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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5화 (55/412)

밤이 깊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뒤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까? 근무 교대를 하는 이들이 횃불을 들고 나왔다.

"경계 근무는 두 시간 간격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안에 들어가는 놈들이 불을 밝힐 수단을 찾지 않는 걸로 봐서는 내부는 보기보다 밝을 것 같고 말이지."

당장 겉으로 보기엔 입구는 칠흑같은 어둠 그 자체인데 실상은 전혀 다른 듯 하다. 어쨌든 본격적인 정찰의 시작은 내가 끊기로 하고 가엔달은 다시 한 번 잠들었다. 누우면 얼마든지 잠들 수 있는 체질인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고른 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4시간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세상이다보니 별 문제는 없었다.

마력 운용도 결국은 연습이다. 마나와 오러처럼 선구자의 족적이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결국 매일 매일 노력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진다. 그리고 이세계는 노력을 통한 결과가 전생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두각을 드러낸다.

가끔씩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취는 마음에는 들 지언정 마냥 유쾌하지 않다.

나만 그런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세상은 혼란하고 강자가 많다는 의미니까. 잠깐의 틈이 생기면 다시금 강박증이 밀고 올라오는 기분이다.

어쨌든 마력 운용과 함께 그런 생각들을 하며 고민이 깊어지면 4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는 가엔달과 번갈아가며 밤을 보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밝아오는 동안에도 결국 놈들은 아무런 활동없이 보초만 설 뿐이었다. 두 시간이라는 교대 간격은 정확했지만, 그 외엔 별 다른 소득이 없었다. 시덥잖은 잡담 정도만 간간히 들려오는 게 고작인 상황 속에서 결국 아침이 밝아왔다.

"이젠 너무 자서 잠도 못 자겠군."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기지개를 켠 가엔달이 건네주는 육포를 씹어먹으며 우리는 마지막 야간 근무자가 교대하는 걸 지켜봤다. 놈들도 경계가 조금 흐트러진 것인지 조용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목소리가 조금은 커져 있었다.

"드디어 불침번도 끝나는군. 하아, 나는 언제 술집 가나."

"저번 주에 가 놓고서 그런 말을 하다니. 나도 가고 싶군."

"분명 기분 전환은 좋지만 말이지, 가끔 정신 차리면 술집가는 날만 기다리는 멍청이가 되어 있어서 문제라니까."

"하하하. 맞는 말이야."

서로 농담도 던지고 나쁘지 않아보이는 관계. 지금까지 본 바로 저게 놈들의 평균적인 관계였다. 군인도 아닌 주제에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는 하나, 결국 따로따로 있다가 뭉치게 된 놈들이 이런 상황에 저렇게까지 유대감을 쌓고 연계하고 있다는 건 귀찮음과 동시에 매우 의외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부디 의무감 같은 건 좀 덜 떨어진 놈들이길 바라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때였다.

"그러고보니 들었나? 남작이 죽었다는군."

"남작은 무슨 밑바닥 인간 백정인 용병 놈이."

놈들 입에서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금방이라도 침을 뱉을 것마냥 인상을 찡그린 한 놈을 제외한 나머지 셋이 그 주제를 두고 열심히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었잖아 귀족나리. 그래도 나름 사업 동료였는데 너무 그러지 말자고."

"그나저나 꽤 잘 진행되고 있었던 거 아닌가? 심지어 병사도 꽤나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아주 몰살을 당했다더군. 남작 휘하에 있던 사병들은 물론이고 고용되었던 용병들까지 반파되어 뿔뿔이 흩어졌다고 들었네."

파바에라같은 씹새가 수도 인근에 둘 이상 있었던 게 아닌 이상 저건 무조건 그 놈 이야기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빨리? 오늘에서야 4일째 되는 사건이 벌써 놈들에게 들어갔다는 건 좀 심각한 문제라고 여겨지는데.

"정말인가? 남작도 남작이지만 백정 라기엘이나 눈사냥꾼 제즐같은 이들의 실력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닐텐데? 꼬리가 잡힌건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안내서 그렇지 바에라 용병단의 실력은 진짜였는데 어떻게 그런..."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날리던 놈들이 있었다고? 이상하다. 남작은 병신이었고 그나마 쓸만한 놈은 나와 함께 도검 반갈죽 쇼를 펼쳤던 놈 하나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하긴 좀 차려입은 놈들이 두엇은 더 있었는데 걔들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그 새끼들 실력이 진짜라고? 농담이 아니라 오가토르프 가문 견습 기사 세 놈만 가져다 놓아도 숲 속 놈들 반은 죽였을텐데? 이렇게나 격차가 큰가?

"하필 오러 사용자가 끼어 있었다는 모양이야. 그것도 둘 씩이나."

"씨발."

"그런 이들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녹, 청급만 상대하던 게 아니었나? 재수가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무슨..."

개탄하는 놈들의 반응이 나를 납득시켜줬다. 역시 오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하지만 청급까지도 오러 사용자가 없는거로 치부한다는 저들의 발언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응? 청급 정도되면 오러 사용자가 좀 있지 않습니까?"

"...자네는 요상한데서 상식이 뒤틀려있군. 우리가 특이한거라네. 보통 적급 정도는 되어야 보이기 시작하지."

아. 그래서 가엔달을 소개할 때도 바로 윗 급인 적급을 운운하는게 아니라 한 단계 더 위인 자급을 운운하며 실력을 이야기했던건가? 나도 셰릴도 쓰니까 보통인 줄 알았는데.

이세계 강함의 척도는 영 와닿지가 않아서 맨날 헷갈린다. 우리 파티 생각보다 더 대단한 파티였네.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말.

"루드나 씨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군. 침통하겠어."

"마족놈들 반응은 어때? 알고 있나?"

"이걸 알려준 게 마족이라네. 별로 신경 안 쓰더군."

"꼬리를 잡힐 수 있는 거 아니야? 뭔가 수작을 부려놓은건가?"

"남작이 뭘 불기도 전에 그냥 죽여버렸대. 접촉을 남작하고만 했으니 꼬리가 잡힐 일 따위는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야."

진짜 인생 스펙타클하기 그지없다. 죽든 말든 신경 안 썼던 잡것이 생각보다 큰 일에 엮여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걸 모르고 지나갈 뻔 했는데 이미 모험가 길드에서는 다른 징조를 캐치해서 추적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게 하필 내가 놓친 부분과 연계가 되어있다는 건 더더욱 놀랍다.

"누가 날 일부러 굴리고 있는건가...?"

"음? 뭐라고 했나?"

"아뇨. 그냥 혼잣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연계된 게 마족이니 나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다. 이런 굴림이라면 얼마든지 봐줄 수 있을 정도다.

"그나마 다행이군. 잠자리가 뒤숭숭할 뻔 했어."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고하니 알고만 있게나."

"그러도록 하지. 수고들 하게."

긴 기다림 끝에 큰 수확을 안겨준 놈들의 교대는 그렇게 끝났다. 교대한 놈들이 다시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걸 확인한 나는 영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가엔달에게 방금 들은 이야기의 가치를 설명해주었다. 가엔달의 태도가 확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정보를 전달받았다는 부분이 의심되는군. 파바에라라는 인간을 감시하고 있었던건가?"

"그러기엔 오히려 4일...저들이 저렇게 말한거보면 사실 어제 정도 이야기를 들었을테니 3일이겠군요. 아무튼 그렇게까지 시간이 걸려 알게 되었다는 점이 미묘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투는 마치 어제 들은 이야기같았으니까요."

말 그대로 근무 서는 동안 들은 이야기를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과장된 말버릇이라고 하기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다른 이들의 태도도 평범했고.

"그보다 분명 마족'놈들'이라고 했지. 자네 말대로 관리를 위한 인원이 따로 있었던 모양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이번 의뢰는 운이 좋네요."

강한 놈 하나 상대하는 것보다 덜 강한 놈들 분산해서 상대하는 게 더 쉬운 건 당연하다. 나도 가엔달도 그 부분에서는 웃어보였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일이 하나 늘어난 것도 사실이네. 못해도 놈들에게는 빠르게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마도구가 하나 있을 수 있다는 거니까."

"최소라하면...?"

"무난하게는 공간이동. 최악의 경우엔...게이트를 만들어 놓은 거겠지."

최악은 정말로 최악이다. 물론 그 게이트를 파괴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겠지만, 그 안에서 병력이 쏟아져 나온다면 정말 큰일이다.

"일단 여기까지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군. 돌아가겠는가?"

"아뇨. 조금만 더 있어보죠. 이렇게까지 운이 좋았으니 조금 더 바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시간은 6시가 조금 넘은 상황. 적어도 점심까지는 상황을 더 두고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군. 자네의 예상대로라면 술집에 가는 인원들이 나오는 시간은 점심 무렵일테니까. 그게 오늘일지도 모르지."

가엔달이 눈치 빠르게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충분히 납득한 모양이다.

"우리에겐 나쁠 게 없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보세.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 풀리니 나도 기대가 되는군."

일말의 의심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순탄하게 풀리고 있다.

심지어 아까 오러 사용자라는 말에 반응하는 걸 보아하니 저들도 바에라 용병단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서서히 의뢰의 난이도가 내 눈에도 구체적으로 측정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매우매우 낙관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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