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을 외인이라 칭하나 (5)
* * *
서요한은 독특한 캐릭터다.
신을 믿는 사제지만 신께 미사를 드리지 않고,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기는커녕 매일같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지낸다.
항상 사제복 한쪽엔 포켓 위스키, 다른 한쪽엔 담배와 라이터를 넣고 다닐 정도로.
그래서 캐릭터 해석을 할 때, 김률 감독은 박건과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대표님이 여기 오셨어야 했는데······.”
구마의식이 진행될 촬영장.
‘큰범’의 조연출. 한상윤은 다음 씬을 위해 소품들을 나르며 중얼거렸다.
‘서요한은 이런 캐릭터입니다.’
배우 개별 디렉팅에서, 박건은 김률 감독의 설명을 별 질문 없이 끄덕이며 들었다.
‘구마 의식은 여기 적힌 식으로 진행됩니다. 실제 교황청 사제들이 진행하는 구마에, 영화적 요소들과 몇 가지 장치를 섞었습니다.’
‘그렇군요.’
‘캐릭터 해석과 설정 상에서, 혹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라도······.’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요.’
주연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피드백이다. 김률 감독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거죠?’
‘구마의식이 더 잔혹할 줄 알았는데, 악마를 물리치는 것치곤 평화로워서요. 원래 놈들은 생명력이 강하지 않습니까?’
‘······예?’
‘혹시 나중에, 가능하다면 좀 더 폭력적인 연출을 얹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요즘은 CG로 다 된다고 들었거든요.’
···역시 그놈의 게임이 문제인가?
저 정도면 악마한테 가족을 잃은 진짜 용사라고 해도 믿을 참이다.
한상윤은 다시 박건을 흘끔 보았다.
몇 분 뒤 연기인 배우가, 조용한 곳에서 몰입하기는커녕 소품들을 번쩍 들어 옮기고 있다.
“아니, 정말로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제가 힘이 세서요. 빨리 시작하면 빨리 끝나잖습니까.”
“와, 저희 퇴근 시간까지 챙겨 주시는 거예요?”
“그럼요. 제 퇴근 시간도요.”
깔깔대는 웃음이 퍼진다. 스탭들의 일을 도와주는 배우라니. 데뷔 초, 이미지메이킹 용이라 하더라도 신기하긴 하다.
날 때부터 잘난 줄 아는 놈, 스탭에게 폭언을 퍼붓고 손까지 올리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던가?
‘천상 배우같이 생겨서는, 가끔 진짜 이상한 소리를 한다니까.’
그 이상한 사람이 몇 달 뒤에는 충무로를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
들고 온 사다리를 낑낑대며 내려놓고, 한상윤은 6mm 소형캠을 꺼냈다.
촬영하는 스탭들을 찍을 촬영장 직캠이다.
*
S3#1. 부마자의 집
달조차 없는 밤.
빛은 스러지고, 어둠의 시간이 되었다.
무슨 일이 당장 일어날 듯 스산한 분위기가 집 안을 감돈다. 장용 미술감독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쭉 끼치는 세트를 만들어 놓았다.
입구에 흩어진 팥과 쌀알들, 반쯤 타들어가 꺼져버린 촛불, 붉은 수실이 달린 금줄.
불상과 그리스도상은 물론, 알 수 없는 동물의 조각상까지 즐비한 거실은 고대 종교의 제단에 온 것처럼 으스스하다.
집 안을 한 바퀴 훑고 나온 카메라가 골목 밖을 걸어오는 사제를 비춘다. 같은 사제복에, 예의 미사 가방을 쥔 서요한이다.
딩동, 딩동─
키 큰 사제가 허름한 양철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전화드렸던 사제입니다.”
문이 빼꼼 열리고 겁에 질린 듯한 부부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이고, 오셨네, 오셨어. 사제님, 우리 좀 살려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젊은 분이 사제라고? 그 뭐야, 장미선교횐가, 십자횐가 하는 분들은······.”
“그분들은 순서가 밀려 있다잖아요! 우리가 사제님들 가릴 처지야?”
남편에게 매몰차게 면박을 준 아내가 서요한을 안쪽으로 안내한다.
한 발 한 발, 들어갈수록 기묘한 악취와 그를 막기 위해 뿌린 듯한 탈취제 냄새가 진동한다.
서요한의 시선이 거실 벽에 둘러쳐진 금줄과 시커멓게 얼룩진 천장을 훑는다.
“얼마나 됐습니까?”
“두 달 정도요. 그동안 용한 무당도 데려와 보고, 굿도 해 봤는데······.”
“피만 토하고 도망가더이다. 돈도 안 돌려주고.”
“그럼 금줄도 그때?”
아내 쪽이 에그머니나 하는 표정으로 묵주 든 손을 모았다.
“예, 예, 생판 외국은 한 번도 안 나갔던 사람이 무슨 이상한 꼬부랑 말을 하고··· 영어도 아니었어요. 그때 너무 무서워서, 남양주에 용한 애기무당한테 가서 사 온 건데······.”
고대 언어··· 산스크리트어, 콥트어. 전형적인 악마 들린 자들의 증상이다.
부마자들은 악귀에 따라 특징이 다르지만, 갑자기 십여 개 언어를 말하거나 다른 사람처럼 인격이 바뀌기도 한다.
“병원은요?”
구마를 하러 온 사제가 병원을 묻는다. 부부는 어리둥절한 눈빛을 교환하고는 대답했다.
“저기 멀리, 대학병원 정신과도 다녀왔어요. 의사가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이건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 혹시 유황 냄새는 나지 않았나요?”
“유황 냄새? 그런 게 났었나?”
“아니, 안 났어요. 지금 이 고기 썩는 냄새만 심해져서 매일 페브리즈를 얼마나 뿌리는지······.”
구마 전에 할 일은 끝났다. 서요한,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방문을 쳐다보며 말한다.
“제가 나올 때까지, 절대 들어오지 마십시오.”
*
방으로 들어가는 박건··· 서요한을 촬영팀의 카메라가 집요하게 좇는다.
세트장을 만들 예산이 부족해 어울리는 옛날식 가옥을 섭외한 터다. 김률 감독은 구석에 쪼그린 채 앉아 있고, 한상윤 PD는 스탭과 배우를 함께 캠코더에 담는다.
“악마 냄새가 진동을 하네. 먹은 거 올라오게.”
문을 닫은 서요한. 성염(축성받은 소금)을 뿌리거나 성수병을 꺼내지도 않고, 방을 쓱 둘러보더니 침대 앞에 선다.
“할아버지, 주무세요?”
담요를 덮은 노인의 얼굴은 평온하다. 침대에 사지가 결박된 것만 뺀다면, 곤히 잠든 할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딱 세 개만 여쭤볼게요. 김춘식 할아버지··· 아니, 그 뒤에서 자는 척하는 쥐새끼야.”
그때, 미동도 없던 뺨 근육이 꿈틀거린다. 서요한은 아는지 모르는지 질문을 잇는다.
“하나, 너희 동족 중에 그놈 아냐? 생긴 건 뱀이고, 몸에서 유황 냄새가 나는 악마. 꽤 유명한 놈일 것 같은데.”
답은 없다. 서요한의 손이 사제복 안쪽으로 들어가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낸다.
“둘, 알면 빨리 기어나와서 말해라. 내가 지금 무진장 바빠서.”
익숙한 상표의 국민담배를 피워 무는 손놀림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가오는 연기를 감지했는지, 노인의 턱이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험한 짓 해 버릴지도 모르니까.”
불붙은 담배가 노인의 이마로 향한 순간, 감겨 있던 눈이 기어이 떠졌다.
흰자 없이 새까맣게 물든 동공. 악마에게 완전히 몸을 빼앗긴 증표다.
“건방진 여호와의 종놈아, 감히 형제의 이름을 내게 묻느냐?”
방금 전까지 핼쑥하던 노인은 사라지고, 까만 눈을 번들거리는 마귀가 나타났다.
“십자가, 소금··· 더러운 축복의 잔재, 이깟 것들로 날 묶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마귀가 힘을 쓰자 손과 발을 묶어 두었던 끈들이 일제히 끊어지며 시트가 벗겨졌다.
“······.”
스탭 중 누군가 마른침을 삼킨다.
흰 러닝셔츠에 트렁크팬티만 입은 노인의 몸은 불끈거리는 근육질로 가득 차 있다.
실제 나이 서른넷, 배우를 접고 하던 일은 헬스트레이너. 얼굴과 몸의 괴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특수분장팀까지 초빙해 왔다.
“그놈은 아니네. 냄새도 다르고.”
“널 보니 지난번에 왔던 암놈이 생각나는구나. 이 땅의 토지신을 섬기는 계집년, 겁을 좀 주니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지.”
노인 부마자 역을 맡은 단역 배우는 연극판에서만 십여 년을 구른 베테랑이다. 연극 특유의 발산하는 연기 톤은 김률의 디렉팅을 거쳐 소름 끼치는 마귀로 재탄생했다.
“어디, 수놈은 다른가 볼까?”
마귀가 교활하게 웃자, 강풍이 휘몰아치며 방 안의 물건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서요한, 침대에서 뛰어내린 마귀가 다가오는데도 포켓 위스키를 꺼내 들이켠다.
술 냄새를 맡은 마귀,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비아냥거린다.
“성수도 아닌 보리술을··· 멍청한 놈, 이제 보니 사제가 아니라 사기꾼이었더냐?”
“미안한데, 악마야.”
“······.”
“내가 가짜 사제인 건 맞는데, 좀 이상한 힘이 있거든?”
말하던 서요한, 마시다 만 위스키를 노인에게 흩뿌린다.
“캬아아악!”
분명 안에 든 것은 술이건만, 노인은 성수를 맞은 것처럼 괴로워한다. CG 편집을 거친 스크린에서는 피부가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임팩트를 남길 것이다.
“만진 물건은 성물이 되고, 들고 있으면 성수로 변하고 하더라. 여기선 팔리지도 않는데.”
“이, 더러운 교회의 개가!”
분노한 악마가 근육질의 팔을 휘두른다. 그러나 시커먼 손톱이 뻗어나온 손아귀는 서요한의 목 앞에서 투명한 막에 막힌 듯 멈추고 만다.
“······신앙의 벽?”
악마의 검은 동공이 커진다. 이내 눈을 감은 서요한, 나지막이 기도를 시작한다.
“천상 군대의 영도자 성 미카엘 대천사여. 하느님 일어나시니 그의 원수들은 흩어지고, 당신을 미워하던 자는 그 면전에서 도망치도다.”
“닥쳐라, 종놈아! 입을 찢기 전에!”
“연기가 사라지듯, 불 앞에 밀초가 녹듯. 악인과 악귀들은 하느님 앞에 사그라지도다.”
힘과 힘이 맞부딪친다. 그러나 악마의 사이한 물리력은 서요한을 넘지 못한다.
노인─악귀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새파란 놈이, 어떻게 십자회의 늙은이들보다 강한 힘을······?”
용한 무당, 어지간한 신부들도 감당을 못하고 도망친 짐승 악마가 자신이다.
그런데 저 술 냄새 찌든 사제복의, 비리비리한 젊은 놈이 이 무슨 신성력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불결한 신아, 우리는 너와 마귀의 모든 세력과, 지옥의 원수들의 공격과, 마귀의 군단과 동맹과 씨족들을 추방하노라.”
고위 악마라면 이름을 불러 쫓아냈겠지만, 사제의 힘은 그조차 생략한다. 무시무시한 신성력이 부마자 속 악마를 말 그대로 짓이겨 으깬다.
이제 구마 기도도 막바지에 달했다. 흘러내린 땀이 쭉 뻗은 콧등을 타고 흐른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으로 너를 추방하노니······!”
“안 돼, 안 돼애애애!”
노인이 마지막 단말마를 지르지만, 이미 승패는 갈렸다.
“하느님 어린양의 고귀한 피로 구속된 영혼들에게서 나갈지어다.”
눈을 감은 채, 낮게 읊조린 서요한이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그만 꺼져, 등신아.”
모든 소리가 뚝 끊기며, 신성력에 뒤덮인 악마가 소멸한다. 악마가 빠져나가 쓰러지는 노인의 몸을 서요한이 받아 눕혔다.
혹시나 해서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보니, 얕고 고른 숨결이 느껴진다. 구마는 성공한 것이다.
악마 하나가 또 소멸했다.
가볍게 끝낸 것 같아도 순간적으로 쏟아부은 심력과 체력 소모는 어마어마하다.
땀을 닦은 서요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술병을 찾는다.
“괜히 뿌렸네, 아깝게.”
댕그랑, 다 마신 위스키 병이 바닥을 구른다.
*
구마의식 촬영은 추가 NG 없이 끝났다.
‘서울의 개’ 촬영장처럼, 자기 분량이 끝난 단역들은 아까의 연기를 되짚느라 바쁘다.
아직 노인 분장을 지우지 않은 러닝셔츠 바람의 배우가 흥분해 떠들었다.
“나는 한 컷밖에 안 나와도 좋아요. 이건 올해의 씬 스틸러, 무조건 유튜브 십만 각이에요.”
“십만이 뭐야? 선공개로 백만, 쇼츠로 삼백만은 땡겨야지. 촬영본 편집하면 장난 아닐 거야.”
“아니, 진짜 미쳤어요. 전 제가 이렇게 연기 잘하는 줄 몰랐다니까요?”
옆에서 부부 역할의 배우들도 거든다.
“저희도 그래요. 디렉팅을 얼마나 세세하게 해 주시는지, 현역 때도 NG를 이렇게 안 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촬영감독이 씩 웃으며 저쪽으로 턱짓했다.
“김 감독한테 고맙다고들 해요. 저 친구, 충무로의 불행 어쩌고 하는 건 개소리야. 진짜 잘 찍는 사람이라니까.”
“그럼요! 은혜로우신 우리 감독님, 우리 주연 배우님··· 어, 박건 씨는?”
둘러보던 배우가 주연을 찾았다. 박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서 있었다.
아까 전까지 동생과 집에 가서 뭘 먹을지 의논하던 사람답지 않게, 자못 침중한 분위기가 감돈다.
“박 배우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거면, 메디컬 팀 저기 있으니까 바로 가셔서······.”
주연 배우가 까딱 잘못 긁히기라도 했으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다른 스탭까지 달려오는 와중 박건이 고개를 들었다.
“아, 방금 연기 때문에요. 잠깐 뭘 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촬영장에서 박건의 미친 몰입력을 모두가 본 참이다.
씌는 것도 빠져나오는 것도 빠르니 배우의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제야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선 씨! 그래서 어머니가 뭐래, 오늘 늦게 들어와도 된다죠? 집밥도 좋지만 크랭크인 첫날엔 소주 파티라니까.”
“와, 촬영감독님 아깐 졸리시댔으면서··· 보세요, 김률 감독님도 표정 안 좋아지시잖아요. 형도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줘!”
“난 괜찮은데. 첫날은 회식이지.”
“아니, 진짜 이 사람들이······!”
짐짓 촬영감독 편을 들며, 박건은 사제복 소매에 가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몇 분 전··· 구마의식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의 손안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번득이는 것은.
무심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기억났네. 그놈들 얼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