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60화 (60/122)

배고프지 않은 사람들 (3)

* * *

‘회색도시 팀장님’ 첫 방송일.

첫방 날에도 촬영은 계속된다. 때에 따라서는 본방 모니터링도 못 할 만큼 바쁜데, 다행히 오늘 촬영 일정은 오후 8시에 끝난다.

“오늘 밤 10시 맞지?”

“아니, 30분 당겨져서 9시 반이래.”

대답해 준 스탭이 멀찍이서 준비 중인 주연 배우들을 건너다봤다.

“그래서 오늘 다들 열심인가, 첫방 날이라?”

“첫방 때문이겠냐, 바보야.”

옆에서 따가운 면박이 날아든다. 눈썹에 피어싱을 한 스탭은 으스대며 말을 이었다.

“말했지, 나 시력 양쪽 1.3이라고? 그날 이후로 박 배우님 기세가 달라졌다니까.”

“무슨 기세가 달라요?”

“아이고, 깜짝아!”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스탭들은 화들짝 놀랐다.

변휘승은 씩, 한번 웃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무슨 기세?”

평소엔 사람을 공기 취급만 하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한 척이다.

피어싱 스탭은 우물쭈물하면서도 최대한 트집 안 잡힐 대답을 찾았다.

“박건 배우님이, 그냥 며칠 전부터 더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서······.”

“아, 그거.”

얼굴에 감돌던 흥미가 순식간에 무관심으로 변했다. 변휘승은 심드렁하게 손을 저으며 돌아섰다.

“뭐, 그래요. 잘들 구경하고.”

얄미운 뒷모습이 멀어지자마자 뒤에 남은 이들이 원성을 터뜨렸다.

“아니, 자긴 배우도 아닌가? 첫방 날인데 뭐 이렇게 태평해?”

“그니까. 매번 제일 늦게 와서 제일 먼저 가는 인간이!”

“저놈의 공무원 마인드, 딱 할 만큼만 하고 돈은 돈대로 받아 가려고······.”

악담을 퍼붓던 스탭 하나가 눈을 깜빡거렸다.

“근데 그건 우리랑 비슷한데?”

“스탭이랑 배우랑 같냐!”

*

딩동ㅡ

초인종이 울린다. 한지영은 후다닥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자 절친 두 명이 목도리를 싸맨 채 피자 박스를 들이밀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퇴근시간이라 버스가 막히는 걸 어떡하냐! 피자까지 사 왔더니, 이걸 잔소리부터 해?”

“그럼 지하철을 탔어야지.”

“됐고, 빨리 비켜. 좀 있음 시작이라 내리자마자 뛰었다고.”

TV 앞에 착착 앉는 친구들을 굽어보며, 한지영은 승리감에 찬 미소를 머금었다.

‘똥차판독기’라는 오명은 이제 없다.

팬클럽 초기 100명 안에 든 [열심건이] 등급을 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이미 주변 지인들은 죄다 박건에게 입덕했다. 평소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던 친구도, ‘흑의사제’의 인간승리를 보고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그래, 이거지.’

매번 넌 왜 그런 애를 파냐느니, 차라리 덕질을 말라느니 하는 소리를 듣던 그녀다.

내 배우 작품을 보겠다고 집으로 들이닥치는 친구들을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는 기분이다.

“야, 김소희! 벌써 먹으면 어떡해!”

“나도 배고파 죽겠어. 우리 건이 보기 전에 배부터 좀 채우자.”

“얘 말하는 것 봐. 누가 우리 건이야?”

잠깐의 소란이 거실을 지나간 뒤, 세 친구는 피자를 한 조각씩 들고 눈을 빛냈다.

“···광고 엄청 기네.”

“원래 인기 배우 드라마는 사전광고가 길대. 출연료 저걸로 뽑아먹어야 돼서.”

이내 광고가 끝나고 탁 트인 하늘··· 그리고 단칸방에 내리비치는 햇볕이 나오기 시작했다.

띠리리, 띠리리ㅡ

누가 봐도 PPL인, 초록색 전자식 알람시계를 길고 흰 손이 쳐서 떨어뜨린다.

흐르던 정적도 잠시. 이불을 걷어찬 여주인공 한태리가 눈을 번쩍 뜬다.

ㅡ몇 시야, 지각이다!

“나쁘지 않네.”

“전형적인 시작이지.”

한지영의 양옆에 앉은 친구들이 팔짱을 낀 채 평가한다.

깔끔한 연출과 살짝 과하다 싶은 색 보정, 딱 이게 로코구나 싶은 첫 장면 구성들이다.

드라마엔 도가 튼 골수 팬들이 보기에도 아기자기하게 볼 맛이 나니, 아마 평범한 시청자들 눈엔 80% 이상 만족스러울 터다.

ㅡ해외영업부 홍준영 대리예요. 오늘 회사 오티를 내가 해 줄 거예요.

ㅡ예, 감사합니다!

ㅡ아. 그리고 하나 말해 줄 게 있는데······.

절대로 울지 마요.

음산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분위기가 싹 바뀌며 발소리가 들려온다.

팔로우 샷으로 따라간 카메라가 배우의 상반신을 타고 올라온 순간, 세 팬들에게서 동시에 서로 다른 리액션이 터졌다.

“와.”

“······어우.”

“하, 미쳤다.”

각진 프레임의 은테안경, 펌을 해서 포마드로 넘긴 머리,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고정된 넥타이와 회색 수트, 광택 도는 옥스포드 슈즈까지.

‘서울의 개’ 때가 고독한 늑대였고 ‘흑의사제’ 때가 퇴폐적인 성직자였다면, 이번 드라마에서는 전문직 남성의 스킨 향이 물씬 풍긴다.

“박건이 포마드라니, 포마드라니!”

“시상식 때도 했는데 왜 호들갑이야?”

“드라마에서는 처음이잖아! 안경은 또 뭔데, 왜 이렇게 유해한데?”

극중 박건의 배역, 이진하 팀장은 팬들에게만 유해한 것이 아니다.

눈물 쏙 빠지게 살벌하지만 어쩐지 부러운 ‘신입 교육’이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어진다.

ㅡ핀란드어를 못 해요? 다른 북유럽어도?

ㅡ이봐요, 한태리 씨. 우리가 따 와야 할 브랜드가 죄다 북반구인데, 지금 중국어 잘한다는 말이 나옵니까?

ㅡPPT 폰트 바꿔요. 구성도 갈아엎고.

ㅡ그걸 바이어들한테 가져가면 회사 망신이 아니라 나라 망신입니다. 차라리 전임자 파일 뒤져서 붙이는 게 나았겠는데.

흡사 군대 선임과 직장 상사를 합친 듯한 갈굼 콜라보레이션이다.

말끝마다 뚝뚝 떨어지는 냉랭함과, 표정으로 느껴지는 한심함도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씬이 거듭될수록 청순하던 여배우의 눈시울이 실시간으로 붉어지는 게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팬들은? 한지영은 저도 모르게 피자 소스가 묻은 입술을 핥았다.

“내 상사가 저 얼굴로 저렇게 가르쳤으면······.”

친구 둘은 약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절대로 퇴사 안 하지.”

미리 켜 둔 커뮤니티들을 확인하자, 역시나 글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와 저거 진짜 우는 거 아냐?

-연기가 아닌데 ㅋㅋㅋㅋㅋ

-유진아... 웹드 밖의 세상은 어때...?

-어떻긴 어때 ㅅㅂ 박건한테 저렇게 맞는데 극락이지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동안,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가 장면이 전환된다.

밤늦게 돌아온 여주가 절친과 단골 포차의 빨간 테이블에서 훌쩍거린다.

ㅡ태리야, 너 괜찮아?

ㅡ미친놈한테 걸렸어······.

팀원 5명 중 한 명이 더 퇴사하며, 1회는 후반부로 달려간다.

동종업계 1, 2위를 다툰다던 대기업 부서에 왜 인력이 부족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로코 속 개연성이란 주인공들의 비주얼에서 나온다.

ㅡ···이상한데.

ㅡ팀장님, 로메르 쪽에서 연락 왔어요! 바로 다시 찾아간다고 할까요?

ㅡ됐어요. 그건 놓고, 나 좀 따라와요.

그렇게 깨지고도 하루 사이 쌩쌩해진 한태리와, 무언가를 고민하는 이진하를 번갈아 잡으며 1화 엔딩이 올라갔다.

“···이거 좋았다.”

“괜찮네. 이 호흡대로만 가면 로코계 레전드 하나 나오겠는데?”

“아, 잠깐만. 시청률!”

여운에 빠져 있던 한지영이 황급히 스마트폰을 찾았다. 보고 즐기는 것은 일반 시청자의 몫, 진짜 팬이라면 다른 게 중요하다.

시청률을 검색하는 그녀의 뒤에서 친구들이 목을 빼고 들여다봤다.

“그래서 오늘 최고시청률이······.”

*

‘회색도시 팀장님’ 1회가 끝났다.

로만의 작업실 하나를 빌려, 모니터링을 같이 하던 공기형 팀장이 슬쩍 눈치를 봤다.

“형, 괜찮아. 첫방 7%면 진짜 높은 거야!”

“서울의 개 때는 20%도 넘겼었는데.”

박선은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할 말을 찾았다.

“···어, 어음, 진짜로 높은 건 아니지만··· 그것도 최고시청률로 올라간 거잖아? 1회에 7%는 올라갈 일밖에······.”

“괜찮아. 시청률이 전부도 아니고.”

동생의 눈물겨운 노력이 효과를 거뒀는지, 박건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공 팀장은 소름이 쭈뼛 돋았다.

‘저건··· 뭐랄까, 성격 좋은 사람이 심기가 불편해졌을 때 표정인데.’

대학 시절, 학과 축구 동아리에 포커페이스로 유별난 선배가 있었다.

약체 중 약체였던 그들의 동아리가 13연패, 14연패를 하는데도 그 선배는 질책하기는커녕 스산하게 웃고만 다녔다.

즐기면 된다고, 안 다친 게 좋은 거라며.

‘딱 그때랑 비슷하네. 연습 싫어하는 후배들이 자체훈련 뛰게 만들던.’

지상파, 작품 특성, 배우 조합 등을 감안하면 7%가 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 박건이 조건을 따지는 사람이던가?

잘 되는 판에서도, 또 망해 가는 판에 가서도 아무렇지 않게 작품을 성공시킨 인간이다.

영세한 제작사를 업고도 멀쩡하던 얼굴이 저렇게 변한 걸 봐서는······.

“나는 잠깐 홍보실 좀 다녀올게요. 둘 다 진짜 고생 많았어요, 내 마음 알지?”

“당연하죠, 팀장님!”

“예.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딱딱하다. 슬그머니 문을 닫으며, 공 팀장은 생각했다.

‘좀 다른 문제가 있나 보네.’

*

‘열심히’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겐 죽을 만큼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할 수 있는 만큼일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 평균값이 다소 내려가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어, 오빠 촬영 중이거든? 그래. 애들이랑 다 같이 왔다고? 내가 아마··· 몰라, 새벽 전엔 끝나니까 근처에서 놀고 있든가 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던 변휘승이 다리를 꼬고 앉아 다음 전화를 받는다.

“야, 오지은. 시간이 몇 신데 자빠져 자냐.”

또 여자인 모양이다. 세 번째 동료들을 보면서, 건은 종류가 다른 고민에 잠겼다.

‘···태업은 아니긴 한데.’

첫 시청률 7%.

높다면 높고, 아쉽다면 아쉬운 수치다.

몇 년 전부터 지상파의 추락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차라리 종편 등 케이블의 드라마 시청률이 훨씬 더 잘 나올 때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잘 나가는 드라마는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끌고 나간다.

고작 7%짜리 시청률을 극이 끝날 때까지 유지하면 죽어도 상 탈 일은 없다는 소리다.

‘자원이 부족한 건 아냐.’

건은 고개를 돌렸다.

무시무시한 시력이 촬영장 저편에서 늘어져 있는 또 다른 주연에게로 박힌다.

이곳의 배우들 중,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변휘승이 가장 우수하다. 요즘 붙어서 찍는 씬들만 보면 유일하게 흡족할 정도다.

방영을 앞둔 드라마 속 등장 장면을 기대해 봐도 될 만큼.

‘서희도··· 아니, 용준상보다도 실력 자체는 더 낫다. 출력을 높여도 따라왔으니까.’

문제는 출연 배우들의 합계된 총점이다. 장르가 장르다 보니, 또 배역들이 ‘흑의사제’만큼 극적이지 않기에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이구, 박 배우님. 오늘도 일찍 오셨습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식사는 하셨고?

“동생이랑 차에서 간단히 먹었습니다.”

“그래요, 아주 볼 때마다 우애가 돈독해. 내 동생이랑 나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요. 헛헛헛!”

말을 걸었던 중견 배우, 고광표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제작진들 쪽으로 뒤뚱뒤뚱 걸어간다.

‘더 쉬크’의 사장 역할 고광표를 포함해, 홍 대리 역의 안지환 및 대부분의 조연들이 실력은 애매하고 의욕은 그저 그렇다.

김률의 마법까진 바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방송국 PD와 편집 기술로 커버를 하면······.

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놈의 시청률에 목을 매게 된 이쪽의 형편이다.

“오빠, 오늘 일정 언제 끝난댔지?”

“글쎄··· 열두 시 전에는 마칠 것 같은데.”

“아, 너무 느려. 안 그래도 요즘 현장 늦어져서 피곤하단 말야, 내 씬 좀 일찍 당겨 달라고 하면 안 되나?”

퇴근할 생각뿐인 서브 여주인공에,

“유진 씨는 조금만 더 힘을 써 줘요. 박건 씨랑 붙을 때마다, 렌즈로 보면 위축된 티가 계속 나서 그래요.”

“아,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정은 있지만 터뜨릴 잠재력도, 현재의 연기력도 부족한 메인 여주인공과,

“종필아. 주말에 지오르지엄 쇼나 놀러갈까?”

“토요일이랑 일요일 내내 촬영인뎁쇼.”

“거기 요즘 셀럽들 자주 온다더라고. 허유람이랑 손제니에, 라이거뮤직 래퍼 애들도 같이 온대.”

“···아니, 형님 촬영이 풀타임이라니깐요.”

촬영장에서도 놀 궁리에 여념이 없는 서브 남주인공까지.

저것들을 데리고 전쟁터에 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

‘그놈의 환청만 아니었어도······.’

그러나 이미 하기로 한 이상,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강력한 인재와 인외(人外)들을 숱하게 고르고 물색했던 용사의 눈이 촬영장을 훑는다.

‘괜찮은 메인 하나에 평범한 사람이 셋··· 아니, 넷. 할 생각이 없는 쪽이 둘.’

철왕국에서 개개인의 무력이 용사 파티의 전투력이었다면, 이 바닥의 전투력은 배우들과 제작진의 연기-연출 시너지다.

그 시너지는 실력과 의욕에서 결정된다.

ㅡ이 이상은 한 발짝도 못 간다!

ㅡ더러운 악마 놈들, 여기가 너희의 지옥이 될 것이다!

인류의 사활을 건 싸움까진 아니어도, 앞의 두 작품은 나름대로 의욕이 넘쳤다.

‘서울의 개’는 기대작이었고 ‘흑의사제’ 때는 조건만 열악할 뿐 동기부여가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엔 절실함이 없다.

차라리 제작비가 부족했으면, 좋은 배우가 없었다면, 프로그램 존폐가 위기라 하면 모두가 힘을 모아 달렸을 것이다.

허나 저들을 보라, 방송 결과를 뻔히 알 텐데도 만족한다는 눈치가 아닌가?

‘선아, 시상식 중복 참석도 돼?’

‘어··· 날짜만 안 겹치면? 어차피 방송 3사랑 케이블, 영화제들은 웬만하면 다른 날에 하거든. 한 명이라도 더 참석시키려고.’

‘그럼 상을 몇 개씩 받을 수도 있다는 거지?’

어젯밤 동생과 이야기했을 때, 박선은 당연하다는 듯 힘주어 끄덕였다.

‘응, 성과만 내면 전부 쓸어 갈 수 있어.’

물욕?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호승심, 이 역시 무뎌진 지 오래다.

다만 천사의 환청을 들은 지금, 드라마고 영화고 최고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목표는 방송국별 주연상, 또는 조연상 수상에 영화제까지 세 개.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겨서 기억이 돌아오는지 시험해 본다.’

가라앉아 있던 동공에 새파란 빛이 일렁였다.

일단 조금 더 지켜보고, 만약 다음 회차들 성적도 예상만큼 나오지 않으면······.

“방법을 강구해야겠지.”

“응, 누구를 구해?”

커피 트레이를 양손에 들고 온 박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게임 말이야. 우리 어제 새로 깔았던 거, 망나니 영애 탈출시키기.”

“어! 나도 형 따라서 좀 깼어. 근데 52탄부터는 마왕군이 너무 많아서 탑을 못 나가겠던데······.”

“갖고 와 봐. 어떻게 깨는지 알려줄게.”

“또 피지컬로 다 부수곤 생각보다 쉽지? 이럴 거잖아, 이제 안 속아.”

불퉁대는 동생을 달래며, 건은 미니밴에서 내리는 권유진을 지그시 응시했다.

“왜? 뭐 놓고 내렸어?”

“으, 응? 아니야.”

곧 찾아올 운명을 느낀 것일까. 권유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감은 좋다만 이미 늦었다. 뭐, 결국 모두가 행복하자고 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게 용사의 과업 중 하나지.”

“···와, 형 방금 엄청 무섭게 웃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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