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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35화 (135/412)

도적들의 아침은 느린 편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처럼 방탕한 무법자들의 삶에 맞춰 밤새 놀고 마시다 보니 그렇다기보다, 엄연히 후원자가 존재하기에 생계를 유지함에 있어 절박함이 부족한 탓이 컸다.

적당히 재미 볼 수 있는 적당한 마을과 안정적인 노략질이 가능하게 도와주는 뛰어난 정보통. 그리고 빵빵한 수익까지. 때때로 후원자의 조건에 맞춰 조금 멀리까지 원정을 나가 사람들을 납치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평소에 누릴 수 있는 안락함에 비하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해 줄 수 있었다.

"흐아아암. 잠이 깨질 않네 이거."

"추워서 졸린 게 아니라?"

"어 씨. 그런가?"

감시 겸 은신처의 보초 역을 맡고 있는 도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없을 땐 노는 인원들이 늘어나고 자꾸만 게을러지다 보니 아예 보초를 네 다섯 명씩 세우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최근에 크게 한탕했던 탓에 해가 중천을 향해 한창 나아가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나른함과 졸음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참다못한 도적 한 명이 파이프 담배를 꺼내물자 다른 도적이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야. 나중에 펴. 대장이 보면 경기 일으킨다."

"대장 어제 진탕 마시고 잠들었다. 점심이 다 지날 때까진 못 일어날 걸?"

"진짜? 그럼 나도 펴야지."

"젠장. 일부러 안 가져 왔는데. 궐련 있는 놈 없냐?"

숲은 울창했지만 그들의 거점은 과거에 요새였던 잔해를 적당히 개조해서 만든 장소였다. 산불로 번질만한 요소 따위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으로 거점 주변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릴 적 화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그들의 대장은 근무 중 혹은 아무 장소에서나 담배를 태우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병적으로 증오했다.

"하여간 우리 대장도 못 말린다니까. 생긴 거만 놓고 보면 화톳불로 목욕할 것처럼 생겼는데 말이지."

"크하하핫. 누가 아니래."

"최근에는 뭐더라? 봉화가 다섯이 오를 때 죽음이 내린다라던가 뭐라던가 점쟁이한테 계시 받았다면서 절대 모닥불 다섯 개 이상 못 피우게 하잖아."

"아니 그렇게 귀신 같은 사람이 미신은 어쩜 그리 잘 믿을까. 그럼 지금 우리가 피우는 담배도 봉화로 쳐서 곧 죽음이 내리려나?"

"존나 웃기네 진짜."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들의 대장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주변 일대에 있던 도적들을 규합하거나 날려 버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에게 화를 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도 절대 깨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을 때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는 일탈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며 담배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기까지 십여 분 정도 흘렀을까.

"응? 야. 뭐가 오는데?"

그들이 경계를 서고 있던 입구 저편에서 낯선 사람 둘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장신의 남자와 여자로 보이는 인물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고 심지어 남자로 보이는 인물은 활기차게 손까지 흔들고 있었기에, 다섯의 도적들은 머리를 맞대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 온다는 이야기 있었냐?"

"난 못 들었는데."

"대장이 이런 거 까먹을 사람은 아닌데...?"

신중에 또 신중을 기했기에 여기까지 온 남자였다. 종종 과도해서 미신까지도 덥썩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들 혼자서 도적 집단이 아니라 군대 속에 있다 해도 될 정도로 깐깐한 그들의 대장은, 내방자가 있다는 걸 깜빡하고 진탕 퍼마실 인물이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정체불명의 외부인들을 위협했을 텐데...

"이야 담배 연기 자욱한 거 봐라. 너구리라도 잡냐?"

다가오는 남자가... 너무나도 쾌활하고 친근하게 목청 껏 외치며 다가왔다. 대충 봐도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거대한 덩치가 그렇게까지 살갑게 대하니 도적들은 차마 세게 나갈 생각조차 못 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사냥꾼이지! 여기 우리 말고 오는 놈들이 또 있어? 그건 좀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순간 다섯 명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기적으로 일감을 던져 주고 가는 이들. 그동안 단 한 번도 걸어서 온 적이 없을뿐더러 겨우 두 명만 온 적도 없었기에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었다.

"그, 그럴 리가요! 평소랑 다르게 겨우 두 분만, 그것도 걸어오셔서 누가 뭘 잘못 알고 왔나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뒤통수 맞나 싶어서 순간 짜증 날 뻔 했잖아! 놀라게 하지 말라고 친구들!"

하하하 웃어 보이지만 도적들은 순간 남자의 심기가 불편해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씨발. 좆될 뻔 했다. 저거 보통내기가 아닌 거 같은데."

"어쩌지? 누가 가서 대장 깨워야 하는 거 아냐?"

"아이 씨 지금 뛰어들어가면 괜히 이상하게 여길 거 아냐. 그냥 설명을 하자. 어차피 저쪽도 갑자기 온 거잖아."

정기 거래 날짜가 아니라는 건 명확했으니 아무리 저쪽이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편히 쉬고 있는 것마저 뭐라 하진 못할 것이리라. 그런 확신 속에서 일단 조장의 역할을 맡고 있던 도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아직 오실 때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건 너희 대장하고 할 이야기지. 대장 있지?"

"이, 있긴 한데... 술을 좀 거하게 마셔서..."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다는 소리로구만? 뭐 어떠냐. 군대도 아니고. 내가 너희 대장이 일 없을 때 편히 쉬는 거까지 뭐라 할 입장은 아니잖아?"

위협적인 덩치와 달리 상당히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에 도적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남자의 덩치에 압박되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두 사람이 요새에 당도했을 때, 도적들은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는 더 커 보이는 거구의 남자에게 완전히 기가 죽어버려 그 옆에 있는 미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쪽 귀에 옆에 있는 미녀의 머리카락과 같은 빛을 띠고 있는 귀걸이를 단 남자는 그들을 한 번 쓰윽 둘러본 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희 대장 깰 때까지 기다릴 처지도 아니지. 어딨냐?"

"아, 안쪽에..."

"너희가 날 처음 보는 것처럼 나도 여기 처음왔어. 안쪽이 어딘지 어떻게 알아? 누가 안내 좀 해주지?"

"제,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평소엔 뭣도 아니라고 여기던 조장 자리였지만 저렇게까지 솔선수범 할 줄이야. 도적들은 자신들의 조장을 조금은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노예 사냥꾼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사람이 뭘 먹으면 덩치가 저러냐?"

"먹는 게 아니라 다른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

"그보다 옆에 있던 미녀 봤어? 장난 아니던데?"

"미친놈. 아까 그 노예 사냥꾼 애인이기라도 하면 눈깔이 뽑힐지도 모르는데 그걸 볼 틈이 있었다고?"

괜히 혼자 여자 이야기를 꺼냈다가 상종 못할 미친놈 취급을 받아버린 도적은 풀이 죽은 채 보초나 서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네. 이렇게 쉽게 들어온다고...?"

"말했잖아. 당당하면 의외로 먹힌다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아실리에에게 난 미소와 함께 속삭여주었다.

대충 봐도 서른 명은 넘게 있을 것 같은 규모를 갖춘 도적들의 은신처를 보자마자 내린 결정은 완벽하게 먹혀 들어갔다.

현대 군대에서조차 '어, 대대장이야.' 라는, 나야 나 사기스러운 공갈에 속아 위병소가 뚫리는 병신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는 마당에 도적놈들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 심지어 문서로 대략적인 내용도 확인해서 확실히 사기를 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힘들게 들어올 필요는 없지.

나와 아실리에는 태연하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눈에 보이는 도적들의 위치와 행동들을 낱낱이 파악했다.

"장비가 꽤 괜찮네?"

"그, 그럼요. 의뢰 완수를 위해 항상 장비는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내하는 도적 놈은 날 완전히 노예 사냥꾼이라고 여기며 자신들의 성실함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 마냥 빈말도 아닌 게, 확실히 도적 치고는 규모도 크고 군기 비스무리한 것까지 잡혀있는 상태였다.

대장이라는 놈에게 가는 동안 눈에 띈 놈들만 해도 스무 명은 가볍게 넘는데 폐허를 개조한 거 같은 놈들의 은신처는 내 눈이 닿지 않은 곳이 더 있는 느낌이다.

"너희 스무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째 애들이 더 있는 거 같다?"

"예? 저희는 항상 서른 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그래? 내가 잘못 읽었나 보다. 내가 숫자가 좀 약해."

"아휴. 그럴 수 있죠. 저는 가끔 마을에서 뭐 살 때면 동전 한두 개 씩 잘못 계산할 정도인걸요."

헛헛헛 도적 새끼가 몰래 마을에 가서 물건까지 살 수 있는 세상이라니 말세다 말세야.

그런 내 생각을 알 길이 없는 놈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솟아난 웃음이라고 여기는지 나와 함께 유쾌한 듯 웃어 보였다. 그렇게 대화를 빙자한 탐색을 이어가며 아슬아슬하게 탑이라고 부를 만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2층짜리 건축물 앞에서 놈이 발걸음을 멈췄다.

"대장은 위에 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저희가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바쁠 텐데 고맙다야. 나중에 보자고."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보초를 서기 위해 돌아가는 녀석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자 하니 아실리에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어쩜 이리도 능글맞을까."

"능글맞다니? 문명전사다운 지략이죠."

"그런 점 마저도 능글맞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실리에였지만 이렇게 쉽게 온 마당에 더 두고 볼 것도 없는 만큼, 신나게 탑을 올라 2층에 다다른 나는 롱소드를 뽑아 들고 딱 하나 있는 목재 문을 전력으로 걷어찼다.

-쾅!

"으헙?! 뭐, 뭐야? 뭔데?"

"나야!"

그다지 상태가 좋지만은 않던 나무 문이 산산조각이 나며 장작으로 산화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놈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그 시선은 금방 나를 향했지만 잠 뿐만 아니라 술도 덜 깼는지 얼빠진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뭐? 너가 누군데?"

"죽음!"

그런 놈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롱소드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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