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2화 (12/122)

안방 데뷔전 (1)

* * *

그 말대로였다.

다음주, 4화를 본 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서승아는 다음 촬영 일자를 물었고, 배영호는 기프티콘으로 수영모와 물안경을 보냈으며, 부모님은 나 PD와의 화해를 선언했다.

그리고 ‘욕탕좌’의 등장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리뷰 유튜버들이 1~4회차를 몰아서 소개했고, 방송국에서 공개한 영상클립 조회수는 사흘 만에 200만 뷰를 돌파했다.

[JNBC에서 작정하고 ‘용준상’, ‘서희도’에 일반인(?)까지 총출동시킨 “잔혹실전액션” 느와르]

최승 액션 뭔데 살떨리냐 ㄷㄷ

진짜 청부업자 같지 않음?

프로킬러 그 잡채 ㅎㄷㄷㄷ

엑스트라들 동공 흔들리는 거 보셈; 저 정도면 연기가 아님

아니 다 보조출연자일 텐데 ㅋㅋㅋㅋ 뭐 저리 리얼하게 죽는 거야

보출까지 배우로 만드는 배우가 있다...?

커뮤니티에선 자칭 전문가들이 출현해 연출과 액션을 호평했다.

글쓴이 : 드라마판40년차

···고로 은희욱의 각본을 폭발시키는 것은 나종모 사단의 연출이다. 본 시나리오의 촬영 구도와 액션 시퀀스, 주연들의 갈등에 따른 카메라 앵글을 뒤틀어 직관적인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진 놀라운 신인. 형(形)과 태(態)의 이 조화야말로 스크린과 안방의 경계를 허무는 ‘무비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장문충 쳐내

ㄴ40년차 뉴비가 건방지게 말이 많네

최승 쩐다는 소리를 뭐 이리 길게 늘어놨냐?

ㄴ조선 ㅈ문가 특)혓바닥 길음

근데 액션 구도부터 배우까지 센세이션하긴 함. 흔치 않은 영상미에 여태껏 없었던 액션수행능력이다 ㄹㅇㅋㅋ

ㄴ그러니까 신기한 거지... 꽁꽁 숨겨놨던 배우로 이렇게 잭팟 터뜨리는 작감이 얼마나 있음?

ㄴ있는데 ㅇㅇ

ㄴ누구?

ㄴ데뷔작 은희욱. 지금 최승이 아무리 잘 나가도 그때 데뷔한 허시동은 언터쳐블임 ㅋ 드라마 스크린 씹어먹고 헐리우드로 감

ㄴ은 vs 은,, 가슴이 웅장해진다,,

막방 시청률도 궁금해지네 ㅋㅋ 그때 무뢰배가 35% 넘지 않았나?

ㄴ1화 기준 서울의개 16%, 무뢰배 23%.

나종모 PD는 주조정실에서 실시간 시청률을 보며 무알콜 샴페인을 터뜨렸다.

“마셔, 어, 마셔. 이거 먹고 또 촬영 갈 거니까 지금은 마셔. 시청률이 15%를 넘겼는데 밤 안 새면 시청자 기만이야, 알지?”

본래 시청자란 존재가 그렇다.

떡밥만 던지고 내용이 별로면 망나니로 돌변하지만, 메인 디쉬가 만족스러우면 오히려 더 낚아 달라며 달려든다.

은희욱이 픽한 신인 배우의 정체. 꽁꽁 숨겨진 극중 조주연들의 관계. 서희도가 SNS 라이브에서 흘린 캐스팅 비화 등등.

다양한 떡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어, 줘팸맨님 오셨어요?”

촬영장에 들어오자마자 인사하는 스태프 몇 명에게, 박건은 마주 고개를 숙였다.

짐을 들고 따라온 박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또 별명 생겼어요?”

“푸흐흐, 네. 스턴트맨 분들이 다들 그러시던데요? 얼마나 찰지게 패는지, 박건 배우님 앞에만 가면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고요.”

박건은 대수롭지 않게 으쓱했다.

“제가 무명이라, 다들 기 살려 주시려고 좋은 말씀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아유, 진짜예요. 나 피디님이 저렇게 칭찬 뿌리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평소엔 허허거려도 슛 들어가면 악마가 따로 없어요.”

“악마는 안 되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 아무렇지 않게 쿨한 태도, 그러면서도 은근히 좋은 매너는 사람을 홀리기 충분하다.

실제로 여스태프들 사이에서도 파가 갈렸다.

꽃중년은 용준상파, 꽃미남은 서희도파, 나머지 대다수는 박건파.

그때, 빤빤한 얼굴 하나가 그들 사이로 낯짝을 들이밀었다.

“뭐야, 무슨 얘기들 하고 있어요?”

‘······또 왔네, 저 인간.’

스태프는 속으로 인상을 썼다.

조연으로 캐스팅된 중견 배우, 부패하고 무능한 광수대장 역을 맡은 황보준이다.

“안녕하세요.”

“어, 박건 씨. 이제 온 거예요?”

“아까 도착했습니다.”

애초에 박건이 온 걸 보고 왔으면서, 꼽부터 주는 솜씨가 과연 경력자다.

황보준은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살살 긁었다.

“건이 씨 요즘 핫하던데? 누가 보면 주연인 줄 알겠어.”

“다들 잘 해 주셔서죠.”

“하긴, 사실 그렇긴 해. 연기도 아니고, 배우가 때리는 걸 잘 해서 인기를 끈다는 게······ 참, 잘생기고 볼 일이라니까.”

스탭들이 눈치를 보는 가운데, 불편한 정적이 슬그머니 내리깔렸다.

‘서울의 개’ 촬영장 분위기는 대체로 좋다.

깐깐한 나 PD의 스타일상 디렉션이 많고 촬영시간이 길긴 하나, 시청률이 깡패라 했던가.

16%였던 1화의 시청률이 4화에서는 19%까지 솟아올랐다.

새로 온 무명 배우 덕에 화제몰이는 톡톡히 했으니 빡빡한 일정에도 불만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출연자들 모두가 박건을 좋게만 보는 건 아니다.

돌연 출현한 라이징 스타.

새로운 마스크, 압도적인 화제성.

서희도, 용준상, 두 주연이 소탈한 편이라 견제가 없는 거지, 황보준처럼 욕심 있는 조연들은 박건을 경계한다.

마스크 잘 빠진 놈이 연기까지 잘 하면 더 밀어줄 것이 뻔할 터. 드라마 시청률 잘 나온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 꼬장 못 부리게 말려야지. 이러다 촬영장 불협화음 소문이라도 돌면······.’

스태프 한 명이 말리려고 했을 때였다. 뒤에 있던 박건의 매니저가 끼어들었다.

“그러게요. 저희 형 비주얼이 사기긴 해요.”

“······?”

“그래서 어릴 때도 캐스팅 많이 받았거든요. 길거리 모델에 아역배우에··· 그 제의들 진작 받았으면 배우 경력만 십 년은 넘었겠다. 어휴, 왜 진작 시작 안 한 거야?”

머리가 두 개는 더 큰 황보준 턱 밑에 딱 붙어 제 형 자랑을 늘어놓는다.

싹싹하게 인사나 하고 다니던 놈이 갑자기 들이대니 황보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보준 배우님이랑도 같이 찍는 씬이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그치, 형?”

“그러게. 아쉽네.”

최승과 붙는 씬이라면 십중팔구 두들겨 맞는다는 소리다. 박건이 무표정으로 대답하자 황보준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흰 오늘 촬영 디렉팅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무슨 디렉팅을 지금······.”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웃는 낯으로 다다다 읊은 박선은 자기 형을 끌고 사라졌다.

‘우리도 튀자.’

‘상황 종료. 매니저가 똑 부러지네.’

눈빛을 주고받은 스태프들이 흩어진 뒤, 간식거리를 잔뜩 든 황보준의 매니저가 헐떡이며 달려왔다.

“형! 시키신 것들 다 사 왔어요!”

황보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넌 뭐 하다 이제 기어들어와?”

*

씬은 쉴 틈 없이 달린다.

흑룡파의 유곽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나온 마대휘는 전직 해커, 퇴역한 국정원 출신 동료까지 동원해 사건을 파헤친다.

그러나 뒤를 털어 본 ‘정 인터내셔널’은 잡아넣을 구석 없이 깨끗하다.

심지어 대표도 정연우의 동생 정연지가 운영 중인, 합법적인 일만 하는 투자대행회사라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ㅡ형사님, 우리 최 팀장이랑 만나셨다면서?

ㅡ너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그 와중 마대휘를 찾아온 정연우가 도발까지 하며 갈등은 심화된다.

ㅡ거의 죽을 뻔 하셨다던데. 그냥 가만히, 거북이처럼 있다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요. 원래 경찰들 그런 거 잘 하잖아. 늦게 와서 허탕 치곤 아이고, 못 봤네! 외치는 거.

ㅡ왜 조폭들 썰고 다니는 거냐? 걔들 사업 다 먹고 암흑가 거물이라도 되려고?

ㅡ그냥 뭐, 미리 밥그릇 비우는 거죠.

ㅡ밥그릇?

ㅡ대한민국엔 꼬리부터 대가리까지 나쁜 놈들이 너무 많아. 손닿는 데부터 청소 좀 하고··· 나머진 그 다음 생각할 겁니다.

눈이 돌아간 마대휘, 정연우를 붙잡으려 하지만 몇 걸음 뒤에 최승이 있다.

ㅡ너는······.

빙긋 웃은 정연우가 떠난 뒤, 마대휘는 광수대장을 찾아가 충격적인 답을 듣는다.

ㅡ안 되면 내버려 둬.

ㅡ예?

ㅡ청장님 임기 얼마 안 남았어. 웬만한 사건들은 기자들도 덮고 있고. 두 달만 있으면 되니까, 괜히 부스럼 만들지 말고 일단 두라고.

ㅡ조폭을 죽이고 있습니다!

ㅡ어차피 우리가 못 잡았던 애들이잖아. 청소해 준다는데 왜!

ㅡ검거가 안 된다고 상해를 가하면······.

ㅡ그럼 가, 새끼야. 정연우든 그 밑에 따까리든, 영장 나올 와꾸 짜서 다시 와. 그때 밀어줄게.

ㅡ대장님!

마대휘가 무능한 경찰 상부에 발목이 잡힌 사이, 사건은 끊이지 않고 터진다.

흑룡회가 무너지자 위기감을 느낀 밤의 조직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러시아 마피아, 사채꾼 큰손들, 심부름업체가 합심해 ‘정 인터네셔널’을 습격하고, 대표 정연지는 중상을 입는다.

분노한 정연우가 최승의 고삐를 해제하며 극은 중반으로 치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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