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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38화 (538/538)

538. 챕터65. 분쇄하다 (3)

그럴수록 양익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치열해져갔다.

조선군이 전열을 더 늘어뜨리자, 북평군의 움직임이 거칠어졌기 때문.

북평군 전열은 길게 늘어선 일자진인데, 조선군이 전열을 늘렸다고 해서 똑같이 늘릴 수가 없다.

지금 이들이 이렇게 제대간의 간격을 좁게 해서, 격자무늬를 만들고 있는 이유가 뭔가. 제대 하나만 가지고선, 기병돌파를 막을 수 없기 때문 아닌가.

“헌데 무턱대고 제대간의 간격을 넓히면...”

“아군이 파고들 틈을 만들어주겠지요.”

“그렇게 아군이 파고 들면, 전열에 구멍이 송송 뚫리게 될 거고.”

“그럼 결국 전열이 분단되어 잘게 쪼개질 겁니다.”

쾅쾅쾅! 북평군이 쏴대는 화포가 연대병이 지나간 자리를 때리고, 혹은 아예 연대병 머리 위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이고와 대대장은 머릿속에 승리의 미래가 그려졌다.

이래서 기병을 상대로 무턱대고 회전을 벌이면 안 되는 거다.

보병끼리의 전투라면 기동력이 비슷하니 어떻게든 비빌 수가 있지만, 기병은 자기가 유리할 때만 두들겨 팰 수 있으니까.

맞붙어 싸울 수도, 등을 돌려 도망칠 수도 없으니, 질질 끌려올 수밖에.

‘1만 기병이 능수능란하게 궁기병이 되었다가 창기병이 될 수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겠지.’

이고는 조선군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삼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조선군 전열이 파도처럼 좌우로 출렁이기 시작하자.

“옆으로!”

“멈추지 마라!”

“쫓아가! 놓치면 안 된다!”

적병들이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가 말발굽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듯 했다.

숨이 목젖까지 차올라 “헉헉” 거친 호흡을 뱉어내는 북평군 병사들.

당장 앞에서 얼쩡거리는 기병을 보며 창을 들고 있기도 힘든데, 좌로 우로 기병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게 쉬울 리가 있나.

그렇다고 미적거리며 발을 질질 끌면서 열을 못 맞추거나, 제대에서 떨어져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저 옆에서 본보기가 보였다.

“컥!”

“끄억!”

버티지 못하고 발이 꼬여 넘어진 병사들을 향해, 소대 하나가 물고기를 낚아채는 물수리처럼 달려들어 편곤을 휘둘렀다.

그리곤 휙! 피를 털어내듯 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겨, 옆에 있던 북평군 제대가 다가오기도 전에 꼬리를 말고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북평군은 계속 끌려 다녔고, 제대간의 간격에 불규칙하게 벌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

“저기다!”

“쳐라!”

그 때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조선기병들은 전열에서 삐져나온 적 제대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 뿐일까.

적 제대가 출렁이기 시작하자, 제대 뒤에 있던 화포 또한 노출됐다.

병사들도 뛰어다니기 힘든 판에, 포가도 없고 바퀴도 없는 화포를 이리저리 움직일 수가 있나.

나아가 포가가 없으니 포각을 자유롭게 만들 수도 없는 터라, 그냥 쏘면 아군인 북평군 뒤통수에 포탄을 갈기는 꼴.

해서 화포가 있는 제대는 어쩔 수 없이 조선군 눈에 보일 수밖에 없었고, 전열이 출렁거리자 더욱더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화포다!”

“쏴라!”

비록 조준사격을 하진 않았다지만, 수가 워낙 많지 않나.

매섭게 날아간 화살은 화포 인근에 퍽퍽 틀어박혔다.

방패든, 널빤지든, 아니면 갑옷을 대충 팔에 겹쳐놨든, 가리지 않는다.

“끄억.”

“힉!”

비록 화살에 맞아 죽은 화포병이 없다고 한들, 그들은 화포를 쏠 틈도 없이 몸을 웅크리느라 바빴다.

한 곳만 그러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그러고 있으니... 처음에 기운차게 화포를 쐈던 것에 비하면, 간지러운 수준으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북평군의 한수에 맞서 조선군의 한수 또한 펼쳐졌다.

“저기. 예비대가 움직입니다.”

대대장은 뒤쪽에서 전열의 끝에서 끝까지 달리며,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예비연대를 가리켰다.

“저쪽은 힘들겠어.”

“흐...”

이고는 보이지 않아도 뻔히 읽어지는 적 후방을 바라봤다.

전열을 일자진으로 만들어 놨다지만, 적 또한 예비대를 준비해 놓았을 게 분명했다.

늘어져 있는 조선군이 갑자기 병력을 모아 한점에 집중시키면 아무리 튼튼한 전열이라도 뚫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뚫린 구멍을 막으려면 예비대가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치고 들어갈지 모르지 않나.”

“예. 아마 죽을 맛일 겁니다.”

문제는 기병이 돌아다니는 것과 보병이 뛰어다니는 건, 피로가 쌓이는 것에 있어서 차원이 다르다는 점.

적 예비대가 좌로 우로 움직이면서 아군 예비기병대의 속도를 맞추려면, 기진맥진해질 분명.

아니나 다를까. 아군 전열 뒤편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처럼, 적 전열 뒤편에서도 먼지구름이 살포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팽팽하면서도 지루한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고, 제대로 화포를 쏘지 못하자 결국 먼저 지치는 쪽은 북평군이었다.

아무리 조선군이 예비마를 안 가져왔어도, 전마가 지칠 정도로 전력질주를 계속 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드디어 승리의 시간이 도래했다.

“저기! 보이십니까?”

“음!”

대대장은 망원경을 들어 적 전열 뒤편에서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가리켰다.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시간동안, 이렇게 적들을 붙잡아 뒀던 이유.

바로 몽골남부연맹이 후방을 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북평군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한참을 돌아서 온 몽골남부연맹은, 먼지구름도 피우지 않고 슬금슬금 다가와선 일제히 돌격을 시작.

온통 조선군에게 신경이 쏠려 대처하지 못하는 순간을 노려, 북평군 전열 전체를 향해 몽골군은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

“음. 더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들키지 않으려고 멀리 돌아와서 그런 걸까요?”

“그냥 자기들이 피해를 덜 입으려고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회천치고는, 꽤나 빨리 끝난 편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연오랑과 하경복, 조비형은 난장판이 된 전장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서서, 물끄러미 구경하며 중얼거렸다.

몽골군이 후방을 친 순간. 전투는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조선군이 적을 바로 치지 않고, 숙영지에서 끌어내어 질질 붙잡고 있었던 이유가 뭔가.

아군의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이번 한 번의 전투로 자형관 지원군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시원하게 적진을 향해 돌진해 밟아버렸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기병이라고 해도 보병방진에 들이박으면 피해가 날 수밖에 없는 법.

헌데 조선군이 그렇게 까지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않나.

또한 괜히 어중간하게 승리해서, 패잔병이 도망이라도 치면 피곤해지니까.

‘저놈들도 똑같이 생각했겠지.’

연오랑은 사방에서 전리품을 챙기고 있는 몽골남부연맹 병사들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참 웃기게 된 게, 조선군도 몽골남부연맹군도 남의 전쟁에 끼어들었지 않나.

피해를 감수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건데, 그렇다고 그 피해를 남에게 떠넘길 수도 없다.

특히나 요왕부에게 넘기는 건 최악. 요왕부의 힘이 약해지면 북직례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터라, 조선군으로선 잘 싸우면서도 피해는 줄여야 했지.

그래서 이런 방법을 썼는데, 몽골남부연맹은 거기서도 조금이나마 이득을 챙기고 싶었나 보다.

“안 그러냐?”

“예. 뭐... 그래도 너무 늦지 않은 걸 보면, 우리 눈치를 많이 본 건 맞습니다.”

“어쨌든 역사에 남을 대승이지 않습니까. 그럼 됐다고 봅니다.”

연오랑이 피식 비웃자, 하경복과 조비형이 냉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대승은 당연한 게... 애초에 조선군은 적병의 힘을 쫙 빼서 무력화시키는 데 초점을 뒀던 터라, 몽골군이 들이치자마자 창을 내던지고 손을 번쩍 드는 북평군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포위된 것도 무서운데, 여긴 기병을 상대로 도망칠 수도 없는 평원. 나아가 북평군 병사의 숫자보다 기병 숫자가 더 많지 않나.

지휘관뿐만 아니라 병사들마저도 조선군과 몽골군이 함께 왔다는 사실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동부전선이 멀쩡히 남아 있는 마당에, 북부가 뚫렸다는 뜻이니까.

“끄억!”

“컥!”

한량마냥 슬슬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 저편에서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볼 필요도 없는 게, 옷을 홀딱 벗은 이들이 차례차례 목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관안현에서 머물고 있던 요왕부 병사들은,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모습을 드러냈다.

관안현이 아닌 자형관 후방기지. 이현 일대를 다스리기로 되어 있는 이들로, 그들은 얌체처럼 군 걸 만회하기라도 하듯 재빠르게 움직였다.

자형관 지휘관들과 군부파벌, 호족지휘관과 사병들을 사정없이 처형하고 있었던 거지.

“포로들이 말은 잘 듣겠네.”

“...”

자기 상관들이 사정없이 죽어나가는데, 누가 감히 반항할까.

연오랑은 언제 죽을지 몰라서,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적들 피해는?”

“사망자는 대략 구백명 정도 됩니다. 화살에 맞아 다친 이들은 많지만, 치료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정양하면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구백이라...”

짧은 시간동안 싸운 것치고는 꽤 많이 죽은 편인데, 만오천의 병력이었던 걸 감안하면 얼마 안죽은 것이기도 했다.

“포로는?

“예상보다 조금 더 많이 와서, 대충 만오천정도 됩니다.”

“특별한 정보는 있고?”

“자형관에 대한 정보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일반 병사들이야 자형관 인근에 사는 백성들이나 마찬가지니 전부 살려뒀지만, 지휘관들은 사정없이 고문해서 정보를 뽑아냈다.

포로가 워낙 많아서 가짜 정보를 흘릴 수도 없었기에, 꽤나 쓸만한 정보를 많이 뽑아낼 수 있었지.

“우리가 온 걸 아무도 몰랐단 말이지.”

“예. 확실히 저희가 빨리 움직이긴 움직인 모양입니다.”

“그러면 대명부와 광평부의 병력은 북쪽으로 올라오기도 전에 요왕부의 병력과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

“만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분명히 만나겠지.”

연오랑은 중군을 이끌고 직접 남부로 달려간 요왕 쿠타리와 그의 병사들을 떠올려봤다.

대명부와 광평부는 북직례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

이곳은 하남과 산동에게 넘겨주기로 되어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오는 병사들은 어쨌든 요왕부의 적 아닌가.

요왕 쿠타리는 북평을 노리기 전에 어떻게든 후방을 정리해야하니, 그 어떤 적보다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남부의 병력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그놈들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그땐 북직례 정세가 혼란해질 테니까.

“우리에게 떠넘기지 않은 게 다행이지.”

“사람이 염치가 있으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자형관을 박살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겁니다.”

“글쎄...”

연오랑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형관을 거용관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부셔버릴 생각이었다. 헌데 천혜의 관문이 사라지면 과연 요왕부가 좋아할까 싫어할까.

‘모를 일이지. 하지만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 없겠지.’

자형관을 통해 몽골남부연맹이 쏟아져 들어가면, 산서 동중부 지역은 몽골남부연맹의 차지가 될 거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요왕부가 그러한 것처럼, 그들도 산서호족들을 때려잡고 거기에 눌러 앉을 생각이니까.

그럼 자형관이 없어진 이상. 요왕부와 몽골남부연맹은 어쩔 수 없이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리품은 어찌한다고 하냐? 쟤들 저거 챙긴다고 해서 가져갈 수나 있냐?”

“뭐. 알아서 챙기지 않겠습니까. 요왕부는 이번 전투에서 딱히 한 게 없으니, 무작정 달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래도 우리 눈치를 보니, 반쯤은 떼어줄 것 같습니다.”

조비형과 하경복은 이미 천호장들과 얼추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런저런 말을 털어놨다.

포로로 잡았는데 무장을 허용할 리가 만무. 옷 빼고 나머지 갑옷과 무구를 다 빼앗아서 몽골군들이 챙기고 있었다.

“화포는 우리가 가져간다고 확실하게 말했지?”

“예. 화포병도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별 말 없었냐?”

“지들이 뭐 어쩌겠습니까.”

연오랑의 물음에 하경복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실실 웃어댔다.

화포와 화포병은 요왕부도 당연히 바라겠지만... 하경복 말대로 조선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나. 이렇게 대신 싸워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감지덕지지.

“뒷수습은 요왕부에게 맡기고, 우린 빨리 움직이자. 탈주한 병사들은 없어 보이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니까.”

“옙!”

“몽골남부연맹에게도 알리겠습니다.”

가볍게 식사를 끝내고 전장정리를 마무리하고서, 조선 연합군은 곧장 자형관으로 내달렸다.

포로들은 요왕부 병사들이 알아서 끌고 올 수 있을 터, 무장도 하나 없는 이들이니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거다.

쉬지 않고 말을 달리자 3일 만에 이현 일대에 도착했는데, 평원에 널려 있는 하천이 아니었다면 더 빨리 도착했을지도 모르겠다.

자형관 후방기지인 이현에 도착하자마자 이어진 건, 역시나 거침없는 숙청작업.

요왕부가 해야할 일이지만, 자형관을 공략하기 전에 미리미리 후방을 정리해 놔야하지 않나.

조선 연합군이 이곳에 나타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또 태행산맥과 붙어 있는 이현 일대는 북직례의 지원군이 올 행군로도 아니었기에, 조선 연합군을 막는 병력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곳 군호에 속한 이들은 죄다 포로가 돼서, 애초에 싸울 사람도 얼마 없었고 말이다.

그렇게 요왕부를 대신해서 이현 일대의 군벌파벌을 쓸어내고 호족들을 치워내면서, 동시에 현지보급이라 부르고 약탈이라 쓰는 작업도 병행했다.

다만...

“... 하여간 한족 놈들은 욕심이 끝이 없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북직례가 다른 지방에 비해 백성들에게 박하게 군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연오랑이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혀를 차자, 조비형이 냉큼 말을 받았다.

중국호족의 스케일이 큰 건 익히 봐왔지만, 북직례는 남직례나 산동보다 더하는 것 같았다.

호족장원은 말 그대로 고래등과 같은 전각이 수십개씩 뭉쳐 있었는데, 거기에 사는 식솔과 사병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물론 가문혈족은 거침없이 쓸어버렸고 가병들도 쓸어버렸는데, 이들이 놀란 건 장원의 곡식창고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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