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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93화 (193/412)

혼자 살아남은 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놈을 묶어다가 말에 올려 데려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 자기 신앙에 신실한 놈인 거 같아 혹여 자살이라도 할까 싶어서 복면 벗기고 입 안을 확인하고 해봤지만, 다행히 자결용 독 같은 건 없어 보여서 적당히 찢은 천으로 혀만 못 씹게 재갈을 물렸다.

마음 같아서는 놈들의 시체에서 돈주머니 루팅까지 하고 싶었으나 어둠을 밝히겠답시고 평원에 불을 놓을 수도 없고 마법으로 만들 수 있는 불꽃은 라이터보다 조금 더 쓸 만한 수준이다 보니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넋이 나간 것처럼 저항조차 안 하는 놈과 함께 털레털레 돌아가니 바짝 긴장한 녀석들과 아실리에가 화색이 되어 맞이해 주었다.

"오다가 주웠다."

합당한 루팅의 권리를 포기한 탓에 많이 심드렁한 얼굴로 뒤에 실린 사교도를 떨궜더니, 그걸 대수롭지 않은 일을 정리하고 온 사람 특유의 덤덤한 반응으로 받아들인 칼스가 질린 표정과 함께 질문했다.

"세상에. 스무 명을 처리한 반응이 정말 그게 다란 말입니까?"

"전부는 아니야. 몇 명 도망친 거 같던데."

자기들끼리 실수로 죽인 게 아니면 한 세 명 정도는 도망쳤던 거 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실리에가 저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 명 정도 다가오길래 쐈었어. 아마 저쪽 어딘가에 있을 거야."

"아, 그럼 얘 빼고는 다 죽은 게 맞아. 멀리서 잡아서 다행이네. 시체 옆에서 쉬는 건 영 별로니까."

그렇구나 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아실리에와 다르게 센을 비롯한 다른 녀석들의 표정은 바짝 굳어 버렸다. 새삼스럽게 쫄기는.

"그, 그런데 얜 뭔 일이 있었길래 넋이 나간 건가요?"

"그냥 공포심을 자극 해줬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매체의 연출이라는 게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서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그런 게 덜 발달한 곳에서는 그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다 컬쳐쇼크인 법이다. 몬스터나 도적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고 해서 공포에 무감각해지는 건 아니더라고.

적은 분명 혼자였는데 사방팔방에서 거리감 없이 인기척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경험이라는 게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거 때문에 좀 열심히 움직였더니 피곤하긴 하네. 오늘 출발은 좀 늦게 하자."

"무, 물론이죠! 혼자서 다 처리하셨는데 당연한 말씀입죠! 언제 깨워드릴까요?"

"알아서 일어날 거야."

효과는 좋았지만 이중 가속을 연발해가면서 신출귀몰을 연출하는 건 생각보다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었다. 난 모닥불에 비춰 제대로 검을 정비한 뒤, 텐트에 들어가기 전에 녀석들에게 사교도의 처우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줬다.

"무리해서 뭘 알아내려 하지 말것. 죽이지 말것. 엄연히 포로니까 식사는 제대로 챙겨줄 것. 그 외엔 알아서 해라."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할 생각이 없었기에 잡아 온 놈이었다. 저 사교도 문제를 처리하는 건 우리가 오그웬에서의 모든 볼일을 마치고 저놈들이 지들의 앞마당으로 돌아간 뒤가 될 것이다. 내 말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 건 메르델라였다.

"무리라는 게 어느 정도 선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물리적인 폭력과 관련된 건 다 하지 마. 어차피 당장 알아내더라도 사교도의 문제는 나중 일이다. 서두를 거 없어."

다행히 질문은 그거 하나로 끝이었다. 난 옷에 피가 많이 튀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며 텐트에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같이 들어온 아실리에가 내 왼팔을 쭉 빼더니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누나도 자게?"

"어차피 엘디가 다 처리했으니까 굳이 깨있을 이유는 없지. 쟤들이 도망칠 거 같지도 않고.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 순식간에 전멸할 수준도 아니고."

"영 못미덥던데..."

"아까 잠깐 역할 분담하며 이것저것 하는 걸 봤는데 저 정도면 적급 모험가로 평가받을 정도는 될걸."

모험가 길드의 등급 평가는 기준이 들쭉날쭉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파티 플레이는 뛰어나지만 실력에 한계가 있어 오우거도 잡지 못하는 사람들과 오우거는 코 풀면서 잡을 실력이 있지만 일 대 다수의 전투에 노하우가 없어 고블린 열 마리만 몰려와도 위험한 사람 중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따지는 건 부질없는 일이니까. 그저 여러명의 적을 상대할 때 특출난 적급 모험가, 개인의 무력이 특출난 적급 모험가 같은 형태로 나눠야 하다보니 기준이 균일하지 않을 수밖에.

물론 진짜 오우거를 그리 쉽게 잡으면 고블린따위야 주먹질만으로 으깨버리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실리에의 평가는 분명 합당하고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십 년 정도 손발을 맞추며 파티가 유지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격이 있다. 어지간한 수준의 몬스터 소굴 정도는 웃으면서 들어가 초토화 시키고 나올 수 있겠지.

그런 자신감이 있으니 종교 집단인 놈들의 의식을 파토내고 사람을 구출하는 강단있는 행동을 취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누나는 공백기가 길어서 등급 심사를 다시 봤었지? 예전에는 어디까지 진급했었어?"

"자급이지."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온 즉답은 아무런 자부심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마치 모험가라고 할 정도면 당연히 자급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안다.

"누나가 말했지? 청급까지는..."

"길드에서 실력 안 되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 만든 거름망에 불과하다고. 당연히 기억하지."

물론 그녀도 살짝 극단적인 면은 있었다. 아실리에의 기준에서 모험가는 적, 자, 은 등급 밖에 없고 각각 하수, 중수, 고수를 의미하는 거였으니까. 그 미만은 수습 기간이고, 그 수습 기간에 안주하면 그냥 떨거지라는 식의 사상을 소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과격한 발상이란 말이지. 사실 아실리에도 예전엔 한 성격 하던 거 아닐까?

뭐, 아실리에의 과거가 어쨌든간에 나 역시 짧게나마 모험가 일을 맛보면서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 입장이긴 하다. 정상적이고 착한 사람들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청급 모험가로 3년 이상 남은 이들은 보통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종못할 개트롤이라든가, 더럽게 무능하다든가 그런 걸 떠나서 뭔가 큰 사건을 겪고 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비롯해 정말 다양한 이유로 적급 심사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모험'이 아닌, 철저하게 안정적인 의뢰만 반복해서 생계를 이어 나가는 자들. 그래도 실력이나 인성이 빠지는 건 아닌지라 다른 이들도 딱히 나쁘게 보진 않는다. 하지만 '길드의 고용인'이라는 형태로 묘사하며 같은 모험가로 여기지 않는 경우는 굉장히 흔히 있었다.

"엘디는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니까. 가끔 종잡을 수 없어서 그렇지."

잠깐 그런 생각에 빠진 사이 내 볼을 가볍게 꼬집은 아실리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잠을 청했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대화 탓에 아실리에와 살짝 떨어질 기회를 놓쳐 버린 나는 결국 다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눈이 저절로 떠져서 일어났음에도 시간은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아 이제야 겨우 날이 밝아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충 3시간 정도? 아무래도 피로를 느낀 건 육체적인 문제보단 마력 소비와 관련이 있었던 거 같다.

딱히 잠이 더 오거나 하는 것도 아니라서 아실리에를 깨우고 텐트를 벗어나니 안개 낀 평원 속에서 이슬을 맞아가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워낙 고요해서 내가 움직이며 난 얼마 안 되는 소음조차 크게 들렸던 것일까. 한창 수프를 끓이고 있던 센이 나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어왔다.

"예상보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쩌다 보니. 사교도는 좀 어때?"

"그다지 협조적이진 않더라구요. 그래도 자살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아냈습니다."

"그래? 그건 또 의외네."

"지들 교리래요. 자살하면 다른 이교도들처럼 영원히 현세에서 영혼만 남은 채 방황하게 된다나?"

사교도 치고는 묘한 구석이 있는 새끼들일세.

"그럼 지금처럼 잡혔을 땐?"

"고문을 당해 죽으면 순교라던데요."

"허어."

배신할 가능성은 염두조차 안 하는 건가? 당장은 개뿔도 쓸모없는 주제에 자꾸 의문만 증폭시키는 놈들이다. 고개를 돌려 놈을 바라보자 나와 센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눈치를 보고 있던 놈이 조심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그래, 언젠가 다가올 순교의 그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려라. 지금은 저 꼬마가 더 중요하니 봐준다."

"꼬마요?"

"벨레시카. 사교도 놈들이랑 잠깐 대화를 나눴을 땐 쟤가 제물로서의 격이 높네 뭐네 그랬거든. 혹시 아는 거 있냐?"

내 질문에 센이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찡그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미친놈들처럼 따라오는 경우는 처음 봤지만, 사실 비슷한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죠. 처녀의 피를 바친다든가, 더 많은 공적을 쌓은 전사가 신의 사랑을 받는다든가 뭐 그런 건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결국 그런 흔한 경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로군."

"아쉽게도 그런 거 같네요.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제물이길래 사람을 30명이나 보내가며 잡으러 오는 걸까요?"

씨발. 듣고 보니 그러네? 30명의 전사라니. 난 너무나도 뒤늦게 생긴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바꿨다.

"야. 너희 쟤네 의식 저지하고 구해 왔다고 했지? 뭐 하는 애들이길래 전투 인원이 30명이나 있어? 사교도치고 너무 세가 큰 거 아니야?"

만신전이 기본 베이스인 이티스엘답게 종교관에 대해서는 굉장히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예 사교도라고 낙인이 찍힌 이들에게까지 관용을 베푸는 나라는 아니다.

심지어 엄연히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라서 신도가 아닌 이들을 강제로 납치해 제물로 바친다는 건 굉장히 큰 문제다. 무신론자는 정신병에 가까운 세상이니 반드시 종교 하나 정도는 믿고 살게 되어 있는 만큼 결국 남의 신도를 멋대로 지네 신한테 바친거니까.

그냥 법대로 합시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신들의 대전사라고 주장하는 이들끼리 앞다투어 종교 전쟁을 벌이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 얘네 마신교예요."

"...뭐?"

마신교? 마족들의 신? 순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말해 버렸다.

"미친 씨발. 걔들은 인신 공양 안 하잖아."

"와! 마신교 아시는구나! 엘드미아 님 진짜 어디 귀족이신거 아니에요? 보통은 그냥 '아,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같은 반응만 보이는데?"

뭐가 그리 놀라운 건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는 센을 노려보자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잇는 그녀였다.

"사이비라니까요 사이비. 전쟁 때문에 미쳐 버린 거죠. 전장에서 살아남은 용병이나 탈주한 놈들이 모이다가 점점 세가 커진 집단인데... 최근 들어서 좀 많이 막 나가다 보니 저희 지방 쪽에서도 골머리를 썩히는 중이죠."

역시 전쟁은 할 게 못되는 법이다. 세상 별 미친놈들이 다 생겨나네.

"진짜 지랄났다. 알고보니 쟤 어디 종교의 성녀 후보인 거 아니야?"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내저으며 내뱉은 말에 센이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말한 나도 어이가 없지만 사이비 새끼들이 저렇게까지 득달같이 달려들다보니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사교도를 바라봤는데...

"...너 씨발 반응이 왜 그래."

우리 말을 주워듣던 사교도가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이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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