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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49화 (49/412)

위험 여부를 다른 이들이 판단한다는 제약 속에서 나의 제안은 통과되었다.

파티로 움직이는 데 있어서 그것만큼 합리적인 제약도 없었기에 난 흔쾌히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애당초 나도 내 능력 밖의 상황에서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다. 하나뿐인 목숨 소중히 여겨야지.

"적의 위치도, 인원도 모두 파악은 된 상태입니다. 저희 길드원들의 예상으로는 계획을 수렴하여 실행하는 것부터 왕복 이동시간까지 다 합쳐도 3일이면 결착이 날 거라고 보고 있더군요."

접수원이나 모험가 길드원들의 일이라는 건 단순히 의뢰를 기록하고 보상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의뢰의 난이도와 형평성을 파악하고 조정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업무이자 모험가 길드의 가장 큰 의의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아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조용히 움직여야한다는 걸 제외하면 결국 측정 가능한 의뢰라는거군. 한시름 놓았다."

"갑자기 마왕군 간부 같은 게 튀어나오면 답도 없으니까요."

"하하. 아무리 그래도 측정조차 안된 의뢰를 넘기지는 않습니다. 그런 건 은銀급 이상에게 부탁하죠."

결국은 일이고 사업이다. 설령 길드가 왕국의 안녕을 위해 움직인다한들 모험가를 움직이는 건 돈이니까. 곧 있으면 등급이 오르고도 남을 이들을 굳이 고르고 고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것이다.

"말씀드렸다시피 왕가에서 나온 의뢰이다보니 보수 자체는 비싼 편입니다. 입막음 비용의 의미도 있어서 액수는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얼만데요?"

엔그림은 말 없이 손가락을 두 개 폈고 나를 포함해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저 당당함을 내포한 손가락이 의미하는 바가 한낱 은화 따위일 리 없다!

"금화?"

"금화입니다. 그것도 개인 당."

지금까지 침착하기 그지없었던 가엔달과 긴마저도 흥을 감추지 못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예카트리나는 손으로 셈을 하기 시작했고 렐리에는 의자에 기대며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녹급은 물론이고 청급 의뢰에서도 금화가 보수인 의뢰는 없다. 많아봤자 은화 10개 안 팎이지 않을까? 자급은 되어야 좀 큰 의뢰에서 금화가 걸린다고는 들었으나, 그마저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금화가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라니, 역시 왕가는 왕가였다. 길드가 받는 금액이나 혜택도 만만치 않을 걸 생각하니 어제 나와 셰릴에게 내주었던 초콜릿도, 이 거창한 식사도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써야 나중에 길드에서 돈을 떼먹었다는 오명을 피할 정도로 받은 거겠지. 그만한 값어치를 할 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서두는 이 정도면 정리된 거 같고, 식사도 마쳤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고."

그 뒤로 이어진 대화는 원래대로라면 문서화 된 자료와 함께 해야할 정도로 다양한 정보들이었다.

간단하게 추리면 인원은 20명. 하나같이 실력자에,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정되어 버려진 던전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하나같이 과거가 비범하다는 내용들이 디테일하고 장엄하게 전달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거까지 즉석해서 외워야하다니 너무하잖아."

"하하. 저도 외우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볼멘 소리를 내뱉는 예카트리나의 말에 공감하는 건 나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이미 의뢰 중이라는 느낌으로 엔그림이 말해주는 정보들을 암기하기 시작했고, 딱 한 번 투덜거린 예카트리나도 결국은 자기가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외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외우는 게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머리가 좋은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들려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게임이나 소설 설정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고, 넘치는 흥미는 알아서 정보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억하고 분석한 결과 우리의 목표인 놈들의 가장 큰 교집합은 과거였다.

반역이든 탈세든 왕가 능멸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왕국과 척을 진 집안의 자식들. 겉보기엔 세상 글러먹은 놈들이라 마지막까지 나라를 팔아먹으려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태생이 이 세계 사람이 아닌 내 입장에서는 그저 자기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놈들일 뿐이었다.

왕국에 복수하기 위해 손을 잡은 대상이 대상이 타 국가냐, 마족이냐의 차이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마족 지휘관의 목을 노린다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명령권자 혹은 계획 발안자를 족쳐서 다시는 나라는 놈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경고를 새겨 넣기 위함이지, 마족 전체를 증오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마족에 대해 아무런 악감정도 가지지 않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마족은 그냥 이종족이다. 너무 강해서 문제일 뿐인거지. 딱히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악랄한 짓만 골라서 하는 사악한 종족인 것도 아니다. 그건 악마로 분류되고, 실제로 따로 존재한다.

어디에나 있는 국가 간의 전쟁. 단순히 그 뿐인 문제지만 상대방이 피지컬 적으로 우월하기 그지없는 마족이라 온갖 언론 플레이와 함께 인류의 위기인 것마냥 포장하고 있는 게 덤덤한 현실이다.

하지만 신이 점지해주는 용사라는 존재가 있기에 인간들은 마족을 사악한 존재로 치부하며 한 점 의심없이 따른다.

그리고 그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큰 의문이기도 했다.

전생처럼 신의 존재를 느끼기 힘든 세상도 아니다. 수많은 신들이 현신하거나 기적을 내리거나 화신을 통해 활동하는 등의 기록이 정사로 남아있고 절찬리 진행중인 곳이다. 신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거짓말로 이행하며 없는 용사를 만들어내는 건 미친놈이나 할 법한 발상이다. 그러니 용사는 실존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끼리의 전쟁에서도, 다른 이종족 간의 전쟁에서도 용사가 선택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직 마족 간의 전쟁 사이에서만 용사가 탄생한다.

물론 마족과 마왕이라는 시스템은 어느 종족과 비교해봐도 지들만 궤를 달리 하는 편이다. 너무 독자적인 구조라 단순한 이종족으로 치부하기 힘들 정도로 따로 논다.

오러와 마나로 인간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의 인원들이다. 일반적인 인류 강함의 평균점은 전생보다 육체적으로는 좀 더 강한 정도에서 그친다.

하지만 마족은 다르다. 육체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그냥 그걸 위해 태어난 것 마냥 강하다. 마족령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속단할 수는 없어도 인류보다 강함의 평균이 두 단계 정도는 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겨우 그것만으로 신과 척을 지고 신탁을 통해 물리치라는 말까지 나온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심지어 모든 신들이 한 명의 용사에게 가호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한결같이 제국 신성회가 섬기는 빛의 신만이 용사를 점지해준다고 하니 더더욱 의문만 깊어지는 구조다.

그 신탁도 문제다. 마족을 싹다 쓸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왕을 물리치라는 내용. 그렇게해서 마왕을 물리치면 일련의 사건들이 유야무야 해결되는 게 지금까지 이어진 역사였다.

정말 그들이 사악해서 인류 멸절을 노렸다면 대륙은 한 네 번은 더 갈아엎어졌을 것이라는 게 내 소견이다.

나조차 환생을 한 마당에 신의 존재를 안 믿진 않지만, 그들의 목적은 인류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게 분명했다.

"새끼들 하필 손을 잡아도 마족이랑 손을 잡아서는."

그런 사고를 거쳤기에 마족만 엮여도 일단 앞뒤 안 가리고 심각해지는 남들과는 달리, 내 눈에 비친 놈들은 그냥 계획을 잘못 짜고 손잡을 대상을 잘못 고른 평범한 악당들에 불과했다.

"음? 뭔가 말했어?"

이 소란 속에서도 어떻게 내 중얼거림을 주워들었는지 반응하는 예카트리나에게 살짝 놀라며 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혼잣말입니다. 마족만 제외하면 딱히 큰 문제는 없을 거 같네요."

평범한 악당답게 큰 어려움도 없는 상대였다. 오러 사용자 다섯 정도가 섞여있고 마법사도 있다고는 하지만 마족을 적대하는 신과 척을 진 이상, 놈들의 회복수단이라고는 포션과 마나를 통한 자연 회복력 뿐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시설도 없는 던전에서 장기간 생활한 탓에 생활 패턴도 불규칙하고 컨디션 조절에도 패널티가 있는 상태이며, 무엇보다 거처인 던전조차 길드에서 이미 옛날에 답사를 완료해 새로울 게 없는 곳이다보니 내부 지도 한 장만으로도 놈들의 위치는 우리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감이라기보단 정확한 상황 판단에 가까울 거 같군. 사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네."

드워프 답다고 할까, 긴은 이미 내가 마족에 대한 고찰을 진행하는 동안 엔그림에게 물어서 던전의 지도가 있는지부터 확인한 뒤로는 아무런 걱정없이 술을 마시며 내 의견에 동조했다. 다른 이들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으나, 엔그림이 눈 여겨 본 모험가들 답게 방심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줍잖은 놈들만 보다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니 정말 소설 속 등장인물을 보는 기분이군.

"20명이 평원에 있었다면 난이도가 올라갔겠지만 결국 던전 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심지어 그 던전의 내부구조마저 우리 손 안에 있는 이상 변수라고 할 수 있는 건 마족 뿐이다."

심지어 예카트리나마저도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지적 능력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을 가졌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당당한 모습이었다.

"저는 사람보는 능력만 조금 있지 이런 계획을 세우는데에는 영 문외한인지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3일 걸릴거라고 말한 유능한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런 우리의 반응에 크게 만족한 엔그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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