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데뷔전 (3)
* * *
말친은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도 계속 물었다.
[뭐였습니까? 훅 같긴 했는데, 날아오기 전부터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내 눈 앞에서 소닉붐이 터졌어요.]
박건은 대수롭지 않게 흘러넘겼다.
[그냥 잡기입니다.]
[혹시 좀 배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운동하는 체육관이 궁금합니다.]
[따로 운동 안 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못 해도 십 년은 수련한 무도가 아닙니까!]
러시아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둘 사이에 오가는 분위기는 추측할 수 있다. 조연출이 나종모 PD에게 혀를 내둘렀다.
“진짜 마성의 남자라니까. 어떻게 씬 붙는 사람들마다 다 꼬신대요?”
“어허, 말조심해. 우리 박 배우님이 꼬셨나? 강한 사내한테 자연스럽게 끌리는 거지. 안 그래요, 박선 씨?”
옆에서 뿌듯한 얼굴로 형과 말친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던 박선이 거들었다.
“다 제작진 분들 덕분이죠. 잘 찍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휴, 형제가 쌍으로 금칠엔 뭐 있다니까. 아무튼 여기 촬영은 끝이고··· 이제 다음 로케로 자리 옮겨서, 서희도 씨 도착하면 시작합시다.”
“예, 혹시 점심은 차 안에서······.”
“아. 그냥 와도 돼요.
나종모 PD가 실눈을 찡긋해 보였다.
“오늘 팬덤 파워 받는 날이거든. 아이돌로다가.”
*
“얼른들 드세요. 많이 먹고 오늘도 힘!”
“잘 먹겠습니다, 서희도 배우님!”
“와, 감사합니다!”
한강 둔치 야외촬영장.
세트가 설치되고 크레인이 오가는 그곳에, 대형 푸드트럭 두 개가 들어왔다.
하나는 밥차, 다른 하나는 커피차.
총알을 모아서 현장으로 쏘는, 흔히들 ‘조공’이라 부르는 팬덤 문화다.
오늘의 메뉴는 분식이다. 배우들과 보조출연자들, 스탭들이 줄을 서서 밥과 커피를 받아 간다.
이미 서희도는 촬영장 구경을 온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역시 아이돌 팬덤이 적극적이야.”
용준상이 중얼거리자 매니저가 받았다.
“말은 바로 해야지, 용 배우님. 우리 애들도 하자고 했는데 싫다면서?”
“나이가 몇 살인데 팬들 돈으로 밥차를 사. 다음 촬영 때 회사에 해 달라고 해.”
“강 팀장님이 또 난리 칠걸? 지난번 영화 때도 다 털어먹지 않았냐면서.”
“그럼 내 카드로 긁어. 저렇게들 좋아하잖아.”
일축한 용준상이 턱짓했다. 거기에는 박건이 양손에 접시 하나씩, 떡볶이랑 튀김으로 탑을 쌓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와, 그걸 다 먹을 수 있어요?”
“예. 양이 조금 많은 편입니다.”
“혹시 그렇게 먹어야 운동이 잘 되고, 그런 게 있나? 난 몸 무거우면 움직이질 못해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박건은 같은 배우보다 스탭이나 엑스트라들에게 인기가 많다.
모여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는 사이,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서희도가 다가왔다.
“우와, 이 형은 또 먹방 찍으시네.”
“아, 희도 씨.”
“말 놓으라니까요. 다들 우리 형 알지? 오빠 연기력 멱살 잡고 끌어올리는 중이셔.”
박건을 팬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서희도의 팬클럽 회장이 냉큼 받았다.
“알죠. 지금 팬덤들 사이에서 제일 화젠데. 이 오빠랑만 붙으면 장면이 다 산대서, 같이 찍어달라고 떼까지 쓴다니까요.”
스탭들의 칭찬과는 별개로, 시청자는 화면에 찍힌 영상을 보고 배우를 평한다.
실제로 서희도는 박건과 붙는 씬마다 ‘인생 악역’이란 말이 나올 만큼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총대의 총무를 맡은 부회장이 거들었다.
“요즘 진짜 장난 아니에요. 최승 역 배우 소속사는 어디냐, 실명이 뭐냐, 이쪽 본진까지 와서 물어봐요. 희도 오빠랑 자주 붙어있으니까 친할 거 아니냐면서.”
화제를 받은 서희도가 맹하니 말했다.
“어, 이 형은 나도 잘 모르는데.”
“그럴 줄 알았어요. 혹시 SNS는 안 해요?”
“SSU는 지원 안 했습니다.”
“······그게 뭐예요?”
특수부대밖에 모르는 형 대신, 뒤에서 대기하던 박선이 부리나케 해명했다.
“저희 형이 소셜을 아예 안 해서, 얼른 만들어서 관리하려고요.”
“그럼 안 되죠! 이럴 때 노 젓는 게 생명인데!”
부회장이 비명처럼 소리치자,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회장이 능숙하게 브리핑을 했다.
“컨텐츠도 어려울 거 없어요. 배우님은 얼굴이 무기니까 사진만 올려도 되고, 다른 배역 대본 읽기 챌린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맞아요, 목소리도 완전 동굴이시네. 최승은 앞으로도 쭉 대사 없대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건 좀 아쉽다. 여기, 검색해 보면 오빠 분량 늘려 달란 글도 엄청 올라와요. 진짜 목소리 한번 못 듣고 끝나는 거 아니냐면서.”
본점 이기는 분점 없다지만, 내 최애가 아끼면 호감도 생기는 법이다.
열성적이 된 부회장이 커뮤니티 반응을 보여주겠다며 폰을 뒤지다,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진짜 킬러 출신이세요?”
*
‘완전한’ 무명 배우는 드물디 드물다.
무명이라 함은 그 전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는 소리고, 따라서 필모그래피가 비인기 작품들이나마 붙기 마련이다.
그랬기에 서울의 개, 최승 역 배우의 정체에 대해선 수많은 억측이 오갔다.
일반인 알바다, 대형 기획사에서 끼워 넣은 모델이다, 부산 연극판 출신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루머는 8화 방영 전날,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로 종결됐다.
“팀장님, 떴어요!”
페이지를 모니터링하던 JNBC 홍보팀 직원이 급히 사수를 호출했다.
“바로 PD님한테 연락 넣어, 어디야?”
“커뮤니티 글이요. 몇 번 퍼다 나른 것 같긴 한데, 원본은 여기예요.”
“캡처 떠서 확보하고, 반응 어떻게 나오는지 계속 모니터링해. 혹시나 이상한 찌라시 뜨면 바로 전화해서 내리게 하고!”
지령을 받은 직원들이 분주히 흩어졌다.
모니터에는 군복을 입은 박건의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제목 : 서울의 개 최승 정체
내용 : 이름은 박건, 기수는 XXX기, 진짜 특수부대 전역자임. 같이 군 생활 했고 궁금해하는 사람들 많아 보여서 올림. 질문은 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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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개는 마침 실내 세트장에서 박건과 서희도의 씬을 촬영 중이었다.
소식을 들은 나종모 PD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올렸는지 짐작하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후배 기수도 많고··· 전역자들은 기억이 잘 안 나서요.”
“뭐, 상관없어요. 막방 전 주까지 안 나왔으면 우리가 던지려고 했으니까.”
엄청난 비밀이라도 밝혀진 양, 오늘 내내 표정을 굳히고 있던 박선이 놀랐다.
“피, 피디님이요?”
“어그로 끌려면 기본이죠. 일부러 홈페이지에다가도 배우 프로필은 안 올린 거예요, 궁금하게 만들어서 화제성 끌려고.”
나종모 PD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다가, 살짝 불안한 투로 덧붙였다.
“그··· 조심스럽긴 한데, 혹시 문제될 만한 일은 없었죠? 군 내 가혹행위에 동조했다거나 방관했다거나··· 아, 이런 건 원래 소속사랑 얘기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어, 예?”
“근데 그런 것들은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더 빨리 논란이 됐겠죠.”
나종모가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휴, 그럼 됐지. 박선 씨가 좀 잘 해 줘요. 우리 쪽에서도 대응은 할 텐데, 그래도 매니저만큼 케어는 어려우니까.”
“옙! 악성루머나 허위사실 같은 거 올라오나 계속 찾아보고 있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서희도가 끼어들었다.
“형, 무슨 일 생기면 저한테 말해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이 바닥은 물어뜯으려는 사람들도 많단 말이에요. 그래서 코어 팬덤을 갖추는 게 중요한데··· SNS는 만들었어요?”
“예, 여기.”
박건은 어젯밤 동생이 만들어 준 인스타그램을 띄워 주었다.
얼마나 꾸몄겠어, 하는 표정으로 함께 보던 나종모와 서희도의 눈이 커졌다.
“어, 이거 꽤 괜찮은데? 며칠 안 됐는데 팔로워는 또 왜 이렇게 많아?”
“전형적인 연예인 인스타 감성이네요. 소속사가 관리해 주는 느낌도 나고.”
팔로워는 며칠 사이 5k를 돌파했고, 촬영장 사진도 몇 개 올라가 있다. 대본 리딩 때와 씬들을 촬영하면서 찍어 둔 것들이다.
박선이 자랑스레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배우님들 인스타 탈탈 털어서 참조했습니다. 그 최승이 SNS 만들었다고, 커뮤니티마다 돌면서 슬쩍 영업도 흘렸고요.”
“이만하면 충분해요. 이제 소속사 잡힐 때까지 잘 관리하면서 드라마만 쭉 띄우면 되겠다.”
“그럼, 그럼. 나종모 이름 딱 걸고, 성마학만 아니면 다 커버해 줄 테니까.”
서희도가 고개를 갸웃댔다.
“성마학이 뭔데요?”
“희도 씨는 아이돌 출신이면서 그걸 몰라? 성폭행, 마약, 학폭이잖아.”
“아, 피디님!”
“농담, 농담. 내가 볼 땐 이 기세로 엄청 올라갈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지금 딱 박건 씨 흐름이 왔어. 종방 때쯤은 아주 그냥, 오만 데서 모셔 가려고 안달일걸?”
박건이 얼굴에 했던 피 분장을 쓱 지우면서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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