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정 그러시다면야 굳이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 늦게 파악한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는 길드장의 대답에 난 더욱 기세가 오른 것처럼 언성을 높였다.
"바로 그겁니다! 비밀 의뢰를 수주 받은 것도 아닌데 의뢰 보고는 접수대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 물론이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비록 그 접수대를 반파시켜 버린 게 나였지만 당연히 어물쩍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이제 좀 제대로 여쭙겠습니다 길드장님. 대체 어제 길드에 도착한 그 비루먹을 사기꾼같은 놈들이 뭐라고 보고를 한 겁니까?"
"그...... 저, 정체불명의 집단이 마을을 습격한 정황이 포착되었으며, 추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행분들이 도주를 하셨다고..."
"전투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정황만 보고 도주했다는 말을 믿으셨다구요?"
"사, 사람은 불안과 공포가 한계치에 달하면 공황을 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아, 공황."
난 친근하게 길드장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지극히 놀랍다는 표정과 과장된 어조를 함께 구사하며 남은 손으로 정중하게 긴을 가리키고는 되물었다.
"드워프가... 공황...?"
그리고 천천히 예카트리나를 향해 손을 옮기며 다시 물었다.
"오러를 깨우친 전사도 들기 버거운 공성추와 다를 바 없는 워해머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러빌의 대전사가... 공황...?"
이곳은 다종족 세계답게 각 종족간 편견이라는 것도 다양하고 차별 발언도 다양하며 그에 따른 모욕적 발언도 다양하다.
그 중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드워프와 러빌 전사의 정신력을 무시하는 행위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정수리가 쪼개질 수 있거든.
이미 주변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 와중에 말 한 번 실수하면 실시간으로 좆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 정신이 없긴 없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 뒤에 있는 일행들을 훑어보자마자 할 말과 못할 말은 알아서 견적을 내고 가려야 하지 않았겠냐?
물론 예카트리나가 러빌의 대전사인 건 아니겠지만 상대방이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를 시도했으면 이쪽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승부해 주는 게 예의인 법.
내 말을 듣고 간질간질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웃음을 참는 예카트리나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성공적으로 쏠리는 것을 확인한 난 길드장의 어깨를 콱 움켜쥐며 읆조렸다.
"씨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걸리더라도 공황이 아니라 광폭화겠지. 아, 이건 길드장님께 한 말이 아니라 그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사기꾼 놈들에게 한 말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
"무, 물론이지요. 저, 저희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크나큰 착오와 오해가 있었나봅니다."
"그럼요. 당연히 엄청나게 크나큰 착오와 오해가 있었죠."
촉은 온다. 이 새끼의 뒤가 구리다는 촉이.
오는 길에 교대로 위치를 바꾸는 동안 가엔달에게 조금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이 사기꾼 새끼들은 확실하게 매의 발톱단이라는 용병단의 정체를 추측하고 튀었다. 그런데 길드에 와서는 그걸 정체불명의 집단으로 보고했다고? 과장해서 있는 거 없는 거 살을 붙여도 모자랄 판에?
"이, 이번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
"...와 합당한 보상이 함께 할 거라는 말씀이시죠?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 하는 표정으로 잠깐 어버버 하는 길드장에게서 떨어진 나는 두 팔을 벌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 모은 뒤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수도 길드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한창 잘나가고 있는, 자급 모험가가 되는 건 결국 시간문제인 실력자들의 명성에 흠집을 낼 뻔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잘못을 그냥 빈말로 퉁치는 건 순 날강도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니까요! 하마터면 부당하기 그지없는 불이익까지 뒤집어써야했을 상황인데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오롯이 길드의 허술한 대처 때문에 일어날 뻔한 일인데!"
"무, 물론이지요... 의뢰와 별개로 보상... 보상 해드려야지요."
"역시 길드장님은 저 접수원과 달리 말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길드를 운영하는 분은 역시 그릇부터 다른 법이네요!"
어디서 적당한 사과로 상황을 마무리해 먹으려고 들어 뒤질라고 진짜.
호기로운 척 웃어 보이며 길드장의 등을 감정을 담아 팡팡 두드리니 죽상이던 얼굴이 울상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얼추 내 이야기가 정리된 것처럼 보인 건지 슬그머니 다른 질문을 던져 왔다.
"그,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용병단 말입니다만, 아까 분명 처단이라고..."
질문을 하며 길드장이 내비친 건 은근한 기대감. 이제 와서 새삼 문제의 원흉이 사라졌다는 점에 희망을 품고 있다기엔 앞서 보여 준 태도와는 묘하게 맞물리지 않는다.
"물론입니다. 저 피해자분들이 증인이고, 어차피 시체를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탓에 그대로 방치한 것도 있으니 얼마든지 다시 가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말입니까?"
이것 봐라? 정체불명이라던 놈들이 용병단인 것에 신경 써서 무슨 용병단이었는지 물어봐야 할 마당에 전멸시켰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네? 심지어 묘한 기대감까지 품고 있는 걸 보아하니 뭔가 엮이긴 했나보다.
"아뇨. 한 명은 살려 뒀죠. 증인이 필요하잖습니까?"
"그, 그렇죠? 역시 증인은 필요한 법이죠. 길드에서 도시와 협의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놈은 어디에...?"
"하하하. 의무감이 투철한 분이라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시죠. 이미 왕국의 수도로 비룡에 태워 압송한 상태니까요."
더할 나위 없이 쾌활하게 미소 지으며, 나는 길드장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놈들에겐 역모를 꾸민 이에게 협력한 정황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수도에서부터 급히 날아와야 했죠. 제가 타고 왔던 비룡에 그대로 실어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도착하고도 남았겠군요."
동시에 길드장의 눈과 얼굴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역모도 역모지만 졸지에 눈앞의 양아치가 '개인적으로 비룡을 타고 올 수 있는 인물'이 되어 버렸을 때 나타날 법한 당혹감이 대신 그 자리를 채웠다.
주위의 반응을 보면 분명 모험가인데 개인적으로 비룡을 탔다는 게 납득이 안 가겠지. 이미 놈의 뇌내 망상은 내 배후의 인물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멋대로 부풀리고 있지 않을까?
아쉽지만 엘드미아 에가의 배후에는 엘드미아 에가가 있을 뿐이지. 마트료시카 인형과 달리 까고 까도 줄어들지 않는 존재감을 내세우며 말이야.
"여, 여, 역모요?"
"네. 역모. 반역죄."
왕실 입장에서야 제대로 공표하기 전에 모두 처리하고 조용히 자신들의 유능함을 내비치고 싶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알 바 아니지. 이미 아무 말 없이 이용해 먹으려고 한순간부터 나랑 이도 저도 아닌 관계인 거야.
그럼 나도 편의에 맞게 이용해야지.
난 조금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으며 말했고,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험가들 사이로 다시금 웅성거림이 전염병마냥 퍼졌다.
"놈은 적극적으로 협조 의사를 밝히며 투항했기에 특별히 살려 뒀습니다. 매의 발톱단 부단장...뭐였더라. 카드놀이 잘 할 거 같은 이름이었는데. 궨트? 아, 궨스. 아무튼 그 친구와 이야기를 잠깐 나눠보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허언을 지껄인 건 또 아닌 거 같았습니다. 분명 관련된 대역죄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겠죠."
툭툭 하고 길드장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지만 그와 반대로 그는 화들짝 놀라며 여전히 지진이 일어난 동공으로 날 바라보았다.
"길드장님과 관문 도시 라비엘의 관료인 누군가께서 내건 의뢰가 우연찮게 엮이긴 했으나, 어찌 보면 반역자들의 목을 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한 것과 다를 바 없잖습니까? 왕국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되네요!"
모험가들이 아무리 소속감이 적고 국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해도 악당이 벌 받았다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권선징악의 이야기거리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내 이야기에 모험가들은 못된 놈들이 벌 받게 되었다는 거에 즐거워져서 잘 됐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뭐야! 길드장 간만에 헛짓거리 했나 했더니 좋은 일 좀 했는데?"
"이게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밟은 격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재주도 좋구만!"
"씨발 마족도 난리인데 뭔 반역이야 반역은! 잘됐다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들을 보아하니 나도 유쾌해지지만 길드장은 전혀 웃지 못하고 있다. 내 덩치에 가려져 많은 이들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뿐이지, 직접 얼굴을 확인한 이가 있다면 당장 뭔가 죄를 지었구나 하고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적나라한 절망이 스며나오는 표정이다.
꼴을 보아하니 분명 죄를 지은 거 같지만, 네가 뭔 죄를 지었는지 몰라도 그 역시 지금의 나와는 아무 연관없지.
난 살짝 허리를 숙여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니 지금 빨리 우리 일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고 올라가서 서둘러 꼬리를 자르든가, 이대로 내 손에 끌려 돌아온 비룡에 실려 수도로 끌려가든가. 알아서 선택해."
그저 죄를 지었을 경우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제시했을 뿐이지만 길드장은 마치 내가 왕국의 비밀 수행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황급히 업무를 처리해줬다.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의 온전한 인도와 더불어 합당한 보상을 챙기게 된 우리는, 다른 모험가들의 감탄 어린 시선 속에서 당당하게 길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더니 가엔달이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리가 됐으니 같이 식사나 하세나. 우리가 묵고 있던 여관 음식이 꽤 괜찮거든."
여전히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마치 이 모든 걸 예상했고 이렇게 할 예정이었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움직였다.
한 마디의 의견 조율조차 없었음에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태연하게 걷고 걸어 가엔달이 말한 여관 겸 음식점에 들어선 우리는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음식을 주문하고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동시에 빵 터졌다.
"길드장 그거 무조건이야! 그 새끼 그거 무조건 엮여 있어!"
"엘드미아! 빨리 옷소매에서 그 대본 좀 꺼내 보게나! 이게 대체 어떻게 즉흥적으로 나온 언변이란 말인가!"
"껄껄껄. 정말 간만에 우스운 걸 봤어. 자넨 모험가를 안 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박장대소를 하며 각자 말하는 와중에 예카트리나가 호쾌하게 내 등을 탕! 탕! 두드려서 격하게 사레가 들린 걸 제외하면 굉장히 만족스럽게 마무리 지어진 듯하다.
"말은 잘했지만, 그 깡패 같은 말투는 뭐니? 부끄러워서 혼났어!"
진심으로 부끄러웠던 것인지 뒤늦게 얼굴이 빨개진 아실리에를 제외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