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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85화 (185/412)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차가 뒤집혀 날아가 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음에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마부인 중갑의 모험가는 말이 쓰러지자마자 마차 밖으로 몸을 날려서 부상을 피했고,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마차 안의 사람들은 좀 여러 번 뒹굴었을지언정 튼튼한 마차 덕에 신음을 흘리는 정도에 그쳤다.

말 한 마리가 제대로 마차에 깔리는 바람에 비명횡사하긴 했지만, 방금 전의 충격으로 남은 두 말도 어딘가 부러진 것인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흙바닥을 뒹굴고 있던 칼스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가 아무리 말을 좋아한다고 한들 당장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말들의 생사를 걱정하고 챙길 정도는 아니었다.

'좆됐다.'

조금도 상정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운이 좋으면 도와줄 것이고, 운이 나빠봤자 열심히 도망치는 모험가들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적들이 계속 추격하는 정도라고 여겼다. 설령 모험가가 자신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적대하더라도 욕설을 퍼부을지언정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뭔데, 뭔데?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완전히 뒤집힌 마차 안에서 다른 일행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지만, 작은 신체 덕에 멀쩡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었던 여성 풀링만큼은 거기서 자유로웠다. 큼지막한 두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경악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칼스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 눈치 없는 반응이 긴장을 푸는데 도움되는 날도 오는군.

"센. 일단 마차에서 쟤들 좀 꺼내줘."

"아하. 설명할 틈도 없을 만큼 조졌다, 이 말이지."

분명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텐데도 센이라 불린 풀링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유와 함께 거친 발차기로 마차의 문을 부수며 밖으로 나왔다. 작은 신체와 어울리지 않게 퍽 멋있는 광경이었지만, 그러고 나서 아직 마차 안에 있는 일행들을 꺼내기 위해 낑낑거린 탓에 조금 덜 멋있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기어 나온 메르델라는 당혹감을 추스르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씨, 씨발. 대체 무슨 일이야...?"

칼스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애당초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허리 춤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들며 나직이 대답해주었다.

"메르델라. 좆됐다. 모험가가 공격했어."

"뭐...?"

"갑자기... 자기 이름? 아니면 정체불명의 호칭? 뭔진 몰라도 아무튼 소리치더니 냅다 말 골통을 주먹으로 박살 내버렸다."

"씨발."

아직 눈앞이 핑핑 돌았지만 메르델라의 상황판단은 빨랐다. 적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모험가는 적대했으며, 마차는 박살 났으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공격 마법을 다시 외우는 것뿐이었다.

"개 같은 게 어디서 주문질을."

낯선 목소리와 허공을 베는 듯한 소리가 함께 했다.

칼스가 보기엔 모험가가 칼을 빼 들어 허공을 한 번 베었을 뿐인 별거 아닌 동작이었으나 메르델라는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마, 마법이..."

디스펠 마법의 골자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주변에서 생성되는 마나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것. 그와 비슷한 방식을 좀 더 고급스럽고 치밀하게 푸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수준에 차이가 생길 뿐이다. 그 결과 디스펠 마법이 발동된 동안은 누구도 마법을 쓸 수 없는 공백이 생기다 보니 얼마나 상대방의 마법 시전을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끊어 마나를 허비하게 만드는 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그 어떤 디스펠 마법도 멀쩡히 모이고 있던 마나를 건드려 제멋대로 흐트러지게 만들 수는 없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한에서는.

메르델라는 미지의 상황에 공포를 느끼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고한 사람을 휘말리게 만들었으면 대가리부터 박고 보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못 배워 먹은 새끼들답게 이치를 모르는구나."

마법의 눈으로 봤을 땐 강한 왜곡으로 인해 미처 알지 못했던 거구의 남성이 검을 뽑아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정황상 그가 마법을 파훼했음이 분명하지만 메르델라의 머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신 떨리는 손으로 다시 지팡이를 움켜쥐고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지랄을 해라 아주."

다시 한번 허공을 베는 검. 그리고 다시 파훼 되는 마법. 메르델라의 떨리는 손이 기어코 쥐고 있던 지팡이를 떨구고 말았다.

그제야 이상한 걸 인지한 칼스가 다급히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메르델라?"

"저, 저 남자가. 시전을 방해하고 있어."

"......씨발. 우리가 대체 뭘 건드린 거지?"

와이번을 피하려다가 용을 건드린 격인 건가?

메르델라의 대답이 말이 되는지를 무의미하게 따지기보다 그녀를 신용하기로 한 칼스는 입안이 바짝 마르는 걸 느끼며 단검을 고쳐쥐었다. 주먹으로 말을 때려 죽이고 마법이 시전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며 10명의 괴한들이 쫓아오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개수작을 부린 이들의 목부터 따버릴 생각이 가득할 정도로 여유있는 전사라. 제대로 좆됐군.

"애들은 마차 안이 더 안전할 거 같아서 일단 뒀... 워, 저 형씨 덩치 좀 봐. 저 친구 앞에서는 쿼터링quarterling이 되겠는 걸? 우리가 건드린 게 저 사람이야? 진짜 조져 버린 기분?"

뒤에서부터 후다닥 달려와 합류하며 단검을 꺼내 든 센의 주둥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행들이야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수다스러움이었지만, 괜히 적의 심기를 더 건드리는 일이 허다 했던 저주받은 주둥이이기도 했기에 메르델라와 칼스 그리고 중갑의 모험가는 바짝 긴장했다.

"...풀링?"

그랬기에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에서 묘한 표정으로 바뀌는 남자의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않은 건 오직 저주받은 주둥이의 센 뿐이었다.

"이야. 하필 건드려도 양식있는 귀인을 건드렸네. 칼스 너보다 백만배는 나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해서 좆 돼보라는 심정으로 건드린 건 아니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풀링. 그림자 발을 알고 있나?"

칼스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다시금 사람 죽일 법한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금 전의 양아치같던 태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사람을 눈빛으로 찔러죽인다는 건 저런 거였다.

이건 직감이고 뭐고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림자 발이 뭔진 몰라도 결코 알고 있다고 말하면 안...

"당연히 알지. 우리 외가쪽 혈통의 자랑인데! 근데 네 표정을 보아하니 네가 나한테 그림자 발의 자랑스러운 영웅담과 행적을 들을 일은 없을 거 같다. 네 키만큼 혓바닥이 길지는 않은 거 같으니 덤벼 씨발아."

저주받은 주둥이. 저주받은 가족 사회의 풀링. 그들의 가족 사랑까지 저주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저주스럽다고 여긴 칼스였다.

그래도 센은 그들의 동료였고, 어차피 저 남자는 적인 게 확실했기에 칼스는 굳이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가족사 한정으로 튀어나오는 풀링의 분노조절 장애를 모르고 동료로 맞이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게 하필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점이 슬플 뿐이지.

복잡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칼스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정리하고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이미 마차가 뒤집힌 시점에서, 그리고 정체불명의 남자와 대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괴한들은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뒤로는 그다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접근 하고 있다. 대충 봐도 저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이 대치 상황을 만든 것인지 파악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고, 뒤집어 말하면 서로가 완전히 남남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나마. 정말 가까스로 그나마 희망적인 상황이다.

남자는 자신을 멋대로 휘말리게 하려는 의도만으로 분노하여 적대적인 행동을 취했다. 그걸 알지 못 하는 적들이 일방적으로 공격만 가한다면 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 마법같은 남자의 검이 반대쪽으로 향할지도 몰랐...

"그림자 발을 봐서 일단은 도와준다. 변명은 그 뒤에 들을 테니 대가리 잘 굴려야 할 거다."

"니가 암만 떠들어봐라 그림...엥? 뭐?"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아? 라며 주변을 둘러보는 센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확실하게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녀의 당혹스러움을 다 같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쟤 지금 날 떠본 거야?"

하지만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돌리더니 마치 기사처럼 롱소드를 땅에 박고 똑바로 선 채로 추격자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진짜? 어?"

등 뒤에서 자신을 향해 공격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걱정 따윈 하나도 하지 않는 모습에, 어이없어 하는 반응조차 제대로 보이지 못 하는 일행들을 연신 돌아보며 센만 떠들어댔다. 그와중에 코앞까지 당도한 괴한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용무는 저들 뿐이오. 길을 비켜 주시겠소?"

눈이 옹이 구멍은 아닌지 마차를 뒤집어 버린 남자를 경계한 괴한들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일단 최악의 반응 하나로군. 다짜고짜 친한 척하며 사건에 휘말리게 만들려던 우리들과는 매우 대조적이야. 칼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남자의 대답에 곧 미간이 펴지다못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역시 저 풀링 숙녀분께 용무가 있다 보니 그러긴 힘들 거 같습니다. 대화로 끝낼 수 있다면 최대한 협조해서 상황을 원만하게 정리하고 싶습니다만."

저게 진짜 방금 전까지 사람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욕을 뱉던 남자가 맞단 말인가? 다른 일행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센마저도 입을 쩍 벌리고 있었지만 괴한은 고개를 내저으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안타깝게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소. 저들은 교단을 모욕한 죄인이오. 신의 이름 아래 타협은 없소."

"저, 저 씨발 사이비 사교도 새끼들이 누구 마음대로 죄인이래?! 퍼질러진 인육을 개처럼 주워 처먹던 느그 신이 그러디?!"

"...특히 저 저주받아 마땅한 반 토막난 년이라면 더더욱 말이지."

"흠."

몸을 돌리고 있었기에 남자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검은 빙글 돌아서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 위에서 수평으로 내려오며 선두의 괴한을 겨눴다.

"싸움을 원치 않는 이들은 언제든지 무기를 버리고 말에서 내리십시오. 스스로가 제 3 자임을 인지하기에 드리는 조언입니다."

"미친. 내가 지금 동화책에 들어와 있는 건가?"

센의 중얼거림은 여전히 분위기를 읽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건틀릿을 착용했다고는 해도 일격에 두개골을 박살 내는 것은 범상치 않다. 단순 괴력이면 말할 것도 없고, 오러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굉장히 능숙히 써야 가능한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10명이나 되는 기마병 앞에서 남자는 그저 가죽 흉갑 정도나 걸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앞서 보여 준 위용에도 불구하고 칼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눈에는 불신과 의문이 아른 거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지천에 널린 산적 나부랭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교도라고는 하나 엄연히 그쪽 교단에서 정예로 취급받는 전사들이었다. 칼스 일행이 괜히 도주를 선택한 게 아닐 정도로 강력한 전사들.

"그대의 용기와 의지를 높이 사는 바,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소."

괴한이 무기를 고쳐 쥐며 말했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 움찔 거렸을 뿐.

그 움찔거림이 긴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예비 동작이었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선두에 서 있던 괴한의 몸이 타고 있던 말과 함께 대각선으로 양단된 뒤였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와중에 남자의 검이 서슬 퍼런 빛을 내뿜으며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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