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끊었어!?"
"대체 무슨 수로?!"
"마,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고!"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모두 놀라고 경악하며 일부 전사들은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마냥 웃음까지 터트리며 바라보는 와중에 라그니스만큼은 짐짓 태연한 척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했다.
'대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거야!'
마법을 마법으로 끊은 것도 아니다. 명백하게 아무런 마나의 움직임도 없이 검을 허공에 긋는 것만으로 수 초 안에 지크프리트가 생성하던 마법이 파훼되었다. 그것도 그냥 파훼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터트려버렸다.
전사들과 달리 마법사들은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광경이라도 본 것처럼 얼어 붙을 수 밖에 없었다.
단축해서 쓸 수 있고, 무영창으로 쓸 수 있다해서 마법을 아무렇게나 발동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랬기에 라그니스가 보여준 무영창 한 번만으로도 모두가 감탄한거고 대련 상대였던 에셀루아조차 두 눈을 빛내며 칭찬을 멈추지 못한 것이다.
빠르게 쓰면 쓸 수록 마법은 어려워진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어려운 게 곱절로 어려워진다.
용사가 단어로 압축시켜 발동한 마법 역시 그러했다. 규모로 놓고보면 라그니스조차 저 정도의 마법은 단어로 발동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걸 칼질 한 번에 터트린다니, 직접 보지 못했다면 질 나쁜 농담이나 마법에 무지한 자가 지껄이는 헛소리로 치부했을 것이다. 목검에 드래곤이 찔려 죽는 모습을 본 거랑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엘드미아는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당연히 된다는 듯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검을 휘둘러 마법을 터트렸다.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라그니스는 그 모습에 경악하지 않았다.
귀까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들고, 심장이 뛰다못해 터질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엘드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진짜 용사를 눈 앞에 두고도 찬란하기 그지 없는 자신의 빛을,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역시 마법의 규모가 클수록 잘 터지네."
이미 마족들의 구슬 폭탄으로 증명된 사실임에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느껴지는게 다르긴 하다. 내가 마법적인 견문이 좁아서 대체 무슨 마법이 날아오려 했는지는 감도 안 오지만, 발동되었다면 결코 편하지는 않았겠지.
용사 주변에 일고 있는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바람으로 이루어진 칼날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난 최대한 감각을 집중에서 마력을 움직였다.
게이트 너머에서 검에 마력을 감았던 감각으로, 천천히 검과 내 몸에 마력을 두른다. 평소에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마력이 한겹 더 덧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전신의 감각이 날카로워지며 다시금 정신나간 색채가 가득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말 정신없는 광경이었지만 이젠 이해가 된다.
인위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마력과 마나, 오러 그리고 정령의 기운 그 모든 게 색으로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할 만하네."
칼날 바람이 푸른 빛으로 점멸하며 용사의 주변을 휩쓸고 있다. 그리고 그건 겉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세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둥둥 떠다니는 칼날과도 같은 형태. 지금처럼 강화된 상태라면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뿐더러 설령 베이더라도 버틸만 하다.
"참 잘 만들어진 환상이군."
없던 일을 있는 일로 바꾸고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바꾸는 게 아니었다. 촉각과 대련장에 둘러진 마법의 가장 핵심은 공간 마법이었다.
저 칼날 바람은 진짜다. 저거에 베이면 진짜로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기 전에 공간에 뒤틀림을 일으켜서 사람의 몸에 닿지 않게 만들고, 대신 환상으로 덧씌워 통증과 상처를 만든다. 기술로 따지면 오버테크놀로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터무니없는 마법이다.
제국은 그렇게해서까지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크흑!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린거냐!"
"누구나 하나 쯤은 비장의 수가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환상이라는 사실조차 미미하게 잊게 된다. 억지로 자각하고 떠올리지 않으면 자꾸만 깜빡해서 '어차피 환상이니까'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따위 할 수 없도록 꾸며져 있다.
이 정도의 마도학을 교육에 쏟을 정도로 특출난 이들이 넘치는데도 마왕과 마족이라는 존재들이 위협적이라니, 새삼 앞으로 넘어야할 산들이 끝이 없음을 체감하며 나는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까짓 거 좋다! 몸뚱이로 승부를 보자고!"
마법도 작살난 주제에 갑자기 뭐가 기분이 좋아진 건지 또 다시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인 용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으로 달려들었다. 미미하게 느껴지는 오러를 보아하니 정령술부터 마법까지해서 모든 수를 다 동원하려던 참이었나보다.
제 딴에는 뭔가 본격적으로 치고 박아볼 생각인가본데, 내가 미쳤냐?
"용사를 상대로 그런 무식한 승부를 보겠습니까?"
"뭐?"
"인간은 도구를 쓰고 기술을 쓰기에 인간인 것입니다."
전력으로 휘둘러지는 대검의 횡베기를 무릎으로 미끄러지듯이 슬라이딩하며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그 사이 두개의 칼날 바람이 종이 한장 차이로 복부를 스쳐지나갔지만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거대한 검날의 면이 코 끝을 스쳐지나가는 것에 맞춰, 마력을 최대한 두른 오른 손을 뻗어 검날을 쥐고서 땅을 박차며 그대로 검과 함께 용사에게 휘둘러 졌다. 대체 얼마나 강한건지 몰라도 그 짧은 순간에 무슨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것마냥 몸이 훅 딸려 날아갔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기에 날을 쥔 손바닥에 미세하게 상처가 나며 통증이 느껴졌지만 충분히 상정한 수준이다.
"어?"
아까 보여준 것도 있으니 당연히 내가 검에 숨어 자신의 측면을 노릴거라 여긴 용사의 뒤통수가 보인다. 내가 자기 검을 잡고 공중에 떠 있는데도 별다른 무게감을 못 느끼나? 정말 무식하기 그지없는 힘이다.
대체 언제 알아챌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체했다가 지면 꼴 사나운 법이지.
난 그대로 검 날에 스케이트 보드 타듯이 올라타며 검을 찔러 넣었다.
뒤늦게 검의 무게가 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인지 용사의 고개가 홱 돌았지만 이미 늦었다. 평범한 높이만 상정했기에 칼날바람도 이 높이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저항은 없었다. 그야 환상이니까.
하지만 내 검은 확실하게 용사의 명치를 꿰뚫었다.
"거기까지! 승자는 엘드미아다!"
지들리의 외침과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용사를 이겼어!!"
"그래! 검술이라고! 씨발 검술은 틀리지 않았다고!!"
"으아아! 봐라 용사! 인간이 쌓아올린 기술은 틀리지 않았다!!"
거의 8할 가까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열광하는 전사들은 남여를 가리지 않고 정말 미친 것마냥 날뛰어서 두렵기 그지 없었다.
문제는 지들리 저 인간마저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거다.
"어이가 없네."
자신의 가슴에 박힌 채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내 검을 내려다보던 용사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놀랍게도 거기엔 아무런 짜증도, 조소도 담겨있지 않았다. 진짜 뭐 잘못 먹은 놈 마냥 갑자기 정색을 때린 용사 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넌 뭘 위해서 그렇게 강해졌냐?"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정말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침착한 그 눈빛은 솔직히 좀 마음에 들었다.
"내가 8살 때 마왕군의 기념비적인 첫 습격으로 마을이 불타고 가족이 다 죽었거든?"
그랬기에, 지금까지 보여줬던 가식을 잠깐 벗어두고 환호성에 가릴 정도의 목소리로만 대답했다. 어차피 저놈 바람의 정령인지 뭔지 부리는 거보면 다 들릴거다.
"내 살면서 그런 억울한 경험은 두 번 겪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일단 그거 명령한 마족 새끼 대가리 쪼갤 정도는 강해지려고."
"용사 내버려두고 네가 나서겠다고?"
이해력이 딸리는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건지 딴 소리를 하는 기분이다. 내 복수를 왜 지한테 맡겨?
"내버려두긴 뭘 내버려둬. 마왕 대가리는 네가 쪼개는 거라며. 난 명령 내린 놈만 노린다. 마족 자체엔 딱히 불만 없어. 그냥 목표가 하필 마족인 거 뿐이지."
"...?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결국 그건 마왕이 내린 명령 아니겠냐?"
"마왕이 군사적 지식이 없으면 지휘관이 내리지. 현 마왕은 그런 부류다."
정말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박박 긁어가며 알아낸 사실이었다. 마왕은 저마다 특징이 다르다. 더럽게 쎈 놈. 더럽게 약한데 머리가 비상한 놈. 오롯이 육체파인 놈, 마법만 쓰는 놈 등등.
지금의 마왕은 개인의 무력만으로 마왕에 도달한 자였다.
"그러니 너랑 나는 할 일이 다른거지. 넌 마족과 싸우는거고. 난 단순히 복수를 하는거고."
용사한테 다가가 손을 내밀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그 정도되는 놈을 죽이면 누구라도 날 쉽게 건드릴 생각은 안 하지 않겠어?"
"...하. 새끼. 순 가식이나 떨면서 재밌는 발상을 가진 놈이었네."
그렇게 내밀어진 내 손을 맞잡으며 용사가 다시금 사납게 웃어보였다.
"지금까지 만난 사내 새끼 중에서는 니가 제일 마음에 드네."
첫 인상은 못 써먹을 놈이었는데, 조금 더 두고 볼 여지가 생긴 거 같다.
"용사님도 지랄병에 걸린 줄 알았더니 일부는 연기인가봅니다."
"용사님의 깊은 뜻이니 그냥 모르는 척 해라."
"뜻 깊어봤자 쉬는 시간에 계집질이나 하는 수준이잖습니까? 듣는 제가 다 쪽 팔립니다. 원숭이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너 이 새끼 잘 가다가 시비를 튼다? 씨발 너 때문에 자꾸 정령이도 동조해서 날 까잖아."
시비는 임마 엄연히 지가 잘못해놓고서는. 그래도 정령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혔나보구만.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죠. 잘못하다가는 제국에게 책잡히고 휘둘립니다."
"...재밌네. 그건 나중에 이야기 좀 해보자."
아무 생각도 없는 중2병 환자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정상인 반응을 보이는 용사였다. 이 놈 이거 의외로 가짜 광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엘드미아!!! 엘드미아아악!!"
"엘드미아!! 날 가져요!!"
"으아아! 왕국 기사! 왕국 기사!"
그래. 저게 진짜 광기지.
오지게 시끄럽네 정말. 덕분에 용사와의 대화가 누군가의 귀에 흘러 들어갔을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였지만 도무지 열기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이 1일차인데 저 모양이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도 안 와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