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21화 (121/412)

엔벨데 다 보샤 백작.

미쳐 날뛰는 멧돼지의 정체였다.

"귀족들은 수많은 사용인들을 고용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이 비밀스러울 수 있을 거라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일부는 단순히 외부 인원을 고용하고 뒤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진실을 감췄다고 믿기도 하죠. 당장 저만 하더라도 그렇게 몸을 사렸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계기로 꼬리가 잡히는 마당에 그딴 허술한 조치로 정보 누설을 막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분명 다리만 분질렀던 거 같은데 머리도 같이 다친 건지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인해 비상한 지성의 소유자가 된 건지 몰라도 지크멜은 정말 말을 잘했다.

심지어 그냥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도 굉장히 논리적이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세까지 갖춘 게, 내가 봐 왔던 어지간한 인간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영리한 거 같다.

이게 정말 내가 알던 지크멜이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대체 얼마나 악착같이 공부했으면 4년만에 이렇게 바뀌지?

"엔벨데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똑똑한 귀족입니다. 중요한 일은 직접 혹은 측근을 통해서만 진행하고 사용인들은 주기적으로 물갈이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인재를 뽑아 측근으로 양성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또 나름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대충 봐서는 이상한 낌새도 없습니다. 그냥 귀족의 변덕 정도로 여길 정도죠."

자신의 지위에서 오는 편견마저도 이용하고 사람에게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다.

지크멜이 내린 평가는 대충 그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 정보가 별로 없습니다. 그한테 달라붙어서 떨어지는 부산물이라도 받아 먹으려는 이들은 그래도 좀 정보가 있는데..."

"그거면 충분하다."

"네?"

"어차피 그 새끼는 임시 불가침 조약 때문에 못 건드려. 다른 놈들 정보만 있으면 돼. 그것도 일반적인 건 필요 없고, 아까 말했던 불법적인 거만 살게."

"에? 산다구요?"

"너 정보상이잖아. 인생에 공짜는 없어."

어중간하게 날 위협하는 놈들이었으면 모를까, 제대로 손님 대우를 받는 이상 난 한없이 관대하다. 과거의 잘못? 이미 그때 다리 두 개로 합의 본 걸 물고 늘어지는 좀생이도 아니지.

"아니 그래도 엘드미아님께 돈을 받는 건 좀..."

"넙죽 가격 제시한다고 칼 빼 들거나 그러지 않아. 정당한 일에 정당한 대가. 심지어 네 정보는 내게 확실히 가치가 있다."

그래도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게 좀 큰 건지 우물쭈물 거리는 지크멜이다. 평소라면 한 대 쥐어박았을 텐데, 신념 주입의 긍정적 수혜자라서 봐줬다.

훨씬 우위에 있는 폭력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정보상의 길을 걸었다라...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든 달라지긴 하나보다.

"근데 값은 어떻게 따지는 거냐? 업계 표준 같은 게 있나?"

원래 이런 자리에서 무지함을 내비치는 건 좋은 게 아니겠지만, 이렇게까지 쫄고 있는 놈이 용팔이마냥 등 처먹는 짓을 할 거 같지 않아서 그냥 대놓고 물어보니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런 정보는 보통 모험가를 상대하는 정보상들에게만 있습니다. 귀족의 가십거리와 상회 사이의 정보라는 건, 사실 개뿔도 모르는 사람에게 들어가면 걸레조각이고 잘 아는 사람에게 들어가야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 편이죠. 표준이 만들어지려면 같은 정보를 파는 이들끼리 연락이 닿거나 왕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귀족과 상회라는 것들은 진짜 수틀리면 사람 잡아 죽이는 편이 더 싸게 먹힌다고 여기는 놈들이라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거든요."

"듣고 보니 그러네."

지크멜 본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보원들이 계속 죽어 나가면 될 것도 안 되겠지. 역시 업계 관계자다운 전문적인 발상이다.

"그래도 이 정보들은 중요도에 비해 그리 비싸진 않습니다. 왕실에서 의뢰하거나 모험가 길드에 관련된 의뢰가 들어가면 미친 듯이 치솟는 경우도 있는데, 적어도 제 판단에 얘들은 연이 없네요."

이득을 볼 만한 이들은 겨우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만으로는 명분이라는 게 생기지 않고, 그 외의 사람들에겐 이익조차 없다.

"나야 좋지. 일단 수도에서 가까울 것. 그리고 최대한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을 것. 불법적일 것. 이 조건에 부합하는 거 있냐?"

"있기는... 합니다. 노예 상인과 관련된 놈들이네요."

뭐? 노예 상인? 이게 뭔 개소리야?

"아니, 수도 인근 맞아? 노예 상인이라니? 나도 모르는 사이 노예 거래가 합법이 된 거냐?"

"아, 그게 국내에서의 노예 거래 및 자국민의 노예화가 불법인거지 해외에서 구입해 온 노예의 존재까지 부정하진 않습니다. 이놈들은 전시 혼란을 틈타 사람들을 잡아다 팔면서 여러 위조 작업을 거쳐 해외 노예로 둔갑시키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네요. 세가 본격적으로 커진 건 대략 3년 정도 전인 걸 보아하니 전쟁이 길어지면서 왕실의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노린 거 같습니다."

와 진짜 씨발 어메이징하네. 하긴 7년 간 전쟁을 지속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긴 하다만.

21세기를 살아오던 현대 사회인으로서 참을 수가 없다.

사축 노예였던 이의 분노를 맛보게 해줘야겠군.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귀족과 연이 닿은 놈들인데."

내가 속으로 분노의 칼날을 벼리는 사이 지크멜이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반응 역시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다.

반역자라고 해도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다가 기본적으로 상대는 귀족이다.

몰래 키우던 병력을 털어봤자 나오는 거라고는 그들의 주머니 정도일 것이고 노예 시장을 털어봤자 나오는 건 거기서 경비 서던 이들 혹은 노예 상인에게 고용 된 용병들의 주머니 정도가 고작이다.

전자는 반역자들의 재산은 모두 국고로 환수되어야 해서, 후자는 불법 노예 상인의 자산은 당시 남아있던 노예들에게 배상금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정도는 몰래 챙길 수 있지만 규모를 생각하면 남는 장사일 수가 없다.

그런 주제에 당연히 쉽지도 않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놈들답게 경비에도 돈을 많이 쓰니까.

물론 그런 건 지금의 내가 알 바 아니지.

"알 게 뭐야. 엔벨데랑 연관있다며? 그럼 좆같게 해줘야지."

아래에서부터 갉아먹고 들어가는 건 내 성미에는 안 맞지만 엔벨데를 건드릴 수 없으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어차피 그놈들 내버려 두면 엔벨데에게 이득이라는 소리잖아? 그 꼴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지.

"대체 뭐가 어떻게 엮이신... 아닙니다. 제가 알아봤자 좋을 게 없을 거 같네요."

"너 정보 모으는 거 보니까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다."

피바람이 몰아칠 테니까.

지크멜이 요구한 정보값은 은화 4개. 솔직히 적은 돈이 아니긴 했다. 거의 성인 남성 한 달 식비니까.

사람을 움직여서 모은 정보의 값이라고 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가격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정보라는 게 활동 한 번에 정보 하나! 같은 형태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더라.

물론 내 입장에서야 일반적으로 닿을 수 없는 정보상과 연이 닿았다는 점, 현재의 나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라는 점까지 포함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건 그냥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저희 가게로 오실 때부터 누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 맞아. 남자 여자 두 명 씩. 아직도 있어?"

"네. 조금 거리를 두긴 했는데 감시하고 있는 건 확실하답니다."

오늘 아예 끝장을 보려는 건가 싶으면서도 기껏 언질을 준 게 기특해서 은화 1개를 더 얹어 주자, 보고한 부하에게 보너스처럼 지급해 준 지크멜이 가게의 목재 진열대를 뒤적이더니 반지와 목걸이 서너 개를 건넸다.

"저희가 표면상으로는 그냥 보석상 같은 거니까 나가실 때도 그런 식으로 보일 수 있게 장신구 몇 개 가져가시죠."

"그것도 돈이잖아 임마."

"에이, 귀족나리들이 적당한 여자 꼬실 때 쓰고 싶어 하는 싸구려입니다. 동화 몇 푼짜리니까 그냥 가져가세요."

처음 보여 준 경기 일으키는 모습과 달리 정당한 금액까지 지불한 지금 지크멜이 나를 대하는 모습도 조금은 편해졌다. 혹시라도 기껏 찾은 정보상이 다음 날 왔더니 폐업신고를 때려 버리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안심이 되는군.

"방문 감사합니다 고객님! 안녕히 가십쇼!"

그렇게 지크멜의 부하들이 목청 껏 외치는 인사에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며 가게의 간판을 확인했다.

"진흙 진주라. 좀 치네."

중고 귀금속이라고 하며 팔고 있으니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 정도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긴 할 거다. 물론 장물의 관점에서 봐도 결코 깨끗한 물건이 아니니 적절한 비유고, 정보를 사고 판다는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잘 어울린다.

지크멜이 말했던 것처럼 정보라는 건 진짜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에게만 제 가치를 발휘하니까. 새끼가 제목 짓기 학원을 다닌 건지, 노리고 업종을 정한 건지는 몰라도 기똥차게도 지었네.

"그럼 이제 저 진드기 같은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아예 맨몸으로 움직이는 거면 몰라도 검을 차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단순히 호신용인지 유사시엔 칼빵을 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건지 직접 확인하고 싶단 말이지.

"어디 적당한 골목 없나."

오그웬 같은 곳과 달리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답게 깔끔하게 정리된 거리에서 으슥한 뒷골목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지만서도 보통 그런 곳은 도시 경비대도 자주 순찰을 돌다보니 인적이 드물다고 하기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있다.

일단 조지고 나면 정보를 털기 위해서 시간이 좀 들어갈 텐데, 열심히 강냉이를 터는 와중에 경비대라도 마주치면 많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꼬여있는 곳에 가면 쟤들이 머저리가 아닌 이상 눈치를 챌 거 같고.

"쓰읍... 뭐하는 놈들인지 못 알아내면 오늘 잠 못 잘 거 같은데."

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점심나가서먹을것같...음? 잠깐.

유인해서 족칠 수 없다면, 오히려 내가 쟤들을 역추적해서 본거지를 조지면 되지 않을까?

유레카! 이게 발상의 전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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