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의 승자 (2)
* * *
로만 엔터테인먼트.
요즘 홍보팀은 그야말로 ‘행복근무’ 중이었다.
일이 바쁘긴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으니 업무 효율은 훨씬 좋다.
우선 아이돌 쪽.
퀸텀과 퍼핑돌즈의 약진은 물론, 새로이 준비 중인 신규 그룹의 데뷔조도 반응이 좋다.
와우키즈가 빠지면서 몇 없던 남자아이돌 라인업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 공백을 승승장구 중인 걸그룹이 틀어막고도 남는다.
“팀장님, 시영이 싱글이 블랙쏜 잡고 20위 차트인했습니다. 무대 병행만 되면 퍼핑돌즈 활동이랑 겹쳐도 시너지 나겠는데요?”
“유닛 경험이 있는 애라 잘할 거야. 본인도 열정 넘치더라, 언니들한테 민폐 안 끼치겠다고.”
다음은, 본래부터 강력했던 배우 쪽.
특히 대표 멤버들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약한다. 최필립과 구신승이 중박 이상의 성적을 거뒀고, 진지유는 하반기 대형 작품과 계약 조율 중이다.
그리고 CVN의 야심작에 들어간 두 명은······.
“와, 다시 봐도 잔인하네. 키스씬 메이킹필름을 방영하는 주에 푸는 인간들이 어딨어.”
“거기다 공도 꽤 들였는데요? 이거, 쇼츠형 메필이라면서 보정은 다 넣었어요.”
“전인우 PD님 스타일이 원래 그래. 떡밥 하날 뿌려도 대충 하는 법이 없거든.”
이번 월요일, ‘백정장군’ 발 메이킹필름이 유출돼 뿌려졌다.
보기 좋게 편집된 정식판도 아니고, 사실상 이번 주 촬영분의 미리보기에 가깝지만 팬들을 열광시키기엔 충분했다.
영상 후반부에 박건과 백하니의 키스씬이 떡하니 들어가 있었으니까.
회전의자에 거꾸로 앉아 폰을 보던 새치투성이 남자가 감탄했다.
“그쪽 촬영팀에서 머릴 잘 썼네요. 하필 또 뒷모습을 찍어서, 저 앵글이 궁금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니까. 돌판에서 하는 악질 영업 느낌이에요.”
오늘, 홍보실에는 모처럼 문우재 실장이 들렀다.
유준일이 배우 쪽 기획관리를 총괄한다면, 문우재는 아이돌 쪽을 담당한다.
시계를 본 공 팀장이 배부른 미소를 지었다.
“실장님,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 알아요? 요즘 우리 배우들 보고 있으면 내가 그래.”
“어허, 아이돌 차별 발언 아닙니까? 공 팀장님이 편애하니까 준일이 놈이 기가 살지.”
입사 동기 출신으로, 로드부터 올라온 두 실장의 친분은 로만 안에서도 유명했다.
홍보팀 남직원이 냉큼 끼어들었다.
“아니, 이번엔 진짜로 신기하다니까요. 그 백하니가 작품을 들어갔는데 잡음이 없다는 게. 몰래카메라 기분이랄까?”
“그건 그래. 사고 안 치는 백하니라니, 뜨거운 얼음도 아니고 원.”
다른 직원들도 동조했다.
자타공인 로만 최고의 트러블메이커가, 수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백하니가 큰 사고를 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자잘한 잡음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소속사 대표한테까지 들이박는데 PD나 작가라고 두려워하겠나. 그 뒤처리는 늘 홍보팀이 해야 했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소식이 없었다.
여직원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신년 계획으로 성질 죽이기, 뭐 이런 목표를 세운 게 아닐까요? 재계약 때 폭력성 엄금 같은 조항이 들어갔다거나······.”
“어유, 참기 싫어서 죽어라 일한다던 백하니가? 그러다 화병 나서 연예계 은퇴한다고 할걸.”
“둘 다 뭘 모르네. 박 배우가 꽉 잡은 거지.”
공 팀장의 단언에, 설전을 벌이던 남직원과 여직원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박건이 백하니와 함께 촬영을 들어갔다.
박건 쪽도 캐릭터가 확고한 터.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건만, 설마 그 더러운 성깔까지 휘어잡았다는 말인가?
듣고 있던 문 실장이 히죽거리며 끼어들었다.
“어후, 거의 슈퍼히어론데? 작품 끝나고 오면 나도 선물 사 들고 눈도장 좀 찍어야겠어요. 아이돌 담당 서러워서 살겠나.”
“문 실장님이 먼저 선 긋는다면서요. 돌판 접수한다고 배우 쪽 팀장들이랑 내외한다는 소문 쫙 퍼졌어요.”
“내외라니! 내가 좀 바빠서 그렇지, 식구들 소식은 다 챙겨요. 거기다 데뷔조고 뭐고 다 박건 배우 얘기만 하니까 모를 리가······.”
짐짓 호들갑을 떨던 문 실장의 말꼬리가 갑자기 흐려졌다.
모니터를 세 개나 켠 채, 기사와 지표들을 확인하던 여직원도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팀장님, 이거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뭐야, 왜 그래?”
공 팀장이 아이패드를 켜고, 옆의 남직원도 진짜 백하니가 사고를 쳤나? 중얼대면서 의자를 끌어당겼다.
“터질 때 됐다 싶더니, 슬슬 나락행 열차 시동 거는 모양인데요.”
단, 생각했던 뉴스는 다른 집이었다. 여직원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우리 ‘갑질페리온’ 분들이.”
*
KBC 홍보실.
다른 방송사들처럼 늘 전쟁통인 그곳에, 오늘 핵폭탄이 떨어졌다.
“야, 1차 유포자 누구야? 어디서부터 퍼졌냐고!”
“모르겠어요, 한두 명이 아니에요!”
“기자들한테 전화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니 다 내리라고 해! 처먹일 때는 좋다고 먹더니, 꼬투리 잡았다고 칼 꽂는 건 어디 매너야?”
고함을 지른 홍보팀장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어뜨렸다.
“밥값도 못 하는 새끼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일은 호미가 아닌 가래로도 못 막을 정도로 커진 뒤였다.
배우 S양 갑질 논란.
불과 2시간 전 뜬 뉴스가, 지금은 이 바닥 종사자라면 다 알 정도로 퍼졌다.
내용도 간결했다. 모 대형 작품의 촬영장에서, 모 인기 배우가 스탭 및 단역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
이쪽 기사들이 다 그렇듯,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저 주인공이 하이페리온의 기은빈임은 충분히 특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또 다른 게 나오냐고!”
거기까지라면 어찌어찌 틀어막았을 것이다. 처음 기사를 띄운 언론사의 규모도 작고, DG의 홍보팀과 법무팀이 움직였을 테니까.
그러나, 터진 폭탄은 한 개가 아니었다.
[배우 K씨, 또다시 폭언, 갑질 논란]
[촬영 스탭들 제보 속출··· “나도 당했다”
[당연한 관례처럼 생각되는 촬영현장 ‘갑질’, 근절은 정녕 불가능한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2보에 3보를 잇는 기사들이 속속들이 올라와 상처를 쑤셨다.
본래 일대일은 체급 큰 쪽이 유리하다.
한 명의 주장이라면 덩치로 눌러 무마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복수의 피해자들이, 심지어 일전의 일화까지 가져왔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장 팀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홍보실 문이 쾅 열리며 오 CP가 뛰어들어왔다. 얼마나 급했는지, 셔츠 단추를 하나씩 밀려서 채운 채였다.
“저희도 몰라요. DG 쪽에서는 내부 관계자가 유출한 것 같다는데, 누군지 특정이 안 된대요.”
“특정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기은서, 그 미친년이 보이는 사람마다 지랄한 것도 아닐 텐데, 그거 하나 못 찾아서 무슨 홍보팀······.”
“한둘이 아니라고요!”
결국 이쪽도 뚜껑이 열렸다. 홍보팀장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쏘아붙였다.
“뭐, 뭐야?”
“CP님 말씀대로, 한두 명한테 그랬으면 차라리 다행이죠. 지금 SNS에 기은서가 난리 친 작품, 당한 팀들 목록, 했던 욕이랑 인신공격까지 다 퍼져나가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다 찾습니까?”
오신철 CP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갑질 논란은 촬영 중인 드라마에 더 타격이 크다.
이미 개런티는 다 뜯어먹혔다.
배우야 고정 팬덤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잠잠해질 때쯤 복귀하면 되지만, 기껏해야 십몇 화 방영한 드라마는 얘기가 다르다.
최악의 경우엔 조기종영. 그게 아니라도 당장 눈앞의 시청률은······.
“오, 오늘 방영일이잖아. 시청자게시판은? 일단 트래픽 문제라고 둘러대고 닫아야······.”
“이미 터졌어요.”
“터져? 뭐가 터져?”
홍보팀장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며, 업무용 폰을 오 CP의 눈앞에 들이댔다.
“우리 게시판이요. 욕 너무 처먹어서, 닫기도 전에 배가 터졌다고요.”
*
전인우 PD가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 가족들과 저녁을 먹자마자 CVN 주조정실로 출근한 참이다.
“오셨어요, 피디님?”
“오랜만입니다. 잘들 지냈죠?”
“아유, 물론입니다. 오늘 그 기사까지 봤는데 잘 못 지낼 리가 없잖습니까.”
“저도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갔다니까요. KBC 홍보팀 놈들, 지금쯤 발등에 불 떨어져서 모니터링할 여유도 없을걸요.”
지금껏 그들을 견제하던 지상파, 그중에서도 가장 극성맞던 KBC의 비보(悲報)다.
업계에서도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 지켜보는 이쪽 입장에선 깨소금과 참기름을 병째로 원샷한 기분이다.
“저쪽은 벌써 그로기예요. 오늘 확실하게 몰아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밟아 줍시다.”
“큭큭큭, 그럼요. 지인들한테도 이건 꼭 보라고 영업했어요.”
집필이 바쁜 영도은 작가는 불참했으나, C&J와 CVN 식구들은 대부분 모였다. 잠시 후엔 방성일 국장도 조병길 팀장과 함께 들어왔다.
“엇, 국장님!”
“편히들 있어요. 오늘 회차가 기대만발이래서, 나도 조 팀장이랑 모니터나 할까 해서 왔으니까. 재미있게 봅시다.”
국장이 나타날 때만 해도 그러려니 싶었으나, 다음 손님에서는 사람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무려 C&J의 수뇌가 나타난 것이다.
수행원들을 물린 진규일 본부장은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태연하게 앉았다.
“전 감독님, 얘기는 늘 듣습니다. 끝날 때까지 조금만 더 수고해 줘요.”
“아닙니다, 본부장님 덕분에 부족함 없이 찍고 있습니다.”
“투자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신 차장에게 귀띔해 주십시오.”
사실상 CVN의 모든 사업은 물론, C&J의 엔터 전반을 컨트롤하는 자가 진규일이다.
침을 꿀꺽 삼킨 국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본부장님, 그런데 어쩐 일로 모니터링을······.”
“아, 오늘은.”
창진그룹의 젊은 본부장은 철저하게 실용적인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른 이들의 표정에도 ‘이 인간이 여긴 왜 왔나’가 떠 있었다.
진규일 본부장의 입가에, 거의 볼 수 없는 웃음기가 스쳤다.
“재밌는 씬이 나온대서.”
*
드라마의 막이 올랐다.
그간, 백정장군은 차근차근 주인공들의 서사를 쌓아올렸다.
조선과 일제 모두를 증오하는, 쫓겨난 백정의 아들 이천인.
매국노라 멸시받는 송별학 대감의 손녀딸, 비운의 독립투사 송이설.
본래 경성독립군 대장이던 삼촌이 죽고, 젊은 나이로 수장을 맡은 이정녕.
어머니의 죽음으로 모든 조선인을 증오하게 된, 총독의 셋째딸 하루카.
몰락한 육군 군벌이자 마지막 남은 사무라이, 황우회의 슈헤이.
지독하게 매력적인 인간 군상들이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에 휘말린다.
박건과 백하니의 임팩트에 가릴 뿐, 조현아와 이동수, 오민우 등 조연 캐릭터들도 맡은 바를 충분하고 남을 만큼 완수했다.
특히 조현아가 연기하는 하루카는 조선을 적대하면서도 이천인에게 빠져드는, 복잡한 양가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하루카. 당신의 아버지는 총독이고, 삼촌은 정무총감임을 알고 있소.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선 땅에 발을 들인 것 아니오?
―천인, 오해 말아요. 모든 조선인을 없앤대도 당신만큼은 꼭 구해서······.
―더러운 동포, 추한 민족이지만 침탈을 응원할 순 없군. 여기서 정하시오. 나와 함께 아버지에 맞설지, 날 적으로 돌릴지.
그리고, 시대극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전투씬이 시작된다.
―백정탈이다, 백정탈이 왔다!
―나팔을 불어라! 지원을 더 불러!
총독부 건물 꼭대기부터 태극기를 붙잡고 떨어져 내려온 백정탈.
이천인은 무시무시한 무위로 총독부와 종로서의 일경들을 베고 쪼개고 분쇄한다.
그러나 수십 배의 머릿수에 조금씩 밀리고, 결국 독립군 단원들을 구하려다가 종로경찰서장 이균의 총탄에 맞게 된다.
결국 아지트 입구에서 쓰러지는 이천인. 고열과 쇼크로 사경을 헤매던 중, 그는 혼곤한 의식 속에서 아버지의 환영을 본다.
―아직도 울고 있구나, 아들아.
―우는 것이 아닙니다.
―허면?
―저는 기쁩니다. 다시 돌아온 이 땅에서··· 조선인도 왜인도, 우리를 경멸하고 천대했던 모든 것들을 불태울 수 있어서.
두 백정 부자(父子)가 마주선다.
기억 속의 그때처럼, 허름한 가죽 앞치마를 입은 아버지는 슬픈 표정으로 이천인의 뺨을 어루만진다. 하지만 망자의 손길은 산 자에게 닿지 못하고 스러지고 만다.
―분노는 해답이 될 수 없다.
―용서는 더더욱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새기는 획은, 붓이 아닌 칼입니다.
―아들아, 천인아. 너는 정녕······.
환청이 사라지고 눈을 떴을 때, 코앞에는 송이설이 있었다.
―당신 진짜 얼굴, 쭉 보고 싶었어요.
―나와 함께 있던 모두가 죽었어. 너도 똑같이 다칠 거야.
―내 운명은 내가 정해요.
두 배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실시간으로 감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불판에 댓글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설마? 하나?????
-메이킹필름 ‘그거’...?
-큰거온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영도은! 영도은! 영도은! 영도은!
-아니 천인아 제발!!!
-키스해(짝) 키스해(짝)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이천인과 송이설의 입술이 맞닿았다.
―······.
지금껏 쌓아 온 장작에 불을 지피듯, 애틋하면서도 격정적인 입맞춤.
감독과 촬감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씬은 끝날 기미가 없이 다각도로 조명된다. 덕분에 팬들은 박건의 역사적인 첫 키스씬을 넋을 놓은 채 감상할 수 있었다.
“아, 안 돼!”
그리고, 지켜보던 누군가는 경악했다.
“···이게, 대체 무슨······.”
‘포 퀸즈’ 멤버들과, 숙소에 둘러앉아 모니터링 중이던 진지유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다른 멤버들도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언니, 정신 차려!”
“숨을 안 쉬어! 코 밑에서 바람이 안 느껴져!”
막내가 호들갑을 떨며 흔들어 댔지만, 진지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린 동태마냥 죽은 눈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럴 순 없어··· 분명히 키스씬 없다고 했는데, 마지막 회엔 특별출연도 시켜 주신댔단 말야. 영 작가님이 어떻게 나한테······.”
“메필이 진작 떴는데 무슨 소리야? 정신 차려!”
“물 가져와, 물!”
“틀렸어··· 누가 인공호흡 좀 해 봐, 무슨 키스 한 방에 맛이 가지?”
옛 리더의 멘탈 붕괴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구경거리다. 막내가 배를 잡고 깔깔대고, 저쪽에선 다른 멤버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그 와중 슬그머니 다가온 현 리더, 임아희가 진지유의 귓가에 음흉하게 속삭였다.
“어이, 진지유 씨.”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진지유는 화도 내지 않고 돌아보았다. 이내 악마의 속삭임이 귓속을 핥듯이 파고들었다.
“너, 지금 그 오빠 뺏긴 거야.”
멍하니 풀려 있던 눈빛에 초점이 돌아왔다. 이내 진지유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 대꾸했다.
“무슨 소리? 그냥 드라마 키스씬일 뿐인데. 거기다 오빠가 언젠 내 거였나?”
“얘들아, 들었니? 오빠래, 오빠.”
임아희가 가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외쳤지만, 프로 배우의 정신 승리는 만만치 않았다.
“난 진짜 괜찮아, 원래 집착하는 여자는 매력 없거든. 그··· 뭐라더라, 하여자. 그래, 하여자랬어.”
“와, 언제적 밈을 지금 쓰냐.”
“내버려 둬. 우리 언니 노땅이잖아.”
하이에나들이 신나게 물어뜯는 동안, 삐걱대며 일어난 진지유가 휴대폰을 들었다.
넋 나간 듯 무표정하던 얼굴에 스산한 미소가 서린다.
“그럼 뭐, 지금 전화하면 되지. 백하니랑은 작품에서 했으니까 나랑은 카메라 없을 때 하자고. 방송 시간도 끝나 가는데······.”
아무리 놀려먹는 언니라지만, 인간으로서의 체면까지 상실하게 할 순 없다.
기겁한 멤버들이 소파를 타 넘으며 몸부림치는 진지유를 제압하고 휴대폰을 빼앗았다.
“민혜야, 이쪽 팔 잡아!”
“이상한 짓 못 하게 막아, 폰부터 뺏어!”
“아주 맛이 갔네, 맛이 갔어.”
“이거 놔! 특출 가서 다 부숴버릴 거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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