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1화 (41/412)

수다쟁이 웨리는 자신의 본분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그가 밝힌 내용은 우리가 설마설마하던 내용과 거의 일치 했다. 차이점이라고는 좀 더 디테일한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것 정도?

"파, 파바에라는 원래 소규모 용병단을 이끄면서 일이 있으면 용병일을, 없으면 없는대로 도적질을 하던 놈입니다. 으레 질 낮은 용병이라는 것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하나, 파바에라는 그들보다 좀 더 성실하게 돈을 모으고 잔머리에 능하다는 차이가 있었죠."

그는 실상 파바에라가 남작위를 돈 주고 산 뒤 고용된 입장이었지만, 셈에 능하기도 하고 여러 인연이 닿은 탓에 측근으로 일하고 있었다더라.

아무튼 남작의 본명은 바에라 라고 한다.

"앞의 '파'는 왜 붙인거야?"

"네, 네 글자 정도는 되야 귀족같은 느낌이 든다고..."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병신 같은 발상이로군. 두 글자인 셰릴이 훨씬 귀족답지 않냐 웨리야?"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결국 돈으로 작위를 살 생각이나 하는 놈의 발상이란 그 정도인 것이죠!"

열렬한 호응과 더불어 청산유수마냥 흘러나오는 입담이 참으로 정감 넘치는 웨리였다.

아무튼 순 병신 같은 발상과는 달리 파바에라의 금전감각과 사업 능력은 주변의 평균을 웃도는 수준은 되는 게 사실이었나보다.

꾸준한 용병일과 약탈과 도적질로 번 돈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모은 파바에라는 몰락 귀족에게 남작위를 사고 저택을 구매하고, 와인 농장까지 구입한다는 쾌거를 이뤘다.

새끼, 솔직히 성실한 수준만 놓고보면 골 때릴 정도로 난 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실하다.

그게 나쁜 일로 성실해서 문제였지, 평범하게 용병짓만 했어도 충분히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충분히 잘 나간다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야욕이 더 컸던 거겠죠. 그는 명예에서도 도적질과 같은 편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해서 모험가다. 우리들 입장에서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게 아닌가 싶었던 내용도, 결국 약탈질과 도적질을 병행하던 놈의 감각으로는 비슷한 일이었던 거였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증거만 안 남기고 안 들키면 된다 라는, 참으로 기가 막히기 그지없는 범법적인 사고 방식을 기반으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한 게 벌써 몇 개월 전인 것이다.

실제 놈의 행동은 치밀했고, 알리바이를 위한 뒷공작도 성실하게 이어왔다. 무엇보다 놈을 도와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끼들까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나도 셰릴도 적잖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도왔다고? 저 새끼가 돈을 주고 고용한 것도 아닌데?"

"예, 항상 파바에라 홀로 독대를 해서 신상 정보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세상 씨발 말세다 말세야 아주."

내 진심이 느껴진 것인지 우리 웨리가 움찔거렸기에 나는 손을 한 번 흔드는 것으로 개의치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딴 불법적이기만 하고 돈도 안 되는 사업 아닌 사업에 투자자가 달라 붙은걸까? 악당을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파바에라가 은혜를 갚기까지는 너무 불확실한 요소가 많지 않나?

정치적으로 써먹을 방법이 있어서 누가 진짜로 키운건가 고민해보았지만 평범한 내 지성으로는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진심 아직 절찬리 교육 중인 용사새끼 명예작 시켜주려고 금지옥엽마냥 악당새끼 하나 육성하던 걸 내가 걷어 차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결국 세상을 극단적으로 사악하게 물들이려는 정신병자가 어딘가에는 있었나보다라는 식으로 사고를 마무리 지은 나는, 침묵을 고수한 탓에 바짝 쫄아있는 우리 친구 웨리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겁 먹지마 웨리야. 넌 지금 지극히 협조적이라고 생각한단다. 엘드미아 에가는 협조적인 놈에겐 관대해요."

"조,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좀 더 드릴 정보가 없을까 고심하다보니 표정에 드러났나보네요! 하하하!"

"이야, 우리 웨리! 대체 왜 저딴 씹새끼 아래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눈치도 빠르고 이빨도 잘 터는구나! 네가 검을 못 써서 정말 다행이다!"

"하하...예? 검이요?"

"그래. 검. 네가 나한테 검이라도 휘둘렀으면 지금쯤 저 새끼들이랑 같이 뒈져있을 거 아니냐. 우리 유쾌한 웨리를 그렇게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가 또 존나게 아쉬워져요."

웃으면서 약간의 협박을 섞자 웨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가 풀리며 다시금 웃음을 가장한다.

나쁘지 않다. 살려두면 모든 걸 접고 귀농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써먹을 수준이 되는 놈이다. 설령 귀농을 하더라도 신념 주입이 끝난 인간이 하나 늘어난 거니까 얻을 정보를 다 얻은 입장에서 나쁠 게 없었다.

"저런 놈을 살려둘 가치가 있어?"

차후 길드에서 모든 상황을 증언하겠다는 조건 하에 목숨을 보장해주기로 한 웨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셰릴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에게 물어왔다.

"글쎄?"

"글쎄라니..."

"정보를 다 불고, 증언까지 하는 대가로 목숨을 붙여주는 거래를 했으니 지킬 뿐이지. 놈의 가치가 어떨지는 나중에 알 게 되거나 영영 알 수 없는 게 정상 아닐까?"

사건의 전말을 알면서도 많은 모험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는 했지.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애당초 이번 일도 철저한 우연에 의해 엮였을 뿐이지 날 노린 것도, 내 주변의 누군가를 노린 것도 아니다.

15살짜리 꼬마애가 실전에서 살인기술을 만족스럽게 실천하는 세계에서 선악의 기준으로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할 생각 따위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저 날 건드렸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거면 되는거다.

"하지만 엄연히 죄에 가담한 자가 아닌가? 어찌..."

그런 내 판단이 꽤나 마음에 걸리는지 순간 귀족 셰릴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참 헷갈리면서도 알기 쉬울 때가 있는 말투다.

"그게 탐탁지 않으면 나중에 죽이던가."

"...응?"

딱히 이상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셰릴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이는 게 맞다면 나중에 따로 찾아내서 죽여. 내가 한 건 당장의 목숨과 정보를 맞교환한 거 뿐이지, 쟤를 계속 지켜주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

녀석이 내게 먼저 순수한 의도로 호의를 베풀었다면 몰라도, 그것도 아닌데 당연히 나중 일은 관심 없다.

애당초 놈이 말한 정체불명의 후원자가 어떻게 반응할지조차 미지수 아닌가? 가만히 냅둬도 알아서 죽게 될 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나랑 그런 거래를 했고, 녀석은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확실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놈을 계속 이용할 생각인가? 악인에 불과하더라도?"

"딱히 계속 이용할 생각은 없다만, 뭐 또 어디선가 마주치면 써먹을 수는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선악이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구분되지는 않는 게 바로 세상인 거야 셰릴."

그러나 섣부른 판단으로 굳이 미리 재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 놈이 구질구질한 사연이 있음에도 내가 수틀릴 것을 걱정해 입을 다물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며 선함을 추구하는 건 결코 나쁘게 볼 수 없는 법이다. 비록 씨발 내가 착하게만 살려다가 보상은커녕 개죽음을 당한 전생의 소유자라 한들, 그 마음 씀씀이는 좋은 게 맞다고 믿고 있다.

충분히 대견한 모습이었기에 머리를 헝클어트려주면서 한 마디만 덧붙였다.

"물론 모든 놈들한테 다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건 여기서 내가 죽인 놈들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겠냐. 가장 기본 베이스는 나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은 놈이어야 하는 거야. 그 외엔 얄짤 없어."

"착한 이가 너한테 해를 끼치면?"

"경중을 따져보겠다만 선 넘으면 죽어서 착해지게 되겠지."

나에게 그 정도 해를 입히고도 착할 수 있는 놈은 죽은 놈뿐이다.

결국 이야기를 정리하고, 도적을 빙자한 파바에라의 숲속 사병들을 정리한 모험가들이 차례차례 돌아와 사건의 진상을 전해듣고 분노로 눈을 까뒤집는 한 차례 소란이 지난 후에야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사망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딱히 이들의 실력이 좋았다기보다 이상한 상황을 인지한 사병들이 발을 뺀 게 원인인 듯 했다. 실제로 살아남은 모험가들이 챙겨온 목의 수는 40은커녕 절반도 되지 않아 보였다.

파바에라는 우리가 별 관심을 주지 않는 사이 무관심 속에서 과다 출혈로 죽어버렸다.

어차피 딱히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미 웨리를 통해 문서화 된 증거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인지라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뭐, 화를 식히지 못한 모험가들이 아쉬워했다면 아쉬워하긴 했네.

그래도 길드에 보고 후 처분 될 파바에라의 자산 일부 정도는 길드의 관리미흡 및 추가 보상의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올 게 확실한 만큼 그렇게까지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물론 전부 뺏고 싶은 게 본심이었지만, 모험가의 입지라는 게 그 정도다. 나와 셰릴만 있었다면 당장 가서 돈 되는 건 싹 다 털어버렸을 텐데 아쉽기 그지 없다.

하지만 길드에서 분배해주는 자산의 일부라 할지라도 결코 적지 않은 수익임은 자명했기에, 전투와 상황에 대한 열기가 식은 머리로 계산을 때린 모험가들은 예상 외의 수익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마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 안에 가룬은 없었다.

그게 좀 아쉬웠다.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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