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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5화 (35/412)

숙영지의 병사들은 우리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마차에서 내리는 모험가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모습만 멀리서 보일 뿐, 우리가 인솔자를 따라 간단한 지시만 받은 뒤 일렬 횡대로 서서 숲을 바라볼 때까지도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솔자씨. 저 치들은 뭡니까?"

깔끔하게 줄을 맞춰 서있으라고 지시하고 옆 사람과의 간격을 점검하며 이동하던 남자에게 물어보자, 무뚝뚝한 대답만 돌아왔다.

"보면 모르나? 도적 놈들을 경계하기 위한 농장주의 사병이다."

"꼭 전쟁이라도 할 기세인데?"

"저들에겐 농장을 지키기 위한 전쟁과 다를 바 없겠지. 집중이나 하고 있도록."

마치 군대 제식을 지키는 것마냥 간격을 맞추는 행동에 자연스럽게 따라준 탓인지, 그는 거기까지만 말한 뒤 계속 나아가며 다른 모험가들에게도 같은 간격을 요구했다. 그 동작은 딱히 서두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유로운 태도도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압박을 주는 듯한 말투에서는 마치 다른 생각을 하려는 것을 일부러 막는 게 목적인 훈련 조교의 냄새가 났다.

"60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렇게 일렬로 세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실 도적 퇴치 의뢰가 아니라 숲속에서 바늘 찾기 의뢰였던 거 아닐까."

"꼴을 보아하면 신빙성있네."

당연히 우리 둘다 그런 가능성은 조금도 염두하지 않는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최대한 긴장하며 숲을 노려보았고, 머지 않아 줄을 모두 세운 인솔자가 큰 소리로 호령했다.

"의뢰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이곳에서부터 숲의 경계까지 이대로 달려가는 것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진형을 어그러뜨리거나 도망치는 이에게는 보수를 지불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그 입에서 나온 건 말이 아니라 개소리였다. 내가 굳이 지적할 것도 없이 모험가들은 순식간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지랄하지 마쇼! 계약서에 명시된 짓만 합시다 우리!"

"염병떨고 자빠졌네 진짜. 우리가 병신이야? 숲속에서 뭐가 날아올 줄 알고 그 꼴값을 떨어?!"

"명령 체계에 대한 명시도 없었으면서 우리가 줄을 맞춰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할 판에, 달리는 것까지 트집을 잡는 건 좀 꼬운데 인솔자 양반?"

"댁과 달리 우리는 걸음마는 진즉에 마스터했으니 우리가 병신처럼 어기적거리는 꼴을 보고 싶으면 돈을 더 내시라고!"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모험가 짓을 한다 해도 결국은 모험가다. 목숨을 걸고 푼돈을 받는 이들에게 계약서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는 법이지.

분명 예상과는 다른 격렬한 반응에 인솔자가 당황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자, 인솔자는 당황은커녕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다! 당당하게 전진하는 이에게는 은화 2개를 추가 보상으로 수여하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결정에 나와 셰릴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거지!"

"사람 다룰 줄 아는 양반이었군!"

환호성을 지르며 사납게 웃어보이는 모험가들과 달리 우리가 느끼는 건 매우 강렬한 좆됨의 예감이었다.

비효율적인 무력시위? 군대라면 그럴 수 있겠지. 갑옷도 챙겨 입고, 방패도 들어서 어지간한 놈들이 쏘는 활 정도는 우습게 막아낼 수 있는 병사들이라면 뛰기는커녕 걸어서 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다못해 좀 더 윗급의 실력을 지닌 모험가들 중에서도 그런 놈들은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하니, 돈만 더 썼으면 확실하게 끝장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겨우 녹급 정도밖에 안되는 60명의 모험가들로, 그것도 숲속에 있는 적들 앞 평원에서 한 줄로 내세워서 시도하는 놈들은 없다. 심지어 뒤에 멀쩡히 사병들을 대기 시켜두고 그런 소모전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는 건...적어도 내가 보기엔 셋 중 하나였다.

도적 놈들이 어지간히 병신들이라서 이래도 아무것도 못 한다는 확신이 있거나, 우리 쪽 명령권자가 병신이거나, 사실 퇴치되는 건 도적이 아니라 모험가였다는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의 기묘한 상황.

우선 이 의뢰가 2차라는 점에서 첫 번째는 제외된다. 소규모 파티가 여러번 실패 했기 때문에 2차 의뢰가 발생하는 거니까. 놈들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도 분명 나름의 실력이 있다.

두 번째 예상도 애매하다. 인솔자가 명령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저 기묘한 태도에서부터 병신일 가능성보다 뱃속에 구렁이를 키우는 개새끼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저 귀족 사병들의 숙영지 안에 지휘관이 있다면 당당하게 병신 같은 전술을 내놓고 그 결과를 구경하고자 밖으로 튀어나왔을 것이다.

세 번째는 그냥 직감적으로 그렇다. 상식적으로 이해도 안되고 납득도 안되는 이 꼬라지를 보고 있자하니 사격장의 움직이는 과녁이 되어버린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엘드미아."

"어. 말해."

"숙영지의 규모에 비해 잔류 인원이 적어."

왜 개같은 예감은 빗나가는 일이 적을까.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며 최대한 열심히 숲까지 이어지는 바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간격으로 밟고 지나간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숲속으로 이어지는 긴 발자취는 비슷한 형태로 숙영지 근처까지 돌아온 흔적이 보였다. 그 흔적이 그저 수색대의 흔적에 불과하고, 자신의 사병으로 토벌을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모험가를 고용했다고 믿고 싶지만 당연히 말이 안되는 망상이었다. 훈련 받는 귀족의 사병이 녹급 모험가만 못하다는 게 말이 될 리 없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또라이가 있는 건가."

"숲속으로 달려가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겠지."

머리가 쉬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 내 탓이 아니리라. 내가 정말 예상하고 있는 결과가 맞는 건가?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 시국에 자신의 사병들에게 실전 경험을 부여하고자 모험가와 길드를 속여먹고 아무것도 모르는 모험가들 파티를 죽였다고? 고함을 치며 의욕을 충전하는 주변 모험가들에게서 억지로 스스로를 분리 시키며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안 나왔다. 물론 안 들키면 장땡이긴 할 터인데, 이렇게나 노골적인 게 어떻게 안 들킬 수 있다는 거지?

무려 왕국 귀족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하다시피 하고 있는 셰릴조차 우리가 예측하는 정신나간 행보에는 이를 갈고 있다. 더 이상 숲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녀는 숙영지를 보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아마도 이대로 경과를 지켜볼지 아니면 빠질지를 두고 저울질을 하는 거겠지.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셰릴의 호위를 하고 있을 기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자는 제 새끼를 절벽으로 밀어버린다고 했던가? 물론 실제 사자는 절대 그런 기행을 펼치지 않는다지만 에카프라는 이름의 사자는 의외로 그런 기행에 거부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하는 것과 그저 일방적으로 금지옥엽마냥 보듬고 키우는 것의 구분이 확실한 남자니까.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보단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게 낫겠군."

그런 남자의 딸답게 셰릴의 입에서 실로 대범한 결론이 나온다. 지극히 정론이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할 만한 판단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회의적인 부분이 없지 않았다.

"네 실력이 좋은 건 맞는데 날아오는 화살 같은 걸 피하거나 쳐내는 건 안해보지 않았냐?"

"뭐, 그럴수도 있다는 거지 실제로 그럴 거라는 건 아니니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일반적인 사격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다. 활에 마나를 실어 쏘는 능력자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괘씸한 자신감이군."

"네가 할 소리는 아닌데."

뭔가 불만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셰릴의 새삼스러운 반응에 고개를 움직여 의문을 표했지만 그녀는 딱히 구체적인 대답을 들려주지는 않았다. 뭐지? 내가 뭐 딱히 화살을 피하거나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그야 피하라면 못 피할 것도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걸 굳이 티낸 적은 없는데?

"무엇보다도 아직 호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정도 상황은 내가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고 판단하는 거겠지."

"그건 그냥 네가 알아서 빠질 거라 믿는 게 아닐까?"

"만약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가 반응 못하면 내 전속집사가 알아서 몸 바쳐 헌신해야지."

결국 나는 이 상황에서도 신분을 밝히고 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은 세릴에게 한 번, 내 목숨을 제 것마냥 쥐고 휘두르려는 셰릴의 악랄한 심성에 한 번, 마지막으로 이런 귀찮고 짜증나는 상황에 자꾸 엮이는 내 자신의 불운에 한 번 감탄하며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박수는 왜 치는데?"

"네 악랄한 인성에 감탄을 금치 못해서 그렇..."

"돌격!"

마치 그 박수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것마냥 인솔자가 외친 탓에 우리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었다. 다른 모험가들은 멍청한 건지 속 편한 건지 아니면 대범하고 실력이 충만한 건지 이런 뒤가 구린 상황에도 은화 2개를 위해 미친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나와 셰릴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예기치 못한 상황을 우리가 최초로 직면할 일은 없었네."

"그러게 말이다."

한참 뒤쳐진 우리는 맹렬하게 달려나가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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