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93화 (93/122)

고래싸움의 승자 (1)

* * *

키스씬.

이 바닥 만고불변의 관심사이며,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치트키 중 하나다.

방송쟁이들의 은어로, 속칭 ‘노키배’.

노출, 키스, 배드씬이 나오는 회차는 0.1%라도 시청률이 오른다는 말이 있다.

더군다나 평범한 로맨스도 아닌, 빌드업된 초대작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푸큽··· 형, 이거 봐봐. 우리 팬카페인데, 오늘부터 박하니단 지지하겠다는 글이 엄청 많아.’

‘박하니?’

‘형이랑 백 배우님 이름을 섞은 거. 웃기지?’

종종 박선이 보여 주는 커뮤니티 글에 따르면, 그와 백하니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팬들도 많은 모양이었다.

뭐라던가, 이왕 스캔들이 날 거면 같은 소속사가 더 낫다고 했었나?

‘그런데 하필 오늘이군.’

건은 동생이 안고 있는 박스를 들여다보았다. 구취제거제와 풍선껌, 종류별로 향이 다른 목캔디가 박스 안에 빼곡했다,

키스씬 소식과 함께, 백하니가 매니저 편으로 보내온 선물들이다.

‘···몇 번을 찍으려는 거지?’

원래 대본엔 이렇게 확고한 이천인과 송이설의 로맨스 씬이 없었다.

결국 배드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만큼, 마음만 확인하는 선에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연일 막장 코드를 쏟아내는 ‘하이페리온’이다. 불륜에 환승, 배신을 거듭하는 저쪽을 견제하려다 보니 영도은 작가도 강수를 둔 것 같았다.

삼십 분 전, 전인우 PD는 그를 찾아와 선전포고 같은 격려를 하고 갔다.

‘부담 없이 찍으십쇼, 지금까지 박 배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절약됐는데요.’

‘한 번에 끝내겠습니다.’

전인우 PD는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릴 하냐는 듯 화들짝 놀랐다.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요. 생각해 보면 그··· 회도팀 때 키스씬이 또 화제가 됐었잖습니까? 어차피 각도별로 컷을 따야 하니, 메이킹필름도 만들 겸 NG 막 내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까지 스케줄 널널해요.’

‘···입술 다 부르트겠네요.’

이천인과 송이설의 감정선을 고려했을 때, 사실 지금이 적기긴 하다.

송이설은 이천인이 백정탈임을 의심하고, 이천인은 조선을 떠나기 전 만났던 소녀가 독립투사로 성장했음을 아는 상황.

적들의 위협 속에서, 두 남녀가 서로를 향한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인 것이다.

···문제는 다른 쪽에 있다.

목캔디 포장지를 까면서, 건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좀 쉽지 않은데.”

백하니가 이성으로 느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여태 해 온 일들 덕에, 진짜 ‘동료’로 인식된다는 것이 문제다.

―용사님, 혹시 남색 쪽이 취향이세요?

―···무슨 소립니까?

―아니, 밤마다 침소로 들여보내는 여자들을 다 내보낸다면서요. 국무대신이 용사님 취향 맞춘다고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녀요.

철왕국의 성녀, 아리아 리버롯의 화법은 당돌하고 직설적이었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신을 섬기는 자답지 않게 적나라해서, 초반에는 이 인간이 신관이 맞나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 것 아닙니다. 오만과 불화를 칠 시간도 부족한데,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국무대신에게 제 뜻을 전해 주십시오.

―···처음부터 그러든가, 할 거 다 해 놓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에요, 용사님 대애단하시다고요.

용사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별것 아닌 씬임에도 묘한 부담이 밀려든다.

‘회색도시 팀장님’에서야 상관없었다. 권은비는 일시적으로 합을 맞춘··· 이를테면 일회성 파티원이었으니까.

다만 동료는 다르다. 꽤 오래 본 사이라 그런가, 묘하게 아리아의 생각이 나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 보는 사람이 낫지, 백하니가 아닌 진지유였어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

“또 옛날 생각하고 있었죠?”

이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설의 분장을 마친 백하니가, 어느새 다가와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아뇨, 그냥 좀.”

“티 다 나요. 연기할 때도 중간중간 눈빛이 바뀌던데, 화면엔 티가 안 나서 다행이지.”

눈빛이?

건은 내심 놀랐다. 여태 작업한 어떤 감독도, 그 김률 역시 그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했다.

옛 환영이 기억과 겹쳐지는 순간, 그 찰나의 괴리를 알아봤다는 소린가?

“아무튼, 준비는 됐죠? 질질 끄는 거 딱 질색이니까 빨리 끝내요.”

“감독님은 몇 번 찍으실 것 같던데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 드라마니까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다 따겠죠.”

“백하니 씨는 이런 씬의 경험이 있습니까?”

백하니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당연하죠. 여태 찍은 작품이 몇 갠데.”

“그중 몇 번이나?”

“아마 서너 번은 있었을 텐데··· 뭐야, 내 영화 하나도 안 봤어요?”

패션위크에서 돌아온 뒤, 백하니는 그를 피하는 걸 그만뒀다.

대신 촬영이 없을 때도 종종 메신저를 보내 연기 관련 피드백을 주고받았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일부러 안 봤습니다. 질투날까 봐서요.”

“···뭐라는 거야, 진짜.”

짜증스런 대꾸가 돌아왔지만, 평소보다 딱히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발밑의 흙을 툭툭 차던 백하니가 눈을 내리깐 채 말했다.

“제대로 해요. 웃어서 분위기 깨지 말고.”

“전 NG 낸 적 없는데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똑바로 하라고요! 누가 자기 연기 걱정된댔나?”

“언제는 분위기 깨지 말라고······.”

“됐고. 나도 그거나 하나 줘요.”

하얀 손바닥이 내밀어졌다. 건은 아까 먹으려고 깠던 목캔디를 동료에게 건넸다.

뭘 바르지 않아도 발그스름한 입술 사이로, 박하맛 사탕이 쏙 사라진다.

“···뭐, 이 향도 나쁘지 않네,”

*

세트장 한쪽의 흡연장.

스탠바이 15분 전, 촬영감독 서응서와 조명감독 이진규가 연기를 내뿜는다.

각 팀의 헤드들이다 보니, 일반 스탭들의 사담들과는 또 궤가 다른 대화가 오간다.

“형님, 이번엔 잘 찍힐 것 같수?”

“잘 찍힐 것 같고 말고가 어딨어. 건질 때까지 계속 찍는 거지.”

“전 감독님이 아주 기대가 만발이던데? 오늘만 하이라이트 필름 대방출이라고. 촬영분 중 자를 게 없어서 고민이래요.”

조명이 칭찬하면 촬영은 기분이 좋다. 서응서 촬영감독의 입꼬리도 씰룩거린다.

“그럴 만하지. 새벽부터 뛴 보람이 있었어.”

오늘 오전, 무려 200여 명의 엑스트라와 단역, 주조연을 동원한 대규모 액션씬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것도 원 테이크에, 완벽한 텐션으로.

미편집장면만 넣어도 ‘레전드’라는 말이 어울릴 씬이다. 편집된 회차가 방영되면 시대극의 역대 명장면 순위는 뒤바뀔 것이다.

“메이킹필름 공개하면 난리 날 거요. 이걸 원 테이크에 찍었다고 누가 믿겠냐고.”

“박건이잖아, 라이브 절대강자. 패션쇼 영상 보니까 즉흥극도 가능하겠던데.”

“진짜 그럴지도 몰라요. 조명쟁이 이십 년 하면서 온갖 연기 다 봤지만, 2년 차가 감독한테 올 패스 받는 건 처음이라니까. 다른 놈이 얘기했으면 절대 안 믿었을 거예요.”

더욱 기대를 모으는 것은, 바로 이 직후에 들어가는 로맨스 씬이다.

같은 화, 바로 직후 씬에서 붙는 송이설과 이천인의 감정연기를 위해 전인우 PD는 촬영 순서도 일부러 맞췄다.

거기다가 영도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재수정한 대본 아닌가.

세트장 한쪽, 제작팀이 마련한 쉼터에는 촬영이 끝난 단역 배우들이 이 장면을 보고 가겠다며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조명감독이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자, 슬슬 갑시다. 오전에 칼춤 추고 오후에 로맨스 찍으려면 부지런해야지. 감독들이 모범을 보여야 돼.”

“밑에 애들 다 시키고 손가락만 빠는 놈이 부지런은 무슨. 헤드만 찔끔찔끔 잡는 게 일이냐?”

“이게 조명 장점이죠. 짬 먹고도 카메라 들고 뛰어다니면 억울해서 어떻게 삽니까.”

“너 잘났다, 인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제법 낮아졌다. 손차양을 만든 서응서 촬영감독이 중얼거렸다.

“본방 보면, 깜짝들 놀라겠구만.”

*

“조명팀, 붐 그림자 좀 끊어주세요!”

“컷 나오자마자 바로 앵글 바꿔서 몇 번 더 가신다니까, 호흡 안 끊기게 바로바로 부탁드려요!”

“기사님, 감독님이 부르세요!”

스탠바이가 가까워지자 스탭들의 체크도 한층 바빠진다.

영화는 OK가 나오면 다음 씬으로 넘어가지만, 드라마는 각도를 바꿔서 계속 찍는다.

이런 하이라이트 씬, 그것도 주연들의 감정몰입 장면이라면 재촬영만 서너 번. NG가 속출할 시엔 그 몇 배도 각오해야 한다.

큐 사인을 기다리는 도중, 박선과 나란히 선 문성훈 매니저가 초조하게 중얼댔다.

“별문제는 없겠죠?”

“그럼요. 둘 다 프로인데요.”

“사실 제가 배우 로드는 처음이라, 이럴 때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유준일 실장님이 아티스트 케어도 실력이랬는데.”

박선은 뒷덜미를 긁적였다.

“저도 처음이라··· 그냥, 최대한 불편한 점 없게 관리해 주면 되지 않을까요?”

“백하니 배우님은 항상 불편해 보이셔서······.”

“···그건 그러네요.”

분장을 마치고, 각자의 배역으로 변신한 박건과 백하니가 자리를 잡는다.

역시 둘 다 프로인 걸까. 큐가 들어가기 직전임에도 표정에 긴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배우들보다 매니저들이 노심초사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는 중이다.

“자, 스탠바이―”

그 사이, 세팅이 끝나고 붐마이크 위치가 조정됐다. 말아쥔 대본을 메가폰처럼 입에 갖다댄 전인우 PD가 외쳤다.

“큐!”

*

훗날 ‘태극기의 난’이라 불릴, 총독부 앞에서의 혈투가 끝났다.

무수한 왜경이 죽고 경성독립군의 결사대원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태극기를 타고 내려온 백정탈이 날뛰는 동안, 이정녕이 이끄는 독립군이 붙잡힌 이들을 구해냈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돌연 나타난 흑의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독립군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죽여라, 비천한 조선인의 피를 받아내라!

슈헤이가 이끄는 황우회.

백정탈에 대한 원한이 골수까지 사무친 사무라이들은 성난 승냥이 떼처럼 전장을 누볐다.

안 그래도 딸리는 머릿수에, 개개인의 무력이 강력한 황우회까지 가세하자 독립군은 금세 궤멸의 위기에 처한다.

―도망가, 이 머저리들아!

이천인이 황우회와 슈헤이를 막아서지만, 그 순간 종로경찰서장 이균이 권총을 발포한다.

“······.”

다시 현재.

송이설은 경성 외곽의 허름한 별장에서, 총상을 입은 백정탈을 간호하고 있다.

“살아나야 해, 당신은··· 죽으면 안 돼.”

이균이 쏜 총알은 쇄골을 부러뜨리며 오른쪽 어깻죽지 깊숙이 박혔다.

심지어 황우회의 사무라이들과 싸우며 검상까지 수차례 입은 상태.

총알을 제거하고 베인 상처를 봉합한 뒤, 송이설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고열에 시달리는 백정탈을 내려다본다.

경성독립군의 젊은 대장, 이정녕은 밀담에서 몇 차례나 그의 이야기를 꺼냈었다.

‘백정탈의 정체는 나도 모르오. 그가 저 왜놈들뿐 아니라 조선인, 우리 민족에게도 뿌리 깊은 원한을 가졌다는 것만 짐작할 뿐.’

‘독립군의 적이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요. 쓴 탈과 하는 언사로 볼 때, 아마 그는 몰락한 양반가의 자제거나 천인(賤人) 출신일 테니까. 전력으로 우리를 돕는다면 큰 힘이 될 테지만······.’

흔들리는 연심처럼, 어두운 방에 켜 놓은 호롱불이 깜빡거린다.

이미 배우는 배역에 완벽히 동화했다. 백하니의 자아는 사라지고, 개화기의 신여성 송이설이 공간을 장악하는 존재감을 뿌린다.

“···저 탈 뒤의 얼굴을, 한 차례라도 볼 수 있다면.”

여인이란 이유만으로,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경시를 겪었던가.

독립군들 사이에서도 그녀가 총포술을 배우는 것,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것을 탐탁잖게 생각하는 자가 많았다.

‘그게 무슨 소용이지? 사내도 여인도, 노인도 아이도 칼을 쥔 순간 투사다. 멍청한 고민 말고 왜경 한 놈이라도 더 죽일 방법이나 생각해.’

다만, 저 백정탈은 그녀의 신분이며 성별 따위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의 독립군 투사로서 대할 뿐이다.

사내들보다 날카로운 사격 솜씨를 가지게 된 지도 벌써 수년. 그와 등을 맞대고 싸울 수만 있다면······.

“···여긴 어디지?”

송이설이 돌아보자, 어느새 일어선 백정탈이 비수를 뽑아 들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에요. 쓰러져 있는 걸 이리로 데리고 올라왔어요.”

“쓸데없는 짓을 했군. 황우회 놈들이 뒤를 쫓을 거야,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쉰 목소리는 확연히 떨리고 있다.

뒤집어쓴 백정의 탈 밑으로 굵은 땀방울들이 떨어진다.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었으니,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울 것이다.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어요. 이 나라도, 인간의 목숨도. 불꽃처럼 타올랐다 스러진다면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겠죠.”

“멍청한 소릴 하는군. 죽으면 모두 끝이야, 기억에 남는다는 건 패배자들이나······.”

“보여 줘요.”

백정탈의 몸이 움찔한다. 배우의 움직임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를 든 서응서 촬영감독은 극도로 집중한다.

한 걸음, 다가간 송이설은 힘주어 말한다.

“당신 진짜 얼굴, 쭉 보고 싶었어요.”

“···내 주변의 모두가 죽었다. 더 다가온다면 너도 다치게 될 거야.”

쇠를 긁는, 쉰 음성을 가장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본래대로 돌아가 있다.

날카로운 칼날이 목 끝에 닿지만, 송이설은 아랑곳 않고 한 발짝을 더 내딛는다. 칼끝에 붙인 초소형 캡슐에서 가짜 피가 흘러내린다.

“내 운명은 내가 정해요.”

이내, 가녀린 손가락이 탈을 벗긴다. 흉측한 백정 가면 뒤에서 드러난 것은 고통스레 일그러진 미청년의 얼굴이다.

땀과 핏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을 본 순간, 송이설의 눈동자가 크게 열린다.

‘야, 왜 울고 있어?’

‘상관 마! 네가 날 어떻게 알아?’

‘어느 부잣집 따님이겠지. 저기 있는 저, 송씨 대감님네 손녀라든가.’

어린 시절··· 사내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 원통해 집을 뛰쳐나왔을 때, 저 개울가에서 또래 아이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어느 대갓집 따님이시겠지. 저기 저, 기와 높은 집의 손녀라든가.’

경성의 무도회장에서 ‘이천인’이라는 사내가 한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 소년이 저렇게 성장했음을 한동안 믿지 못했던 그녀였다.

“왜··· 어째서, 지금에서야······.”

그제야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울던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 줬던 소년, 서방에서 돌아왔다는 젊은 사업가, 경성의 왜경들을 참수하는 정체불명의 백정탈.

그 모든 단서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툭, 댕그랑.

이천인의 손에서 미끄러진 비수가 나무 바닥을 구른다.

이제 둘의 간격은 한 뼘도 되지 않는다. 눈물에 젖은 얼굴로, 송이설은 환히 미소지었다.

“역시, 당신이었어.”

이미 이곳은 1930년대의 경성이다. 현장을 둘러싼 수십 명의 사람들은 숨 쉬는 것도 잊고 연기에 빨려들어 있다.

호롱불 그림자가 흔들린 순간··· 뻗어 간 백하니의 손이 박건의 뺨을 감싸쥐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열띤 숨결이 포개진다.

.

.

.

“오케이, 아니··· 컷! 컷!”

“···감독님, 몇 분을 내버려 두시는 거예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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