해야 진정한 위엄을 뽐내는 법이니, 자잘하게 몇 문 가지고 있는 걸로는 대규모 기병대의 돌격을 돈좌시킬 수 없으니까.

‘멍청한 짓이긴 한데... 지들끼리도 믿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또 몇몇은 괜히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기 싫어서 은근히 밀어줬을지도 모르고.’

연오랑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려댔다.

문제라면 북평부는 파벌 때문에, 화포처럼 위험한 물건을 누군가가 독점해서 관리하게 놔둘 리가 없잖나.

그렇다보니 자금에 여유가 있는 대도시 호족이나 파벌이 조금씩 흩뿌려서 보관하고 있는 걸로 예상했는데... 지금껏 요왕부가 도시를 점령하면서 알려온 바론 예상이 적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량의 화포가 등장했다는 건, 자형관에 있던 걸 끌고 왔다는 뜻이겠지.’

거용관, 산해관과 마찬가지로, 관문도시에 화포를 보유하겠다는 건 꽤 일리가 있는 핑계니까.

더불어 그 화포를 굳이 잘 막고 있는 산해관으로 끌고 가겠나.

북평부도 조선군이 천진항을 점거하고 눌러 앉은 걸 알고 있으니, 당연히 천진항을 공성하기 위해서 화포를 끌고 온 걸 거다.

‘내 예측이 맞다면, 적들은 천진항을 포위하고 공성준비에 한창이겠어. 우리가 천진항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해하를 거슬러서 천진과 북평으로 가지 못하게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말이야.’

그는 머릿속에 그린 동부전선의 지도에서, 적들의 움직임을 그렸다 지웠다 반복해봤다.

“여기서 우리가 자형관 화포병을 지워버리면, 천진항의 공성군도 타격을 꽤 입겠군.”

“예. 공성이 꽤나 지지부진해질 겁니다.”

“화포가 없어도 공성을 하긴 하겠지만... 과연 그 엄청난 피해를 감수할만큼 적극적으로 덤벼들 파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조비형과 하경복은 벌써부터 개판이 될 천진항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백 기병이야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고... 나머지 보병은 큰 문제가 없겠군.”

“예. 아군은 충분히 쉬었고, 전마도 여력이 남아 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밟아버릴 수 있습니다.”

조비형은 “지금 출발할까요?”라는 눈치를 보였지만,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됐다.”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야습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인위적인 불빛이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엔, 보름달이 떠도 채 10미터도 보이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이 판국에 수만명이 뒤엉켜 싸우면 피아식별이 가능이나 하겠나. 나아가 살얼음판 걷듯 살금살금 걸을 수 있는 사람도 위험한데, 전마가 밤에 날뛰는 건 목숨을 내놓고 달리는 꼴.

‘그래서 야습은 오히려 소수정예가 적진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하는 게 보통인데... 지금은 우리가 객관적인 전력이 앞서잖아?’

머릿수도 앞서는데, 적은 보병이고 아군은 기병이다. 그냥 밟아도 되는데, 굳이 변수를 창출할 필요가 있을까.

흔히들 정석이라 말하는 전술이 등장한 건, 알아도 못 막기 때문. 야습이라는 기책은 불리한 쪽에서 택하는 거지, 유리한 쪽에서 택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이겨도 문제야.’

연오랑은 다시금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 전쟁은 아군이 북쪽에서 내려온 걸 그것도 수만 기병이 쏟아진 걸, 적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 많이 때려잡는 것이 핵심이다.

야습을 통해 자형관 지원군을 박살내는 건 좋은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적을 와해시켜도 제대로 살상 및 포박 할 수 없다.

보나마나 밤 그림자에 숨어서 온 사방으로 패잔병이 도망칠 텐데, 과연 그들을 다 쓸어 담을 수 있을까.

오히려 먹기 좋게 한 덩어리로 뭉쳐 있던 적을, 제대로 털어먹지도 못하고 사방에 흩어져 놓는꼴이 될 거고... 패잔병들이 마을이나 도시로 흘러들어가 농성을 시작하면, 요왕부가 점령하는 시간만 더 늘어질 수 있다.

“안 그러냐?”

“음...”

“그럴 겁니다.”

연오랑이 자신의 예측을 풀어놓자, 조비형과 하경복도 동의를 표했다.

“그러니 내일 날이 밝기 무섭게 들이친다. 어차피 적들도 밥은 먹어야 행군을 할 수 있을 텐데... 만오천이면 아침 먹는 것도 한세월이겠지.”

“게다가 숙영막사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더욱 상대하기 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날이 꽤 쌀쌀해 졌으니까요.”

“맞아.”

아직 완연한 겨울에 접어들진 않았지만, 새벽녘에는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충분히 쌀쌀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다.

맨바닥에서 자는 것도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닐 텐데, 고된 행군 후에 잠이 들면 제대로 된 저력을 보존이나 하겠나.

갑작스런 소집령에 준비가 덜 됐을 게 뻔하니, 아침에 공격하는 건 분명한 이점이 될 거다. 이 또한 괜히 정석이 아니지.

“몽골남부연맹에도 전하고, 미리미리 푹 자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충성!”

조비형과 하경복은 기운찬 대답과 함께, 내일을 기대하는 미소가 짙어졌다.

어스름한 푸른빛이 검은 밤하늘을 밀어내며, 쌀쌀한 새벽바람과 함께 군진이 깨어났다. 아니다. 이미 군진은 깨어나서, 밤새 모여서 온기를 나누던 전마들이 부르르 몸을 떨며 피를 달구고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아침밥까지 모두 챙겨먹은 기병대는 숙영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잔뜩 무장한 전마에 올라타 느긋하게 나아갔다.

목표는 자형관 지원군의 숙영지.

이미 특전대가 위치를 파악해 놨고, 애초에 만오천에 달하는 병력이 숙영할 장소는 나름 정해져 있기 마련.

오히려 특전대는 자형관 지원군이 뿌린 정찰대를 몰이사냥 하듯 잡아서 적들의 더듬이를 잘라냈고, 적들은 조선군 연합이 관안현 일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반나절이라곤 하지만 보병의 속도와 기병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는 법.

전마의 피로를 생각해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음에도,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쯤엔 어느덧 적 숙영지 근처까지 도착한 상황이었다.

“저기라고?”

“예.”

연오랑은 저 멀리 지평선에 불쑥 솟아 있는 검은 덩어리를 가리켰다.

“꽤 크군.”

“안에 마을을 끼고 숙영지를 세웠다더군요.”

“그랬겠지. 보나마나 저 마을을 다 털어먹었을 테니까.”

연오랑이 비웃듯 말을 토해내자.

“파벌이 같다면 저 마을은 겨울을 날 식량을 지원받을 텐데, 파벌이 다르다면 괜히 저 마을만 억울하게 고통받을 테지요.”

“그럴 거야. 어쩌면 그걸 노리는 걸지도 모르지. 저 마을에서 도망쳐 자형관 파벌의 구역으로 넘어가면, 그 핑계로 백성들을 집어삼킬 거니까.”

“...”

씁쓸한 현실에 괜히 세 사람의 입안 또한 씁쓸해졌고, 연오랑은 퉤. 가볍게 침을 내뱉고선 명을 내렸다.

“특별한 작전은 없다. 하던 대로 해. 아군의 병력이 우세하니 그냥 밟아라. 몽골남부연맹은 알아서 잘할 거다.”

“알겠습니다.”

“옙!”

바글바글하게 인구가 넘쳐나는 중국에서 만오천명은 한줌거리도 안 될지도 모른다.

허나 만오천의 군대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적들이 머무는 숙영지는 못해도 1제곱키로미터는 넘어가서, 숙영지가 아니라 거의 마을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

만약 이들이 조선군처럼 목책과 배수로 등이 건설된 진짜 숙영지를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 연합군이 북직례로 들어온 것도 모르고, 오롯이 천진항으로 가느라 바쁜 상황. 고작해야 하룻밤 대충 머물고 떠나야 하는데, 굳이 힘들게 진짜 숙영지를 만들려고 했겠나.

그 안일한 태도가 약점이 되어,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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