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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61화 (61/412)

아침 일찍 수도로 귀환했음에도 우리의 파티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정말. 정말 진창이 되도록 마신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시달려야 했다.

가엔달은 취한 주제에 멈출 줄 몰랐고, 긴은 취하지 않았으며, 예카트리나는 진짜 타고난 주당이었다. 내 전생을 다 합치더라도 그녀만큼 술을 잘 마시는 건 바로 옆 자리의 긴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그웨에에엑..."

다행히 저기서 토하고 있는 가엔달과 달리 난 토는 하지 않았지만 세상이 핑핑 돌고 손발을 조종하듯이 움직이지 않으면 주체할 수 없는 수준인 걸 부정하기 힘들다. 실수로 한 번 비틀거리자 듬직한 팔이 나를 받쳐줬다. 고개를 돌려보자 술기운에 상기된 얼굴로 화사하게 웃어보이는 예카트리나가 있었다.

"하하! 귀신같이 싸우는 거랑 달리 귀여운 면이 있네 엘드미아! 벌써 휘청거리는 거야?"

"렐리에...저 정도면 잘 마신거라고 빨리 말해줘요. 이 사람은 말이 안 통해."

너무 듬직해서 반할 뻔 했다는 걸 제외하면 어찌저찌 그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일행 중 가장 적은 술을 마신 렐리에와 가장 많은 술을 마셨음에도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는 긴이 사이좋게 우리 꼴을 보며 비웃었다.

"정말...카샤! 너도 취했어! 정신 차려!"

"응? 난 꽤 멀쩡한데?"

"멀쩡은 무슨!"

그래도 나름 취한 건지 예카트리나를 정체불명의 애칭으로 부르며 다가온 렐리에가 날 지탱해주던 예카트리나를 끌어냈다. 그 와중에도 날 지탱하던 손을 놓지 않은 터라 하마터면 쓰러질 뻔 해서 나랑 예카트리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그게 왜 웃기냐고? 나도 몰라. 예카트리나가 웃는데 그냥 나도 웃겼어.

"하아. 아무튼. 다들 고생 많았네. 어차피 보상 때문에 한 번 더 보게 될테지만 그렇다고해서 수고했다는 말을 미뤄둘 이유는 없지."

한 번 시원하게 게워내서 그런지 한결 정신이 말짱해진 가엔달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음. 정말 기분좋게 끝난 의뢰였네. 다들 기회가 있다면 또 합을 맞추자고."

"하하하!"

"시끄러워! 그만 웃어!"

결국 자리를 파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후. 이제야 좀 살겠네."

해야할 일이 있지만 않았어도 적극적으로 친분을 쌓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간만에 저택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었다.

"아주 신나서 들어오는군."

근데 어째서인지 정원을 지나자마자 쭈구리 엘드미아가 되어야 했다.

억울하다.

난 그냥 일 마치고 돌아온 거 아닌가? 왜 돌아오자마자 잔뜩 날이 서 있는 셰릴 앞에 무릎 꿇고 죄지은 것 마냥 고개를 숙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지?

"듣기로는 아침 일찍 길드로 귀환했다던데?"

"그랬...지?"

"근데 왜 지금 들어오나?"

마치 퇴근 해놓고 왜 집에 바로 안 들어왔냐고 타박하는 꼴이었다. 내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는 쥐뿔도 없음에도 쪼그라드는 목소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니..그게...파티원으로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라서...장기적인 친목도모를 위한 것도 있고..."

"있고?"

"그게 또 우리가 그냥 뒷풀이를 한 게 아니라...길드에서 고생했다고 챙겨줄 정도로 좀 한 게 많다보니...그냥 오기도 좀 그랬다라고 할까..."

"...흠."

우물쭈물 대답하고나니 냉랭하기 그지없던 단무지 눈썹이 조금 온화해진 듯 했다.

"나흘 뒤면 라그니스를 따라 수도에 가야하니 그 동안은 푹 쉬면서 몸 관리나 하도록."

분명 쉬라고 해주는 말인데도 귀족 셰릴 말투는 고압적이라서 가시방석에 앉는 기분이다. 애가 무슨 말투를 세 개나 쓰면서 사람 힘들게 하냐 진짜.

아무튼 셰릴은 마치 그 말을 전해주는 게 목적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으로 들어갔다.

근데 내가 이 시간에 올 줄 어떻게 알고 쟤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거지?

"......"

에이, 사용인이 알려줬나보지.

난 술기운의 도움으로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숙소로 돌아와 옷과 장비를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길드가 제공해준 목욕탕에서 세탁마저도 마법으로 처리한 덕분에 난 빨래에 대한 그 어떤 걱정도 없이 꿀잠에 들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의외로 별 일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이틀 차인 오늘에서야 길드에서 한 차례 호출이 있어 다 같이 모이긴 했으나, 그건 통상적으로 받기로 한 금화 한 개를 마저 받기 위한 것 뿐이었다.

"추가적인 보상이 있는 건 확실한데...좀 시간이 걸리나 봅니다."

왜 오래 걸리는 것인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 정도 폭발이면 분명 어떤 형태로는 관측이 됐을테니 기다리면 당연히 보상은 나올거라는 게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다보니 며칠 만에 모인 김에 길드 뒤에 있는 대련장이나 빌려서 사이좋게 대련이나 좀 하고 헤어졌다. 필연적으로 마법사인 렐리에는 적당히 구경만 했지만 충분히 즐거워보였다.

"그럼 가 볼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헤어진 다른 이들과 달리 긴은 나와 함께 모험가 지구로 향하는 중이다.

드워프인 그의 눈썰미를 빌려 검을 하나 새로 장만하고 싶어서 부탁했더니, 대련 하다 말고 갑자기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긴은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나서준 것이다.

얀스의 롱 소드는 뭔 수를 써도 회생이 불가능해서 결국 고철 값에 팔리고 말았다.

"나쁘지 않은 검이었네만, 오러까지 쓰는 사람한테는 아쉬운 검이긴 했어. 가격은 좀 있어도 좀 더 좋은 걸 사는 편을 추천하네."

"제가 평생 제대로 만진 검이 그거 하나라서 그러는데, 차이가 있긴 하나요?"

"그건 또 그것대로 대단하군. 물론 차이가 있지. 그게 차이가 없으면 드워프들은 죄다 사기꾼이 아니겠나 껄껄."

호쾌하게 웃어보인 긴이 나를 끌고 간 곳은 단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드워프 지구였다.

실력있는 드워프 장인들 일부가 인간 도제들을 육성해주며 지내는 곳에 가까운 터라 규모도 꽤 컸고, 모험용 장구류 뿐만 아니라 귀금속까지도 손 대는 곳인지라 평범하게 오기엔 힘든 장소였다.

일종의 명품 매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 실제 주변을 둘러봐도 무조건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진열된 물건들을 지나 안 쪽에 있는 대장간의 입구까지 들어서자 그 앞에서 일하는 도제들을 지켜보며 말린 과일 같은 걸 뜯어먹고 있던 드워프 한 명이 화색을 띄우며 외쳤다.

"여어! 긴 아닌가! 오랜만에 보는구만! 한 20년 만인가?"

누가 드워프 아니랄까봐 20년을 마치 2주처럼 이야기 하시네요. 그런데도 긴이 당당하게 여기로 왔다는 건 저 사람이 20년 이상 여기서 장기근속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 드워프라고 모두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 아닐 거 같은데, 긴은 의외로 발이 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럼 나 모험가하고 있는 것도 말 안해줬겠네?"

"뭐? 진짜? 언제부터?"

"몇 달 안 됐어. 이제 청급 모험가라네."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드워프 장인과 함께 놀라버렸다. 아니 대체 뭐 하던 사람이길래 이렇게 취미 삼아 모험가 해보는 중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걸까? 드워프들이 모두 그런 건가 싶다가도 저 분 반응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거 같은데.

"허어. 어째 한동안 가만히 있다 싶더니 그 나이 먹고 뜬금없이 모험가를?"

"덕분에 재밌는 것도 많이 보고 살지. 아무튼. 이 친구 검 하나만 좀 주게. 인간한테 맞추는 검 만드는 건 자네만한 친구 찾기가 힘들잖아."

긴이 두툼한 손으로 등을 탕탕 친 탓에 휘청거리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 드워프 장인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음? 이런, 동료였나보군. 간만에 보는 친구가 반가워서 그만 실례했네. 발쿤 드말리라고 하네. 그냥 발쿤이라고 부르게."

"엘드미아 에가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발쿤 씨."

간단하게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발쿤이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긴에게 말했다.

"대단히 특이한 친구를 데려왔군. 아직 어려보이는데 대체 얼마나 검을 휘둘러 온 건가?"

대체 뭘 어디까지 파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다는 듯 웃어보인 발쿤과 긴은 서로 대화없이 낄낄거리며 턱수염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뭔데. 나도 좀 같이 웃자.

"자네도 참 이런 사람들이랑 엮이는 뭔가가 있다니까."

"나도 혹시나 싶어서 모험가 일 해보니까 그게 맞는 거 같더라고."

아리송하기 그지 없는 나를 둔 채 저들끼리만 알아 먹는 대화를 나눈 발쿤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긴 씨나 발쿤 씨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뭔 대화입니까 대체?"

"자네 나이에 그만큼 강하기가 쉬운 건 아니잖나? 저 친구 취미가 장래가 기대되는 전사, 무기 때문에 죽는 상황 안 만들기거든. 장래성을 기대하게 만들었을 뿐이네."

"그거 참 장황하고 장대하기 그지없는 취미네요."

"껄껄. 내 말이."

차마 그 취미의 달성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물어볼 수 없었기에 파이프 담배를 꺼내 피기 시작하는 긴 옆에서 잠깐 멍 때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발쿤이 한 손에 롱 소드를 들고 다시 나왔다. 밖에 진열되어있던 물건들과 달리 아무런 장식도 없는, 여기서 저런 것도 만드는구나 싶을 정도로 심플한 검이었다.

근데 저거 내가 쓰던거랑 길이가 비슷한 거 같은데?

"뽑아보게. 자네가 쓰던 무기랑 비슷할거야."

"아니 세상에? 대체 어떻게 아신겁니까?"

"이 짓 해온 세월이 있는데 그 정도도 모르면 그게 드워프인가 병신이지."

낄낄 거리는 그와 달리 난 진짜 무슨 마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세월의 힘이라는건가?

"다른 건 몰라도 튼튼해. 금화 한 개만 받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그에게 건내주자, 오히려 적잖게 당황한 발쿤이 되물었다.

"자넨 흥정도 안 하나?"

"저는 드워프가 직접 건네준 물건에 흥정을 하는 몰상식한 놈이 아닙니다."

"허허헛! 정말 재밌는 친구네! 마음에 들어!"

드워프는 재밌는 관습이 있다. 타인에게 물건을 팔 때, 자기가 만든 물건이 아니면 절대로 직접 건네주지 않는 관습이다. 심지어 완성도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접 건네지 않는다. 그냥 진열대에 올려서 가져가게 만들지.

그런데 드워프가 직접 건넨 검을 금화 한 개로 살 수 있다고? 당장 저 밖에 있는 금화 한 개짜리 무기들 중에서 드워프가 직접 건네줄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은 단 하나도 없을거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지인 할인을 받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싸게 사는건데 내가 왜 주저 하겠어. 어차피 내가 돈을 모으는 것도 좋은 장비를 구해 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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