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료도 직접 본 적이 있다더군. 검이 빛나는가 싶은 찰나 순식간에 적의 목을 떨군다고 들었다. 대단한 실력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지."
"이거 이번 의뢰를 진행하면서 소문의 실력을 보게 되겠군. 기대가 커."
처음엔 이 사람들이 광견이라고 부르던 게 미안해서 좀 추켜 세워주는건가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진심인 것 같은 반응이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대체 뭔 소리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심히 모양 빠지는 질문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광검이라니, 광견보다 낫긴하지만 참 낯간지러운 이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검 좀 빨리 휘두르는 걸 그렇게까지 표현하다니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 기분이군.
그런 시덥잖은 감상과 함께 이 상황 속에서 '왜 나만 내 이명을 모르는가?' 에 대한 의문을 되씹던 나와 달리, 굳이 의문을 되씹을 필요 없는 예카트리나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검이 빛나는거야?"
"빛에 반사돼서 빛난 거겠죠."
"에이, 영업 비밀이라는 건가? 별수 없네 그럼."
지극히 진심인 소감을 말했을 뿐인데 뭔가 멋대로 오해를 해버린 예카트리나가 아쉽다는 듯이 몸을 빼자 다른 이들도 굳이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 애당초 나도 모르는 거 설명하기 위해 쩔쩔매는 것보다는 이게 낫겠다 싶어서 그냥 엔그림을 바라보기로 했다.
"굳이 여러분들을 골라 모은 이유 자체는 단순합니다. 나름 기밀로 유지되는 의뢰이다 보니 갑자기 모여 움직여도 이목이 덜 쏠리며, 의뢰에 부합하는 능력을 소유한 분들을 섭외한 결과죠. 저뿐만 아니라 주요 길드원들의 의견을 한데 모아 만든 일종의 드림팀이기에 의뢰 완수에 대한 걱정도 굳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파티 자체가 걱정 안 된다면 다른 건 걱정되는 게 있나보군?"
긴이 정확하게 핵심을 말하자 엔그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네. 단 하나의 걱정. 기밀의 유지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거 아니야 길드장?"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가엔달에 공감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왜 굳이 엔그림이 나와 셰릴을 도적 의뢰 이후에 적임자로 여기고 포섭하려 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내가 없더라도 어지간한 의뢰는 다 찢어버릴 수준이다.
"우리들 사이에서 기밀이 새어나가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군요."
엔그림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혹여라도 잘못 짚으면 쪽팔린 상황이지만 엔그림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럴 일은 없어보인다.
"몬스터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여야 해서. 그 때 생존자가 남는 걸 경계하는 거였어."
"......맞습니다."
"아니. 잠깐만. 그래도 길드장께서 주는 의뢰니까 의심하려는 건 아니지만!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거 맞죠?"
"당연합니다. 마족 숭배자들이 목표니까요."
엔그림은 지극히 태연하게 흘러가듯이 말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한테는 평생 겪었던 것 중 손에 꼽을 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마족 숭배자.
마왕군과의 수년간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그게 의미하는 건 반역뿐이다. 그들은 실제 마왕군 혹은 마족과 결탁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전적도 있었기에 증거만 있다면 즉결 처분 감이었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실제로 마족이 목격된 겁니까?"
자그마치 7년 만에 처음으로 마족이라는 존재를 직접 만날지도 몰랐으니까.
"정황상 마왕군과 연관된 마족이 연관되어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비밀리에 때려 잡아야 할 정도의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차라리 군을 부르는 게 맞지 않나?"
예카트리나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이다. 애당초 반역으로 여겨질 정도의 일인데 굳이 모험가가 나서서 몰래 처리할 이유를 떠올리지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이 용사로 마왕을 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긴 전쟁으로 인해 내부에 마족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민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왕가에서 의뢰한 거죠."
암살.
물론 진짜 아무도 모르게 홀로 슥삭 하고 죽이는 형태의 암살이 아니고, 대외적으로 낌새가 나올 틈도 없이 순식간에 치고 들어가서 빠르게 없애버린다는 의미에서의 암살이었다.
예로부터 안 들키면 아무튼 암살이었다.
"군은 티가 난다는 거로군."
"어쩐지 구성원의 균형이 돌격에 치중된 기분이긴 했지만..."
의외로 왕가에서 직접 의뢰를 수주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은 없었다. '민심' 때문이라는 설명 하나만으로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장기간 이어져온 전쟁은 나라를 좀먹고 있었다.
사실 7년 가까이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치고는 매우 멀쩡한 나라라고는 생각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만약 마족이 있다고 치고. 놈을 잡으면 어떻게 하면 되지?"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을 긴이 물어봐주는군. 당연히 나로서는 잡는 그 즉시 마족이 알고 있는 정보를 싹 다 털어보고 싶지만...
"정보를 캐기 위한 시도는 하되 실패 시 미련없이 죽여야 합니다."
"성공할 경우엔?"
"마찬가지로 죽입니다."
가차없는 이야기지만 상대가 마족이다보니 타당하다는 느낌밖에 받지 못했다. 무슨 국가의 원수라서 무조건 죽여야 하는 게 아니라, 마족이라는 놈들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마족은 철저한 힘의 논리로 구성된 종족이다. 인간과 달리 강한 놈일수록 요직에 앉고 강한 놈일수록 위험한 임무에 투입된다. 거기에 버림패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거나 성공하거나. 무식하기 그지 없는 방식이었지만 놈들은 그걸로 7년간 왕국에 전쟁을 걸고 있다.
그런 놈들이 왕국 한가운데에서 개수작을 부린다는 건, 어지간한 상황은 홀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뭐 하는 놈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이상 그런 전제를 기반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 중 누군가의 머리통이 깨져나간다.
물론 그렇다한들 전쟁 자체에 참여 못한 이상 마족 기준에서는 어중이떠중이다. 진짜 강자로 취급되는 마족들은 모조리 전장에 투입되거나 마왕을 호위하거나 게릴라 전술로 전선을 휘젓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이번 일이 나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제가 사실 마족에게 되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데, 개인적인 기회가 생길 경우 파티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재량을 좀 부려도 될까요?"
가볍게 손을 들고 운을 떼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마족과 대화를 하겠다는건가?"
"뭐 협박도 대화라면 대화겠죠? 이래 봬도 마족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공부를 좀 많이 한 편입니다. 다른 분들 중에 마족에게 정보를 뽑아내는 것에 자신 있는 분이 있는 게 아니면 그 기회는 양보 받고 싶네요."
가엔달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하자 이번에는 엔그림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질문했다.
"마족에 대해 공부했다니, 못 믿을 건 없지만서도 솔직히 보기 드문 경우군요. 무언가 이유가 있습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고 해서 공부했지 별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엔그림이 저런 질문을 당연하다는 듯이 던지는 것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왕국은 마족과 전쟁하면서 그치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새로운 무언가를 발굴해내기 위한 노력이 매우 부진한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하고 싸우는 것처럼 별다른 연구 없이 전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마족에 대해 쓰여진 정보가 없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전쟁 이전부터 이미 마족이라는 종의 생태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검증하며 결과를 꾸준히 내왔었다는 것을 왕립 도서관에만 가도 알 수 있다.
대체 왜 그런 정보들을 내버려두고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헛짓거리를 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딱히 뾰족한 수도 없다. 열변을 토해봤자 당장은 씨알도 안 먹히는 녹급 모험가에 불과한데 누가 제대로 들어주겠는가? 아쉬운 대로 독학에 힘 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지간한 이들보다 마족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그러한 내 지식과 반응을 수상히 여길 수도 있으니 아예 대놓고 쥐고 있는 패를 까고 이야기 하기로 결정지었다.
"7년 전 오그웬 변두리에서 있었던 첫 습격의 유일한 생존자가 저라서요. 복수를 하려고 하다 보니 좀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중입니다."
"...허어."
"와. 세상에. 진짜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당연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악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엔그림에게 던진 시선에 더욱 힘을 주며 마치 주변의 반응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다.
어째서인지 다른 이들보다도 가장 크게 놀란 엔그림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알아낼 생각입니까?"
"걔가 뭘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죠. 개인적인 관심사를 물어보시는 거라면 당연히 우리 마을 습격했던 지휘관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고 싶지만요."
여기까지 우연이 겹치면서 기회가 만들어졌다면, 어쩌면 정말 이번에 원수의 이름 정도는 알 게 될지도 몰랐다.
그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