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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03화 (103/412)

머리가 뜯겨 나간 놈의 몸이 뒤로 쓰러진 건 나에겐 참 다행인 일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봤다면 아주 좋아했을 법한 유혈의 폭포 때문이 아니라, 멀쩡히 베인 것도 아닌 놈의 절단면을 덤덤하게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찌르고 베고 목을 날려 버리는 일이 아무리 자주 있다 한들, 미관상 좋지 않은 건 좋지 않은 거다.

사방에 튄 피들은...아직도 저주의 여운이 남아 있는 탓인지 나에게 묻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여 바닥에 떨어진다. 정말 세포의 활동까지 다 멈춰야만 죽음으로 치부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대체 뭔 짓을 하면 저렇게까지 저주받게 되는 건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놈의 과거는 심히 호기심이 동하는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며 승리의 여운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나는 불필요한 궁금증들을 의식의 한 켠으로 밀어내며 만신창이가 된 몸을 살펴보았다.

"쓰읍...걸레짝이 돼 버렸네."

앞으로 뻗었던 양팔은 물론이고 무릎 꿇었던 오른쪽 정강이와 왼쪽 허벅지까지 아주 성한 곳이 없다. 그 대가로 목숨을 건졌으니 불평따윈 사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쉽게도 게임처럼 보스를 잡았다고 스테이지 클리어가 되는 게 아닌 현실에서는 충분히 불평할 만한 상황이었다.

게이트에 있던 놈들이 말했던 대장은 분명 저놈일 것이다. 강함은 둘째치더라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손도 못 대는 놈이었으니까. 만약 저놈이 한낱 병사라거나 중간 보스였다면 진짜 똥오줌을 지리면서 울어버릴 자신이 있다.

아무튼, 놈들의 추격이 지금까지도 이어지지 않은 건 순전히 저놈의 능력을 향한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포를 하던, 죽이던 간에 반드시 날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겠지.

하지만 정상적인 집단이라면 반나절 안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추격대를 편성할 거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피를 줄줄 흘리며 돌아다니면 당연히 내 목숨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겠지.

그 전에 치료를 마치고 최대한 먼 곳에 숨을 곳을 마련해야 한다.

"초가을이니까 최소한 지혈제 걱정은 없겠네."

더 이상 마력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지쳤지만 가만히 있으면 과다출혈로 죽을까 두려워서 쉬지도 못하겠다.

다행히 동맥은 다치지 않은 거 같은데, 지금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단순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평소에 차고 다니는 약재 파우치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속에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 나는 그래도 지금이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라는 점에 감사하며 약초를 찾기 시작했다.

"정령님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사후처리니까 도움을 좀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온몸이 아픈 탓에 이겨 놓고도 자꾸만 울적해지는 기분을 전환할 겸 입 밖으로 말을 꺼냈지만, 정령들은 이미 그 전부터 내 의사를 이해하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찾는 건 검은 엉겅퀴와 거품 쐐기풀이라 불리는 식물들. 전자는 생긴 건 엉겅퀴랑 똑같은데 이세계 식물답게 지혈 효과가 남다른 식물이었고, 후자는 잎사귀를 물에 담가서 간이 소독제로 쓸 수 있었다.

검은 엉겅퀴를 환부에 바르는 지혈제로 쓰려면 바짝 말려서 빻아야 하기는 하는데, 그 정도는 우리 위대하신 불의 정령님께 간곡히 부탁드리면 좀 툴툴거리면서도 도와주신다. 지금은 또 긴급상황이기도 하니 어지간하면 군말 없이 바짝 말려주실거다.

역시 불행 중 다행의 대명사라 해도 손색이 없는 내 인생답다고 해야할까. 두 가지 모두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정령의 인도에 따라 걸으니, 딱 좋은 개울가 인근에 다다를 무렵에 식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실리에는 냄새만으로도 찾아내는 묘기를 보여줬었지. 몇 년을 시도해봤지만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묘기 중 하나로 남아 있는 추억이다.

갑자기 떠오른 좋은 추억이 가져다주는 아련함을 뒤로한 채 손으로 땅을 파서 엉겅퀴 뿌리를 뽑아내고, 맨손으로 뜯으면 소독은커녕 더럽게 쓰라린 쐐기풀 잎사귀를 아직 형태가 남아 있는 반망토 끝자락을 장갑삼아 하나 뜯어낸 뒤 개울가로 다가가 치료를 시작했다.

이세계 민간요법 중에서도 가장 주먹구구식 응급처치에 속했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에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흐르는 물까지 찾았으니 이 이상 뭘 더 바라는 건 사치에 가깝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정령님들. 덕분에 이 불쌍한 인간이 죽지 않고 살겠네요."

옷을 벗어 환부를 씻고 치료하는 것 자체는 대수로울 게 없었지만 놈의 목을 뽑는 과정에서 꽤나 무리해서 마력을 운용한 것인지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탓에 쉽진 않았다. 한평생 숨 쉬는 것처럼 써 오던 마력이 완전히 방전 된 탓에 평범한 몸이 주는 위화감을 제외하더라도 물 먹은 솜 그 자체인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면 아까 게이트에서 상대했던 병사 두 명만 동시에 달려들어도 아슬아슬하다,

"후우...그래. 복수를 위한 여행 선행학습이라 생각하자."

항상 편하게만 다닐 수는 없다. 오히려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매우 풍족하고 여유로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있던 자리를 물의 정령에게 부탁해서 한 차례 휩쓸어 정리한 뒤, 걸어왔던 길과 반대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이미 수십 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남자는 한 때 군단장 후보에도 올랐던 인물이었다.

비록 스스로의 과실로 인해 터무니없이 강력한 저주에 휩쓸리고 모든 힘을 잃다시피 한 터라 그 모든 게 과거의 영광에 불과했고, 잃어버린 마력과 마법을 마나로 대체하여 정예병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전투력 밖에 남지 않게 되었으며, 저주와 얽혀 살아 온 세월로 인해 광증을 내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그래도 비밀 임무에 아무런 주저 없이 투입할 정도의 능력은 있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속박하고 있는 저주로 인해 그를 죽일 방법도 없다는 건, 본인에겐 저주일지 몰라도 마왕군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메리트였다. 그래서 제국 황녀 납치 임무에 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눈 앞에 목도한 병사들은 초월적인 공포도 함께 직면해야만 했다.

"대체....어떻게..."

추격대를 인솔하던 이는 새하얗게 질린 채 뒤로 물러나는 선에서 그쳤지만 다른 이들은 대부분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들이 대장의 귀환이 너무 늦다고 판단을 내린 것은 숲에 노을이 드리울 때 즈음이었다. 그마저도 대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거라는 판단이 아닌, 광증이 도져서 이상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움직인 것에 가까웠다.

대장을 죽이기는 커녕 공격할 수단도, 방법도 없기에 핏자국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당연히 아무런 걱정이 없던 그들이었다. 오히려 대장을 상대한 것 치고 지나치게 혈흔이 적다는 점에 감탄할 여유마저 있었다.

그래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붉은 머리를 보면서도 그게 대장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 역시 용사였던 거야. 그렇지 않고서 대장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리 실력으로는 절대 못 잡는다. 이번 임무는 실패야. 돌아가서 군에 보고해야 해."

"하지만...흔적으로 보면 놈도 많이 다쳤어.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난 추적해서 죽이거나 생포해야 한다고 본다."

"다친 게 대수냐? 게이트로 들어오자마자 검을 휘두르는 거 못 봤어?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반대편에서 계획이 완전히 까발려진 거라고! 그런 놈이 부대를 끌고 온 것도 아니고 혼자 넘어오면서 포션 하나 안 챙겨 왔겠냐? 저것도 다 함정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나마 정예에 속하는 이들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냉정히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으나, 의견이 통일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의견이 타당하고, 모든 주장에 합당한 증거가 부족하다.

그 탓에 오직 예상과 가정만으로 이루어진 분석이 점점 언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용사라 하더라도 18살 먹은 애새끼야! 심지어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제국에서 몇 년을 허비한 놈이라고! 대장을 죽인 건 놀라운 게 맞지만 그게 우리가 놈을 무작정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보는거냐!"

"단순히 대장을 죽였다는 것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지. 막바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몰라도 이곳에 오기까지 대장의 공격으로 녀석에게 상처가 난 건 딱 한 번이었다. 보이지 않는 대장의 마법을 그렇게 피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는거냐? 우린 지금 다 농락당하고 있는거라고!"

"그만!"

인솔자의 외침은 짐짓 비명처럼 느껴졌지만, 그의 의사를 전달하고 목적을 달성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침묵하는 추격대를 뒤로한 채 숲속으로 이어져 있는 핏자국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불안과 의심이 차올랐다.

근 몇 주 동안 앞마당처럼 돌아다니던 숲이었는데,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숲은 정체불명의 마수가 살고 있는 공포의 미궁과 다를 바 없었다.

"...인간들은 대장의 시신을 수습하고 복귀해라. 그리고 야영지의 흔적을 지우고 떠날 준비채비를 끝내놓도록. 우리는 놈을 추격한다."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안 괜찮다. 불사신인 줄 알았던 대장은 죽고 아무런 확신도 없는 상황이 괜찮을리가. 그저 대장 씩이나 되는 사람이 놈에게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못하고 죽었을거라 생각하기 싫을 뿐이다."

상대가 용사라 해도 문제, 그렇지 않다 해도 문제다.

그 와중에, 만약 대장이 회심의 일격을 가한 상태인데, 여기서 지레 겁을 먹어 놓쳐 버린 꼴이 된다면, 말도 안되는 후환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는 돌아오겠다. 만약...그때까지 우리가 귀환하지 않는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귀환해라."

반문은 없었기에,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여섯 명의 마족들은 흔적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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