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18화 (118/122)

번지는 불길을 잡으려면 (7)

* * *

청담동, 벤츠 대리점.

손님들이 빠지자 부산스럽던 매장에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종이컵에 든 커피를 홀짝이던, 대리점의 넘버 투 차장이 한영주에게 말을 건다.

“한 팀장, 바로 퇴근한댔지?”

“네. 다큐 방영이 오늘이래서요.”

한영주가 웃으며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와,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그거요? 아드님이 나온다던 다큐?”

“저 주변에 진짜 다 보라고 했어요! 근데 또 안 오세요? 사인 못 받은 게 천추의 한······.”

“이것들아, 너넨 보기라도 했지! 난 그때 출고 때문에 구경도 못했어!”

지난번 전설의 ‘박건 습격’ 사건 이후, 한영주의 입지는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한 번에 네 대. 그것도 고급 모델, 깡통도 아닌 풀옵션에 할부도 거의 안 낀 채 결제했다.

그것만으로도 몇 달은 놀아도 될 실적인데, 더 놀라운 점은 구매한 손님이 한영주 팀장의 가족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해요. 한 팀장님 명성이 본사까지 자자해,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하고.’

‘에이, 과장님! 우리 한 팀장이 힘들 일이 뭐 있겠습니까. 휴가를 일주일씩 써도 다 커버 쳐 줄 테니까, 그만두지만 맙시다. 응?’

센터장의 극찬은 물론, 본사 과장까지 와서 금일봉을 건넸다. 연예인의 가족이면 애초 일개 팀장 수준이 아니다.

초특급 셀럽.

아들의 말 한 마디면 잠재 고객이 달에 수십 명씩 늘 텐데, 한 팀장이 딜러 일을 그만두더라도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

말이 나와서 망정이지, 지금 ‘로만 3인방’이 찍은 수트 광고 때문에 한조물산 정장 라인들은 매진에 리셀까지 된단다.

그러니 혹시 아는가, 셋이 모여 벤츠 광고도 한 번 찍을지?

“와, 그럼 이제 명예 소방관 되는 거예요? 막 무공훈장도 받고?”

스마트폰을 두들기던 막내가 묻는다. 최근 까탈스러운 어르신 부부를 케어하더니, 아주 기세가 등등하다.

다른 직원이 즉각 핀잔을 줬다.

“어휴, 다큐 하나 찍었다고 명예 소방관이 어떻게 돼. 그리고 무공훈장은 군인들이 받는 거야.”

“군인이나 소방관이나 비슷하죠! 어차피 우리나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인데?”

“팀장님, 쟤는 냅두고 얼른 가세요. 바보랑 있으면 바보병 옮아요.”

“잠깐! 저 박건 배우 SNS도 팔로우하고 있어요! 오늘 같이 보시고 사진 하나만······!”

무수한 인사를 받으며, 짐을 챙긴 한영주가 화려하게 퇴장한다.

공영주차장으로 향하는 한영주의 발걸음이 가볍다. 매장에 DP해 둔 차보다 빛깔 좋은 차체가 그녀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댈 순 없으니 퇴근길이 다소 길어지지만··· 그만큼 즐거운 산책도 없다.

운전석에 올라탄 뒤, 시동을 걸던 한영주는 문득 손을 멈췄다.

“내 정신 봐, 사람들한테 그이가 나온다는 얘기를 안 했네.”

*

밤 10시, JNBC 사옥.

2편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홍보팀장은 흠칫했다. 잔뜩 쌓인 에너지드링크 깡통 속에서, 나종모 PD가 좀비처럼 고개를 들었다.

“와, PD님. 아직 살아 있죠?”

“말 시키지 마요, 시간 맞추느라 죽겠으니까.”

풍채 좋던 살집들이 다 사라진 게, 누가 봐도 시한부 방송쟁이다. 홍보팀장이 새 캔 하나를 따며 비죽 웃는다.

“근데 지금도 촬영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방영분에 뭐 바꿀 거라도 생겼나?”

“야간 촬영은 내일로 미뤘지. 오늘 모니터링할 작품이 있어서.”

“오늘은 망회돌 하는 날이 아닌데. 이건 또 뭐야, 웬 EBC를 틀어 놓고··· 아!”

그제야 홍보팀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박건 씨 다큐! 오늘 나오나 보죠?”

“벌써 광고 중이야. 다른 배우들도 인증샷 올린다고 일찌감치 들어갔어.”

“PD님도 편하게 좀 보시지, 이게 뭡니까? 사옥에서 좀비라도 창궐한 줄.”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한쪽 모니터에서는 계속 ‘망회돌’ 편집이 이어진다.

투둑, 목을 좌우로 꺾은 나종모 PD가 반대쪽 모니터 볼륨을 올렸다.

EBC, 화면 우상단의 ‘불의 길 : 소방 속으로’ 로고가 막 지워지는 참이다.

“모르는 소리. 이게 의리의 모니터링이라고.”

*

동작구의 신축 아파트.

박열호와 한영주의 본가에, 모처럼 출가한 아들들이 돌아왔다.

양손에 짐을 그득 든 박선이 달라진 인테리어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 집 좋다! 뭐가 이렇게 많이 변했어? 못 보던 옷장도 생겼네?”

“네가 안 들어오니 모르지. 아니, 집에도 새벽 두 시에 들어와서 다섯 시에 나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니?”

“그래. 신입 때도 그것보단 덜 바빴잖냐.”

얼굴 보기 힘든 것은 독립한 첫째나 함께 사는 둘째나 매한가지다.

사옥과 가까운 제 형의 오피스텔에서 자거나, 밤늦게 들어와 새벽같이 나가는 탓이다.

“에이, 그땐 시키는 것만 하니까 한가했지. 요즘은 일이 많아져서 그래요, 우리 본부장님이 나 정식으로 스카웃했다니까?”

이번 다큐멘터리 방영 시간은 일전에 찍던 드라마들보다 다소 늦다.

이미 저녁은 먹은 터라, 한영주는 아들들이 사 온 과일을 잔뜩 깎아 내왔다. 그 사이 박열호가 맥주며 와인을 취향대로 가져온다.

이윽고 가족은 새로 산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우와, 이렇게 같이 보니까 그때 생각나. 옛날에 집에서 형 첫 드라마 같이 모니터링 했잖아, 엄마도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건아, 이번 드라마도 그 PD님이랑 같이 들어갔다면서?”

박건이 끄덕였다.

“예, 그 감독님이세요. EBC 쪽은 또 다른 분.”

“교육방송에 나온대서 놀랐지 뭐니. 우리 아들이 드라마랑 영화만 하는 줄 알았더니, 어쩌다 다큐멘터리를 다 찍었어.”

“아냐, 이건 모큐멘터리. 다큐 비슷한데 대본이 있는 드라마라고 보면 돼.”

방영시간이 가까워지자, 왜인지 말수가 부쩍 줄어든 박열호가 헛기침을 했다.

“그, 가끔 실화 기반일 때도 있는데······.”

“응? 여보, 뭐라고요?”

리모컨을 쥔 박선이 외쳤다.

“여러분, 집중! 지금 시작해요!”

첫 시작은 담백하다.

최영오 PD는 노련하면서도 트렌디하게 영상을 편집해 냈다. 불타는 건물, 요란한 사이렌이나 소방차들의 출동 장면은 없다.

흡사 관찰 예능처럼, 덩그러니 놓인 카메라가 좁은 방을 비출 뿐이다.

아직 파르스름한 새벽이다. 이불 한 장만 대충 깔고 자던 바닥에서 그림자가 일어난다.

곧 잠이 덜 깬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다. 촬영이 영 어색한 듯, 캠코더를 집어든 청년은 가지런한 눈썹을 좁힌 채 중얼거린다.

“오전 4시, 기상.”

이내 화면이 꺼지며 휘갈겨 쓴 붉은 폰트가 떠오른다.

[불의 길, 소방 속으로.]

입까지 벌린 채 푹 빠져 있던 박선이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와, 대박. 진짜 외국 르포 같다. 페이크 다큐처럼 만든 영화 있잖아.”

“그러게, 엄마가 생각한 다큐멘터리랑은 엄청 달라. 근데 당신은 왜 말이 없어요?”

“어, 아냐. 나도 집중해서 보느라.”

“뭔가 이상한데······.”

한영주가 수상쩍은 눈빛을 보내는 사이, 캄캄하던 화면이 밝아진다.

이제 촬영 팀의 시선에서 다큐멘터리가 진행된다. 카메라를 든 PD가 허름한 반지하로 내려가고, 문을 연 박건이 방송국 스탭들을 맞이한다.

―아, 오셨어요.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앵글. 긴 설명은 없지만, 집안 분위기만 봐도 좋지 못한 가족관계며 재정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청년 소방관, 방바닥에 대충 주저앉은 박건의 인터뷰가 건조하게 흘러나온다.

―그냥 뭐, 별거 안 해요. 쉬는 날엔 자고요. 가끔 요 앞 놀이터 가서 멍하니 앉아 있어요. 맑은 하늘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아버지가 밖에 계시던데요.

―아빠는 같은 소방서에서 일하고··· 아까 보셨죠? 서로 말을 거의 안 해요.

―다른 가족 분들은요?

청년의 시선이 잠깐 아래를 향한다. 특수메이크업 팀은 푸석푸석한 뺨이며 갈라져 딱지가 앉은 입술까지 재현해 냈다.

거기에 배우의 연기력까지 합쳐지자, 유명 배우는 사라지고 삶에 지친 소방관만 남는다.

―그냥 다른 얘기하면 안 돼요?

그다음은 밀착 취재다. 카메라는 출근한 박건을 따라다니며, 소방관의 하루 일상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보여준다.

새벽에는 만취해 쓰러진 실족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낮에는 맨홀에 몸이 낀 고양이와 엘리베이터에 갇힌 시민들을 구조한다.

늦은 오후, 화재현장에 출동해 물줄기를 퍼붓는 장면까지 보던 한영주가 말했다.

“고증 잘했네. 원래 소방관들이 주취자 케어하는 게 더 힘든데.”

거의 반평생을 소방관의 아내로 살아왔다. 업종이 갖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열호가 잘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다 봤으니까, 그만 꺼도 되는데······.”

촬영 3일차, 카메라는 서서히 아들이 아닌 아버지를 조명한다.

‘안 해요, 안 한다고!’ 몇 번이나 역정을 내던 중년 소방관이지만, 스탭들의 끈질긴 설득에 마침내 인터뷰를 허락한다.

연기력은 부전자전인 걸까. 박건이 지친 청년을 연기했다면, 카메라가 잡은 박열호의 얼굴은 한평생 화마와 싸운 소방관 그 자체다.

―손은 어쩌다가 다치셨습니까?

―···소방관이 어쩌다 다쳤겠어요. 불 끄다 이렇게 됐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그야말로 방송가의 메타버스요, 냉소적인 현실고증이다. 다큐멘터리 팀은 무례해 보일 정도로 배려 없는 스탭들을 연기한다.

불길에 육체는 물론, 마음마저 그을려 버린 사내가 질문에 답한다.

―현서아파트, 기억나요? 카메라맨 양반 어렸을 때쯤, 거기서 불이 크게 났었지.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또 다쳤어요.

지금까지는 평범한 페이크 다큐였다면, 이제부터는 장르가 달라진다.

촬영한 박열호는 물론, 편집본을 본 적 없는 박선과 한영주의 눈동자도 조금씩 커진다.

이번 작품은 이례적으로 기획 단계부터 의견을 냈다는 주연 배우. 박건만이 반쯤 내리깐 눈으로 화면 속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촬영 마지막 날.

운명의 장난처럼, 관할 구역에서 대불(대형화재)이 발생한다.

―대원들이 부족합니다! 신대방 공사장 붕괴 사고, 대부분 그쪽으로 지원을 가 있어서······!

―그럼 어떡해, 안 갈 거야? 다른 서에도 지원요청 해 뒀으니 싹 긁어서 출발해!

노후한 빌라의 보일러실이 터졌다.

하필 30분 전, 인근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 인력이 부족한 상황.

급한 마음은 사고를 낳는다. 빌라 안쪽에 갇힌 생존자를 찾으려 들어갔던 소방관은, 불길 속에 고립되고 만다.

―훅, 후욱, 훅······.

거친 숨이 방화복 안을 맴돈다. 소방관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귀 옆에 부착한 소형캠이 그가 보는 곳을 1인칭으로 비춘다.

앞과 뒤, 좌와 우, 어느 쪽을 보더라도 시뻘건 불꽃만 넘실대고 있다.

―···상황이 안 좋은데.

침중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2인 1조로 진입한 뒤, 생존자를 구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기둥이 무너지며 길이 막힌 것이다.

―동작 아홉! 사팔(현재 위치) 재송(재송신) 요망. ···작 아홉······.

줄곧 수신 감도가 불량이던 무전은 기어이 끊어지고 만다. 우지끈!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소방관은 직감한다.

오늘, 자신은 여기서 죽을 것이라고.

―어제부터 집에도 못 들어갔는데······.

불길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큰 적은 시시각각 조여 오는 연기의 마수다.

지금쯤 대응 2단계가 발령되고, 동료 소방관 구출팀(RIT)이 진입 중이겠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몇 분 이내로 의식이 흐려지며 수마가 찾아들 것이다.

모든 소방관은 죽음을 등지고 살아간다.

이 직업을 택한 이래, 순직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신입 시절에는 화재출동 때마다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순간, 소방관의 눈앞을 스치는 것은 생에 대한 미련이 아니다.

손을 잃은 아버지, 흩어진 가족들, 불길이 앗아간 행복을 되돌리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

쾅, 쾅!

순간, 카메라가 옆으로 돌아간다. 막 감기려던 박건의 눈동자가 커진다.

닫혔던 문짝이 소방용 도끼로 찍혀나가며 넘어지고 있다. 불길과 연기가 한순간 물러서고, 그 자리에 사람의 인영이 들어선다.

앞을 막는 불꽃을 익숙하게 헤치며 다가온 소방관이 그를 부축했다.

시야는 이미 흐려진 상태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다. 동료의 방화복 한쪽 소매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ㅡ아버지······?

부름에 응답하듯, 단단한 팔이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세운다.

마침내 아버지가 온 것이다. 저 화마로부터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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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잡혔다.

동작서의 신속한 대응과, 타 관할서의 지원 덕에 기록적인 화재에도 사상자는 적었다.

사이렌 소리와 울음소리 사이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진창이 된 보도블록 위,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박건이 고개를 든다.

여긴 어떻게 왔냐, 내근직이 출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냐, 위험한데 아버지까지 잘못되면 어쩌려고 했느냐······.

할 말은 많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이미 그 모든 말보다 더 앞선 것이 전해졌기에.

―아버지.

까마득한 옛 기억처럼, 방화복을 입은 아버지가 그에게로 다가와 한쪽 손을 내민다.

―고생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화면. 검은 배경 위로 부자(父子)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대한민국의 소방공무원 숫자, 59,822명.

1년마다 다치거나 부상당하는 소방관, 458명.

그 소방관의 가족들은··· 지금도 끝없이 싸워나가고 있다.

박건과 박열호의 목소리가 차례로 나온 뒤, 두 목소리가 함께 말한다.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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