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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71화 (71/412)

지크프리트가 안내한 음식점은 누가봐도 고급 음식점인 곳이었다. 얼마나 고급이냐면, 심지어 라그니스조차 음식점의 이름을 듣자마자 알아차리고 주춤거릴 정도였다.

무려 이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 이름을 들으면 알 정도의 음식점이라는 소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왕국이나 인근 국가들과는 달리 제국의 인프라나 전체적인 산업 구조가 상당히 뛰어나서, 잡지나 팜플렛 등을 통한 홍보와 평가가 매우 일상적인 덕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하긴 당장 여기까지 녀석을 따라오며 본 제국의 거리는 왕국보다도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현대적인 향취까지 느낄 수 있을 수준이었다.

아무리 왕국의 수도라 하더라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문화적인 차이가 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마음 껏 먹어! 어차피 제국 내에서는 내 이름을 거는 것만으로도 전부 알아서 황실이 결제해주니까 말이야."

"메뉴 이름만 봐서는 뭐가 뭔지 전혀 감이 안 오는데요."

"그래? 그러면 뭐 주방장 추천으로 시켜줄게. 여기 주방장은 요리 실력이 장난 아니야. 뭐가 나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거다."

정상적인 18살이 저러면 조울증이나 이중인격을 의심해볼 정도로 첫인상과는 상반된 반응만 연속으로 보여주는 지크프리트였기에 적잖이 당황하며 경계하는 라그니스와 달리 난 그냥 고개나 끄덕이며 이세계에서 처음으로 마셔보는 과일 주스를 들이켰다.

음! 사과 맛!

"저기, 에가 씨?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분명 처음 봤을 때는 상당히 도도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날 노려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서인지 극도로 저자세가 되어버린 엘프가 나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예. 뭐.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혹시 그, 귀걸이...는 구매...하신건가요?"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가 항상 차고 다니는 귀걸이에 대해 물어왔다. 아실리에가 나름 의미가 있는 부적이라고 만들어준건데 구매했냐고 물어보는 걸 보아하니 아마 엘프라고 다 아는 관습은 아닌가보다. 부족 전통 같은 것이려나?

"아뇨. 이건 지인한테 받은 겁니다. 예쁘죠?"

"히익! 예! 네! 엄청! 만든 분의 손길이 느껴질 정도에요! 백금빛으로 빛나는 게 너무 아름답습니다!"

방금 히익이라고 하지 않았나? 겨우 용사를 대련으로 이긴 것 정도로 저렇게 쫄 거 같진 않은데, 저 친구가 처음에 날이 서있던 것처럼 느껴졌던 건 단순히 낯가림이 심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아실리에가 만든 귀걸이를 칭찬해주다니 기분이 좋구만!

"하하. 마법으로 가공한거라고 하더라구요. 한번 보실..."

"히야아악! 아뇨! 괜찮습니다! 감히 제, 히햐악! 아니 그게 아니고! 분명 그렇게 정성들여서만들어주셨다면엘드미아에가님의안전을기리며만들었을텐데제가손대는것도좀그렇다고느껴지네요!"

뭐지.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얼어버렸다. 칭찬한 건 분명 진심같았는데 낯가림 외에도 결벽증 같은 게 있는 것일까.

그런 거치고는 지크프리트부터 시작해서 다른 두 여자의 시선도 놀라움의 연속이라는 듯한데...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으니 난 귀걸이를 떼려다 말고 그냥 음료수나 마시자 엘프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잔뜩 뺀 몸을 원상복귀 시켰다.

"뭐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야."

"가, 감사합니다."

아니. 대체 뭘 감사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아직 이름도 듣지 못한 엘프에게 붙은 에셀루아와 수녀가 소근 거리는 걸 애써 무시하며 지크프리트가 헛웃음과 함께 주제를 돌렸다.

"뭐, 아무튼 간에. 엘드미아야. 넌 용사가 뭐라고 생각하냐?"

"대뜸 물어보는 게 그런 겁니까?"

용사 지크프리트가 아카데미에서 교우관계가 작살난 이유는 그 철저한 오만함 때문이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었다. 물론 그렇게 여기게 된 계기는 남여가 좀 달랐다.

남자들은 보통 그간 수련해온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그의 존재에 화가 났고, 여자들도 대부분은 그러했지만 적지 않은 수가 자신들을 거들떠도 안 보는 지크프리트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마치 네가 용사라고는 해도 뭐 그리 잘 나서 저 세 여자와 나를 구분짓고 거들떠도 안 보냐는 식이다.

안하무인에, 자신이 용사이기에 주어진 것에 심취하여 모든 것을 깔보는 남자. 그리고 세 여자는 그런 용사에게 뭐라도 떨어지는 게 있을까 싶어 항상 달라붙어 몸이나 파는 것에 불과하다고. 극단적인 소문은 거기까지 나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문이다. 저들이 구축하고 있는 신뢰 관계는 내가 봐도 그런 허울 뿐인 관계가 아니다. 조금도 서로를 경계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신뢰하고 있다. 당장 눈 앞에서 경기를 일으키던 엘프를 걱정하는 두 사람의 눈초리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첫 대면에서조차 지크프리트는 에셀루아의 지적을 받아들였으며 카페에서도 그러했다. 그것만으로도 놈은 안하무인이 아니다. 기본적인 배려도 할 줄 알고 타인의 충고도 들을 줄 알지만 그저 그게 통하는 대상이 한정적일 뿐이다.

그리고 저 세 여자는 지금 그가 나에게 관심과 호감을 내비치는 것처럼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켰기에 그 한정적인 대상이 된 것이 분명하다.

"글쎄요. 대對마왕 결전병기?"

"하! 역시 넌 발상부터가 딴 놈들하고 달라서 마음에 들어. 다른 건 몰라도 생각하는 게 나랑 비슷해."

당장 용사인 자신을 사람 취급이 아니라 병기 취급을 했음에도 지크프리트는 웃어보인다.

"그럼 어제까지만 해도 인간이었다가 갑자기 그렇게 인간 취급을 못 받게 된 사람은 무슨 기분이 들 거 같냐?"

"좆같겠죠?"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즉답하자, 지크프리트는 다시금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 생각보다 웃음이 많은 친구였네.

"정답이다! 연금술사!"

"...전 연금술사가 아닌데요."

"그런게 있어 짜식아! 아무튼 정답이라는 게 핵심이야. 내가 그래! 근데 씨발 심지어 온 동네 사방팔방 모든 놈들이 나를 뭐라도 되는 것마냥 우러러 본단 말이지."

인류의 구원자. 마왕을 죽일 자. 신의 대리인. 제국의 광명.

신탁을 받은 게 4년 전이랬던가? 평범한 14,15살 소년이었다면 가슴 벅찬 일이고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느끼며 이미 영웅이 된 기분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저 놈은 나처럼 전생자다.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은건지 좀 어린건지 생각이 짧은건지는 다 제쳐두더라도, 정신연령이 못해도 14살보다는 많다는 의미다.

"멀쩡히 잘 살던 인간 붙잡고 갑자기 '저희 부족을 구해 주세요 용사여. 그에 걸맞는 힘도 드립니다. 대신 공짜로 주긴 좀 그러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삶은 조져 놓겠습니다.' 이딴 소리 지껄이면서 엄한 곳에 때려 박아놓는다 한들, '아,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그 부탁을 따라줄 리가 있냐?"

"없죠. 저라면 일단 그런 말을 내뱉은 주둥아리부터 찢고 봤을 겁니다."

물론 이번 생은 억울하게 죽은 거 한 번 더 삶의 기회를 얻은 것이니, 난 아무런 불만도 없다. 오히려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서 그렇지 신앙심을 품고 살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지크프리트의 반응을 보니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곳에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이거지! 이게 제대로된 상식을 지닌 발언이지! 루아야. 안 되겠다. 나 간만에 술 좀 마시자."

"어휴. 그렇게 좋아요? 건방진 놈 죽이네 마네 할 땐 언제고..."

"에이, 사람이 첫 대면에 오해를 좀 할 수도 있고 그런거지."

생각하는 건 비슷했나보네. 근데 잘못은 지가 한게 맞잖아?

역시 버르장머리는 살짝 없는 놈이다.

웨이터를 불러 무언가를 추가적으로 주문하는 지크프리트의 눈치를 보며 지속된 그의 하이텐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라그니스가 슬금슬금 내 쪽으로 붙으며 조용히 물었다.

"뭐야, 무슨 소리야? 나 지금 용사가 용사 일 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 같은데?"

"조금 미묘하게 다르긴할텐데 얼추 맞을걸."

"이, 이상하게 엮이는 거 아니지?"

"딱히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그보다 지크프리트는 나하고의 대화만 관심이 있을테니, 넌 여자들하고 대화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봐줘."

"이것저것?"

"저들의 관계라던가, 붙어 다니게 된 계기라던가. 여러가지."

방금의 반응을 놓고봤을 때 사실 짐작이 되는 건 있었다.

용사라는 존재를 향해 일방적인 환상을 품지 않는 것. 용사라는 것을 특혜로 여기지 않는 것.

대충 그러한 발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들이 지크프리트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놈도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능력이 있고 잘났다 한들 알지도 못하던 세계에 떨어진 이상 거기서 오는 고독과 고립감이라는 건 상상을 초월한다.

나조차 어릴 적 가족이 있었음에도 그걸 느꼈으니까.

그런 와중에 용사까지 되어서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가지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아예 날 때부터 그런 존재로 났으면 모르겠지만, 내가 전생의 삶이 평범하듯 놈도 마찬가지였겠지.

다가오는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을 찬양하거나, 이용하거나, 동경과 선망을 내비칠 뿐이다. 누가 감히 신이 점지해준 용사랑 단순하게 친구를 먹으려 들겠는가?

이미 인간 지크프리트가 아니라 용사 지크프리트인 것이다.

단순히 사람들이 돈만 보고 다가온다 같은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인 건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세상에 돈 많은 부자들은 많잖아? 그게 내가 아닐 뿐이지.

전생한 용사가 전 세대에 있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은 지크프리트 단 한 명이다.

"너 술은 잘 마시냐?"

"그럭저럭 마십니다."

"흐흐. 아주 좋아. 이게 인생이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녀석이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며 지내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을 작살낸 뒤 이세계에 떨군 신인지 여신인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말한 것을 곧이 곧대로 따를 생각따위 없다.

하지만 어차피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는 마당에 앞으로 살아갈 세계가 작살나는 꼴을 볼 수도 없거니와, 사람들 불쌍한 것도 사실이고 자신에게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마냥 못돼먹은 인간도 되지 못하다보니 그들을 무시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돕기는 한다. 마물을 퇴치하고 도적을 토벌한다. 결국 마왕도 상황이 되면 처치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이용하려는 모든 접근과 행위에 대해서는 훼방을 놓고 적대적으로 대한다.

그의 속내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 한다면 필연적으로 고립되겠지만, 그건 원래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차피 이 세상에서는 어디에 있든 혼자였을테니까.

그렇다고해서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다가오는 이들까지 뻥뻥 쳐내며 난 '홀로 고독해.' 라고 중얼거리는 병신까지는 아니었기에 저 셋과 함께 다니는 것이고, 나처럼 자신을 딱히 특별하게 보지 않으면서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저렇게 좋아하라하는 것이리라.

"뭐야? 뭘 그렇게 생각하냐?"

"용사님께 뜯어먹을만한 비싼 술 아는 게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야 임마. 니가 암만 고민해봤자 앞으로 나올 술의 반 값도 안 될거다."

자신만만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 꼬라지가 아주 조금은 덜 밉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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