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기시감 (3)
* * *
더위가 완전히 가셨다.
현장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크랭크는 돌아간다.
“대본 남은 거 봐. 우리가 빨리 찍긴 하네.”
“감독님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시잖냐. 저렇게 찍으면서도 보정에 편집, 후시 딸 것까지 미리 다 깔아 둔다잖아. 촬영 끝나자마자 집에도 안 가고 가편집부터 하시고.”
“와, 편집기사 없이 직접? 시간이 나오나?”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안 주무신대. 목숨 갈면서 일하는 거지.”
촬영장 한쪽, 아직 스탠바이가 안 들어간 상황에 스탭 둘이 잡담을 나눈다.
사실상 분량의 대부분인 주연이 NG를 안 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역대급 속도다.
몇 분쯤 지나자 눈이 퀭한 김률 감독이 휘적휘적 걸어나왔다. 한 손에는 메가폰이, 다른 손에는 에너지드링크 캔이 들려 있다.
“슬슬 준비합시다.”
술집 알바생 1 : (가게 뒤, 담배를 피우며) 야, 뉴스 봤냐? 진짜 개소름.
술집 알바생 2 : 그니까, 시발. 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시체들 양팔을 벌려서 나무에 걸어놨대. 그것도 내장은 다 빼고··· 아, 깜짝이야!
서요한 : (알바생 팔을 붙잡은 채, 심각한 어조로) 방금 뭐라고 했냐?
알바생 2 : 형, 인터넷도 안 봐요? 오늘 새벽부터 완전 난리났잖아요.
집으로 돌아온 서요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오래된 성서의 책장을 넘긴다.
서요한 : (침중한 내레이션) 파헤쳐진 내장, 걸어 둔 시체, 어떤 놈의 의식인지 봤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까지 찍고, 또 다시 점프다.
영화 촬영은 드라마와 다를 것이 없다. 씬을 찍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는 소리다.
요 며칠은 중후반부의 씬 몇 개를 촬영했고, 오늘 오후부터는 비교적 초반에 나올 씬을 촬영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김 선배, 과수대한테 연락 왔어요. 이번에도 뭐가 안 나왔다는데요?”
“이 미친 새끼들··· 흔적 지우는 솜씨가 그냥 프로야. 뭘 어떻게 했길래 그 많은 사람들이 저항 하나 없이 따라가?”
장성화, 아니 형사 김황철이 책상을 내리친다.
벌써 네 번째인데 꼬리가 안 잡혔다. 연쇄살인인 척 장기를 빼다 파는 통나무장사로 짐작했건만, 알아보니 그쪽 루트도 아니란다.
상부는 연일 아래를 쪼고, 매스컴은 난리법석을 떤다. 이 미친놈 때문에 권역 경찰들은 죄다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후배 형사가 문득 말한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에요. 그 사제가 말한 것처럼 악마라도 씐 건가······.”
“아, 그 사제복 또라이?”
며칠 전, 사건현장 근처마다 웬 미친놈 하나가 나타났던 적이 있었다.
‘들여보내 줘요. 그 시체들, 내가 한 번만 보면 알 수 있다고!’
현장은 공개가 안 된다, 계속 그러면 수사방해로 처넣겠다고 협박해도 그 키 큰 놈은 막무가내로 떼를 써 댔다.
뭐라더라, 악마 냄새가 난다고 했나······?
“알아보니까 진짜 신부더라고요. 교회에서 파문됐다고 했나, 아무튼 졸라 골 때려요.”
“신부? 야, 걔 파일 좀 줘 봐. 지구대 데려왔을 때 인적사항 땄었지?”
“옙. 다 해 놨습니다.”
알리바이는 있지만, 하도 여기저기서 보이니 조사는 해 둬야 한다. 용의자는 아닐지언정 사건의 핵심 관련자일 가능성이 있다.
후배가 파일철을 넘기며 중얼거린다.
“근데 그 친구, 특이하긴 하더라고요.”
“특이?”
“읽어보시면 압니다.”
건네받은 파일을 훑어보던 김황철, 읽다 말고 헛웃음을 흘린다.
“6세 때 강도 피습으로 부모 사망, 부모를 죽인 범인도 정신병원 입원 중 사망, 입양된 교회는 전소··· 이게 뭐야, 신부가 아니라 범죄자 프로필이잖아?”
화면은 다시 전환된다.
경찰에게 쫓겨난 서요한은 현장 근처를 집요하게 수색한다.
악마의 소행이라 확신을 가진 이유는 냄새. 현장마다 고기 썩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오랫동안 악마와 싸워 온 사제는 알 수 있다.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어. 악마가 최소 둘··· 놈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찰은 말을 아꼈지만, 누출된 정보들로도 악마의 흔적은 분명하다. 내장 훼손은 제물을 바치는 행위이며, 시체를 매다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대표적인 숭배자들의 방식이다.
끈질긴 탐문수사 끝에, 서요한은 한 피해자의 유족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 요즘 잘 안 들어왔어요.”
볼이 움푹 들어간 피해자의 아내는 그녀를 찾아온 사제에게 속을 털어놓는다.
“지난 3월이었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었거든요. 이후엔 그냥 아는 사람 가게에 나가거나··· 제가 일을 해서 생계는 유지했고요. 집에만 있다가, 나가기 시작한 게 몇 달 전부터였어요.”
“특별히 만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겉으로 보였던 변화라든가.”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아, 이상한 걸 물어보기도 했어요. 한밤중에 들어와서 옷도 안 벗고··· 지금 사제님이 계신 거기에 서서요.”
“이상한 거라면······.”
아내는 기억을 되짚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더라, 뭔 회가 어쨌느니 하고, 구원을 할지, 구원받을지 결정하라··· 이런 말이었던 것 같아요.”
서요한의 눈빛이 번득인다. 회와 구원, 전형적인 악마숭배자들의 레퍼토리다.
“아, 그리고 냄새도 났어요. 양복에 뭐가 묻었나, 했는데 보니까 깨끗했던 기억이 나요.”
사제복 어깨가 옷 위로도 보일 만큼 딱딱하게 굳는다.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른, 경직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떤 냄새였습니까?
“음식물 쓰레기통 열었을 때 나는··· 맞아, 딱 달걀 썩는 냄새였어요.”
유황의 악취를 처음 맡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곤 한다. 마치 음식물이 부패한 듯한, 달걀 썩는 냄새였다고.
옛 악몽이 이십여 년을 거슬러 이를 드러낸다.
놈이, 돌아왔다.
*
촬영장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이동, 그리고 세팅이다.
명색이 장르물, 거기다 예산을 투자한 상업영화라면 더더욱 세팅에 시간이 걸린다.
신식화 되었다 한들 챙겨야 할 장비 자체가 많고, 특히 조명 쪽엔 장정들이 달라붙어도 낑낑댈 만큼 무거운 기기도 있다.
예산 대비 스탭들이 적은 ‘김률 사단’은 그래서 늘 손이 달린다.
“이리 주시죠.”
“아, 잠깐······.”
조명팀 막내가 황망한 표정으로 돌아서지만, 이미 가방은 빼앗긴 뒤다.
“배우님, 너무 높아요! 그러다 다치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말을 해서 들으면 박건이 아니다. 장비를 산더미처럼 안은 주연 배우가 방금 빼앗은 가방까지 그 위에 턱, 올렸다.
“우선 저는 괜찮고요. 저보다 비싼 장비도 다치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아휴, 그런 뜻이 아니라요!”
특수부대 출신이라 그런가,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비탈길을 짐까지 든 채 잘만 탄다.
결국 박건은 그날치 촬영 장비를 모조리 옮기고서야 물류 곡예를 멈췄다.
‘와, 저걸 하나씩 들고 오르내렸으면······.’
땀을 훔친 조명팀 스탭들이 넙죽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배우님.”
“아닙니다. 운동도 되고 좋은데요.”
“매번 도와주셔서 참··· 죄송한데 감사해요. 완전 우리 현장 해결사세요.”
박건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가 지나치게 잘생겼을 뿐, 기본적으로 순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다. 저도 모르게 찔끔한 스탭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 해결사라고······.”
“해결사보다는 용사 쪽이 어감이 좋지 않습니까? 실제 의미도 그렇고요.”
“예? 아, 예. 그런 것 같아요.”
두 개가 뭐가 그리 다르다고, 어쩐지 뿌듯한 얼굴이 된 박건이 떠났다.
남겨진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저게 요즘 MZ세대 유행언가?”
“뭐래, 배우님 우리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
두어 시간 뒤.
촬영장비 하나에 작은 이상이 생겼다.
제작PD 겸 조연출 한상윤이 차를 빌려 타고 가까운 제작실로 부랴부랴 공수를 갔다.
촬영이 딜레이될 때는 노가리가 답이다. 저녁을 먹은 스탭들이 촬영장 구석, 임시로 만든 야외 휴게소에 모였다.
오늘도 화제는 현장의 해결사다.
“박 배우님 봤어요? 또 조명팀 장비 혼자 다 날랐다던데.”
“와··· 나 그거 전에 직관했거든? 장난 아니더라, 무슨 곡예사인 줄.”
“어젠 김강우 LED에 깔릴 뻔한 거 구해 주셨잖아. 배우님 아니었으면 걔 디스크 또 터져서 드러누웠어.”
여기저기서 미담 제보가 속출한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느니, 팬들의 음식값을 내줬다느니, 이런 대외용 미담보다 현장 스탭들에겐 스타의 애티튜드가 훨씬 중요하다.
“이 커피도 배우님이 쏘셨대요. 다들 나중에 고맙다고 한 마디씩 꼭 해 드립시다!”
“촬영팀 장비에 커피 지원에··· 요즘은 배우 케어까지 하신다니까요.”
박건 형제가 이장미와 밥을 함께 먹기 시작한 이후, 촬영장을 불편하게 하던 메소드 후유증이 확 나아졌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 받지 않느냐’는 누군가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연기 시작하면 적이 되는데, 실제는 그것보다 덜하잖습니까. 이장미유원 씨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습니다.’
인성만 훌륭한 게 아니다.
보통 크랭크인이 중반쯤 다다르면 현장의 사람들은 지친다. 감독과 스탭은 일하느라, 배우는 연기에 몰입해 일정을 소화하느라.
헌데 저기 저 배우, 박건은 쉬지를 않는다.
‘아니, 벌써 나오셨어요?’
‘잠이 없어서요. 동생은 이따 올 겁니다.’
무려 주연께서 스탭들보다 일찍 촬영장에 도착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무거운 장비를 차에 싣고 내리는 건 물론, 손이 필요할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척척 해결하고 사라진다.
처음에는 소속사와의 계약 때문일 거라고 의심도 했다. 다름 아닌 그 로만 아닌가. 계약서에 ‘인성 유지’ 특약이 따로 들어가 있다고 하는.
그러나··· 이젠 모두가 박건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대중은 속여도 스탭들은 못 속이는 법이다.
“아, 다들 그 얘기 들었어요? 이번에 박 배우님 인터뷰 하신다던데.”
“인터뷰? 어디서?”
스탭 하나가 운을 떼자, 나머지 사람들이 우르르 반응한다.
“포그(Pogue). 크랭크업되면 하러 가서 개봉 전에 나올 거라고, 많이 봐 달래요.”
“아니, 이 타이밍에 홍보를?”
“그게 박 배우님 매력이지. 아까 밥 먹다 뜬금없이 앞에 나가서 그랬다니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감독님 불안한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듣던 이들이 실소를 터뜨렸다.
“인터뷰 뜨면 단톡방마다 뿌려야겠다. 우리 영화 얘기도 하시려나?”
“당연하지. 그러려고 잡는 게 인터뷴데.”
“아냐, 의외로 진짜 인터뷰만 하실지도 몰라.”
의견이 오고 가는 와중, 조명팀 막내 조금지는 몽롱한 눈으로 컵을 감쌌다.
잘생기고 매너 좋은 배우?
이쪽 일 하면서 많이 봤다. 카메라 앞에서는 세상 선하다가 슛이 끊기면 인격이 싹 바뀌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으리란 건 안다.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별이, 초라한 돌덩어리를 무시했다고 누굴 원망하겠나.
하지만 박건은 한결같이 올곧다. 어쩜 이럴 수 있나 싶게,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야, 조금지.”
귀신같이 알아챈 팀장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연예인한테 혹하지 마라. 그러는 거 아냐.”
“안 혹했어요.”
“웃기고 있네. 아주 그냥,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구만.”
조금지는 단호하게 눈을 치켜 떴다.
“팀장님.”
“또 왜.”
“혹한 게 아니에요. 그냥 흠뻑 빠졌어요.”
환자는 이미 중증이다. 팀장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아서라, 저런 스타일이 제일 해로운 거야. 나가고 싶어도 출구가 없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