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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00화 (100/412)

"마력이 느껴지는 인간. 너 같은 인간이 둘이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늪지 숲을 늪지로 만든 자. 작은 엘드미아. 분명 너일 거야."

폐던전의 게이트 너머에서 칼을 집어던지며 홧김에 외친 한 마디가 말도 안 되는 스노우볼을 굴리며 미친놈과 함께 돌아왔다.

말하는 뉘앙스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당시에 그 자리에 있던 놈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마왕군의 통신 기술이 엄청나게 뛰어난 게 아닌 이상, 갑자기 부대가 날아간 사건에 대해 디테일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일반 병사 수준은 아니라는 소리겠지.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당장 내 눈앞에 있는데 저놈에게 아무런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불안감은 거의 최고조에 다다르는 중이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나무가 통째로 썰려 나갔는데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니까.

놈이 날 쫓아온 게 아니라 그냥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였으면 내 두 다리를 믿고 주저 없이 도망쳤을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이다.

그러나 한 켠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올린 게 과연 어디까지 먹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무슨 전투 민족스러운 욕구도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반갑다. 다른 건 몰라도 너만큼은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거든."

얼핏 보면 뿔 장식을 뒤집어쓴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은 탓에 실력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과는 별개로 저놈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웃고 있는 꼬라지만 봐도 그래. 광기에 찬 미소라는 묘사는 지금 저놈 웃는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해왔던 게 분명할걸? 라그니스의 붉은 머리와 달리 말라붙은 핏빛이 연상되는 장발을 풀어 헤친 모습도 정신줄을 제대로 놓은 결과인 거 같고 말이지.

"하지만 생각했던 거랑 달리 꽤 크네? 왜 작은 엘드미아인 거지? 열등감에서 비롯된 표현은 아닌 거 같고...가만히 있던 너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로 쓴 것에 불과했던 건가? 그렇다면 꽤 시적인...건가? 아닌가? 흠. 역시 흥미로워."

심지어 표정 변화마저 미친놈처럼 순식간에 오락가락하고 혼잣말도 줄기차게 해대는 게 딱 미친놈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놈의 입에서 나오는 분석이라는 게 광기와 편견과 완전히 척을 둔 듯 이성적이라는 점이 또 캥기는 부분이었다.

이성적인 미친놈? 싸우고 싶지 않은 인물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도 남는다.

비록 복수와 분노의 상징 작은 하마를 모르는 탓에 다른 방향으로 추측하고 있긴 한데...상대방을 겉만 보고 오판하는 삼류가 아닐 거라는 게 문제다. 제발 부탁이니 평가절하를 하더라도 방심해줬으면 한다.

"흐, 흐흐흐흐흐흐."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갑자기 온몸을 꺾어가며 웃는 모양새가 진짜 광기다. 나보다 약했으면 진짜 당장 달려들어서 죽빵부터 갈기고 싶을 정도로 본능이 거부하고 있다. 저게 컨셉이면 진짜 극한의 컨셉충이라고 박수칠 자신이 있다.

"뭐든 상관없지. 알고 있어? 네가 꽤 유명인이라는 걸?"

"그딴 건 모르겠고 네 말투가 너무나도 살가워서 심히 좆 같다는 건 알겠다."

진짜 무슨 연인한테 대하듯이 나긋한 톤으로 말하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내 반응마저도 웃어넘기며 분석을 이어 나갔다.

"공격적이네. 긴장하고 있고. 흐흐흐흐. 그러면서도 겉보기와 달리 이성적이야. 늪지 숲의 마도구를 대뜸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계획적인 행동이었나보군."

대체 뭘 보고 그런 분석과 판단을 내리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점을 볼 때 그럴싸한 말들이 전부 맞는 말로 들리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작용해서 그런가. 내 행동을 죄다 꿰뚫어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마음에 들어. 자, 그럼 이제 아까 그걸 다시 보여 봐."

무슨 의미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놈의 손짓에 맞춰 마력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내 쪽으로 날아왔으니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마력의 칼날은 보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 발목을 노리고 날아든 공격을 옆으로 굴러 피하고 자세를 다시 잡는 동안 녀석이 만족스럽게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피하네? 어떻게? 감인가? 공격이 예상되는 곳에 털이라도 곤두서는 거야?"

드러나는 광기와 달리 의문이 생기면 눈을 똑바로 뜨고 분석하려는 게 아니꼽다. 그냥 냉정하게 분석하면 강적이구나 하고 끝날 감정이, 무슨 실험용 쥐 새끼 구경하는 것처럼 싱글벙글하는 꼬라지라서 꼬움수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그래. 어차피 있는 힘껏 도망친 상황에서 따라잡혔으니 또 등을 보이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건 결국, 놈이 날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 싸워서 죽이거나 행동 불능에 다다르게 만드는 것뿐이다.

각오를 다지고 검을 고쳐 잡으며 발끝부터 늘러붙어 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잡생각을 떨쳐 낸다.

"뭐야. 싸우려고? 도망치는 게 나을 텐데?

"전력으로 도망치던 놈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놓고 그런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믿냐?"

"이런. 듣고보니 그러네."

정말 미처 생각도 못 했다는 듯한 반응에 화가 치밀어 오른 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나보다 우위에 있는 폭력을 향한 강박증과 분노가 결합하면 분노 조절 장애라는 시너지가 일어나서 몸이 움직이거든.

뒤를 생각않고 끌어올린 마력에 온몸이 저릿해지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놈이 쓰는 게 마법과 비슷한 것인 이상 거리를 둬서 좋을 게 없다. 사용할 때 마력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건 조금 불안 하지만서도 마력의 칼날이 생성되는 과정 자체는 보이니까 충분히 피할 수 있다.

그런 판단 속에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고 있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하나씩만 날릴 수 있다고 한 적 없는데?"

녀석의 머리 위로 다섯 개의 마력 칼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마법인지 몰라도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이면서 생성되는 게 아니라서 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마법을 쓰고 있는 녀석에게조차 아직도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칼날이 전부 완성되자 녀석이 너무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소리치며 팔을 휘둘렀다.

"이것도 어디 한 번 피해 봐!"

그것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놈은 분명 전사가 아니다. 내 시선이 자기가 준비 중인 마법으로 향하는 걸 인지 못 하는 걸 보니 이건 무조건이다. 근접전을 펼치지 않는 마법사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그리고 내가 마력을 보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못하고 있다. 내가 피할 때마다 감탄하는 걸 보면 지 눈에는 보이는 게 분명할텐데, 나는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즉, 마력을 느끼는 것과 보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능력이며 결코 일반적이지도, 흔하지도 않은 능력인 게 분명했다.

녀석이 보고 있는 건 마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이거나, 진짜로 마안같은 게 존재해서 혼자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할만 하다.

내가 마력의 칼날을 볼 수 있다는 가정이 없다보니 보이지 않는 공격이라는 자신감 때문에 지극히 단조로운 형태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음같아서는 생성 중인 마법 뿐만 아니라 저렇게 완성된 마법도 벨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지금 시도해보기엔 너무 리스크가 컸기에 일부러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전사가 아닐지라도 대놓고 피하면 의심을 할 테니까. 옷과 살가죽을 조금 희생해서 방심을 유도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그리고 이 장사의 결과물은 저놈 목숨이지.

"정말 피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그렇게 다섯 개의 칼날을 순차적으로 피하며 거리를 좁혀가는데도 녀석의 얼굴에 위기감은 드리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방금 전의 미친놈 같은 웃음기가 싹 사라진 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이미 내 강화된 능력 덕에 네 걸음만 더 내디디면 검이 닿을 수준까지 거리가 줄어든 상태인데도 여전히 신기하다는 감정 외에는 달리 드러나는 변화가 없는 게 신경 쓰였다.

마력의 칼날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한결 같은 걸 보니, 같은 마법을 한 번만 더 피하면 녀석은 무조건 베여야 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태연하다고? 내가 모르는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그럼 이건 어때?"

중얼거림과 함께 머리 위가 아니라 놈의 허벅지 언저리에서 구체가 생성되었다.

역시나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지도 않고, 형태도 없다. 이번에는 칼날과 다르게 아무런 신호도, 움직임도 없이 구체를 쏘아내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자신의 동작을 통해 공격을 예상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칼날보다 날아오는 속도도 더 빠른 걸 보니 아마 맞을 것이다.

시도는 좋았지만, 당연히 보이는 내겐 의미 없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남은 거리를 마저 좁힌 나는 온 힘을 다해 놈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그 찰나의 순간 마주친 놈의 눈에 담긴 건 여전히 의문이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목에 날아드는 검에는 관심도 없는 듯한 무관심이 함께 스며들어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경악도, 당황도 없이 그저 의문 뿐인 시선은 죽음을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해가 안 돼서 슬슬 짜증이 나네."

여전히 정신 나간 감정기복을 보여주는 놈의 목에 검이 닿았지만,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저항은 내 몸에서 느껴졌다.

"씨발...!"

마치 홀로그램을 통과하는 것처럼 녀석의 목을 통과하는 검을 보고 경악하는 사이, 복부에서 아찔한 통증이 일어났다.

옆구리가 뜯겨 나간 것처럼 더럽게 아프다!

"어떻게 피하는 거지?"

이미 늦어 버렸지만 뭐가 이어질지 몰라 이를 악물고 몸을 옆으로 날렸지만 녀석은 미친놈다운 시선을 보낼 뿐 꼼짝도 않는다. 놈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손으로 만져 본 왼쪽 옆구리에는 총이라도 맞은 것마냥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검을 휘두르는 사각에서 공격당해 대체 뭐에 맞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날붙이가 아닌 건 확실했다.

그도 그럴게, 이 상황 속에서도 녀석은 여전히 맨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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