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3화 (3/122)

오줌과 스카웃 (1)

* * *

로만 엔터테인먼트 최고층.

14층 대표실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팔짱을 낀 노중만 대표가 마주 앉은 매니지먼트 본부장에게 물었다.

“그 팀장은?”

“직원 한 명 딸려서 병원으로 보냈죠.”

“거기선 뭐래?”

본부장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됐다.

“증상으론 저혈당 쇼크라고··· 애가 무슨 풍 걸린 진돗개마냥 침을 질질 흘리더라고요. 가위라도 눌린 줄 알았습니다.”

노중만은 굵은 손가락으로 양복 팔꿈치께를 두드렸다.

“잠도 안 잤는데 가위라.”

“아니, 대표님도 보셨잖아요. 오귀준이가 복도에 소변 지린 거. 누구한테 두들겨 맞아도 맛이 그렇겐 안 갈 겁니다.”

“지병이 있었을 수도 있지.”

본부장이 확신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의사한테 건강기록을 확인했어요. 예전에도 멀쩡하고, 앞으로도 멀쩡할 거랍디다.”

“그럼 어딜 때렸나 본데.”

“···거기 있던 직원들이 증언했잖습니까. CCTV도 확인했고요. 그 군인 친구 말마따나, 털끝 하나 안 건드렸던데요.”

“그래서 신기하단 거야.”

“예?”

본부장의 반문엔 대답하지 않고, 노중만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새 투자처를 발견했을 때처럼 흥미로운 눈빛이었다.

“병이 있지도 않아, 뭘로 찌른 것도 아냐, 대체 어떻게 보냈을까?”

*

십오 분 전, 홍보팀 앞 복도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아, 어떻게 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던 홍보팀 여직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오귀준이 쓰러지고 잠시 후, 위쪽 복도에서 세 명이 걸어내려온 것이다.

매니지먼트 본부장, 손님으로 와 있던 은희욱 작가, 로만 엔터테인먼트 대표 노중만.

“소리가 위층까지 들리네. 뭣들 하는 거야?”

작은 체구에 은테안경을 쓴 본부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상황은 아사리판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팀장 한 명은 자빠져 게거품을 물고 있고, 그 앞에는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키가 훤칠한 군복과 중학생처럼 왜소한 녹색 티셔츠.

둘 중 티셔츠 쪽은 죄라도 진 듯 안절부절못했지만 군복 차림은 시종일관 느긋했다.

임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도 전투복 바지에 손을 찔러넣은 채 서 있기만 했다.

“저기, 그쪽 분들이든 이쪽 분들이든,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인상을 쓴 본부장의 말을 진회색 양복, 노중만 대표가 막았다.

“누가 애부터 챙겨. 119 부르고.”

회사에서 난리를 친 놈도, 그 난리가 난 회사 오너도 남의 일처럼 침착했다.

사람들 사이로 걸어간 노중만이 군복 입은 사내와 마주 섰다.

조폭 출신이라는 루머가 따라다닐 정도로 떡 벌어진 노중만의 체구였으나, 앞에 선 사내도 키나 덩치가 만만치 않았다.

“로만 대표 노중만입니다.”

“박선 매니저 친형입니다.”

노중만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매니저 형이 여기서 뭘 하고 있죠?”

“저 직원, 오귀준이라는 실장이 제 동생을 한 달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구타했습니다. 리더를 포함한 와우키즈 전원이 묵인 및 동조했고요.”

“그래서?”

“사과를 받으러 찾아왔습니다.”

둘의 대화를 들으며, 뒤쪽에 서 있던 본부장 서희택은 생각했다.

‘···미친놈인가?’

로만이 어딘가. 그래도 3대 엔터 바로 밑에 들 정도로 큰 기획사고, 와우키즈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3년차 아이돌이다.

팬덤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이, 회사 홍보팀만 나서도 신입 로드와의 갈등 정도는 덮고도 남는다는 소리다.

그런데 다짜고짜 찾아와서 당사자들을 데려와 사과를 시키라고?

‘뭐, 아우라가 좋긴 하네. 군복도 잘 어울리고.’

웃기는 점이라면, 그래서인지 노 대표가 등장했는데도 직원들이 구경만 하고 있다는 거였다.

누구 하나 시큐리티를 부르지도 않고, 마치 대표와 배우의 미팅이라도 보는 것처럼.

“음.”

옆에서 작은 감탄사가 들렸다. 돌아보니 펜을 꺼낸 은희욱 작가가 뭔가를 바삐 적고 있었다.

노중만의 시선이 거품을 물고 껄떡거리는 오귀준에게 내려갔다.

방광이 열렸는지, 바지 주변에 투명한 액체가 고여 지린내를 풍겼다.

“때렸나?”

“털끝 하나 안 건드렸습니다.”

“그런데 자빠져서 오줌까지 지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릴······.”

본부장이 끼어들었지만 군복 사내는 자연스럽게 말을 끊었다.

“저기, 그리고 저기, CCTV에 다 찍혔을 테니 확인해 보시죠.”

복도의 CCTV를 가리키더니 전투복 옷깃을 툭툭 두들겨 폈다. 할 말은 다 했으니 경찰이고 경비고 불러 보라는 태도였다.

이윽고 노중만의 명령이 떨어졌다.

“홍보팀 직원, 아무나.”

뒤에 빠져 있던 남직원이 황급히 나섰다.

“예, 예!”

“문 실장한테 연락해. 와우키즈 어디 있냐고.”

아까 비명을 질렀던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아마 네 명 다 연습실에 있을 거예요. 아까 숙소로 안 가고 내려가는 거 봤어요.”

고개를 끄덕인 노중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문 실장. 요즘 신입 갈궈서 쫓아내는 관행이 우리 회사에도 생겼나?”

다급한 아닙니다, 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왔다.

“소속 뮤지션은 연차 쌓였다고 로드나 살살 갖고 놀고, 실장이란 놈은 말리기는커녕 같이 괴롭히다 뻗고··· 보기 좋아.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조폭 엔터니 뭐니 깎아내리는 판에.”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당장 회사로······.

노중만은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껏 군복 사내는 한가로이 서 있었다. 비둘기 떼 사이에 들어온 독수리 같기도 했다.

“사실관계 확인 후에, 일처리는 우리 법무팀이랑 마저 해요. 치료비랑 합의금은 그쪽에서 조율할 테니까.”

“퇴직금도.”

“입사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정신적 피해보상의 다른 말입니다.”

노중만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가, 뭔가 열심히 적고 있던 은희욱 작가를 불렀다.

“가시죠, 작가님.”

이윽고 노중만 대표와 은희욱 작가는 엘리베이터로 사라졌다.

못내 찜찜한 표정의 본부장이 실장 하나를 찍어 지시했다.

“너, 최종훈이. 저 사람··· 저분들 모시고 연습실 내려가서 와우키즈 애들한테 사과드리라고 해. 대표님이 말씀하셨으니 뭐가 있긴 했겠지.”

“예!”

“알아서 뒤처리들 하고. 야밤에 이게 무슨 난린지··· 쯧.”

명령을 받은 실장이 달려간 뒤, 모여 있던 사람들도 슬슬 흩어졌다.

누군가는 오귀준이 지린 소변을 닦기 위해 걸레를 들고 왔고, 누군가는 구급차가 도착했는지 보러 내려갔다.

직원 한 명이 툭 중얼거렸다.

“내일부턴 오귀준이 아니라 오줌준이겠네.”

*

“그래서, 어떻게 됐나?”

본부장이 입맛을 쩝 다셨다.

“대표님 다시 오시기 전에 처리했죠, 뭐. 와우키즈 애들한테 사과시키고, 저쪽 죄 없는 거 확인했으니 법무팀 명함 주고. 그 신입이라던 매니저가 더 부담스러워하던데요.”

“잘 했어. 그만하면 됐지.”

“아니, 그런데 원래 알고 계셨던 거예요?”

“뭐? 와우키즈?”

“예. 대표님이 바로 미시길래 얘네 뭐가 있었구나, 했죠. 확실한 거 아니면 소속사 식구들은 감싸 주시잖아요.”

“감쌀 가치가 있을 때만.”

대꾸한 노중만이 대표실 벽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대리석 벽면에는 로만 엔터테인먼트를 끌고 가는 식구들, 대표 배우와 각지에서 활약하는 아이돌의 사진이 줄지어 걸려 있다.

백하니, 구신승, 진지유, 최필립······ 사진 끝에는 독특하게도 족자와 환도 한 자루가 보인다.

强弩之末(강노지말)

困獸猶鬪(곤수유투)

사자성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중만이 물었다.

“지유 계약이 얼마나 남았지?”

“아마 올해 말까지일걸요. 항욱이가 내년 여름까지일 거고요.”

“유준일 실장이랑 그 아래 팀장들, 전속계약 얼마 안 남은 배우들 케어 확실히 하라고 해. 군침 돌 제안들 여럿 들어올 거야.”

로만이 크긴 해도, 공고히 자리 잡은 삼대 기획사에 비하자면 아무래도 인재풀이 얇다.

그걸 경쟁 엔터 대표들이 모를 리 없다. 재계약 시즌이 되면 어떻게든 탑급 인재를 누수시키려 작업을 해 올 것이다.

내년 이맘때. 과연 저 벽에는 누가 남고 누가 새로 들어올까.

고개를 주억거린 본부장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은 작가님은요? 같이 식사하러 가신다더니 대표님만 들어오셨네.”

“잠정 연기됐지.”

“다른 일정이라도 생겼대요?”

노중만 대표가 빙그레 웃었다.

“그걸 보고도 밥이 넘어가겠어?”

“예?”

“무명 콜렉터잖아. 그 양반 스카웃 본능은 작가가 아니라 엔터 대표야.”

“아, 발품 팔러 갔구나.”

본부장의 얼굴에도 알겠다는 빛이 번졌다.

노중만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으면서 중얼거렸다.

“지금쯤 작업 들어갔을걸. 이 바닥, 의외로 달콤하다면서.”

*

“형, 그 작가님이랑은 무슨 얘기한 거야?”

집으로 가던 중, 조수석의 박선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까부터 입을 열댓 번은 벌렸다 닫았다 하더니, 기어이 못 참은 모양이었다.

“그냥, 뭘 좀 묻던데.”

“물어? 형한테?”

신호가 바뀌었다. 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로만 사옥을 나왔을 때였다.

정문 앞에 아까 봤던 남자가 서 있었다.

긴 머리에 깡마른 몸, 거적때기를 기워 붙인 듯한 개량한복까지, 척 봐도 ‘나 예술가요’라고 써 붙인 인간이었다.

-저, 매니저님.

남자가 말을 걸자 박선이 흠칫 놀랐다.

-예, 예?

-나 은희욱이라고 하는데. 혹시 형님이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당연히 건은 몰랐지만,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진 걸 볼 때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았다.

빵빵ㅡ

뒤에서 클랙션이 울렸다. 자기 일처럼 몸이 달은 박선이 재촉했다.

“설마 그거야? 스카웃? 연기 관심 있냐면서 오티션 보러 오라거나?”

“대단한 사람이냐?”

“당연하지! 형 입대 전부터 은희욱 하면 알아 줬어. 데뷔작으로 CBC 작품상 받고, 작년에도 연타석으로 히트작 터뜨렸고··· 아니, 근데 무슨 얘기 했냐니까!”

“묻던데. 싸움 좀 하냐고.”

잔뜩 기대에 차 있던 박선의 표정이 멍해졌다.

“······싸움?”

“응. 그러더니 연락처 적어 주고 가더라. 명함 없다고 수첩 찢어서.”

“싸움··· 왜 그런 걸 물어보셨지? 이번에 액션 장르로 들어가시나?”

조연은 몰라도 엑스트라는 별론데, 아니, 그래도 은희욱 작가 촬영장은 페이가 잘 나오니까··· 혼자 머리를 붙잡고 중얼대는 동생 옆에서, 건은 과거를 회상했다.

ㅡ이봐, 자네가 그 용사인가?

왕가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신전 아래에서 돌망치를 둘러멘 채 기다리던 거구의 사내.

ㅡ어디 한번 확인해 보자고. 성녀님의 수명을 십 년이나 깎아먹은 가치가 있는지.

다른 차원으로 전이당한 지 불과 두 시간도 안 지났던 시점. 합기를 쓸 줄도 몰랐던 신참 용사를 불러, 그 새끼는 실제로 골통을 부쉈다.

사슬이 둘둘 감긴 무작스러운 해머로.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그것이 용사 박건의 첫 죽음이었다.

“모르지. 보디가드가 필요한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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