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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7화 (37/412)

사병이 알고 있는 정보는 꽤나 유용한 편이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파바에라 남작이 와인 농장을 구입한 지 반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 이 이상한 개짓거리를 시작한지 한 달 남짓도 안 되었다는 점. 정통 귀족이 아니라 돈으로 작위를 구입한 놈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놈의 사병들이 40명은 된다는 점. 이 일을 위해 추가로 40명을 더 고용해 움직이는 중이라는 것까지.

"무슨 남작새끼가 40명을 사병으로 두고 용병까지 고용해?"

"사실 작위를 얻기 전부터 함께 했던 이들이 서른 명 정도 있습니다. 명목상 치안 유지를 위한 병력 운용이라는 형태로 데리고 있지만 사병과 다를 바 없죠. 자택도 수도 외곽으로 취급되는 곳인지라 개인 사병 제한은 있어도 용병을 등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추가 인원 40명은?"

"그, 그건 저도 확실히 모르지만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질이 좋지 않은 용병들을 몰래 등용한 거라는 이야기가..."

놈은 거짓말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다는 것을 열렬히 증명하기 위해 정말 즉답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 이야기만 듣고보면 이 파바에라라는 놈은 나쁜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인 듯 싶었다. 이미 이전부터 30명 정도를 데리고 다녔다는 걸 보면 뭔가 딴짓을 하다 온 놈인건 분명했지만 거기까지는 이 녀석도 모르는 듯 했다.

하필 내가 살려 놓은 놈이 파바에라와 함께했던 30명이 아닌, 나중에 고용된 사병이었던 것이다.

"확률 실화냐 씨발."

숙영지에 파바에라를 비롯한 측근 10명이 있고, 나머지 20명은 숲속에 있는 폐허에 주둔지를 구성하여 진두지휘 중. 추가로 고용된 용병 40명이 숲에 포진해서 계획적으로 모험가들을 학살한다는 게 이 상황의 전말이었다.

"그 새끼는 뭐 모험가들한테 부모님이라도 잃었냐? 왜 이딴 짓을 해?"

"저는 말단이라서 거기까지는..."

"흐음. 애매한데."

몰래 움직이고 있다지만 모험가를 이딴 식으로 속여서 죽여버리고 있는 건 매우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놈들도 숲속에서 굉장히 치밀하게 전략전술을 짜고 있는 거겠지만, 그래도 걸리면 재산 몰수에 사형을 면치 못한다. 그걸 감안하고도 이 짓을 할만큼 놈에게 큰 메리트가 있다는 건데, 당최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저! 그건 모르지만 이상한 건 하나 있습니다!"

애매하다는 내 중얼거림이 정보가 목숨값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정말 처절하게 눈을 굴리던 사병이 경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 놈은 아까부터 목소리 톤까지 낮춰가며 정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터라 안 그래도 살려주려고 그랬는데 이 절박한 반응을 보고 있자하니 좀 미안해질 지경이다.

"파바에라 남작의 지시로 지금까지 죽인 모험가들의 시체를 폐허 어딘가에 모아두고 있습니다!"

"뭐?! 이 씨발 무슨 사령술사야? 그딴 역겨운 짓을 왜 해?"

"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중에 어차피 태울 거니까 상태는 신경쓰지 말고 대충 모아만 두라는 식의 지시는 들었습니다!"

"어차피 태워...?

이해를 할 수가 없네.

토벌하러 온 모험가들 시체를 모아두고, 일부러 2차까지 진행시켜서 더 많은 모험가를 모으고...심지어 숲 밖에 있는 놈들 중 행동 불능이 된 놈에게 확인 사살도 안 하면서 어쩌다가 죽는 건 또 거리낌이 없다라.

왜지? 이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1차 토벌 의뢰를 받고 온 모험가들은 숲속에서 확실하게 유인해 협공으로 죽이는 전술을 썼다고 했다. 확실한 실력자들만 차출해서 작전을 실행할 정도로 신경 써서 움직이던 놈들이 왜 이런 어수선한 방법을 취했을까?

"제, 제가 아는 건 정말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어 걱정마라. 엘드미아 에가는 협조성이 좋은 친구를 죽이는 취미는 없단다. 존나 악랄한 새끼면 모르겠다만."

그 말에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 한다. 하지만 이대로 두고갔다가 이놈이 뭔짓을 할지 모르니 기절은 시켜야겠군.

"야. 근데 널 죽이지는 않아도 내가 널 온전히 믿고 그냥 두고 가기엔 우리 사이가 그렇게 정겹지는 않잖냐? 기절만 하자."

"무, 물론이지요!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엘드미아님!"

"협조적인 태도 아주 마음에 들어. 그리고 너 깨어나고 나면 주변 놈들 싹다 뒈져있을 거거든? 내 감이 맞다면 이 사단을 냈으니 오늘이 파바에라인가 하는 그 놈의 제삿날이 될 거야."

"히,히익..."

"결코 작은 사건은 아닐 텐데 결국 이리저리 소문이 나면...거의 유일한 생존자일 너한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기도 할 거 아니겠어? 그 때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고 이 말만 전해라."

"어, 어떤거죠?"

"좆같은 일을 진행할 때 엘드미아 에가라는 놈이 끼어 있으면 다 내던지고 그대로 도망치라고. 어려울 거 없지?"

"무, 물론이지요! 혹여 누가 물어보면 제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똑똑하게 행동하는 거 보니 믿음이 간다. 이제 긴장 풀고. 절대 안 죽일 테니까. 옳지...어라?"

마지막까지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놈의 경동맥을 졸라 기절시킨 뒤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생존자를 남겨?"

숲속에 들어오는 놈들은 죽는다. 하지만 숲에 아예 들어오지도 못했던 놈들은 살아남게 된다. 확인 사살을 안 하는 걸 보면 이건 무조건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죽을 것이다. 그러면 무슨 소문이 날까? 2차로 60여명의 모험가들까지 긁어모아 시도한 도적 토벌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셰릴은 분명 이번 토벌마저 실패하면 귀족의 사병이 동원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귀족이 이 사건을 만든 원흉이다.

살아남은 모험가들은 활까지 쓰고 체계적인 전투를 벌이는 정신나간 도적놈들이었다고 말하겠지.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다. 60명의 모험가를 거의 몰살을 시켰는데 어떻게 소문이 안날까. 수도 인근이니 왕성에서도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 때 파바에라 남작이 사병을 이끌고 토벌을 나서서 성공한다면?

"돈을 벌고 나면 명성을 원한다더니 이 씨발놈이?"

토벌의 증거는 불에 탄 신체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번에 죽은 모험가들의 모험가 태그는 따로 모아뒀다가 길드에 제출하면 굳이 시체를 뒤지는 일은 없다.

그렇게 자신들이 죽인 모험가들의 시체를 태우고 증거만 확실하게 없앨 수 있다면, 놈이 유명세를 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와. 씨발 사탄도 기립박수를 칠 수준인데? 이게 진짜이려나?"

거기까지 추측하고나니 진실을 확인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내 개 쩌는 상상이 그냥 상상일지 진짜일지 확인하고 싶어서 막 온 몸이 간질간질거릴 정도였기에, 나는 쓰러진 병사들의 품에서 멀쩡한 숏소드를 찾아 주워들고는 폐허와 셰릴을 찾고자 최대한 빠르게 숲속을 달렸다.

가끔씩 마주치는 순찰조를 숏소드 투척으로 처리 해가며 조금 깊숙히 들어가자 울창한 나무 사이로 건축물의 일부가 분명한 회색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엘드미아. 이쪽."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셰릴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며 주위를 살펴보자, 나무 위에 올라가있던 셰릴이 고양이마냥 조용히 떨어지며 나에게 다가왔다.

"늦었잖아."

"협조적인 친구를 만나서 정보 좀 캤거든. 어쩌면 이 새끼들 아주 개새끼들일지도 모르겠더라."

"협조적이었다고?"

의아해하는 셰릴에게 이름모를 친구에게 들은 정보들을 공유하자 눈에 띄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거야?"

"그냥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될 정도로 호락호락한 놈들은 아닌거 같은데..."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화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었기에 난 셰릴에게 내 추측을 말해보았다.

"야. 파바에라 남작이라는 놈이 원흉인 거 같은데, 걔 목적이 왠지 명성일 거 같아."

"명성? 악명을 잘못 말한 거 아니고?"

"죽인 모험가들 시체를 모아두고 있다더라고. 근데 나중에 어차피 태울 거라는 식으로 말했대. 이번 토벌이 실패하면 농장 주인인 귀족이 사병을 대동해서 직접 토벌에 나선다고 네가 말했었지?"

열심히 머리 굴려 내놓은 추측을 이야기해주고 잠깐 안색을 살피자, 순식간에 이야기를 정리하고 판단해본 셰릴의 단무지 눈썹이 분노를 풀풀 풍기며 뒤집혔다.

"이 무슨 찢어죽여도 시원찮은 악마같은 발상을...?"

"순전히 내 추측이긴 한데 이야기가 좀 맞물리는 거 같지 않아?"

"모험가들을 속이고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적이라는 악명마저 죽은 이에게 뒤집어 씌워 이용 해먹는다고? 이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발상이 맞는 거냐?"

과학 수사고 뭐고 없는 세상이다.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온갖 괴물들과 인적재해로 인해 죽어나가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 세상이고. 누군가의 죽음을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는 건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길드도 그럴 것이다. 60명의 녹, 청급 모험가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점에서 쓴맛을 느끼긴 하겠지만, 그들이 진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는 건 귀족 사병마저 심각한 피해를 입고 도적들을 토벌하지 못한 다음일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파바에라 남작은 모아놓은 모험가들의 시체에 옷을 입히든 뭔 개수작을 부리든 도적마냥 대충 흉내낸 뒤 모조리 태워버릴 것이고, 좀 더 극적인 연출을 노린다면 그 모험가들의 모험가 태그를 떼어 길드에 반납할 것이다.

그랬다면 영웅적인 신인 귀족 파바에라 남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만 없었다면 그 계획은 아마 성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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