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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0화 (40/412)

"번거롭게 물어보는 걸 참 좋아하네. 그런 건 댁 부하한테 마저 물어보시지?"

턱으로 파바에라 남작의 뒤 켠에 서 있는 인솔자를 가리키고는 벨트에서 검집을 풀어낸 뒤, 그대로 땅을 집으며 삐딱하게 몸을 기대 매우 불만스럽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동시에 파바에라 남작과 사병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본다.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본격적으로 오러와 관련된 훈련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난 마나와 오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원석에 가까운 마력을 주무르는 탓에, 정제된 마나와 오러라는 건 내 기준에서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들은 평상시에 흐르는 오러만 보더라도 상대방의 강약을 구분지을 수 있다는데...난 정말 개뿔도 모르겠다.

왕의 제 3검씩이나 되는 에카프에게서조차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러가 느껴지는 수준의 색적능력이다. 남들은 조금만 오러를 익히더라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라는데 말이지.

"흐음. 많이 지친 것인가? 꽤나 날카로운 반응이군."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눈 앞에 있는 파바에라 남작과 호위병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느낌이 없다.

별 기대를 안 하긴 했어도 숲속에 있는 지휘부의 20명은 지들 사이에서는 정예라고 했다. 비록 괜찮은 수준이었던 것은 마지막에 검을 반갈죽 당한 놈 정도였지만, 아무튼 나에게 정보를 전달해준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 있는 놈들은 최소한 반갈죽과 동급이거나 강해야 정상이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영 느낌이 안온다.

뒤통수를 긁는 척 하며 셰릴에게 슬쩍 시선을 돌려봤지만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건지 정말 별거 없는 놈이라서 감흥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긴, 겉으로만 봐도 사투를 펼치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배려가 부족했어.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의뢰를 한 입장에서 자네의 증언을 마냥 믿을 수는 없기에 잠깐 협조해주면 좋겠군."

"그 협조가 의미하는 게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라.' 같은 거면 거절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 그건 알아서들 하세요. 남작님이 방금 말한 거처럼 우리는 진이 다 빠졌거든. 아직 숲속에서 싸우는 놈들이 정리된 게 아니라서 다시 갔다가 놈들하고 마주치면 위험해."

"사실 그 부분이 조금 걸려서 말이지. 우리가 놈들을 관찰하면서 알아낸 것 중 하나가...지휘부에 이상이 생기면 신호탄 같은 것을 이용해 숲에 포진해있는 동료들을 불러 모은다는 거였거든."

와. 이렇게 노골적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데 자네들이 진입한 시간도 그렇고...신호탄이 쏘아지지 않은 것도 그렇고. 걸리는 게 조금 많아. 자네들이 얼마나 빨리 들어갔다 나왔는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사기를 치고 있지 않냐는 말을 참 열심히 돌려서 말하시네. 귀족이라 그런가?"

한껏 미간을 찡그리며 최대한 아니꼬운 표정과 어조로 말을 쏘아 뱉어본다. 삐딱한 자세로 검 손잡이에 손을 걸치자, 파바에라 남작을 제외한 사병들이 반응했다.

"허튼 짓거리 하지마라 모험가."

"실력을 과신하다가 개죽음 당하면 돈도 못 받잖나?"

그 반응은 주인을 향한 모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두고 싸울 의지를 표명하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충성심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화난 척이라도 해야 고민이라도 해보는데, 너무 적나라하게 비웃음만 가득 찬 얼굴들이라 숲속 친구가 전해준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굳이 더 확인할 필요를 못 느낄 수준이다.

"재밌는 소리를 한다 너희? 우리 둘이서 지휘부를 작살낸 걸 단순 계산해도 혼자서 열 명씩은 죽이고 온 건데, 겨우 네까짓 것들이 막을 수는 있고?"

"하. 꼴을 보아하니 더 싸울 상황도 아닌데 그게 상관이 있나?"

"상관 있지. 더 못 싸울 꼴이라도 너네 정도는 한쪽 눈 감고도 이기는데."

내 반응에 놈들은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웃어보인다. 매우 좋은 징조다. 나를 얕잡아본다는 건 지금 우리 몰골이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뜻이고, 싸울 경우 더 쉽게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만. 굳이 언성을 높일 필요 없지. 하지만 설령 자네의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이 목 세 개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네. 도적 토벌은 처음인가?"

"뭐, 처음이긴 한데 모가지 갯수대로 돈 받는다는 건 알지."

"그럼에도 다른 도적들의 수급을 남기고 이들만 챙겨온 이유가 뭐지?"

"확인하려고 그랬지."

"확인?"

"어. 안 쪽에서 도적인 줄 알았던 새끼 하나 족치니까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최대한 느긋한 자세로, 검에는 여전히 손을 올려둔 채 나는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꾸미며 말을 이었다.

"지들이 남작의 사병이고 없는 명예를 꾸미기 위해 모험가들을 유인해 죽이고 있는 중이라지 뭐야?"

파바에라를 중심으로 다섯 씩 나눠져 서 있던 사병들이 거의 동시에라고 해도 될 정도의 기세로 검을 뽑기 위해 몸을 틀었다.

바짝 조여진 신경이 마치 슬로우 모션마냥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나보다 살짝 뒤에 서 있는 셰릴을 굳이 노리는 이들은 없다. 정확하게 나부터 죽이고 보겠다는 기세로 검이 휘둘러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바에라는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뒤로 몸을 빼며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려는 중이다.

그 모든 게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이뤄지고 있으며, 그걸 스스로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감탄하며 난 표정을 풀었다.

육체에 부담을 줄 정도로 잔뜩 먹인 마력을 동력 삼아 앞으로 튕겨 나가면서 검을 잡아 쥔다.

발검의 시간마저 줄이기 위해, 검을 뽑을 뿐만 아니라 검집도 뒤로 빼며 던져 버린다. 그 일련의 과정을 마쳤을 땐 이미 10명이 나를 노리던 간격을 진즉에 지나치고 정면으로 포위를 뚫고나가 파바에라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바로 죽일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검을 쥐려 하고 있는 파바에라의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잘라내는 것만으로 끝내고는 몸을 돌려 다음을 준비한다.

"크악!"

"오러?!"

이 모든 행동에 1초도 안 걸렸다. 스스로의 몸을 혹사시켜 낼 수 있는 결과에 감탄하고 싶은 걸 겨우 억누르며 검을 머리 위로 눕혀 들고 자세를 잡자, 열 명이 전부 나를 향한 채 경악으로 물든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병신들."

사람이 둘인데 나만 보고 있어?

"왕가의 비호를 무시하고 능멸한 죄!"

그런 놈들의 뒤통수에서 셰릴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셰릴 츠신 오가토르프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

비록 나보다는 어쩔 수 없이 느리다한들 셰릴도 오러 사용자다. 놈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진 그 틈에 이미 앞으로 뛰쳐나온 그녀는 외침과 동시에 두 명의 목을 썰어버리며 나아갔고, 날붙이가 살을 베는 소리에 당황한 놈들은 결국 우리 둘 사이에서 역할 분담조차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오가토르프!?"

"씨, 씨발!"

음. 놀란 이유가 예상치 못한 이름 탓이었나보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정신줄 놓은 놈들 따위를 상대하는데 시간을 끌면 마왕군 지휘관을 어떻게 죽이겠는가?

무엇에 놀랐든 간에 제때 반응하지 못한 놈들은 검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오히려 놈들보다 셰릴이 선보인 기술이 더 놀라울 정도로 싱거운 전투였다.

그녀는 어중간하게 검을 섞은 녀석들을 반격으로 썰어버리며 나아가, 네 명을 연속으로 베어 죽이는 게임에서나 볼법한 콤보 기술을 선보였고, 난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아주 기가 막힌 반격기였다. 예술이네 예술."

"음.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깔끔하게 들어갔어. 만족스럽군."

15살의 꼬마애가 사람 죽이는 기술이 깔끔하게 들어갔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하는 건 좀 어떤가 싶지만, 원래 그런 세상이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확인 사살이 필요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처리한 놈들을 뒤로 한 채 쓰러진 파바에라와 뒤로 자빠져서 벌벌 떨고 있는 인솔자에게 다가간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기로 했다.

"파바에라 남작. 내 집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을 휘두르다니, 너무 위험해서 다 죽여버리고 말았잖은가?"

"으, 으아아..."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벌벌 떠는 파바에라와 셰릴을 뒤로 한 채 나는 인솔자에게 다가갔다.

"야."

"히, 히이익!"

"히익은 씨발 바퀴벌레 봤을 때나 히익이고 이 새끼야!"

딴생각 못하도록 윽박지르며 바닥에 검을 박아넣자 놈은 그대로 온 몸을 쭈그리며 외쳤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전, 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거야!"

"제... 에? 예?"

"시키는 대로 한 거! 네가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걸 낱낱이 고하는 것밖에 없지! 당연하지 않겠냐?"

"무, 물론이지요! 물론 다 말해야지요! 저 사악한 파바에라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었는지 제가 전부 말할 수 있습니다!"

"가드웨리 네 이노오오옴!!"

"감히 내 앞에서 언성을 높히느냐 역적놈아!"

"끼야아아아악!"

뭔가 질퍽한 고기를 걷어차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기에 난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저런 소리가 났다는 건 절단면을 걷어찼다는 건데, 그런 광경은 결코 심신에 좋은 광경이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눈을 굴리던 인솔자는 내 뒤의 광경을 보고는 더욱 사색이 되며 땅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고 싶어?"

"무, 물론입니다!"

우리 친구 웨리가 물기 가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절박함을 내비친다. 숲 속 친구도 그렇고, 난 이렇게 협조적인 놈들에겐 매우 호의적인 편이다. 애당초 이 놈이 나한테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까라면 깔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녀석들에게까지 책임을 물리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난 쭈그려 앉아 웨리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 너는 이제부터 수다쟁이 웨리란다."

"에? 저는...아앗! 예! 맞습니다! 저는 수다쟁이 웨리입니다! 수다쟁이 웨리는 알고 있는 모든 걸 수다스럽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새끼 눈치가 백단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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