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탕 속 상어 (4)
* * *
다음날 오전.
JNBC의 콘텐츠 담당팀이 혼을 갈아 제작한 메이킹필름이 인터넷에 뿌려졌다.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진 지금, 대본 리딩 한 컷이 무지막지한 화제를 낳진 못한다.
소속사와 방송국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포털 인기 동영상에 올라가는 정도.
그리고 그 영상을 클릭해 본 사람들은 의외의 킬링 파트를 발견했다.
‘어떻게 한 거예요, 방금 폭발 소리였는데?’
무표정하고 잘 빠진 마스크가, 대사는 한 마디도 없이 온갖 효과음을 낸다.
웬만한 개그맨 성대모사보다 높은 퀄리티에, 배우는 물론이고 스탭들의 웃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음향으로 잡혔다.
홍보팀이 서둘러 잘라낸 ‘흔한 리딩장 배우 개인기’, ‘대사가 없어서 빡친 배우’ 등 10초짜리 쇼츠도 SNS에 돌았다.
‘서울의 개 폭탄좌’ 라는 별칭으로.
“별의별 광대짓을 다 하네.”
대산카드 CF 촬영장, 배우 대기실에 앉아 있던 백하니가 코웃음을 쳤다.
미팅 때문에 직접 케어를 온 로만 엔터테인먼트 유준일 실장이 지분거렸다.
“그런 것치곤 좀 많이 돌려 본다?”
“뭐래, 그런 거 아니거든요.”
탑급 연예인,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매번 장악하는 여배우의 실물은 압도적이다.
황금비율을 이룬 눈썹 한쪽이 살짝 올라간다.
“대표님 턱을 돌렸다기에 궁금했던 거예요. 어떤 미친놈인가 싶어서.”
“턱을 돌리긴 뭘 돌려. 그랬으면 경찰서였다.”
“아무튼 들이받긴 했잖아요. 우리 카리스마 노 대표님, 이미지 좀 구기셨겠어.”
“이미지는 오귀준이가 구기다 못해 찢어졌지. 그놈도 난 놈이야. 어떻게 다 큰 사내놈이 오줌을 지리게 만드냐.”
“실장님. 나 팬미팅 때 기절해서 실려갔던 사람 기억 안 나요? 혼절 쪽이 실금보다야 훨씬 대단하지,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비교지만, 괜히 비위를 안 맞춰 줬다간 며칠이 피곤하다.
유 실장이 살살 구슬렸다.
“암, 그렇고말고. 우리 하니, 이제 다음 작품 촬영장에서도 스탭들 다 자빠지게 하면 좋겠다. 내가 시나리오 몇 개 뽑아 놨는데······.”
“알아서 할게요. 그래서, 온대요?”
“응? 오긴 뭘 와?”
백하니는 짜증스럽게 바닥을 툭툭 찼다.
“저 마스크에 그 성질머리면 대표님 성격에 백 퍼센트 작업했을 텐데. 못 해도 침은 발랐을 거 아녜요.”
유 실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 그런 거 없던데. 애초에 그땐 배우도 아니었고, 자기 동생이랑 우리랑 그런 일이 있었는데 러브콜이 오가겠냐?”
“그럼 됐고.”
백하니가 관심 없다는 듯 말했을 때, 노크가 들리고 스텝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곧 슛 들어갈게요,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촬영 분량이 많은 강행군이다. 턱을 만지작거리던 유 실장이 능글맞게 물었다.
“왜, 궁금하면 가 봐. 그쪽도 이제 슬슬 첫 촬영 들어갈 텐데.”
“됐어요. 급 안 맞는 자리 갔다가 이상한 스캔들 날라.”
“넌 좀 나도 돼. 어떻게 된 애가 데뷔 팔 년 차에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냐?”
백하니는 보던 동영상을 껐다. 어두워진 스마트폰 화면에 선명한 고소(苦笑)가 맺힌다.
“아시잖아요. 저 이 바닥 애들 싫어하는 거.”
*
방영일을 사흘 앞둔 날.
드디어 최승의 첫 씬 촬영이 있었다.
그 며칠 동안, 스태프와 배우들은 박건에 대한 평가를 몇 번이나 수정했다.
수상한 관심종자에서 연기 열정은 넘치는 미친놈으로.
그 다음엔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나 모르겠는 이상한 놈으로.
촬영도 없는 인간이 촬영장에는 매일 온다. 여기까지는 무명 배우의 사회생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와서 정작 촬영은 안 보고, 적당한 곳에 퍼질러 앉아 책을 꺼내 읽는다.
한 번은 매니저도 없이 와 있는 모습에 조연출이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집 앞에 도서관 들렀다가, 책 빌려서 지하철 타고 오는 거래. 저 백팩에 든 게 다 책이라는데?’
덩달아 연기력에 대한 궁금증도 올라갔다.
잘 할까, 평균일까, 엉망일까.
카메라를 들이대면 평소처럼 밥을 먹으라고 해도 일반인들은 굳는다.
짬이 안 찬 스턴트맨들도 NG를 내는 경우가 허다한데, 과연 실력은 어떨 것인가?
“오늘 드디어 촬영이네요. S12, 맞죠?”
“아, 예.”
오다가다 인사하는 사이가 된 조연 배우 한 명이 말을 걸었다.
그는 박건이 읽고 있던 두툼한 책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연기 관련 책?”
“아뇨. 그냥 관심이 있어서요.”
보여 준 표지엔 <양자물리학적 정신치료 : 한계를 뛰어넘다>가 적혀 있었다.
“이런 쪽 좋아하시면 몇 권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양자역학과 차원이동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가요?”
“아··· 제가 과학이랑 안 친해서······.”
조연 배우가 멀찌감치 도망간 뒤, 렌트카를 주차한 박선이 흥분된 얼굴로 다가왔다.
“형, 세트장 봤어? 진짜 장난 아니게 커. 예전에 따라간 와우키즈 특설무대도 크긴 한데, 거기랑은 위압감부터 다르더라고. 이제 물만 다 차면 바로 슛 들어간대!”
최승의 첫 등장 장면.
거대 사우나를 통째로 빌려 찍는 씬이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실제 온수도 틀었고, 저쪽에선 보조출연자들과 분장 팀이 대기 중이다.
방수포로 감싼 조명에서 나오는 열기, 열탕의 김까지 섞여 공기는 후끈하다.
심장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손에 잡힐 듯 솟구친다.
박건이 읽던 책장을 닫았다.
“준비하자.”
*
소설가들은 첫 문장에 공을 들인다.
드라마 PD도 첫 씬에 혼을 갈아넣는다.
처음 본 장면에 따라 그 캐릭터에, 나아가 작품에 쏟는 시청자들의 애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 김 감독님 이쪽으로. 잡히는 머릿수가 많으니까, 우르르 붙어도 배우들 더블 안 되게 바깥 동선에서 찍어야 돼요.”
나종모 PD는 미술부터 조명, 동선과 액션까지 신경 쓰기로 소문난 연출자다.
흑풍회 조직원들과 맞붙는 대규모 액션씬을 위해 보조출연자들만 수십 명, 프로 스턴트맨들도 여럿 섭외됐다.
물에도 안 지워지는 문신에, 복장은 전부 상의를 탈의하고 훈도시형 팬티로 통일했다.
저들이 벌떼처럼 달려가는 씬을, 김정남 촬영감독이 롱 테이크로 끌어 찍을 것이다.
“현 감독님, 스턴트맨들 디렉션은······.”
“아니, 필요 없어요. 어차피 박건 씨가 다 알아서 할 거예요.”
지난번 오디션 이후, 중증의 박건 찬양론자가 된 현도균은 한사코 ‘알아서’를 강조했다.
“맨 앞 동선들, 그냥 실감나게만 달려들어요. 피주머니 터지는 타이밍 맞추고. 합만 맞으면 어차피 보정이 살려 줄 거니까.”
무술감독 중에서도 꼼꼼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현도균이지만, 저 몇 마디로 끝이었다.
나종모 PD가 박건에게 다가갔다. 박건은 여느 때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잠깐 잠수해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10분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좋아요. 역시 특수부대··· 가 아니라, 숨을 10분이나 참는다고요?”
“5분으로 정정하겠습니다. 전성기가 지나서.”
“그렇죠? 아무리 건이 씨라도 10분은 힘들지.”
이제 연출진들 대부분은 박건의 이상한 농담에 적응한 뒤였다.
턱걸이를 백 개 한다느니, 장기는 롱소드 검술이라느니, 조연 중 몇몇이 가져온 얘기가 여간 허무맹랑했기 때문이다.
디렉팅을 마친 PD가 떠나고 나자 마대휘 역의 용준상이 다가왔다.
“첫 씬이 나랑이네. 잘 부탁해요.”
박건은 예의는 있지만 영혼은 없는, 특유의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S#.12 유곽 안
거친 숨소리, 저 뒤에서 중국어와 한국어가 섞인 욕이 들린다.
트렁크팬티 한 장만 입고 유곽을 달리는 마대휘. 땀범벅인 이마에 물줄기가 흐르고,
마대휘 : (숨을 몰아쉬며) 저 씨벌, 물방개 같은 새끼들.
문을 급히 연 마대휘, 보인 광경에 흠칫했다가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김이 오르는 대형 욕조들.
사시미를 들고 얇은 팬티만 입은 흑룡회 조직원들이 탕 안에서 몸을 일으킨다.
마대휘, 도망칠 곳이 없음을 알고 한숨 내쉰다.
*
용준상은 소문만 자자한 박건의 오디션을 본 적 없었다.
그래서 박건이 김이 나는 탕에 잠수부처럼 들어가는 걸 보고서도 약간 놀랐을 뿐이었다.
‘몸을 안 아끼는군. 의외로 연기파인가?’
슛! 나종모 PD가 외치고, 흑룡회 조직원들이 달려오고, 씬에 몰입해 연기하면서도 걱정은 떠나지 않았다.
‘신호를 준다고 했나? 나오는 타이밍이 정확해야 하는데······.’
다음 순간, 용준상의 생각이 멈췄다.
멈춘 뇌 대신 안구가 확인한다.
저 뒤쪽의 탕이 거대하게 부풀고, 물의 거죽을 찢어발기며 상어가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화면에 깔리는 편집 이펙트, 눈을 어지럽히는 연출, 긴장감을 위한 배경음악.
그런 것들을 모조리 잡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진짜’ 존재감이었다.
ㅡ······.
공간을 압도하는 침묵이 번진다.
정적 속, 수트 차림의 사내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탕을 나온다.
피곤한 표정, 헝클어진 머리카락. 한쪽 손에는 날이 휘어진 칼이, 다른 쪽 손에는 누군가의 팔이 들려 있다.
손목에 검은 용 문신이 있고 천박한 오팔 반지를 몇 개나 낀 손. 조직 보스다.
ㅡ죽여!
이내 보스의 팔을 확인한 조직원들이 눈이 뒤집혀 달려든다.
그리고 격돌.
첫 놈은 다가오기도 전에 가슴을 걷어차여서 날아간다. 다음은 목이다. 예리한 칼날이 피부를 찢어발기고 빠져나가자 피가 터진다.
푸슉!
대양 한복판에서 상어와 마주친 정어리 떼가 흡사 이러할까.
벌거벗은 사내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지만, 최승의 기괴한 움직임에 옷자락만 벨 뿐이다.
그 동안에도 피분수가 연거푸 터져나온다. 목의 경동맥과 손목의 요골동맥. 치명적인 장기만 찌르고 베고 쑤신다.
‘미쳤군. 그냥 미쳤어.’
김정남 촬영감독은 부릅뜬 눈으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롱 테이크를 옆에서 따느라 옷이 젖는 것도 잊었다.
왜 합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했는지, 저걸 보고도 모르면 병신이다.
이것은 칼부림 연기가 아니다. 마치··· 숙련된 정육업자의 해체 쇼에 가깝다. 그 고깃덩이들이 소나 돼지가 아니란 게 다를 뿐.
작업은 몇 분 안 돼 끝이 났다.
똑, 똑, 똑······.
흑풍회 조직원들은 전부 시체가 됐고, 바닥은 핏물로 적조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칼을 늘어뜨린 최승이 고개를 든다.
이제 서 있는 것은 한 명, 마대휘뿐이다.
떨리는 손을 억누른 마대휘가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읊조린다.
ㅡ나 광수대 마대휘다. 와 봐, 새꺄.
그리고 최승은 마대휘를 지나쳐 걸어간다.
ㅡ······?
여전히 칼 한 자루와 팔 한 토막을 든 채.
그들의 뒤에 있던, 널찍한 탕 안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