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8화 (58/412)

예상대로 우리는 6시 이전에 일행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오. 이미 끝난 뒤였군."

그럼에도 던전 입구에는 깔끔하게 죽어있는 4명의 시체와 파티원들이 있었다. 어제 정찰했을 때는 미리 나와서 교대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하필 오늘은 그런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딱 맞춰 왔...음. 둘 다 괜찮은 거 맞지?"

아무래도 워 해머로 박살 낸 놈들이 한 둘이 아니다보니 나나 예카트리나나 적지않게 피칠갑을 하고 있는 꼬라지이다보니 긴이 주춤거리며 물어보았다.

"놈들은 저항조차 못했어요. 이야, 엘드미아 말대로 한 놈 찍고 시작하니 벙쪄서 아무것도 못하더라고."

"흠. 그렇군. 허를 찌르는 발상이란 중요하지. 우리도 어렵지 않게 끝냈네. 렐리에가 침묵 마법이라는 걸 쓸 줄 알더라고."

"정확히는 주변의 소리를 죽이는 결계를 일시적으로 친거지만 말이죠."

"마법 쓰면 들키는 거 아니에요?"

"그걸 안 들키게 쓰는 게 바로 제 실력이지요."

역시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게 없는 파티답다. 이거 나중에 다른 어중간한 모험가들이랑 같이 활동하게 되면 격차가 심하게 느껴질 게 뻔해서 벌써부터 아찔해진다.

"잠깐 통로만 확인해 봤는데, 지도에 적혀있던 축척이랑 차이가 없더군. 계획대로 진행하면 문제 없을 것 같네."

긴이 말한 계획이라는 건 별 거 없었다. 성인 남성 두 명 정도가 어깨를 맞대고 서면 여유가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을 나와 가엔달이 서서 밀고 나가는 것. 그 뒤를 긴이 따라오며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해주고, 워해머를 휘두르기 힘든 예카트리나가 렐리에와 함께 좀 더 뒤에서 따라오며 도망치는 이가 없도록 점검한다.

그녀의 워 해머는 그냥 앞으로 들이미는 것만으로도 길을 막아버리는 게 가능할터이니 우리가 나아가면서 두 명 있는 궁수와 마법사만 놓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나름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야말로 토벌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방침이다.

혹시 몰라 쓰러진 놈들 품에서 찾아낸 단검과 숏 소드를 챙겨든 나와 가엔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던전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지하로 1층 정도 내려가자 벽에 횃불이 걸린 돌로 된 통로가 우리를 맞이했다.

복잡할 거 없는 지도는 외워 두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좌우로 번갈아가며 나오는 방의 인원 체크 및 빠른 전달 뿐이었다.

남은 인원은 9명 남짓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마족들. 주저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우리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첫 번째로 맞이한 방을 습격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하나!"

"뭐? 무슨..크헉!"

나나 가엔달이 방에 들어서서 인원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동안 긴은 나머지 한 명과 합을 맞춰 통로를 지킨다. 사람이 둘 이상 모여있으면 협공에 들어가고, 아니면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게 목적지인 예배당까지 가는 동안 놈들을 다 죽이거나, 놓친 곳이 없다는 확신이 들면 뒤에 있는 예카트리나와 렐리에에게 신호를 보내고 우선 예배당에 진입한다. 그게 이 반복되는 살인의 골자였다.

마치 특수부대원들이 테러리스트들을 진압하는 것처럼 신속한 움직임 속에서 놈들은 차근차근 죽어 나갔다.

"셋!"

"미친 습겨...크억!"

"투척!"

"악!"

가엔달과 손발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능력부터 내가 외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는데 들이는 시간까지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척척 반응한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궁수까지도 불시에 기습하는데 성공하며 8명까지 아무 힘 안 들이고 처리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예배당일 듯 싶네. 가지."

가엔달의 결단에 난 들고 있던 숏 소드를 최대한 온 힘을 다해 우리가 왔던 통로로 집어 던졌다. 물론 오러를 써서 던진 건 아니었으니 예카트리나에게 날아드는 불상사를 일으키진 못할 것이다.

대신, 바닥에 거칠게 부딪치며 난 날카로운 쇳소리가  통로를 가득 채우며 멀어졌다.

이제 이걸 신호로 하나하나 지난 방을 살피며 걸어오던 예카트리나와 렐리에가 달려올 것이다.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예배당까지 최대한 서둘러 뛰었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가 낸 소음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던 놈들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던 놈들도 있었다. 덕분에 지금 이 소란이 예배당까지 닿아 경계에 들어갔는지 어떤지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준비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서두르는 것 뿐이었다.

"제가 제일 자신 있는 게 습격 후 칼질하는 거 하나 뿐이니 시작은 제가 끊겠습니다."

"엄호하지."

가엔달의 대답과 동시에 나는 조금 더 가속해서 입구를 막는 문 하나 없이 불길한 푸른 빛을 흘리고 있는 예배당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다급한 발소리를 듣고 누가 달려오는건지 확인하기 위해 모여 있는 시선들을. 하지만 그 시선에 제대로된 경계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누가 이렇게 뛰어오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정도의 시선에 불과하다. 즉, 이번 습격은 완전 대성공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전생한지 15년만에 나는 드디어 마족이라는 친구들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직접 보게 되었다.

다섯 명의 마족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만한 건 머리에 나있는 뿔 정도였다.

평생 모자랑은 인연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뿔들은 그리 크지는 않아도 확실하게 존재감을 어필할 정도는 되었다. 누구는 두 개 나있고 누구는 하나 나있지만 세 개가 난 놈은 없는 듯 하다. 뒤통수에 난 게 아니라면 말이지.

그 외에 외모적인 특징이라고는 없다.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검은 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피부색이 까맣거나 흰자위가 검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외모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명백하게 차이가 나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넌 대체...?"

그리고 내가 느낀 의문과 비슷한 의문을 느꼈을 것이 분명한 마족 놈 하나가 경악하며 나를 가리켰다.

저 새끼들, 마력을 쓸 줄 안다.

거기까지 판단이 서자마자 난 내일 드러누울 것 따윈 걱정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끌어모아 강화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음에 내달리며 날 보고 경악한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말도 안..."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육체 강화의 여파는 굉장했다. 놈을 향해 몸을 날리며 뽑아든 검에 눈 깜빡일 틈도 없이 마족의 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으니까.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엄청난 속도였지만, 한 놈은 무려 이 속도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날 노리고 검을 찔러넣는 중이었다.

"마법사! 게이트를 고정시켜라! 도망쳐야 한다!"

측면에서부터 관자놀이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쳐내며 놈의 복부를 걷어찼다. 유일한 뿔 두 개. 설마 마족의 강함은 뿔 개수로 구분되는건가? 나머지 세 놈은 반응은 했으나 동작이 느린 것으로 보아 이 놈이 대장이자 가장 큰 위협이다.

내 전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상태에서도 압살은 커녕 대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 게 그 증거였다.

놈은 방금 전 내가 잠깐 훑어봤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무서우리만치 핏발이 서 있는 눈과, 얼굴부터 전신 곳곳에 불거져 올라와있는 핏줄들이 놈이 무언가로 신체를 강화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게 뭔지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놈은 마력을 마치 약물 도핑하는 것마냥 자기 몸에 때려 박아 넣은 게 분명했다.

"이 놈은 내가 막겠다! 마법사를 지켜!"

마족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짧은 사이에 부딪친 검격만 다섯 번이다. 내가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검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세번 째에 들어온 반격기에 턱부터 쪼개져서 죽었을 정도로 검술에 조예가 있는 놈이다.

씨발 기습을 했든 안 했든 이렇게까지 강한 놈과 제대로 싸우는 건 살면서 처음인 거 같다.

역대급 상상 초월 기습으로 죽일 수 있었던 델트랑 맞붙었으면 이런 꼴이지 않았을까? 물론 그 땐 지금보다 검술이 훨씬 빈약했으니 죽어도 다섯 번은 더 죽었을테지만.

"마력을 무슨 약물처럼 쳐마셨냐!"

눈을 찌르고 들어오는 검을 휘감아 튕겨내며 반동을 이용해 두개골을 쪼개 베려 했지만 튕겨나간 놈의 검이 무서운 기세로 제자리를 찾으며 내 검을 쳐낸다. 그리고 그걸 기회 삼아 그 뒤로도 번개처럼 치고들어오는 놈의 검을 막아낸 것만 세 번이었다.

버거운 건 아니지만 저 마력 도핑으로 인해 확실히 나보다 아주 미미하게 더 강했다. 떨어져서 틈을 보이면 어떻게든 태세를 정비하고 도망치려 할 것이 보였기에 난 있는 힘껏 달라 붙으며 검을 부딪쳤다.

놈의 무기도, 내 무기도 삐그덕 거리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충격 속에서 검신이 살짝 깨진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지나갔다.

놈들은 이 정도 전투를 기본으로 상정하고 무기를 만들까? 그렇다면 지금 작살나고 있는 건 내 검 뿐이고 놈의 검은 멀쩡한건가? 놈이 노리는 건 무기 파괴인가?

"마법사! 서둘러라!"

저 마력 도핑을 통한 육체 강화는 나도 생각해본 적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시도할지 몰라도 한동안은 절대로 아니었다.

저 방법이 바로 마력을 이용하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던 모든 인간들이 폭죽마냥 터져 죽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은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마족 놈들은 저걸 버틸 수 있는 육체라는 소리인가?

"그럴리 없지 씨발!"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르는 놈의 혈관이, 점점 시뻘개지는 두 눈이, 거친 숨 소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게이트 앞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열심히 눈치를 보며 낑낑거리는 마법사를 닦달하는 순간 모든 게 명확해졌다.

저거 오래 못간다!

"우리 누나가 그거 자살기랬어 이 새끼야!!"

그렇다면 오래 가는 내가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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