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새끼 존나 웃기네. 동네 깡패 새끼가 검 좀 사 들었다고 아주 뵈는 게 없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일부는 자신들이 얕보였다는 것에 빡친 얼굴로, 단검에 검에 도끼에 되는대로 각자의 무기를 꼬나든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무리 무능력하더라도 저들은 모험가의 명패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니까. 나름의 자부심은 있을 것이다.
모험가.
일곱빛깔 무지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닌가 싶은 8개의 색으로 디테일하게 구분된 등급 구조를 지닌 그들은 직접적인 납세의 의무도, 그로 인한 국가의 보호도 없이 떠돌아다닌다.
그중 밑에서 세 번째 등급까지는 그냥 말이 좋아서 모험가지, 대부분은 칼 든 강도에 가깝다. 강도와의 차이가 있다면 나라의 법을 조금이라도 지키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다.
수시로 길드를 들려봤기에 알 수 있다. 그들이 수주받을 수 있는 의뢰들은 대부분 머릿수와 장비로 커버가 가능한 수준의 일이다.
조금만 침착하고, 제대로 무기를 휘둘러서 타격이라는 걸 줄 수만 있다면 동료를 모으든, 장비를 잘 사 입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당연히 리스크를 따졌을 때 그렇게 좋은 수입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의뢰라 하더라도 죽는 사람들은 나오니까. 차라리 외벽 수리 같은 일당받고 하는 일이 훨씬 안전하고 수입이 좋다.
저들도 그렇다. 군번줄마냥 목에 걸고 있는 등급표가 드러난 이들을 살펴보면 아무 색도 없는 철제나 노란색이 대부분이다. 8개 등급 중 8번째와 7번째 등급이란 이야기다.
"칼 번쩍이는 거 봐라. 씨발 사람은 죽여 봤냐 양아치 새끼야?"
즉. 그냥 좀 오랫동안 철없이 돌아다닌 가출 청소년이 진화한 가출 어른 정도라는 거다.
라그니스의 어깨를 두드리고 살짝 뒤로 보내면서, 대장 역을 맡은 것인지 몰라도 가장 앞에 서서 열심히 입을 터는 놈을 향해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내 검으로는 안 죽여 봤지."
"그런 새끼가 어딜...뭐? 니 검?"
"어. 내 검."
정말 얼마나 얕보고 있는 건지 몰라도 내 사정거리 안까지 털레털레 걸어오길래, 굳이 검을 쓸 것도 없이 그대로 달려들어 냅다 명치를 걷어차 버렸다.
-뻐억!
"응컥!"
제대로 된 흉갑 하나 없이 가죽 건틀릿과 그리브 정도만 찼으면서 뭐 그리 자신만만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녀석은 그대로 주저앉으며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어? 어?"
"머리가 나쁜 애들은 어째 하나같이 입 밖으로 내는 소리도 비슷하냐. 일단 칼침 하나."
제대로 들어갔으니 못해도 1분은 꼼짝 못 하고 그 뒤로도 손발이 덜덜 떨릴 거다. 굳이 살펴 볼 것도 없이 그대로 허벅지에 검을 찔러넣었다.
-푹!
"응끼야아아아악!!!"
"살살 찔렀어 새끼야! 어디서 엄살이야!"
예상보다 귀를 찌르는 비명에 인상을 찡그리며 반대편 허벅지도 찔러버렸다. 이걸로 충분히 미친놈처럼 보일 거다.
"아아아아악!!"
"저, 저 미친 새끼! 씨발 뭣들 하냐! 죽여!"
두 번째 비명이 터지고 나서야 의도한 대로의 반응과 함께 녀석들이 달려든다.
딱 봐도 검술도 뭣도 없이 그저 휘두르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각자의 달리기 속도를 자랑하며 중구난방으로 뛰어오는 그 꼴이 하도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조언해 버렸다.
"야, 야! 칼날 아직 날카로워. 칼침 넉넉하니까 싸우지들 말고 줄 서서 와."
"뒈져 이 새끼야!!"
"이 새끼가 조언을 해 줘도?"
가장 빠른 달리기 속도를 자랑하던 녀석이 내려 베기를 위해 힘껏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 저놈이 들고 있는 검은 대충 봐도 검신이 70센티 안팎이었다. 저게 휘둘러져서 닿으려면 못해도 두 걸음은 더 와야 한다.
"한손검이면 차라리 찔러 이 새끼야."
검신만 80센티가 넘는 롱 소드를 들고 있는 나한테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원. 더 볼 것도 없이 녀석이 한 걸음 더 내딛자마자 나도 앞으로 나가면서 허벅지에 칼침을 놓아주었다.
"끼야아아악!!"
"하나같이 병신들만 모아놨구만. 순찰대 매수하는데 돈 다 썼나?"
검을 제대로 들 필요조차 없다. 이미 두 놈이나 허벅지에 바람 구멍이 났는데도 다른 녀석들은 아무 준비 없이 용감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하다못해 무기를 던진다는 발상이라도 하면 위협적일 텐데 꼴을 보아하니 믿는 구석이 오직 그것뿐이라 손에서 내려놓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 할 게 분명했다.
이미 앞선 두 놈보다 긴 무기를 든 놈은 아무도 없다. 더 이상 고민할 가치조차 없었기에 나는 롱 소드를 투창마냥 거꾸로 쥐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이건 검이 아니다. 신념 주사기지.
"걱정 마라. 쟤들이 엄살이 심한 거야. 살살 찔리면 안 아파. 맞고 나서 문지르는 거 잊지 말고."
마력을 끌어 쓸 필요조차 없었다. 피할 일도 없다. 그냥 녀석들이 달려오는 걸 봐서 순간적으로 두 걸음 정도만 앞으로 뛰쳐나가 허벅지를 노리고 찌르면 그대로 맞는다. 차라리 물고기들이 더 똑똑한 수준이다.
"끄에에엑!"
"아아아악!"
"씨바아아알!"
"엄마아아!"
"뭐 이 씨발 엄마?! 넌 괘씸죄야 이 새끼야! 반대쪽 허벅지도 내놔!!"
"아, 안 돼! 제, 제바아아아아아악!!"
어떻게 한낱 범죄자 새끼가 지 아프고 힘들 때 어머니를 찾는단 말인가. 성실하고 죄 없는 나조차 찾을 어머니가 안 계시는데.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찍는 것처럼 한차례 칼침을 놔주는 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새끼들이 내는 곡소리를 들으며 나는 라그니스에게 손짓 했다.
"일단 여관에 들어가 있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무슨 일 있을 거 같으면 바로 소리치고."
"아, 알았어."
그렇게 라그니스가 종종걸음으로 녀석들을 빙 둘러 여관으로 도망치는 사이, 나는 놈들이 떨구거나 쥐고 있는 무기를 하나하나 여관 쪽으로 던지거나 즈려 밟아 뺏어 던지며 무장해제에 들어갔다.
죄다 팔면 쏠쏠할 거다. 그렇게 정리를 다 끝내고 이제 어줍잖은 방어구나 주머니마저 털려는 와중에 한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씨발 새끼! 개 같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씨발!"
누군가 했더니 가장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던 놈이었다.
털레털레 걸어서 옆으로 다가가자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나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씨발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 우리가 씨발 누구한테 고용돼서 이러는 지 아냐고! 넌 뒈졌어! 사지를 찢어 죽여 버릴 거다! 니 옆에 붙어 있던 창년도! 저 씨발 병신 같은 여관도 다 태워 죽여 버릴 거야!!"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되니까, 넌 발 하나 자르고 두 팔도 자르자? 상완까지는 자르지 않을게. 그래도 하완은 남겨뒀다간 의수라도 달아서 휘두를 수 있으니까 잘라야겠어. 출혈로 죽으면 운이 나쁜 거라고 생각해."
"아, 안 돼! 안 돼! 안아아아악!"
어려울 것도 없다. 난 녀석이 바둥거리기 전에 그대로 검을 휘둘러 깔끔하게 녀석의 왼팔을 잘라 냈다. 말한 대로 상완은 남겨두었다.
"끼야아아아아악!!"
입을 잘못 놀려 왼팔이 잘려 나가는 녀석을 쓰러져 있던 다른 놈들이 사색이 된 채 바라본다. 자세도 제대로 안 잡힌 상태에서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며 엎드려 있는 놈의 팔을 깔끔하게 잘라 냈으니 뭔가 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 정도는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참 신기하지. 당장 죽이지 않으니 이대로 멀쩡히 도망갈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그렇게 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고 복수하겠다고? 그들에게는 이 세계가 그렇게까지 자비로운 세상이었던 걸까?
뒷골목에서조차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도시 밖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죽어 나가며, 심지어 모험가끼리의 결투로 인한 살인은 국가에서조차 신경 쓰지 않기에 비일비재할 정도다. 내가 신경 쓰지 않고 그런 일을 곁에 두지 않을 뿐이지 살인이 만연한 세상인데.
그런 세상 속에서 모험가로 살아가는 녀석이 왜 무기력한 상태에서 누구를 죽인다 만다 하는 협박을 서스럼없이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반대팔도 자르기 위해 놈의 몸을 발로 차 옆으로 굴리자,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한다.
"어흑, 제, 제발! 안 돼! 잘못!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아까 내가 소개는 했지?"
"흐윽, 에? 예?"
"나는 엘드미아 에가라고."
이미 잘린 왼팔을 오른손으로 쥐고 지혈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온갖 독기와 분노가 가득 차 있던 눈동자에 오직 두려움과 불안만이 남아 있었다. 얼굴만 봐도 자기 팔을 자르고 허벅지에 구멍을 낸 미친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아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고 이런 걸 즐기는 게 아니다. 난 현대 지구인의 감성을 정상적으로 지닌 사람이다. 피를 보며 흥분하거나 잘린 절단면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란 소리다. 사람을 베는 것도, 피를 보는 것도 유쾌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 뿐더러 절단면은 볼 때마다 속이 매스꺼운 게 사실이다. 원래대로라면 보이면 안될 것이 보인다는 건, 생각 외로 큰 괴리감을 불러오는 법이다.
그저 환생 8년째에 겪은 사건으로 인해 이런 게 필요한 세상이라고 깨달았을 뿐이지.
"나에겐 평생에 걸친 숙원이 하나 있어. 그게 뭐일 거 같아?"
"흐윽, 흑...모,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너 같은 새끼들한테 경고한 뒤, 아무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게 내 숙원이야."
그렇기에 웃지 않는다. 도발이 목적이 아닌 이상 굳이 화내지도 않는다. 그런 감정 하나하나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놈들. 날 협박하기 위해 내 주변 사람을 건드리는 놈들. 나에게 피해를 주려는 놈들. 이용해 먹으려는 놈들. 싹 다 본보기 삼아서, 절대 날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원대한 숙원이 있어."
검으로 남아 있는 오른손을 툭툭 건드려보지만 마치 도망치면 잘릴 거라고 믿는 것처럼 녀석은 울음조차 참아가며 꼼짝도 하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녀석의 어깨에 검을 문지르며 피를 닦아내자 이젠 아예 바들바들 떨다 못해 오줌까지 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매우 고민이 되네? 네 말을 믿고 오른팔과 두 다리를 남겨두면 분명 내가 만만하다고 생각하고 복수하려는 녀석이 하나쯤은 튀어나오지 않을까? 난 그럴 거라고 보는데."
"아아아아아닙니다!! 절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제가 병신같은 헛소리를 한 거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내가 언제 죽인다고 했어? 팔다리만 자를 거야. 물론 다 잘린 네가 분노에 차서 눈 뒤집고 날 죽이겠다고 하면 죽일지도 모르겠다만."
"흐, 흐어엉. 제발요.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그래도 이세계라서 그런지 잘린 팔다리도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신전에 가서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다시 붙일 수는 있다. 물론 말이 합당한 대가지 신체 결손의 위험에서 구원받는 것치고는 한없이 헐값이다. 이 녀석도 주머니를 탈탈 털면 팔은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는 이름이 뭐야?"
"예?"
"잔대가리 굴리네? 발목 자르고 시작해볼까? 아니면 잘린 팔이 다시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작살이 나면 생각이 달라지려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정상적으로는 다시 자라지 않는 신체가 잘려 나간다는 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라도 그럴 거다.
"아브남입니다! 이티스엘 왕국 서부 지대 굴드 마을에서 살다가 모험가가 된 황급 모험가 아브남입니다 엘드미아님!!"
"자세가 바람직해졌네. 내가 왜 네 이름을 물어 봤는지도 이해했지?"
지금은 살려 준다. 하지만 지랄나면 찾아내서 죽여 버릴 것이다.
아브남은 그걸 완벽하게 이해한 듯 싶었다.
"이해했습니다! 다시는 엘드미아님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그런 생각하면 반드시 말리겠습니다!"
"똑똑해서 다행이네. 팔 간수 잘해. 나중에 붙여야할 테니."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 쟤 지혈 도와줄래 쟤처럼 팔 잘릴래?"
"돕겠습니다!!"
두 번째로 칼침을 맞은 녀석은 허벅지의 통증마저 잊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깽깽이 발로 뛰어들어 지혈을 돕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