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48화 (48/122)

시상식의 주인공들 (1)

* * *

“팀장님, 터졌어요!”

“예매율은?

“당연히 1위죠!”

“아니, 몇 퍼센트냐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홍보팀 직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82%, 아니, 83%요. 재집계하면 분명히 더 올라갈 거예요.”

예매가 풀린 첫날, 블록버스터도 해외영화도 아닌 오컬트가 80%를 넘겼다.

‘흑의사제’ 정식 개봉까지 D-7.

공 팀장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장작 더 넣어. 아주 기어오르지도 못하게.”

*

유료시사회 당일, ‘흑의사제’는 그야말로 커뮤니티를 뒤집어 놓았다.

재관람, 재재관람은 필수라는 광기 어린 글, 감독과 찍은 SNS 인증, 출연 배우들의 정보를 찾는 애타는 목소리까지.

미리 열린 포털사이트의 영화 정보란에는 한줄 평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

-박건은 신이고 김률은 무적이다

-꼭 보세요, 강추합니다.

-연출이 진짜 미쳤음. 이건 오컬트를 넘어선 예술 그 자체임.

-압도적인 미장센, 숨통을 틀어쥐는 현장감.

-올해 하반기 최고의 영화

-개봉하면 닥치고 3연속 재관람

기자들도 잽싸게 노선을 바꿨다. 하이에나들은 바보가 아니다. 물어뜯을 곳이 없으면, 잽싸게 꽁무니를 좇아야 썩은 고기라도 떨어진다.

[베일 벗은 ‘흑의사제’, 누가 그들을 외인구단이라 불렀나]

[유료시사회 초대박··· 1회차만 선공개한 자신감에는 이유 있었다]

[박건X이장미X김률, 충무로의 세 블루칩]

벼르던 놈들은 쏙 들어가고, 찬양하는 놈들만 들끓는다. 이쯤 되면 정말로 미치겠는 건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이트는 아우성으로 들끓었다.

언제 개봉이냐, 다음 GV는 없느냐, 그냥 개봉을 앞당기면 안 되느냐······.

당연히 더 이상의 GV는 없다.

유료시사회랍시고 일정을 당겨, 정말로 1회차만 상영하고 끝난 것부터가 대놓고 약을 올리는 것이다.

누군지 모를 홍보담당자는 애당초 조기개봉 생각이 없었다. 맛을 듬뿍 보여줬으니, 관객들은 꼼짝없이 2주간 몸부림쳐야 한다.

‘내돈내산’으로 시사회를 다녀왔다는 유명 영화블로거가 그 절망에 방점을 찍었다.

대한민국 오컬트에 그은 명인의 한 획. 개봉까지 남은 2주가 지옥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작품이, 시사회까지 초대박이 터졌다.

개봉 1주 전. 당장 예매율이 치솟고 매진이 이어졌다. 애초에 스크린 배정을 적게 잡은 탓에, 상영관과 배급사 관계자들만 불똥이 떨어졌다.

“팀장님, 큰일났습니다!”

“또 왜?”

“흑의사제 말고 나머지는 예매율이 올라가질 않습니다, 저거 때문에 다른 작품들 아예 묻히게 생겼어요!”

아트엔터테인먼트 소속, 배급팀 팀장은 초조하게 손끝을 씹었다. 흑의사제에 스크린을 얼마나 줬더라. 20퍼센트··· 아니, 15퍼센트?

‘좆 됐네, 시팔.’

쥐똥만 한 제작사, 주연은 드라마판 신인이라고 무시했던 영화가 거물이 되어 돌아왔다.

예매율이 이렇게 뜨면 총체적 난국이다.

위에서는 왜 못 했냐고 쪼고, 관객들은 더 열어 달라고 난리를 친다. 졸작과 대작을 못 알아본 죄는 고스란히 이쪽이 덮어쓴다.

“살인열차랑 우네사 쪽은? 그쪽 홍보팀은 뭐, 여태 숟가락만 빨고 있어?”

“기사가 나긴 하는데··· 화제성이 도저히 상대가 안 됩니다. 실시간으로 호흡기가 떨어질 정도예요.”

예매율은 그래도 버틸 만하다. 문제는 정식 개봉 이후 영화의 좌석 점유율이다.

혹시나 뚜껑 속 내용물까지 진짜 미쳐서, 저놈의 영화가 판을 쓸어담기라도 하면······.

팀장은 고개를 휘휘 저어 끔찍한 상상을 털어냈다. 장르가 오컬트라더니, 이건 숫제 악몽이다.

“특별회의 소집해. 예매율 추이랑 기존 기대작들 수치, 전부 합쳐서 보고서 만들고. 최대한 빨리 윗선에 올려야 우리가 덜 깨진다.”

“예? 어쩌시려고요?”

“상영관 텅텅 비울 일 있어? 미리 준비해야 스크린 몇 개라도 더 배정하지!”

속칭 ‘빅 3’로 불리는 대형 배급사라지만 눈 뜨고 코를 베일 수는 없다. 곳곳에서 관계자들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식 개봉 5일차.

스크린은 김률이 불러온 악마에게 잠식당했다.

*

일부 천만 관객··· 또는 천만 관객을 노린 영화들은 매번 논란을 낳았다. 스크린을 독점한다는 둥, 배급사가 끌어 모은 관객이라는 둥.

그러나 상영관이 없어서 애를 먹는 기대작은 영화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들다.

“아니, 왜 더 큰 관에서 못 보는 거예요? 요즘 예매도 얼마나 어려운데!”

“죄송합니다, 고객님. 내부적으로 상영 배정된 영화는 정해져 있어서······.”

압살, 무자비한 압살이다.

대중성뿐만이 아니다. 개봉 직후, 평단은 슬금슬금 김률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별점이 짜기로 소문난 모 평론가는 드물게 긴 평을 개인 SNS에 올렸다.

─오컬트의 탈을 쓴, 구원을 향한 인간의 처절한 탈출기. 풍성한 종교적 상징과 메타포들은 서사에 장려함을 더한다. 거기에 고전적이며 전위적이기까지 한 연출은 극의 서스펜스를 한껏······.

‘흑의사제’ 멸망을 점치던 커뮤니티에서는 여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제목 : 충무로의 방패 ‘킹갓제네률’

다시는 갓률을 무시하지 마라... 그와 일하면 지나가는 고양이도 대배우가 된다

-박건이 영화 터뜨린다는 놈? ㅋㅋㅋ

└터지긴 터졌넼ㅋㅋㅋㅋ 예매율 90%

-뭐? 관객수 80만에 IPTV?ㅋㅋㅋㅋㅋㅋㅋ

└검색해보니까 글삭튀했네 ㅋㅋ 두고두고 성지순례할랬는데

-아니 근데 배급사놈들 상영관 안늘리나?

└이미 다 계약된거라 한번에 내릴수가 없음; 대신 조금씩 늘리면서 연말까지 끌겠지

└└연말 기대작들 의외의 복병행 ㅋㅋㅋㅋ

언더독의 반란은 늘 대중을 열광시킨다. 거기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되자 ‘김률 사단’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김률은 원래 서예종에서도 이름난 수재였다는 것, 이장미와 장성화 등 주조연들은 지방 극단에서 사실상 무페이 공연을 했다는 것, 직접 캐스팅한 배우들은 평생 단역 출신이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

영화 속 출연진들을 분석한 영상이 유튜브에 도는 동안, ‘흑의사제’는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

대구에서 가장 큰 멀티플렉스.

무대인사가 예정된 상영관에 배우들이 나타나자 환호가 터져나온다.

“왔다, 왔어!”

“우와아아아! 박건!”

“장미 누나, 여기 좀 봐줘요!”

연극 무대, 그것도 지방을 전전하던 비주류 극단에선 상상조차 못 해본 광경이다.

이장미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주춤거리다가, 장성화가 툭 치고 나서야 포토월로 올라갔다.

이내 스크린 앞 단상에 줄지어 선 배우들이 한 명씩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건입니다.”

“이장미입니다.”

“장성화예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앞의 순서가 다 끝나고, 돌아온 마이크를 김률이 잡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상했던 얼굴은 이제 자신감과 기쁨으로 빛나고 있다.

“영화감독 김률이라고 합니다. 대구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두 번째 고향입니다. 모쪼록 즐겁게 관람해 주십시오.”

또다시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

“흑의사제 지방 무대인사··· 대구, 부산 돌아 다시 서울로··· 상영관 8개 추가 개봉 확정··· 이건 뭐, 메이저 중 메이저가 따로 없구만.”

기사를 읽던 ‘살인열차’의 주연, 권은구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잘 된 장사가 있으면 안 된 장사도 있기 마련이다. 생태계 파괴자의 등장으로 기존 기대작들은 새우등이 터졌다.

특히 살인열차와 우리들의 네 가지 시간, 이쪽은 완전히 망했다.

“우네시 쪽도 곡소리 난대. 거긴 우리보다 제작비를 두 배는 더 부었다잖냐.”

“그러게요.”

날짜 잘 잡은 무난한 스릴러에 편승해, 상영관을 싹 쓸고 빠지려던 포부는 물 건너갔다.

맞은편의 매니지먼트 실장이 배우를 위로했다.

“은구야, 괜찮아. 상대가 나빴던 거야.”

이들도 전부 영화를 관람하고 온 참이었다. 예매 전쟁에 치이며, 한 자리 껴서 간신히.

상대가 너무 강하면 의욕도 사라진다. 농작물을 쓸고 지나간 토네이도 앞에서는 분노가 아닌 초연함이 먼저 드는 법이다.

“할 말도 없네요. 너무 심하게 발려서.”

“발렸다니, 뭘 또 그렇게까지······.”

“그럼 뭐라고 해요. 실장님도 보셨겠지만, 걔넨 우리랑 붙을 게 아니에요. 성수기 블록버스터들이랑 치고받을 헤비급이지.”

“야, 참아. 그래도 우린 개런티라도 많이 받았지, 다른 애들은 지금쯤 눈이 뒤집어졌을걸?”

“다른 애들요?”

“이거 시나리오. 들어보니까 우리가 아는 배우들한테도 쭉 돌았대.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씩.”

워낙 마이너한 영화라 시나리오가 돈 줄도 몰랐다. 실장이 은밀히 속삭였다.

“근데 다 깠다잖냐. 큰범 쪽 관계자 얘기 들어보니까, 배지나랑 남서준은 온다고 해 놓고 오디션 노쇼했대.”

“허, 이 시나리오를 보고서?”

관객만 몰고 끝날 게 아니다. 어차피 러닝 개런티 아니면 배우한테 떨어지는 돈은 같다.

문제는 영화의 작품성까지 인정받았을 때, 각종 영화제 및 커리어에 남는 영광의 트로피다.

“그러니까 개눈깔들이지. 벌써 알음알음으로 소문 쫙 돌았을걸.”

내 불운은 남의 불행으로 잊는 법. 권은구는 훨씬 나아진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우리 지나, 지금 난리도 아니겠네. 평생 소원이던 트로피 하나 들어볼 기회였는데.”

*

“뭐가 어쩌고 어째?”

째지는 목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모 광고촬영 스튜디오, 스탭들이 대기실 앞을 후다닥 지나간다.

“그··· 이번에 흑의사제가······.”

“내가 그 이름 꺼내지 말랬지!”

메이크업을 해주는 코디는 귀라도 막고 싶다는 표정이다. 지난날, ‘흑의사제’ 시나리오를 대차게 깠던 매니저가 쭈뼛쭈뼛 말한다.

“아무튼 그 영화가, 이번에 대종상 몇 개 부문에 오를 거라는 소리가 있어서··· 혹시 뭘 들으면 누님이 얘기하라고······.”

“···지금 얼마야?”

“예?”

입술을 질끈 씹은 배지나가 다시 묻는다.

“얼마냐고. 집계된 거.”

개봉 2주차. 예매율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상영관을 독점한 대형 배급사들은 슬금슬금 스크린 숫자를 늘렸고, 이제 연말 거포들이 개봉을 앞뒀는데도 ‘흑의사제’는 꺾일 기미가 없다.

“···백만입니다.”

“백만? 아직도?”

“그게, 앞에 셋 붙여서··· 삼백만이요.”

이 판은 비밀이 없다. 이미 제작비가 40억 원대 규모라는 것도, 관객이 얼마가 들어야 손익분기점이 넘는지도 알고 있다.

짬이 찬 여배우의 머리가 회전한다.

그깟 관객 머릿수가 다가 아니다. 문제는 처참하게 짓밟힌 자존심이다.

이미 화제성은 하반기 최고 수준. 거기에 그 정신 나간 감독이 배우들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떨거지들이 명배우 행세를 한다.

특히 그 이장미란 년은 단번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신선한 페이스에 미친 연기력··· 저딴 소릴 들을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

촌구석이나 굴러다니던 유랑극단 주제에, 어디서 충무로 안방마님 자리를 노려?

“···뭐라고 하겠어?”

“예?”

“그년 배역이 나한테 온 거 다 아는데,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고!”

지이익ㅡ

바락 소리를 지른 배지나의 턱에, 새빨간 절취선이 그어졌다.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코디가 립스틱을 미끄러뜨린 것이다.

“어, 아아······.”

코디는 죄송하다는 말도 못 하고 손만 벌벌 떨고 있다. 곧이어 대기실의 물건들이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다 나가!”

*

차인혁은 쓰고 있던 금장테 안경을 벗었다.

눈앞의 네 소녀. 연습실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격렬히 춤을 춘 걸그룹이 숨을 몰아쉬며 그의 눈치를 살핀다.

올해 상반기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나름 업계 유망주인 아이돌 그룹이지만 DG의 냉혈한 앞에서는 뱀 앞의 쥐 꼴이다.

“나가 봐.”

“예?”

“봤으니까 그만 가라고.”

찍혀 나온 상품의 검수를 하는데 연습실까지 내려갈 리 없다.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 봐줬고, 나쁘지 않았으니 꺼지라는 뜻이다.

“돌아가시면 됩니다.”

다가온 여비서가 혼란스러운 표정의 소녀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문이 닫힌 뒤, 차인혁은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갑당 이십만 원짜리 고급 연초에 불이 붙는다.

연기와 함께 질문이 흘러나온다.

“몇 퍼센트야?”

“현 시점 88%, 리서치 집계시점에 따라 오차범위는 1~2% 안팎입니다.”

“예매율 말고. 노중만한테 우리 쪽 정보가 샜을 확률이 얼마냐고.”

차인혁 본부장의 심복이라면 모든 안건을 도식화하고 수치화하여 보고해야 한다. 여비서가 차려 자세로 답했다.

“20% 미만입니다. 노중만 대표의 성격상, 크랭크인 이전 단계부터 캐스팅된 배우들을 전부 조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막을 패는 터뜨릴 때까지 쥐고 있었고··· 하여간 너구리, 음흉한 건 여전해.”

차인혁은 코웃음을 쳤다. 로만에 적대적인 기자들을 앞세워, 이장미에게 ‘접대부’ 프레임을 씌운 것은 그의 작품이었다.

물론 한 방에 고꾸라질 거라곤 기대도 안 했지만··· 너무 깔끔하게 막혔다. 마치 이쪽의 잽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어쨌든 저쪽도 현역인 것이다.

차인혁은 담배를 허공에 털었다. 희뿌연 담뱃재가 사무실 바닥의 러그로 떨어진다.

“당분간 한창 예민할 거야. 배우 쪽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하던 일에 집중해.”

“예.”

“먹이던 거 계속 먹이고. 황 국장이랑 박 의원 쪽, 반응이 있으면 바로 가져와. 병신들한테 핸들링 맡기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드라마만 할 줄 알았던 놈이 영화판으로 점프해서, 보란 듯이 히트를 쳤다. 기분은 나쁘지만 이 바닥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은 전면전을 할 때도 아니니까······.”

그는 더 큰 사업을 해야 한다. 재를 청소하고 방에 밴 냄새를 빼는 건 아랫것들이 할 일이다.

“박건 관련 조사는 계속할까요?”

“계속. 뭘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나올 때까지가 아니라 만들 때까지다. 비서가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차인혁은 탁자 위 아이패드로 시선을 보냈다.

7억, 8억, 8억 5천··· 쇼핑몰 제품처럼 가격이 붙은 연예인들의 사진 중, 박건의 얼굴에 붉은 체크 표시가 되어 있다.

“한 장짜린 아니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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