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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83화 (183/412)

직원의 말을 들으며 오르골을 살펴보자마자 이해했다. 저건 마나를 수련하는 게 아니라 마력을 수련하는 용도라는 걸.

그나마도 발쿤 씨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지나쳤겠지만, 저 안에 들어 있는 부품들이 내 검에 쓰인 거랑 똑같은 마장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대체 왜 그런 물건이 이런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게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했기에 난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렇게 모든 계산을 마치고 조금은 가벼워진 주머니와 구입한 물건들이 담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상점을 벗어나니 아실리에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평범한 오르골이 아닌가 보네?"

"응. 이거 마나를 위한 게 아니라 마력을 위한 거야."

"...왜 그런 게 저기에...?"

"그러게."

만든 이유야 감도 안 오지만 오르골은 분명 여분없이 단 하나만 놓여져 있었다. 도서관의 상품을 제작하는 누군가가 직접 만든 거 같은데, 시험작이랍시고 만든 뒤 아까운 재료를 헛되이 썼다고 쫓겨난 것일지도 모르지.

오르골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런 장식 없이 정말 온갖 복잡한 부속 기계들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이건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느낌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꽤 듣기 좋았다.

"뭔가 분위기가 찬송가 같네."

"그런가?"

아실리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음악이 어떤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당장 여기서 헤비 메탈 음악이 나오더라도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거의 2분 가까이 음악이 흘러나온 오르골은 태엽으로 돌아가는 오르골과 달리 깔끔하게 마지막까지 연주를 마치고 침묵했다.

그리고 끼릭 끼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부의 부속품들이 열심히 움직이더니 처음 열었을 때와 비슷한 상태의 배열로 돌아갔다. 아마 똑같은 형태로 돌아갔겠지만 눈 돌아가게 복잡한 형태라서 확신은 없다.

"확실히 일반적인 오르골은 아니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실리에가 깔끔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나는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르골이 확실하게 정지한 것을 확인한 뒤 미량의 마력을 오르골에 흘려보내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오르골은 처음에 연주되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음악을 연주했고, 내가 마력을 멈추자마자 뚝 하고 끊기더니 끼릭 거리며 초기 배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연스럽게 다시 연주를 시작하더니 끊긴 부분에 다다르자 알아서 연주를 멈추고는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야, 머리 잘 썼네."

속도가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끊고 다시 들려주는 음악으로 정답을 확인해라? 안 그래도 음악을 외울 때까지 계속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작자도 그 정도 배려는 할 줄 알았다보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 배려에 대한 감사와 감탄보다는 당장 떠오르는 의문이 더 컸다.

"직원의 말이 맞다면 이거 만든 건 드워프라는 건데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마력 훈련이 가능하다고 본 거지?"

확실하게 마도서관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작은 증빙서류까지 같이 넘겨줬기에, 어디 마족령에서 주워 온 물건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위드라 씨의 말대로라면 인간들 중에서 마력을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건 나 정도밖에 없다. 이런 수련법이 보편적인 마나 수련법인가 싶어 아실리에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으음... 전혀 모르겠어. 그런 게 굳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슬슬 이걸 대체 누가 무슨 확신을 가지고 만든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지만,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라서 그 부분을 확인하는 건 미뤄두기로 했다.

"뭐, 좋은 연습이 될 테니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안 그래도 미세하게 마력을 조정하는 훈련은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내 몸뚱이는 어차피 내 마음대로되고, 일반적인 장비는 순식간에 상하며, 발쿤 씨의 검은 튼튼하지만 뭔가를 베어서 결과를 확인해야 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흔적이 남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내 감각으로만 하다 보니 미세함의 기준도 들쭉날쭉하고 말이지.

그에 비해 오르골의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고, 모양도 정육면체에 가까우니 그리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 편이다. 주머니에 넣는 건 무리가 있어도 여행 다닐 때 가방에 넣고 다니며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어쨌든 물건도 적당한 가격에 산 거 같아서 꽤 만족스럽네."

텐트와 마나 랜턴, 여분의 마나 카트리지와 마법석 그리고 모포까지. 오롯이 마법용품만 팔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연관성이 있는 상품들도 적지 않게 들여놓았기에 번거롭게 따로 발품을 팔 필요가 없어졌다.

"밧줄이라던가 텐트 고정용 못 같은 기타 용품들은 쓰던 걸 그냥 쓰면 되니까 별문제없을 거 같고... 돌아가서 한번 정리한 뒤 식량사서 바로 출발할까?"

"따로 미리 인사할 사람들은 없고?"

"아마... 라그니스한테만 한 번 들리면 될 거 같은데? 알리샤 여사님한테 안부 정도는 전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음, 그렇겠다. 지난번에 에스뮈에하고 방문했을 땐 정말 급하게 인사만 하고 돌아가야 했으니까."

게이트 타고 애먼 곳에 떨어졌을 때의 이야기인가 보군. 딱히 주저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냥 라그니스의 저택부터 들렸다가 움직이기로 했으나, 이번만큼은 잘풀리던 일이 살짝 꼬였다.

"변경백께서는 현재 부재중이십니다."

내가 뻔질나게 저택을 드나든 탓인지 왕실에서의 부름이 있었다는 말을 덤덤히 알려 준 경비병에게 감사를 표한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저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 수도로 올 때는 편도로만 엿새 정도 걸렸던가? 돌아오면 일주일일 테니 한 소리 듣겠네.

"돌아오면 라그니스가 뭐라고 하겠는걸?"

"같은 생각을 한 건 좋은데, 묘하게 즐거워 보이네 누나? 불쌍한 동생을 보호해 줄 의사는 없으신가요?"

"당연하죠. 여자 셋의 마음을 두고도 갈피를 안 잡고 있는 엘디가 나쁜 거니까요?"

반박 불가...!

눈호강의 대가로 정신적 피폐함을 얻을 뻔한 위기를 극복해낸 넬비는 기쁜 마음으로 3층까지 뛰어올라가 벌컥 문을 열며 외쳤다.

"사장님! 세네란 마도서관의 우수 직원 넬비가 해냈습니다!"

그녀에게 사장이라 불린 인물은 얼굴의 반은 차지하는 것 같은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며 불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도서관장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네 귓구멍이 내 말을 알아 듣고 그 혓바닥을 교정해주는 걸까...?"

긴 갈색 머리카락을 대충 방해만 되지 않게 위로 말아 올려 묶은 모습은 빈말로라도 단정하다 하기 힘들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조차 체형에 맞다기보다 그냥 대충 걸친 거에 가까울 정도로 펑퍼짐해서 보기 흉했으며, 볼까지 내려올 것만 같은 다크 서클과 피곤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눈꼬리는 그녀가 3일 동안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총기를 잃지 않는 눈동자는 데굴데굴 움직여 방안 가득 잡다하게 널브러져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가로지며 해맑게 달려오는 넬비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번엔 무슨 악성 재고를 처리했니?"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그렇게까지 기뻐할 만한 건 더 많은 성과금 아니겠니? 말귀는 좀 못 알아먹을지언정 가장 많은 성과금을 챙기는 네가 그렇게까지 기뻐한다면 악성 재고 밖에 없지."

세네란은 종종 누가 봐도 안 팔릴 것 같은 물건을 만든 뒤, 그 상품이 예상대로 악성 재고가 되면 일종의 현상금을 붙여 직원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팔아 보려는 의욕을 불태우게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물론 그녀에게 실제로 그런 취미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순전히 넬비의 편견에서 비롯된 평가였으나 그녀는 굳이 그러한 자신의 소견을 입에 담지 않았고, 세네란은 넬비가 자신을 뭐라고 여기는지 볍씨 한 톨만큼의 관심조차 없었기에 그 오해가 풀릴 날은 요원할 뿐이다.

"네모난 오르골! 그거 팔리면 수익은 그대로 제가 가져도 된다고 하셨죠! 금화 한 개에 바로 지금 팔렸습니다!"

"...그걸 사 갔다고?"

"넹!"

"누가?"

"어... 몸매 완전 잘 빠진 근육질의 청년 전사가?"

기껏 떠올린 묘사라는 게 어찌 저 모양인건지. 세네란이 미간을 찡그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넬비는 그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제대로 설명했는데도 사 갔다고?"

"네. 오히려 엄청 진지하게 보다가 사가던데요?"

어딘가 좀 모자란 것 같은 기행을 벌이긴 해도 넬비는 엄연히 마법사였다. 그런 그녀가 굳이 구매자를 '전사'라고 지칭한 이유는 자명했다.

마나가 안 느껴졌다는 말이다.

"...59번 사물함에 있는 것 좀 가져와보렴."

이미 기대라는 것과는 담을 쌓은지 오래였지만 확인해서 나쁠 건 없었다. 잠깐 안경을 벗고 두 눈을 감고 있는 세네란에게 활기차게 대답한 넬비는 쓰레기 더미와 다를 바 없는 무더기를 뚫고 가서 기어이 세네란이 말한 사물함의 내용물을 찾아내 그녀에게로 가져왔다.

꽤 오래 일해왔지만 처음보는 물건이었다. 넬비는 한 손으로 움켜쥐어지는 구체가 파랗게 점멸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뭔데 이렇게 번쩍번쩍 빛나나요?"

"빛난다고!?"

4년 동안 세네란 마도서관에서 일하면서도 처음 보는 사장의 반응에, 넬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황금의 마법사라 불리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가 허겁지겁 안경까지 집어던지며 달려오려다가 나자빠지는 모습은,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만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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