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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2화 (22/412)

비룡기사.

이름만 놓고 보면 용기사의 열화판처럼 보여도, 전장에서 제공권을 장악하며 마법을 날리는 이동식 포대일 뿐만 아니라 오러로 강화된 육체와 비룡의 가속을 이용해 말도 안 되게 긴 언월도 같은 거로 적의 진형을 붕괴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고급 병력이다.

심지어 마나와 오러 둘 모두를 익혀야 한다는 최악의 단점도 군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완이 된다.

애당초 군대라는 게 필요한 것만 속성으로 익히고 그걸 특화시켜 구성되는 집단이니까. 두 가지를 다 익히기로 결정하고 나면 모든 변수를 고려하며 끝없이 정진해야 하는 모험가와 달리 비룡기사의 마법은 일정 수준까지만 올리고 나면 굳이 더 공부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차피 부족한 부분은 군대의 병력과 지원으로 보완할 거니까. 단순히 비교하면 그냥 다른 오러 사용자보다 성취가 조금 늦어지는 것에 가깝다.

그렇게 조금 늦어지는 대신 곱절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군대에서만큼은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기사의 개인적인 성취를 놓고 본다면, 거기에 소모되는 시간이라는 유한한 재화의 낭비가 미치고 팔짝 뛸 만큼 비효율적이라 시도할 생각조차 가지지 않겠지만. 사실 그런 성취를 반드시 일궈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입장이니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생 오러를 느끼지 못하는 기사도 수두룩한 세상이다.

그런 놈과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14살 풋풋한 꼬맹이에게 정공법으로 답이 있을 리가 있나.

극단적인 양자택일인 것이다. 신념을 굽히거나, 목숨을 걸거나.

"엘드미아님! 보이기 시작합니다!"

몇 시간이 걸렸고 얼마나 날아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가끔 어둑어둑한 마을 몇 개가 지나가고 숲이 지나가는 사이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중간중간 잠든 것도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비룡이 빠른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에스를 놓치거나 비룡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미친 듯이 뛰면서 시간 내에 수도에 입성할 방법과 신분을 증명할 방법 그리고 라그니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방법 등등 온갖 내 능력 밖의 것들을 고민하며 세상을 저주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부분만큼은 델트라는 놈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기에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집중해서 바라보자 푸르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 하늘 끝에 좁쌀만 한 무언가가 날아가고 있었다.

"와. 나도 겨우겨우 보이네. 비룡 조종사들은 저 정도는 그냥 볼 수 있는 건가?"

"그럴 리가요. 이 정도 높이의 하늘을 혼자 날아 다니는 건 비룡 정도밖에 없으니, 그냥 보이면 저거구나 하는 거 뿐입니다."

초월적인 시력을 기반으로 하는 줄 알았더니 지당하고 합당한 추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거였군.

"잠도 못 자고 조종하는 것도 대단한데 눈까지 좋은 줄 알았지. 그럼 이제 고도를 올려 줘. 어느 정도 올라가야 놈이 눈치를 못 챌까?"

"위에서부터 활공하며 접근하면 사실 건물 한 층 정도의 높이까지 접근해도 알아차리기 힘들 겁니다. 의외로 하늘에서는 자기 머리 위로 뭐가 날고 있을 것이라는 걸 상상하기 힘들 거든요."

하긴. 거의 구름과 비슷한 위치에서 날아가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보다 높거나 비슷하게 날아다니는 건 같은 비룡이 아니면 드래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델트가 알아차릴 틈도 없이 비룡을 죽이셔야하니 좀 더 높게 고도를 올려야 할 겁니다."

씨발. 거기까지 자각하고 나니 새삼 내가 앞으로 할 짓의 무모함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되기 시작한다.

"기에스. 우리가 만난 지는 몇 시간밖에 안 지났지만 난 내 인생을 통틀어 두 번째로 큰 신뢰를 너한테 보내고 있다. 나랑 라그니스의 목숨은 너에게 달린 거 알지?"

계획 자체는 단순하다. 내가 비룡의 대가리를 찍고 묶여 있는 라그니스를 탈취하면 기에스가 우리를 받는다. 내가 비룡 대가리를 쪽팔리게도 찍지 못한 채 추락하면 기에스가 재빨리 내려와서 받아 준 뒤 다시 시도 한다. 비룡 조종사들끼리 물건을 주고받을 때 비슷한 걸 많이 해봤기에 실수할 일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기에스였다.

"빚 없는 삶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받아 내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고도가 높아서 추락에는 여유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엘드미아님은...정말 대단하시군요. 교육받은 비룡 조종사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태어난 지 8년 만에 마을이 불타 없어진 채 자라면 이렇게 돼."

사실은 그냥 어떻게든 전생의 지식을 통해 정신 승리를 반복하는 것뿐이었지만 어차피 비교 대상도 전무한 마당에 증명할 수도 없을 테니 대충 그렇게 말했다.

"그럼 올라가겠습니다. 상대는 비룡기사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따로 신호를 보내지는 않겠습니다. 적당한 거리가 되면 날갯짓을 한 번 하게 할 터이니... 그 때 시작하시면 됩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긴장이 목소리를 타고 전해진다. 하긴 살면서 이딴 미친 짓 하는 놈을 도울 일이 몇 번이나 생기겠는가. 두 번 할 짓은 아니니 나도 한 방에 성공하고 싶다.

"곧 새벽이지 않냐?"

"네. 수도를 향해 날아가고 있으니 해는 정면에서 뜰 겁니다."

"일출이랑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까?"

"그러도록 하죠."

비행에 관련된 부분에서 이 녀석은 일말의 불안도, 주저함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녀석은 사실 상상 이상으로 유능한 비룡 조종사가 아닐까? 그러니 작업을 쳐서라도 손에 넣어 두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 눈에 들어오고 나니 거리는 정말 순식간에 좁혀졌다. 기에스의 숙련된 비행술에 감탄하는 사이 고도를 올려 델트라는 놈의 위에서 날게 되었지만 녀석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검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채 망토과 짙은 갈색 머리를 흩날리며 날고 있는 녀석의 앞에는 모포말이를 당한 것처럼 묶여 있는 라그니스가 있었다. 사실 후드까지 푹 눌러써서 정말 라그니스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정황상 그러했다.

그리고 어차피 할 일이긴 한데...비룡 대가리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씨발."

겁은 나지 않는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떨어질 걸 상정하고 나니 오히려 이 높은 고도가 안전을 위한 에어백마냥 느껴질 정도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쉐도우 엘드미아가 비룡의 두개골에 칼침을 놓기 위한 최적의 동작을 시연하고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던 찰나, 비룡의 날개가 펄럭였다.

"간다."

스스로 일말의 주저도 없이 검을 뽑아 들며 뛰어내린 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귓가를 때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추락이 시작되었다.

기에스는 능력 있는 조종사가 맞을 것이다. 이대로 떨어지면 정확하게 비룡의 머리에 닿을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거리 계산이다.

내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수평을 유지하는 비룡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떨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델트는 이변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즈음이면 놈의 시야에 내가 보일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할 즈음이 되어서야, 평온하면서도 의아한 시선이 뒤늦게 나를 향했다. 사실 뒤늦게라는 표현은 놈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표현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1, 2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테니까.

"...?"

그 찰나의 순간 녀석의 표정에서 읽히는 건 의문이었다.

왜 사람이 자기 위에서부터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상황에 누구인지 파악할 생각조차 못 하고 그저 왜 떨어지는지만 고민하는 것을 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거야 당연히...!"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틈도 없었기에 양손으로 쥔 검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만 유지하며 그대로 비룡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중력 때문이지 이 씨발 새끼야!!"

일순간 느껴진 두개골의 저항을 지나, 비룡의 대가리가 쪼개졌다.

새벽이 밝아온다고 생각했다.

이 방향으로 수도를 향해 날아간 것은 델트도 처음이었기에, 생각보다 눈이 부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달이 지고 해가 뜨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그랬기 때문에 엘드미아와 시선이 겹친 찰나의 순간 델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단순한 의문이었다.

'왜 사람이 내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거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낀 것은, 티끌만큼도 상정하지 못하고 상정할 수조차 없었던 상황 속에서 극도로 긴장하고 당황한 탓이리라.

의미를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누군가가 떨어졌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들고 있던 검의 검신이 뿌리까지 비룡의 머리에 박히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델트는 반응하지 못했다.

이해조차 못했다.

'어떻게 떨어지지 않은 거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델트의 눈에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누군가가 아무것도 없는 비룡의 머리 위에 기묘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식도 초월하고 인지도 초월하고 이해조차 초월했다.

"나는!"

그랬기 때문에.

엘드미아가 검을 비틀어쥐며 짧은 순간이나마 힘을 유지하는 비룡의 목 위를 달려 코앞까지 다가와 양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까지, 델트는 반응하지 못했다. 가문을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뤄왔고, 단련을 해왔으며,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은 그였지만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숙련된 오러 사용자와 같은 움직임에도, 불타오른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이글거리는 두 눈을 보고도, 새벽을 밝히는 태양 빛을 받아 번쩍이며 날아드는 수려한 검신을 보면서도 생명의 위협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엘드미아 에가다!"

모든 의문의 해답이 되는 단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델트는 이해했다.

'아, 그렇게 된 거였군.'

그것이 일격에 목이 잘린 델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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