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과 스카웃 (2)
* * *
청담동의 고급 요릿집.
코스가 나오면 바로바로 받을 수 있는 반 룸 반 다찌석 자리에,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살이 쪄 눈이 조개 틈새처럼 가느다란 남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은 작가님, 싼 데로 잡으랬잖아. 나 이런 데 드나드는 거 알면 욕 푸지게 얻어먹어요. 나종모 저 새끼, 충무로 버리고 드라마판 가더니 비싼 데서 접대 받고 다닌다면서.”
“접대 맞는데요. 그리고 형은 원래 욕 많이 먹잖아요, 재촬영 귀신이라 영화고 드라마고 스탭들 입원시킨다고.”
은희욱 작가가 대꾸하자마자 주방과 연결된 회전 테이블에서 요리 접시들이 운반돼 왔다.
연어 알과 성게 알이 올라간 스시, 복어튀김, 후토마끼. 대식가의 취향에 맞춘 한 상 차림이다.
나종모 PD는 군침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먹으면서 하자. 로비 안건은?”
“배역 하나만 바꾸죠.”
“뭐?”
“최승 말이에요.”
나종모 PD의 얇은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최승은 김용후가 맡기로 얘기 끝났던 거 아냐? 내일 아침에 연락 넣을랬는데.”
“바꿔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놀라는 것도 식후경이다. 스시를 쏙쏙 골라 삼킨 나종모 PD가 은밀히 물었다.
“혹시 삼촌한테 뭐 들었냐? 막 뭐, 그 친구 마약 스캔들이 터지기 직전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어휴, 그럼 다행이긴 한데··· 김용후가 아웃이면 누구로 쓰게. 송지익, 아니면 윤태상?”
오늘 저녁, 드라마 [서울의 개] 비공개 오디션이 있었다.
여태 찾지 못한 마지막 배역. 최승 역을 선발하기 위한 자리였다.
피디와 작가, 몇몇 스태프들 앞에서 배우들은 고만고만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장고 끝에 김용후로 의견이 모아졌다.
은희욱 작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예 외부인이에요. 카메라 테스트부터 봐야 하는 일반인.”
“······어?”
“근데 잘 할 거예요. 느낌이 오더라고.”
알쏭달쏭한 말이 이어졌다. 나종모의 실눈에 서린 수심이 깊어졌다.
은희욱. 어느 순간 혜성처럼 등장해 지상파와 공중파, 케이블을 안 가리고 메가 히트작들을 쏟아 낸 작가다.
시청자들에게 별명은 느와르 마스터.
업계 안 별명은 스카우터.
본인이 찍은 무명 배우를 한둘씩 극에 꽂는데, 이게 또 항상 대박이 터진다.
데뷔작의 주연 허시동을 비롯, 그렇게 배출한 스타가 벌써 몇 명이지만······.
나 PD를 비롯해, 짬 좀 먹은 관계자들은 은희욱의 삼촌이 지상파 방송국 국장임을 안다.
“···희욱아, 벌써 촬영 날짜가 코앞이야.”
“알고 있는데요.”
“아니,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무명 배우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이라니, 안 그래도 힘든 배역이라 오디션 보겠다고 들이미는 애들도 적은 판에.”
“그래서 김용후 송지익 윤태상, 셋 다 애매했잖아요.”
“그건 맞는데··· 마스크에 연기, 하드한 액션까지 다 되는 배우가 얼마나 있겠냐고. 저기 충무로 쪽까지 뒤져도 씨가 말랐어요.”
“씨가 마르진 않았죠. 몸 사리면서 예쁜 역, 편한 역 받으려고 안 하는 거지.”
“그게 그 소리지······.”
한숨을 푹푹 쉬던 나종모 PD가 물었다.
“누군데? 우리 은 작가님한테 찍힌 주인공.”
“방금 봤어요. 전역한 군인 같던데, 자기 동생이 맞았다고 로만에 쳐들어왔더라고요. 전투복에 전투화 차림으로.”
“로만에? 그 노중만 대표네?”
“네, 그래서 나가는 거 붙잡고 물어봤죠. 혹시 싸움 좀 하냐고.”
“뭐라디?”
은희욱은 묘한 표정으로 입술을 축였다.
“웃었던 것 같은데요. 사람 수십은 죽여 봤다는 표정으로.”
“······.”
나종모 PD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서울의 개]는 스타일리쉬한 하드보일드 느와르물. 강력반 형사가 테러범 일당을 쫓으며 펼쳐지는 포악하고 질척한 서사를 다룬다.
남자 주연 둘은 결정됐지만 보스의 측근 역에 마땅한 인재가 없어서 늘어지던 차였다.
‘오히려 좋을 수도······.’
방송가는 언제나 새로운 피에 열광한다. 스타 작가가 직접 발굴한 무명 신인, 거기에 ‘은희욱 픽’은 이미 증명된 흥행수표다.
최승은 고난이도의 감정연기가 필요치 않은 역이니만큼, 딱 평균만 해 준다면······.
“근데 은 작가, 우리 액션 빡세. 박 감독 촬영 스타일 알지? 스턴트맨에 카메라워크로 커버한대도 아예 베이스가 없으면 안 돼. 요즘 시청자들, 편집점 기가 막히게 골라낸다고.”
나종모 PD가 짐짓 걱정을 늘어놨지만 으레 하는 소리임은 둘 다 알았다.
벌써 드라마만 두 작품, 무려 50회차를 촬영하면서 지독하게 맞춰 본 팀워크 덕이다.
은희욱 작가가 빙글빙글 웃었다.
“사흘만 주세요. 중만이 아저씨한테 뭐 좀 물어보고, 확인할 거 확인해서 데리고 올게요.”
“안 한다고 하면?”
“저도 대본 안 쓰려고요.”
“어휴, 은 작가!”
“농담이고, 그래도 나머지 두 명은 못 써요. 그냥 김용후로 가야죠.”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종모가 은근하게 물었다.
“근데, 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 스카우터 타이틀 때문에 무명 배우 쓰려는 거면······.”
“그딴 거 관심 없어요. 엔터 사장 할 것도 아니고, 작가가 훨씬 편한데 뭣 하러?”
“아유, 역시 은 작가. 우리 희욱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냥!”
논란도, 어그로도 좋다.
하지만 시청률을 떨어뜨릴 놈이면 안 된다.
이 중론이야말로 시청률 귀신들의 합의점이자, 둘의 콤비가 잘 맞는 이유였다.
*
형제가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첫째아들의 늦은 전역부터 둘째아들 회사 폭행 소동까지.
숨길 수도 없는 이야기라 박선이 설명했고, 박건은 차려진 음식만 먹었다.
한쪽 손이 없는 퇴역 소방관, 아버지 박열호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잘 했다, 나쁜 놈들. 마침 건이랑 만나서 다행이지, 형 없었으면 험한 꼴만 당했을 거 아니냐.”
어머니 한영주는 생각이 좀 달랐다. 남편의 옆구리를 모질게 찌르더니 잔소리를 시작했다.
“잘 하긴,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무슨 조폭이랑 관련된 기획사도 많댔다고요. 나중에 거기서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게요?”
박선이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에이, 엄마! 우리 대표님 그런 분 아냐. 이상한 소문이 있긴 한데, 오늘 보니까 진짜 좋은 사람이셨어요.”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해. 그 회사 근처엔 얼씬도 말고, 응?”
“너희가 잘못한 게 뭐 있어서 피해 다녀? 떳떳하게 어깨 펴. 다시 건드리면 확······.”
“이이가 진짜!”
강직한 성격의 박열호는 뭐라고 더 하려다가 헛기침을 했다.
“어··· 뭐, 아무튼 건이가 수고 많았다.”
“한 것도 없는데요.”
갈비찜을 더 떠 주던 한영주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었니? 부대로 전화하니까 아까 출발했다고 하고, 네 폰은 꺼져 있고,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아, 졸다 열차를 놓쳤어요. 배터리도 다 됐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흘러나온다. 박선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박열호의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에 묻혔다.
“건이 저놈 특수부대 출신이야.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사나이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
무슨 일이 있긴 있었다.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유, 전역날엔 가랑비도 조심해야 된다는 말 몰라요? 당신도 해병대 나와 놓고.”
“그건 전역날이 아니라 말년 때야, 여보.”
“말년이고 전역이고 하여간!”
익숙하지만 낯선 부모님의 티격태격을 들으면서, 건은 갈비찜을 물어뜯었다.
죽은 짐승의 근육에서 배어나오는 감칠맛. 미뢰가 수용체를 자극하여 대뇌로 전달하는 감각이 생경하다.
가운데땅에서 귀환하기 직전··· 몇 년 동안은 살아 있는 시체처럼 검을 휘둘렀다.
반신에 가까워진 용사의 육신은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다.
정 목이 마르면 악마를 찢어 피를 마셨다. 또는 악마가 아닌 다른 무엇을.
수십 차례 죽음을 거치며 통각도 날아갔다. 대신 다른 감각들, 후각과 청각 등 살기를 감지하는 감각들만 무섭도록 예민해졌다.
그리고 이 몸으로 돌아와 버렸다.
박건의 육체로,
용사의 정신을 가지고.
흡사 멀쩡한 하드웨어에 미쳐 버린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셈이다.
‘그나마 제어는 되니 다행인가.’
삼십 년간 악마를 썰던 놈이 왔으니, 그 실장이란 자가 겁을 먹은 것도 당연했다.
물리적인 폭력도 필요치 않았다. 전(前) 차원에서의 살기를 슬쩍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공격성은 거세되었다.
아마 평생 타인을 괴롭힐 일은 없을 것이다. 동생을 포함해서 그 누구든.
“건아, 삼계탕은 입에 안 맞아?”
한영주의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냈다.
“삼계탕이요?”
“응. 전역하면 아빠 가게 삼계탕이 제일 먹고 싶댔잖아. 저기 봐, 여태 손도 안 댄다고 네 아빠 입 나온 거.”
뽀얀 국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건은 털 뽑힌 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먹던 갈비찜으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이제 날개 있는 건 안 먹어서요.”
*
식사가 끝나고, 박건은 피곤하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둘러앉은 세 가족은 목소리를 낮춰 소곤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지?’
‘달라요,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어.’
‘네 시쯤? 부대에 전화했거든. 근데 거기 중위란 작자 목소리가 떨리더라고.’
‘그리고 삼계탕엔 입도 안 댔잖아요. 복날마다 장닭을 두 마리씩 먹던 애가.’
‘근데 봐, 밥은 다섯 공기를 비웠어.’
한영주가 둘째아들을 쿡 찔렀다.
‘선아, 네 형 어땠니?’
‘어··· 좀 다혈질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더 거침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군생활만 잘 한다고 끝이 아니랬어. 저기 어디야, 윤희네 첫째도 전역하고 공황장애 때문에 정신과 오래 다녔다더라.’
특수부대의 임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들이 해외파병도 많이 다니고 표창도 받을 만큼 대단한 전공을 세운 건 안다.
그렇다면 고생도 심했을 것이다.
뉴스만 봐도 그렇다. 저기 바다 건너 미군, 참전용사들은 전역하고도 한동안 PTSD를 앓는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라도 생기게 되면······.
가족들의 표정들이 어두워진 사이, 박열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튼 잘들 지켜보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와줄 수 있게.’
‘걱정 마세요. 매니저 짬밥 살려서 야무지게 따라다닐게.’
가족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제 방으로 들어간 큰아들이 모두 듣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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