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였던 마차는 2대가 되어 수도로 귀환했다. 그러고도 자리에 여유가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사건이 우리들로 인해 빨리 일단락 지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작정하고 매복과 습격을 노리는 사병들을 능력 부족한 모험가들이 상대한다는 건 결국 그런 것이었다.
그마저도 우리가 아니었으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셰릴조차 위험했다. 설령 힘겹게 숲속에 있는 놈들을 다 잡았을지언정 아군이라 믿었던 숙영지의 사병들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수도 있는 거니까.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그 사실은 매우 중요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강조해서 길드에 보고했다.
아무리 내가 아쉬울 거 없는 봉급을 받으며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일하고 있고 셰릴이 귀족이라 할지라도 무보수 노동이라는 건 별개의 문제다. 우리 성미에도 안 맞고 말이지.
실력 차이로 인한 만장일치를 통해 이번 토벌단의 대표에 가까운 입지에서 나와 셰릴은 접수원이 식은땀으로 세수를 해야할만큼 몰아붙이며 길드에 책임을 물었다. 모험가들은 그 뒤에서 사나운 얼굴을 하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내었다.
사실 이게 어디 모험가 길드만의 문제였겠냐마는, 그건 당연히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송구스럽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위에서 전달 받고 싶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덕분에 우리는 길드장과 직접 대면을 한다는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상황에 놓여야만 했다.
욕심이 과했다...!
"다른 모험가 분들의 이야기도 취합한 상태이나, 아무래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신 두 분과는 별도의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당연히 의심도 취조도 없는 지극히 우호적인 자리였지만 하루 종일 마차 타랴, 오러 휘두르며 사람 썰어제끼랴 아주 바쁘기 그지없는 하루를 보낸 우리는 지극히 피로에 찌든 상태였기에 결코 편한 만남의 자리는 아니었다. 내일로 미뤄도 상관없는 걸 오늘 당장 부탁한다며 끌고 올라온 길드에 우리가 짜증을 내지 않은 건 순전히 그들이 취한 자세와 우리를 대하는 자세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큰 일을 겪고 피곤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약소하지만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차와 다과를 준비했으니 편히 드시죠."
그 다과라는 게 무려 최고급 초콜릿이었다. 사실 나도 그게 얼마나 비싼건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셰릴이 반응해서 알게 되었다. 그냥 반응한 것도 아니고 진짜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며 셰릴이 중얼거렸다.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초콜릿에 관심이 있으신가보군요. 저희 길드에서도 귀빈들을 위해 조금씩 구비해 두는 물건입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시겠지만...구하기가 좀 힘들죠."
탄탄한 근육질 몸을 정장같은 차림 속에 미처 다 숨기지 못한 길드장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알려주었다. 거기엔 자부심마저 담겨있어서 나는 셰릴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싸?"
"저거 한 상자가 상단 교역 금화 한 개 정도 한다."
히이이이이익.
아찔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한 가격을 들은 나는 일말의 주저없이 초콜릿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한 상자에 30개 정도 밖에 안 들어 있는 것 같은 초콜릿이 교역 금화 한 개 값이라고?
대충 초콜릿 한 개가 은화 두 개라는 소리인데 이건 못 참지.
확실히 입에 넣자마자 전생한 후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단맛이 미각을 강타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전생에서도 고급 초콜릿이라는 건 먹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그 한을 이렇게 풀게 되네. 이런 쪽에 문외한인 내 혀조차 이 단맛이 고급스럽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로 맛있다.
하지만 태생이 귀족인 셰릴은 당장 눈 앞에 놓인 미끼에도 불구하고 냉철함과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길드장을 응시한다.
추측을 제거한 말끔한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그 분위기는 쉬이 바뀌지 않았다.
자신을 엔그림이라 소개한 길드장은 겉보기에도 범상치않았다. 전사 그 자체인 외형이나 그에 어울리지 않은 지적인 이미지를 자극하는 안경보다도 그 시선이 탐탁지 않다.
눈도, 입도 웃고 있지만 정작 눈동자는 자기 앞에 앉은 이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파악하고 살펴보며 가치를 판단하고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엔 악의도 호의도 없이 철저하게 사무적인 태도만이 담겨 있었다.
전생에서도 종종 볼 기회가 있던 눈. 사람을 다뤄야 하는 일을 하는 사장들에게서 가끔 볼 수 있었던 시선이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렇게 탐색하면 고까워질 수밖에 없는데 말이지.
"초콜릿은 마음에 드는데 가치 판단에 들어가는 그 시선은 영 별로네요. 우린 이미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 거 아닌가?"
눈 앞의 대상이 자신에게 얼마만큼 가치있는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기계적인 시선은 결코 즐거운 게 아니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어도 눈치채면 오싹해지는데 초면부터 파고 들어오면 한 대 때리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도 물리적으로 칠 수 없다보니 말로 때렸다. 내 반응은 미처 예상 못한 것인지 셰릴과 엔그림이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엘드미아?"
"......실례했습니다."
엔그림은 그렇다쳐도 얜 왜 당황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자 금방 표정을 관리하며 엔그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살짝 고개 숙여 사과한 엔그림이 멋쩍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예상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신 분들인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악의가 없는 것도 알고는 있는데 개인적으로 좀 꺼림칙해서 그런거니 너무 괘념치 마시고."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못을 바로 잡아줬다. 심지어 원래대로라면 다 죽어야할 모험가의 생존에 지대한 공헌도 했다. 살짝 진상 짓을 했어도 과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따져봐도 당장 실력 있는 모험가가 혜성처럼 등장했으니 쌍수를 들고 마냥 환영하면 환영했지, 저런 시선을 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지지부진하게 이야기를 끄는 것도 실례되는 일이니 간결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과 연계된 의뢰를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간을 보는 듯한 시선과는 달리 매우 시원하게 본론부터 꺼내드는 모습은 호감이 갔다. 하지만 그게 금화씩이나 하는 초콜릿까지 내밀며 제안할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금화 초콜릿까지 먹여가며 할 이야기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회의적이군."
시원하게 튀어나온 본론만큼이나 시원하게 일어나는 의구심을 눈치 챈 엔그림이 두 손을 흔들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우선 60명이나 되는 모험가가 떼죽음을 당할 수 있었던 심각한 사건을 최소한의 인명피해로 마무리 지어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사실 40여명의 목숨 값과 길드의 명예를 생각해볼 때 이 정도는 싼 편이죠. 추가로 지급해드릴 보상과는 별개인 순수한 호의에 불과합니다."
서두부터 지극히 타당한 설명이라서 난 초콜릿이나 주워 먹으며 그의 말을 경청하기로 했다.
내가 두 개째 초콜릿을 입에 넣자 셰릴도 잠깐 눈치를 보다가 빠르게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이야기부터 설명 드리지 못하는 것은 이 사안이 길드만의 문제가 아닌 탓에 보안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두 분이 의뢰를 수주하기로 결정하시더라도 조금은 까다롭다고할 수 있는 절차를 걸친 뒤에 세부사항을 전달드리게 될 정도로 엄중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연히 이를 거절하셔도 그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 개째 초콜릿을 먹는 나와 달리 엔그림의 말을 들은 셰릴의 표정과 손이 살짝 굳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며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 일은 왕국의 안녕과 관련 있는 문제인가? 아니면 사적인 문제인가?"
어느새 완벽하게 귀족 셰릴로 전환된 그녀가 감정 없는 눈동자를 엔그림에게서 떼지 않으며 물었다. 내가 읽지 못했던 무언가를 읽은 것인지, 그저 지레짐작을 바탕으로 던진 질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녀의 태도가 방금과 달리 한없이 진지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아무리 취미 삼아 모험가를 하더라도 셰릴은 의뢰 자체에는 진심을 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모험가 의뢰란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으니까.
실력과 경험을 기르면서 왕국에 도움이 되는 일.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 놀랍게도 이 귀족 아가씨는 모험가 의뢰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만약 엔그림이 개인적인 의뢰를 한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초콜릿을 털어먹고 나가버릴 게 분명하다.
"저희들이 예상하기에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엔그림은 고민 없이 왕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사안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못해도 우리 두 배는 살았을 것 같은 남자가 겨우 15살짜리 애 둘을 앉혀 놓고 위협을 논한다.
하지만 불과 한두 살 차이로 우리보다 두 단계는 더 높은 등급을 지닌 유명한 모험가들도 멀쩡히 존재하는 세계다. 말이 두 단계지 경우에 따라 정말 세상을 구하는 수준의 대모험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죽이고, 생존하고, 이를 위해 열심히 머리 쓰며 성숙해지는 이들 앞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실력만이 전부다.
그랬기에 엔그림도 우리를 액면가로만 판단하지 않고 실력을 알고 싶어 했으며, 셰릴 역시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본격적으로 언급하는 엔그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실력은 이러한 부탁을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그러다보니 가능한 많은 도움을 받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굳은 얼굴로 말을 맺은 엔그림을 앞에 두고 셰릴은 고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