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도시 순찰대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십여 분은 더 지난 뒤였다.
경비대를 대동한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 우르르 나타나는 게, 약속한 시간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원래대로라면 죽어 있거나 몰매를 맞고 쓰러져 있어야 하는 나 대신 굴비처럼 엮여 있는 여덟 명의 모험가들을 보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알리샤와 애들의 도움을 받아 주변을 정리한 나는 일단 다들 들어가 있으라고 한 뒤 놈들과 함께 밖에 앉아 있었다.
이미 심문은 마친 상태였다. 아브남을 비롯한 나머지 놈들은 거짓말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니까. 그들이 실토한 내용들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와 라그니스가 추측한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형태였다.
나를 무력화시키고 라그니스를 납치한 뒤 순찰대의 도움을 받아 도시 밖으로 나간다. 그 뒤 인근 숲에 있는 접선 장소로 가면 그들의 일은 끝이었다. 비룡이 있는지 말을 타고 갈 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건 나중에 내가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다.
매우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실수 없이 하라는 고압적인 태도만 내비친 채 고용주는 접선지로 먼저 갔다고 하니 분명 감시 인원이 따로 있진 않을 거 같았다. 여기만 잘 정리되면 라그니스를 여관에 둬도 문제없을 것이다.
다행인 건 내가 아는 얼굴의 순찰대는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지인 중에 그런 개새끼가 있다면 많이 빡쳤을 테니까.
"포, 폭력 행위가 신고되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더 물어볼 것도 없군. 무장을 버리고 투항해라. 당장 연행을..."
"지랄났다. 순찰대 새끼들이 뭔 연행이야? 개소리할 시간에 빨리 경비대 불러와."
"뭐, 뭣?!"
범죄자 연행은 순찰대의 권한이 아니다. 경비대는 군대지만 순찰대는 돈을 받고 지급 받은 장비로 일하는 자경대에 불과하다. 쟤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건이 터질 경우 초동대처를 하고 경비대에 기별을 넣어 5분 대기조 같은 애들이 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뿐이다.
날 연행한다는 것부터가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려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당당하게 놈들을 향해 으름장을 놓을 수 있다.
"내가 지금 너희들 싹 다 잡아 묶어 버리기 전에 빨리하는 게 좋을걸."
"지금 감히 순찰대의 명령을 무시하고 체포에 불응하는 거냐?"
가장 앞에 있던 놈이 말하자, 나머지 놈들이 검을 꺼내 들었다. 이해는 한다. 방어구도 좀 찼고, 검도 까리하니 자신이 넘치겠지. 비리 저지른 거 들키기도 싫을 거고.
하지만 쥐고 있는 게 도시 내에서 사용 불가능한 창이 아닌 이상, 위협될 건 없다.
창은 그 자체만으로도 법의 상징이다. 괜히 왕국에서 창이라는 무기를 정규 병사 외에 소지하지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다. 경비대가 창을 들고 왔으면 난 설령 놈들이 뇌물을 먹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저항하면 안 된다. 그건 완벽하게 도시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검은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지천에 들린 모험가들이 들고 다니는 가장 보편적인 무기니까. 제식 방어구도 무구점을 조금만 뒤져보면 비슷한 걸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게 순찰대와 경비대의 차이다. 녀석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라는 건 사실 도시에서 지급해주는 순찰패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하고자하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는 순찰패 하나 말이다.
"내가 지금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주장을 펼쳤는데도 검을 뽑아? 이 새끼들 너희 순찰대가 아니라 순찰대를 사칭하는 가짜냐? 이 새끼들 풀어주려고 개수작 부리는 거지?"
"헛소리 하지마라! 이 순찰패가 보이지 않..."
"그딴 건 개나 소나 다 위조할 수 있어.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게 명백한 증거인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
기세등등하던 놈들이 살짝 주춤거린다. 지금까지 순찰대라는 이름으로 으스대던 게 안 박히니 뭔가 싶긴 할 텐데, 솔직히 덤벼들지 않으면 내가 귀찮아진다. 내 목표는 쟤네들까지 싹 다 묶어 버리고 접선지에 있는 사건의 원흉을 잡아내는 거니까. 뇌물 먹은 새끼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방치해둬?
그래서 검은 뽑지 않는다. 일부러 힘든 척을 하며 기운없는 것처럼 손을 흔든다. 여덟 명의 모험가를 잡으며 진이 빠진 시늉 정도는 해야 녀석들이 기고만장해져서 날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월권을 저지를 테니까.
"말이 안 통하는군! 체포에 불응한 이상 무력으로 제압하겠다!"
그렇게 녀석들이 용기를 두르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개새끼들 잘 걸렸다."
"뭣?"
그대로 몸에 마력을 두르고 달려들어 죽빵을 꽂아 넣는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라 그렇게까지 마력의 출력을 올릴 필요조차 없었다.
순찰대에 체포 권한이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서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럴 만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방어구와 검은 위협을 위한 장식품에 가깝다.
이놈들은 그저 힘 좀 쓰는 민간인이다. 도시 권력에 저항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일이니 겉모습만 차려 입혀 놔도 시민들은 순응한다. 그렇기에 그냥 힘 넘치고 할 거 없는 민간인에게 순찰패를 쥐어주고 싼 맛에 순찰병력으로 기용할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안일한 것이다.
"이 법도 모르는 사칭범 새끼들! 죄다 같이 엮어서 경비대에 넘겨 주마!"
"아아악!"
휘두르는 칼조차 흔들거리고 느려서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모험가 놈들조차 이놈들과 비교하면 정예 병사겠군.
그렇게 턱주가리가 깨졌을지도 모르는 놈들을 뒤로 한 채 외쳤다.
"알리샤! 레비! 애들이랑 같이 이 새끼들 좀 묶어 줘. 진! 너는 경비대에 가서 신고 좀 해주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나자 여관에서 애들이 나와서 내 지시에 따라 움직여줬다. 진은 순찰대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나에게 한 번 되물었다.
"괜찮겠습니까 형님? 그래도 순찰대인데?"
"이유는 차고 넘친다. 어딜 감히 순찰대가 시민을 체포하려 그래? 경비대들한테 말해주면 오히려 얘네 순찰패 뺏을걸?"
"흐음...그래도 좀..."
"괜찮아. 어차피 이놈들한테 뇌물 준 놈까지 지금 잡으러 갈거니까. 죽지 않게 살려만 두면 잘 해결될 거야."
당황하는 다른 애들과 달리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도와주던 진은 내 확답을 마지막으로 경비대를 향해 달려갔다. 진짜 저 녀석은 뭐 하던 놈일까?
"엘드미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평소와 달리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알리샤가 나에게 물어왔지만, 아무래도 이건 라그니스의 판단에 맡기는 게 맞는 것 같다.
"레비가 설명해 줄 거야. 아직 정리해야 하니까 난 잠깐 갔다 올게."
알리샤는 굳이 나를 붙잡고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본인 말대로 한 때 모험가였으니 이런 상황에서 아직 정리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놈들에게 들었던 위치를 향해 달려갔다. 늦은 시간에 관문을 벗어나야한다는 게 가장 걸리는 점이었지만 막상 도착하고나니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음? 정지! 누...뭐야. 엘드미아? 네가 이 시간에 여긴 왜 있냐?"
"알렉 형?"
놀랍게도 관문을 지키고 있던 건 알렉과 처음 보는 경비병이었다. 저 초면인 사람은 몰라도 알렉을 구워삶는 방법은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잘 됐다. 지금 어떤 씹새들이 알리샤 아줌마네 여관에 있던 여자애들을 납치하려하는 걸 내가 다 조져놨거든?"
"뭐?! 레, 레미리는?! 다른 사람들은 괜찮고?!"
이게 이렇게 풀리네.
◈
당연히 놈들의 목적은 라그니스 한 명이었지만 알 바인가?
관심 있는 여자의 위험 앞에서 알렉은 격렬하게 분노하며 매우 우호적인 태도로 나의 외출을 허가해주었다.
"아주 그냥 반 죽여놔버려!"
열성적인 호응을 뒤로 하며 적당히 숲속에 들어섰다. 이제 막 밤이 내리고 있는 숲속에서 길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건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관문을 마주 보는 숲의 입구에서 세 걸음 가량 안쪽...밑동에...이거군. 야광포자."
야광버섯 포자를 문질러 남겨 놓은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원래 땅에서 캐내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빛을 잃어 버리는 게 정상인 포자는 마법적인 가공을 거친 것인지 확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알기 쉽게 화살표 표시를 통해 다음 위치를 알려주는 표식들을 소리 죽여가며 따라가니, 머지않아 꽤 인위적인 야영지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불안감이 치솟았다.
이 숲에 원래 있던 야영지인가?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든 건가?
둘 다 좋지 않아 보인다. 주변 지형의 사전 조사를 마칠 정도로 디테일하게 준비했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라그니스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 뒤늦게 이렇게나 허술하고 긴박하게 움직였다고? 복잡해지는 생각을 정리하며 계속 걸음을 옮기자 고요한 숲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떻게 될 거 같아?"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거리를 좁혀나가자, 녀석들이 한창 떠드는 이야기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꼬맹이였어. 델트님은 수습 기사 정도의 역량은 될 거 같다고 하더군."
"그게 진짜라면 그 머저리들은 죄다 썰리겠군."
"푼돈 주고 고용한 모험가라는 것들이 다 그렇지. 아마 지금 즈음이면 우리 위치를 불고 있지 않을까?"
손발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본능이 고민할 틈조차 없다고 경고를 울렸다. 내가 한 수 앞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녀석들은 지금 내가 자신들을 찾아오는 것까지 상정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함정이다. 나보다 똑똑한 놈이 머리 위에 있었다.
온몸에 마력을 두른 뒤 전력으로 박차며 튀어 나갔다. 수풀을 스쳐지나가며 내는 소음에 녀석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뭐야, 동물인..."
"씨발! 놈이다!"
"어떻게 벌써?!"
비룡 수송용 마차 한 대. 그리고 그 위의 비룡. 그 비룡으로 달려가려는 듯 몸을 돌리는 놈 하나. 모닥불에 모여 나를 향해 두 눈을 부릅 뜨며 검을 뽑으려는 놈들 셋. 아직 등을 보이며 미처 고개를 다 돌리지 못하는 놈 하나. 거기까지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놈들의 대화내용이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있다.
놈들이 나와 라그니스보다 한 수 앞을 읽어 버렸다. 모험가 놈들이 실패해서, 내가 여기까지 오는 걸 상정하고 있었다. 저 태도를 보아서는 그렇게 찾아온 나를 죽이거나 무력화시키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 말인 즉슨, 지금 여관에 무방비하게 있는 라그니스를 누군가가 계속 노리고 있다는 소리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마저 외면하며 검을 뽑아 가장 가까운 놈의 등에 파고든다. 바싹 긴장한 근육 위에 최대 출력의 마력이 덧씌워지며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속도로 찔러 들어간 검 끝이 순식간에 놈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아실리에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미숙함 때문에 살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저 새끼 오러 사용자다!!"
"젠장 너무 빨리 왔다고!"
비룡으로 달려가던 녀석은 분명 조종사일 것이다. 저 놈이 비룡을 풀고 올라타면 쫓을 수 없다.
검을 뽑을 시간도 아까웠기에 그대로 꿰어진 시체째로 돌진하며 검을 비틀어, 몸속에서부터 옆구리까지 베어내 검을 꺼냈다.
거의 다 뽑힌 세 명의 검. 그리고 조금 붙어 있는 둘과 달리 떨어져 있는 한 명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시체를 그 한 놈에게 밀쳐 던진 뒤 그대로 두 놈을 향해 뛰어올랐다.
"씨발...!"
조금이라도 멀리 베기 위해 롱 소드의 손잡이가 아니라 폼멜을 바짝 쥐고, 마치 낚시대를 던지는 것마냥 온 몸을 뻗어 베기를 시도한다. 두 놈의 목을 동시에 치기 위해 전력으로 휘둘러진 검이 그 순간만큼은 섬광처럼 빛났다.
"으아아악!"
비명은 뒤에서 들려왔다. 기술보다 기도가 더 많이 들어간 횡 베기에 두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걸 감상할 틈도 없이 어그러진 자세를 바로 잡으며 내가 던진 시체 때문에 바둥거리고 있는 녀석을 시체와 함께 찔렀다. 억지로 균형을 맞추는데 너무 힘을 쓰느라 엄지 발톱이 빠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효과는 있었다.
"끄억...!"
온 몸으로 시도한 찌르기였기에 그대로 놈들과 함께 고꾸라진다.
하지만 못해도 무력화는 시켰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그대로 굴러 일어나며 이제는 비룡에게 거의 다 도착한 놈을 향해 검을 집어 던지며 외쳤다.
"뒈지기 싫으면 당장 손 치워!"
-퍼억!
정말 투창마냥 날아간 검이 비룡을 싣고 있던 마차에 틀어박히자 놀란 비룡이 발버둥 친다. 그 과정에 휘둘러진 꼬리에 몸통을 맞아버린 비룡 조종사가 내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왔을 때, 난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흐어! 쿨럭! 쿨럭!"
그 안도감을 애써 내색하지 않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가 던졌던 롱 소드를 다시 뽑아드는 사이 표정을 관리한 나는, 아직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는 비룡 조종사의 명치를 밟았다. 그저 무게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할 목적인 만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마,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말을 끊는 게 마음에 들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 되어 버렸다.
"판단이 빨라서 마음에 드네. 당장 비룡 풀어."
"예?"
"내가 씨발 여기까지는 속았어도 나머지는 대가리가 있어서 유추가 가능하거든? 델트라는 놈이 구상한 양동작전을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버릴 게 아니면 네 설명은 가면서 들을 테니 빨리 날아갈 준비해라. 허튼 수작하지 마. 비룡을 조종해야해서 널 죽이진 못해도 손가락은 하나씩 없앨 수 있으니까."
"다, 당장 하겠습니다!"
계획도 실패. 아실리에에게 호언장담 했는데 살인까지 나버려.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즈음 라그니스는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절찬리 납치 중이기까지 해.
끓어오르는 조바심을 애써 억누르며 침착함을 유지하고 비룡 조종사를 따라 비룡에 올라타고 나니 떠오르는 말이 딱 하나밖에 없다.
오늘은 정말 개 같은 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