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발.
소유권 이전의 전문가! 는 아니고 꽤나 숙련된 척후 모험가였다.
"뭐 가끔은 도둑질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도적놈들 소굴을 털 때의 이야기니 신경 쓰지 말라고."
사람좋게 웃어 보이며 말한 그의 모험가 경력은 자그마치 15년이더라. 옆에서 듣고 있던 발쿤 씨도 별말 없는걸 보면 딱히 과장은 아닌 것 같았다.
"내 경험상 저런 녀석들은 높은 확률로 종족차별주의자야. 그리고 나는 종족차별주의자를 싫어하지."
엄청나게 편견 가득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그림자 발이었지만, 나한테 도움되는 일이니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이다.
그림자 발도 진심으로 말한다기보다는 적당히 대충 떠드는 거에 가까워 보였고 말이지.
"안 그래도 대체 어떻게 해야 몰래 저들을 추적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해결되는군요. 착수금으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어허. 이건 순수한 호의라구."
"그렇다면 더 좋군요. 그림자 발의 순수한 호의에 합리적인 금액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제 호의를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으하하핫! 이거 한 방 먹었구만! 귀인은 역시 말재간이 만만찮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면서도 그가 제시한 착수금은 겨우 동화 한 장. 일이 끝나고 받을 돈도 동화 한 장이었다.
"일의 경중으로 돈을 버는 것이 모험가 아니겠어? 나한테 저런 놈들 꼬리 잡는 건 일도 아니야. 그 이상 받으면 내 이름이 울어!"
금전적 가치에 매우 철저한 종족이라고는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뚝심있을 줄은 몰랐던만큼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의지가 그렇다고 하니 일단은 받아들이고 나중에 아실리에에게 물어봐서 웃돈이라도 더 얹어 줄 방법이 없는지 알아봐야지.
"그래서. 어디까지 알아봤으면 해? 역시 저놈들이 돌아갈 본거지인가?"
"네. 가벼운 복장인 걸 보면 분명 수도 내에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만 확신은 없네요."
"괜찮아 괜찮아. 그거야 내가 알아내면 될 일이지. 이거 간만에 재밌는 일이 생길 거 같은 느낌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쓰읍. 저 꼬맹이 감은 쓸데없이 잘 맞는 편인데..."
영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할 일을 마친 발쿤 씨가 나에게 검을 돌려주며 말했다.
"날은 당연히 안 상했고, 심지에도 지장은 없어. 오히려 미묘하게 마나가 잘 먹더군. 뭔지는 몰라도 그 마법사라는 놈이랑 싸우면서 나도 모르는 순기능이 생긴 모양이야. 마법부여 같은걸 하면 쉽게 먹는다고 보면 될 걸세."
아무래도 내가 마력을 쓴 게 무언가 신묘한 마법작용을 일으킨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건틀릿도 드워프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 상태 점검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자네가 먼저 말해 주니 다행이군. 손이 간질간질 했다네."
벤데 후작의 말대로라면 드워프가 제작에 참여했으니 발쿤 씨에게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미 진즉부터 알아차리고는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나 보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내 멋들어진 건틀릿이 메탈 슬라임 마냥 꿀렁거리는 모습으로 바뀌는 팝콘 땡기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자니 발쿤 씨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제국에서 선물로 받았습니다."
"일주일 사이 제국까지 다녀왔나? 근데 선물이라고? 대체 누가?"
"좀 높은 지위의 귀족이긴 했죠."
"허헛. 대단한 친구였구만 자네."
이제는 수염이 아니라 머리를 긁적이는 발쿤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미 어느 정도 당사자에게 이야기도 들었겠지만 부여한 마법은 군사 기술이라네. 이렇게 뜯어볼 것도 상정하고 줬을 테니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수준의 기술이라는 거겠지. 그래도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들었고... 초기 시험작이군. 으레 그런 물건들이 이렇게 비용 생각 안 하고 일단 때려 박아보는 경우가 있거든. 재미있는 발상으로 만들었지만... 흠. 마법사에겐 굳이 필요 없고 마법사가 아닌 이는 쓰기가 힘든 참으로 계륵 같은 물건이야."
공격 마법을 '완벽히' 막아 내기 위해서는 그보다 급이 높은 방어 마법을 펼치거나 실시간으로 마법을 분석해서 파훼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해야 한다.
당연히 상대의 모든 마법을 파악하고 있지 않은 이상 쟤가 지금 2의 위력을 지닌 마법을 쓰는 건지 3의 위력인 마법을 쓰는 건지 일반적인 전사들은 알 도리가 없으니 그걸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바로 내 건틀릿이라고 한다.
"문제는 효율이 최악이라는 거지. 마나든 오러든 결국 마력을 정제하여 만드는 정제된 힘이지 않나. 물건에는 오러가 깃들지 않으니 그냥 빨아들여 마력으로 치환한 뒤 내장되어 있는 마법을 발동시키는 골 때리는 과정을 거치게 만들어졌어. 이게 효율이 좋을 리가 없지."
그리고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벤데 후작도 말하던 효율 문제.
근데 난 마력을 쓰잖아? 나한테는 사실 아무런 리스크도 없는 방어구인 게 아닌가 되게 궁금했다.
"치환...이라고 하시면, 오히려 마나나 마력이 담긴 마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다네. 음... 국경 같은 거지. 왕국 사람은 그냥 통과하지만 외국인들은 여러 서류가 필요하다. 이런 거."
멋모르고 마력부터 찔러넣었다가 망가지면 슬플 거 같아 성능 확인도 안 하고 있었는데 발쿤 씨 덕분에 의문이 해결되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정말 발쿤 씨의 설명은 기가 막히게 와닿는군요. 이해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아저씨 아래에서 기술 배우는 사람들은 재능과 노력이 부족해서 못 배울 수는 있을지언정 설명을 이해 못해서 못 배우는 경우는 없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다시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온 건틀릿을 돌려 받은 뒤 간단한 사례비를 주는 것으로 발쿤 씨와의 용무도 마무리되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언제든 또 문제가 생기면 오게나. 환영하지."
"감사합니다. 그림자 발?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말라구!"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면서 쾌활한 웃음과 함께 과장된 동작으로 팔을 흔들어 주는 그림자 발과 그 옆에서 덤덤히 인사하는 발쿤 씨를 뒤로하며 밖으로 나온 나는 길게 기지개를 키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대놓고 봐서는 보이지 않는 걸 보아하니 마냥 생각 없는 놈들은 아닌 거 같다.
별수 있나! 이젠 전문가에게 믿고 맡길 수밖에! 난 더이상의 고민없이 귀가를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보다 많이 늦게 돌아오게 된 탓에 내가 오가토르프 저택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아실리에도, 셰릴도 귀가한 다음이었다. 그래도 셰릴이 돌아온 건 나랑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땐 아직 씻는 중이라고 아실리에에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의외로 오래 걸렸네 엘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거든. 아, 그러고 보니 누나한테 물어볼 거 있어. 어쩌다 보니 풀링을 만났거든."
유쾌한 친구 그림자 발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하며 그에게 추가적으로 보상을 줄 방법이 없을까 물어봤지만 돌아온 것은 아실리에의 웃음과 귀여운 도리질이었다.
"풀링이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야. 보답하고 싶으면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엘디도 같은 값으로 그를 돕거나, 아니면 그를 아는 다른 풀링을 도울 때 그 이야기를 언급하며 같은 값을 받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아마 더 얹어 주면 몰래 저택에 들어와서 돌려주고 갈 걸?"
"대체 얼마나 물욕이 없는 거냐고..."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 풀링! 심지어 그렇게 받은 돈을 돌려주는 행위마저 장난처럼 즐길 정도라니 당장은 감사를 표하는 것 외엔 답이 없는 것 같다. 그 외에 오늘 겪었던 기상천외한 사건의 연속을 추려서 이야기해줬더니 아실리에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다른 의미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 짧은 사이에 용캐도 거기까지 저지르고 왔네. 정말 눈을 떼기가 두려울 정도야."
뭐 한 끗 차이로 공작 목을 벤 다음에 도망자 신세가 됐을 가능성도 있으니 저질렀다는 표현을 딱히 뭐라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거와 별개로 난 당당했다.
"신념은 굽히지 않기에 신념인 거야. 실제로 그 덕도 봤고."
"그건 그러네. 정보상하고 닿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누나는 어땠어? 지인은 아직 수도에 있었어?"
"아니. 전쟁이 심화되면서 결국 전선으로 갔나보더라고. 위험하지만 보상은 또 확실해서 실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꽤 많이 갔나 봐."
아무래도 지인들은 모험가였나보다. 그래도 말하는 걸 보면 딱히 죽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럼 이제 그림자 발이라는 분이 올 때까지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셰릴은 뭔가 수확이 있었으려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어."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나 아실리에와 달리 셰릴은 그저 천재일 뿐인 귀족이니까. 말은 좀 이상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녀가 아무리 배움이 빠르고 특출나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에 불과할 뿐 더러, 지켜야 할 신분과 이어야 할 가문까지 있다. 이것저것 따져서 일단 지르고보는 나나 이미 오랜 시간 모험가로 일해왔던 아실리에와는 전혀 다른 위치인 것이다.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사실 에카프 경이 처리하게 될 것이니 셰릴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정말 순수하게 발품을 팔거나 학우들에게 뭐라도 물어보는 것 정도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성과가 없을 거라는 걸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심심하면 삐치고 시무룩해지는 동생 하나 둔 기분이네."
"동갑이잖아?"
"애가 실패를 덜 경험해 봐서 아직 어려."
그럴 때도 있는 건데 뭐 하나 좀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자기가 못했다고 느끼면 바로 시무룩해지는 게 딱 그 나이 또래 답다.
그렇게 생각하며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며 혀를 차는 내 모습을 아실리에는 그저 기가 차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