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는 거칠다.
단순히 성향을 떠나, 법적 의무와 보호를 벗어던졌기에 무력을 통한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변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법보다 주먹이 훨씬 가까운 가장 확실한 예시 중 하나인 것이다.
길드장 엔그림은 2층 방에 있는 창문을 통해 1층의 난장판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되새겨보았다.
광견 엘드미아 에가.
불과 2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그 존재감을 길드에 새겨넣은 자.
처음엔 지방에서나 볼 법한 정신 나간 놈이 수도로 기어들어왔다고 여겼었다.
의뢰와 사무적인 일을 처리할 때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종종 교양까지 넘치는 태도를 보이면서 특정 상황에만 연관되면 180도로 뒤바뀌었으니,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걸까?"
오가토르프 가문의 영애와 붙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사용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어제 봤던 두 사람은 대등했다. 오가토르프 영애가 의견을 피력하든, 엘드미아가 의견을 피력하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에 불과한 것을 엔그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엘드미아의 기록은 오그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편지도 보내고 있으며 그쪽 지부에서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면 굉장히 좋은 평판의 일반인이었다고 한다.
저 나이에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은 이야기도 들려올 정도로 범상치 않은 전적도 있었기에 일부는 오가토르프의 사생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엔그림은 그 추측에는 회의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오가토르프는 사생아마저 그 특유의 눈동자와 머리칼을 지니고 태어났으니까. 무엇보다 현 가주인 에카프는 수도사가 따로 없을 정도로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몇 안 되는 귀족이다.
차라리 그의 재능을 발견해서 식솔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파바에라 사건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바에라 용병단의 핵심 전력들을 족족 일격에 썰어버렸다라..."
60명이나 되는 모험가가 대동 되는 일이었다.
귀족 개인이 제시한 의뢰치고도 굉장히 큰 규모였고, 사후 보고만으로는 힘들지도 몰라 실력 있는 길드원을 몰래 잠입 시켜 놓은 상태였기에 얻을 수 있었던 정보들이 하룻밤 사이에 문서화 되어 그의 책상에 놓여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뛰어난 오러 사용자가 분명함. 일반적인 궤를 벗어난 것으로 사료 됨.
오가토르프 영애에 대해 조사했을 때조차 '확실히 천재이나, 아직은 또래보다 많이 나은 수준.' 이라는 글귀로 평가를 마쳤던 조사원이었다. 덕분에 엔그림은 간만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 평가가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바에라 용병단은 전장에서 분명 이름을 떨치던 용병단이었으니까. 이번 의뢰에 참여했던 모험가들의 수준이라면 그들이 판 함정에 걸려 전멸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때 느꼈던 참신한 충격을 되새기며 엔그림은 다시 1층의 광경에 집중했다.
"기, 기어갈게! 만델리 항까지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아아억!"
"도, 도와줘! 제발 도와달라고 씨발!"
모험가에게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그건 길드에서도 장려하는 부분이다.
심성이 뒤틀린 자가 정점에 서는 것만 잘 관리하면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질서를 확립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당장 엘드미아 에가가 광견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까지 신전 신세를 지게 된 양아치 모험가들만 하더라도, 방치했으면 길드의 명성에 누를 끼쳤을 놈들이었다.
그들은 몸이 낫자마자 수도에서 도망치거나 정말 쥐죽은 듯이 지내고 있다.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아직도 신념 주입이 부족하구나. 이리 와 씨발. 살살 놔줄게."
"오, 오지마아아아!"
당텔 패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모험가라는 직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기만 믿고 설치는 부류. 엘드미아가 없었더라면 꽤나 오랫동안 골치 아팠을 놈들이었다.
이 모든 게 정말 단순히 광증에 가까운 기행에 불과하다고?
말도 안 된다. 엘드미아 에가의 행동에는 분명한 규칙이 존재했다.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
엔그림은 부디 엘드미아가 길드에 부합하는 인재이길 간절히 바라며 결단을 내렸다.
만성적인 인재 부족으로 고통 받는 건 너무나도 피곤했다.
◈
"다시는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않는다."
"다시는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않는다!!"
"진짜 마지막 자비다. 패거리 더 모아서 복수하겠답시고 오면 너넨 그날로 저승길 건너는거야. 오래 살고 싶으면 잘 판단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당텔 너 이새끼는 한 번만 더 지랄났다는 소문 들리면 각오해라. 고자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흑흑...다, 다시능 앙그러게 씀니다. 차카게 살게씀니다..."
작살을 내놓은 놈들을 한 차례 흝어보니 속이 좀 뚫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패고 싶기도 했지만 더 이상 구경꾼을 늘리는 것도 그래서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더 쳐맞고 싶지 않으면 꺼져."
놈들은 정말 바람처럼 뛰쳐나갔다.
자극적인 볼거리에 열광하던 모험가들도 만족스러워하며 흩어졌다. 놈들이랑 뭔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이들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주면서 접수처로 다가가자, 간식까지 주워먹으며 구경하던 여자 접수원들이 웃으며 말했다.
"아주 속이 다 후련해지도록 패셨네요!"
"저 개새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요!"
당텔 이 새끼 역시 지은 죄가 많았나보다. 더 이상 머릿속에 놈의 이름을 담아두고 싶지 않았기에 난 애써 웃어보이며 어제 열심히 쓴 편지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 알았으면 진즉에 좀 팰 걸 그랬네. 편지 좀 붙이려는데 도와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이번에도 오그웬의 아실리에 씨인가요?"
지난 1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하게 보내다보니 이젠 척하면 척이다.
"이번에는 공짜로 해드릴게요! 당텔 놈 버르장머리를 고쳐놨으니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와. 앞으로 편지 보낼 때마다 저런 놈 좀 나왔으면 좋겠네."
내 진심에 웃음으로 화답해주는 접수원들과 잠깐 담소를 나눈 뒤 나는 길드를 나왔다.
저녁에 다시 오라고 했으니 그 사이 장비나 수선해야...
"엘드미아 에가 경?"
"에?"
경? 누가 나한테 그렇게 고풍스러운 호칭을?
벙찐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딱 봐도 군인처럼 각 잡힌 여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대충 보면 전사고 자세히 보면 기사라는 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도 나랑 만난 적은 없어 보이는 여성이다.
"레비엥 변경백의 기사인 레니사라고 합니다. 오가토르프 가에 물어보니 이곳에 계실 거라고 하더군요."
"오."
허어. 라그니스가 기사를 거느린다니. 막상 실물을 보고 나니 기분이 참 오묘하다. 그러고보니 복수를 위해 전장에 퍼져있던 사용인들도 있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그중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처음 뵙겠습니다. 엘드미아 에가라고 합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죠?"
"변경백께서 에가 경을 뵙고자 하십니다."
자꾸 경 경 해서 뭔가 간질간질거리지만, 그런 것보다 라그니스가 보자고 한다는 게 중요하지.
아무래도 잠깐 숨 돌릴 틈이 나서 간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의미이리라. 라그니스가 묵고 있는 저택과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니 시간은 충분할 거다. 어차피 라그니스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을 테고.
"그러죠. 그전에 제가 장비를 수선해야 해서 그러는데, 먼저 가서 이야기를 전달해주시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변경백께서 꼭 같이 오라고 하셨기에 이야기를 전달하는 목적이라 하더라도 저 혼자 돌아가는 걸 반기지는 않으실 듯 합니다."
뭐야. 걔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길래 저렇게 눈치를 보는 거지? 변경백이라는 입지 때문에 그러는 건가?
"뭐. 그게 편하시다면야. 어차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라그니스의 신하를 내가 막 대할 이유는 없으니 가볍게 예를 취한 뒤 예정대로 대장간으로 향했다.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도 없었고, 그건 자신을 레니사라고 밝힌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이어졌다. 전생이었다면 이런 침묵이 참 어색했을 텐데, 나도 사람이 바뀌긴 한 건지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침묵과 별개로 날 살펴보는 저 묘한 시선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그런 시선을 그냥 방치하는 것만큼은 성미에 맞지 않아서 대놓고 물어보자, 잠깐의 침묵 후에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별 건 아닙니다만, 혹시 변경백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라...레비엥 변경백께서 아무런 언질도 안 주셨습니까?"
"예. 그저 오가토르프 가에 엘드미아 에가라는 분이 계시니, 모셔오라고밖에."
내가 라그니스의 은인이라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아니긴 하지만, 이런 심부름을 보낼 정도면 측근의 기사라고 봐도 될 거 같은데 나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주지 않았다는 건......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변경백께서 알리지 않으셨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제가 따로 드릴 말씀은 없을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니, 뭐 실례까지야."
신하의 입장에서는 내 말이 무례를 지적하는 말로 들렸을 수도 있는 건가? 목소리에서 당황하는 기색마저 느껴져서 괜히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