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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04화 (204/412)

발쿤 씨가 말하길, 마도서관장 세네란은 그의 사업 파트너라고 한다.

"나는 기술력을 제공하고 저쪽은 자본력을 제공하는 거지."

말만 놓고 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협업이지만 정작 그들이 함께 만드는 물건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마장금.

마족들의 전유물인 것을 인간이 쓸 수 있게 만들고, 인간도 마력을 깨우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것. 두 사람이 꿈꾸는 건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굉장히 허황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게 허황되든 아니든 간에 내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미래의 스승인 위드라 씨였다.

"혹시 궁정 마법사 위드라 씨도 거기 끼어 있습니까?"

"음? 아니. 그렇지 않다네. 그런 사람과는 접점이 생길 기회가..."

"흐 애해히흥 애하 힝헝 항아하흥헤호 훙헝항해흫 허형 항하후히호 항핬하호!!"

"...저기요. 뭐라 씨부리는지 모르겠으니 코 좀 풀고 말하십쇼."

갑자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며 세상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한 세네란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발쿤 씨도 뒤통수를 긁적이며 인사불성에 가까운 상태인 그녀를 바라보는 중이었으니까. 아까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것 치고 둘의 사이가 그리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그... 아무래도 인간이다 보니 명줄이 좀 짧잖나. 그러다 보니 얘가 여러모로 불안증에 시달렸나보더라고."

그러던 중 내가 오르골을 사가게 됐고, 나중에 날 찾아내서 이런저런 실험의 협조를 부탁할 예정으로 마장금 무기를 챙기러 왔다가 그게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는 게 내가 오기 전까지의 전개다. 사실 이런 건 당사자 입으로 들어야 하는데 당사자가 지금 개판이라서 말이 안 통하네.

그래도 정신머리는 똑바로 박힌 것인지 팽! 하고 코를 푼 세네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개새끼는 내가 직접 몇 번을 찾아갔는데도 문전 박대는커녕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아."

그러고 보니 여러모로 좌절감에 빠져 많이 내팽겨쳤었다고 했었지. 아마 그 시기에 찾아가서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보다.

잠깐? 그럼 이 인간은 그걸 계기로 흑화해서 마도서관까지 세워가며 자본주의의 노예가 됐다는 말인가? 드워프 대장장이의 후원자 역할까지 할 정도면 엄청나게 벌고 있단 소리인데 이 무슨 정신 나간 재능인 것이지?

"그거 아마 나 때문인 거 같은데, 거 우리 스승님도 나름 사정이 있었던 거니까 이해해주십쇼."

"...뭐? 스승? 당신 그 인간 제자야? 근데 왜 그런 식으로 불러?"

"아직 정식으로 사제의 연을 맺지 않아서?"

"......호, 혹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정정한다. 아무래도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거 같지가 않다. 방금까지 질질 짜면서 하소연 같은걸 떠들다가 이렇게 태세를 전환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그나저나... 마력이라. 그랬구만. 오러가 아니었구만."

어차피 오러는 재주좋게 쓰면 잘 티도 안나니까 적당히 쏴버리고 오러라고 둘러댈 생각이었는데, 하필 상대가 위드라 씨처럼 마력 연구에 삶을 쏟아붓고 있던 세네란이었던 탓에 빼도박도 못하고 들켜 버렸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훨씬 내 생각대로 사용 가능하다는 현실에 한창 기뻐하고 있었을텐데 말이지.

그래도 연륜에서 온 눈칫밥을 통해 목소리를 낮춰가며 이야기하는 발쿤 씨에게 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쉬이 말할 수 없는 사안이다 보니."

"아닐세. 당연한 판단이지. 혹시 긴은 알고 있나?"

"아뇨. 긴 씨도 모릅니다."

"음. 알겠네. 내 입조심하겠네. 이런 일은 백 번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는 법이니까."

고객만족 서비스 평가가 있었다면 당당하게 대륙 1위의 자리에 올랐을 이 시대의 살아 있는 문명인 발쿤 씨에게 내가 감격하는 동안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세네란이 다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무시하지 말고! 이야기 좀 해 줘! 우리 서로 이득만 볼 수 있는 장사라니까 이거!"

"아니, 그 오르골은 굉장히 유용할 거 같다고 생각했으니 만들고 판 거까지는 감사한데 말이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니겠습니까. 저희 오늘 처음 봤습니다. 거리를 좀 두지 않을래요?"

"거리감이 연구 성과를 먹여주는 게 아니잖아! 제발!"

"돌겠네 진짜."

황금의 마법사네 뭐네 하며 굉장히 잘 나가는 마법사라는데 마력 사용자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절박해질 수 있다니. 아무래도 부와 명성은 그녀에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인성은 제대로 박힌 모양인데...

"넌 네가 얼마나 특별한지 몰라서 그렇다니까? 아니면 알면서도 남 일이라고 관심이 없거나! 대륙에 너 같은 인간이 둘만 더 있었어도 내가 이 고생은 안 했을 걸!"

"뭐, 그래요. 내가 당신한테 매우 유용한 인적자원인 건 사실인 거 같네요. 그래도 하다 못해 당신이 저한테 줄 수 있는 이득이 뭔지부터 명확하게 말하고 달라붙는 게 예의 아닙니까?"

"다 줄게!"

"...에? 뭐요?"

"다 준다고! 내가 연구할 때 필요한 것들을 제외한 모든 걸 줄게!"

진심 존나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세네란의 두 눈에 담긴 건 분명 광기였다.

그 시선에 질색팔색하며 뒤로 물러나자 발쿤 씨가 고개를 내저으며 세네란에게 꿀밤을 먹임과 동시에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주었다.

"인간아, 정신 좀 차려라!"

"난 내 평생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정신을 붙잡고 있어!"

"헛소리 찍찍 내뱉는 거 보니 정신 못 차렸네. 엘드미아의 도움으로 네 연구가 확실히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딨냐? 그런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연구에 필요한 걸 제외하고 다 줘? 그러다 실패하면? 이번엔 무슨 수로 돈을 모아서 다음 연구를 준비할 거냐?"

"돈은 무한재지만 시간은 유한재야!"

"환장하겠네."

나도 환장하겠다. 저거 말이 통할 상황이 아닌데? 당장 안경 뒤에서 눈알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해도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다. 여자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게 나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금 실시간으로 그게 철저하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결국 부담스러움을 견디지 못한 나는 도주를 선택하고자 했다.

"그, 이보세요. 제가 안 그래도 오늘 좀 바쁘거든요? 우리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아, 안 돼! 왜 바쁜데? 누가 바쁘게 하는데?"

물론 세네란은 그딴 거에 넘어갈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우리 오늘 처음 만났다고! 뭘 그렇게 궁금해하는데? 이거 사생활 침해야!"

"내,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너도 나 좀 도와줘!"

"댁이 무슨 수로 나를 도...와줄 수가 있네?"

이 아가씨 도서관장이었지? 이게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 준다는 그건가?

"생각해 보니 우리 꽤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각인 계약 좀 할 줄 아십니까?"

내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노빠꾸 상남자식으로 수락한 뒤 나와 동행한 세네란은 다행히 각인 계약을 할 줄 알았다.

"각인 계약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한정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없어. 그냥 상대방에게 억지력을 부여하려면 그만큼 마나가 많이 필요하거나 술식을 더 세밀하게 구성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

한 마디로 넌 예외라는 말이야, 라고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폭탄 선언을 해 버리는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오히려 이상한 놈을 다 본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세네란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간극이 존재하는 모양이군.

"저 아직 마법에 대해 잘 모릅니다. 마나를 못 쓰다 보니."

"뭐야, 그럼 마법적 지식도 전무하다시피 한 거야?"

"아예 모르는 건 아니고... 이론상으로 그래도 하급 정도는?"

그 이상은 알아도 쓸 수 없으니 공부를 등한시 하긴 했지. 최근에 들어서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실감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지만, 내가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게 아니라서 단기간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세네란은 내 반응을 보고 나서야 뭔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에 들어갔다.

"흔히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도서관 정도 되는 곳에 가야 각인 계약을 새길 수 있다는 건,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각인을 새길만큼 압도적인 마나량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야. 전사들 같은 경우는 마나를 아예 다루지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도 하고. 그럴수록 정교한 술식을 사용해 소요되는 마나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각인을 새길 수 있는 제 3의 실력자를 요구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넌 마력을 쓰고 있으니 이미 총량에서 깔아뭉개버리는 거고. 내 추측이지만 대충 각인 새겨도 먹힐 걸?"

솔직히 메르델라만 아니었더라면 내 인생에서 한동안은 등장할 이유가 없었을 요소가 각인 계약이다 보니 굉장히 생소한 내용이었다. 난 어중간하게 아는 척 하느니 그냥 당당하게 모르는 걸 드러내기로 했다.

"무슨 구조인지는 전혀 몰랐는데 말이죠."

보통 이럴 땐 믿을 수 없다는 둥, 멍청하다는 둥의 반응이 돌아오는 게 정석일 거 같은데 의외로 세네란은 평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원래 마법이 그런 거지. 물레방아는 알아도 그 안에 기계구조가 어떤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도 너나 나나 서로 운이 좋은 거야. 각인 계약 새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옆에서 도와주는 마법사는 네 몸의 이상을 눈치챘을 거거든."

"...마력 말입니까?"

"맞아.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멀쩡한 사람한테 마나를 뽑으려 하는데 허공에서 마나 정제해서 뽑는 느낌이 드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지. 다행히 내가 끼어있으니 이제 너는 비밀을 간직할 수 있어서 좋고. 난 너와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할 만한 빌미를 가질 수 있어서 좋고. 이 정도면 운명 아니겠어?"

아까 질질짜며 정신착란을 일으킬 것만 같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매우 침착하고 정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는 세네란이었다. 물론 은연중에 대화에서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하며 자연스럽게 내 도움을 받으려는 낌새가 느껴졌지만... 위드라 씨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녀가 얼마나 절박했을지 납득 못할 것도 아니라서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방금 각인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했고 말이지.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하지만 뭐 하나에 집중하면 나머지에 무관심한 건 본래 성격인 것인지 묘하게 나사가 빠져 있는 거 같아 걱정이다.

"...레비엥 변경백의 자택으로 가는 중입니다."

"...? 거긴 왜?"

"원래 레비엥 변경백께 부탁드려서 도움을 받으려고 했거든요. 라드넬반데스 경의 제자니까요."

"그랜드 배틀 메이지 라드넬반데스? 너 혹시 좀 많이 비범...잠깐? 이름이 뭐라고 했지?"

묘하게 나사가 빠져 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박혀 있는 나사가 몇 개 없는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군. 그래도 이미 여기까지 온 거 최대한 불신을 뒤로 밀어내며 다시 자기소개를 했다.

"엘드미아 에가라고 합니다."

"엘드미아? 에가...? 아앗!"

그러자 잠깐 눈알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세네란이 펄쩍 뛰며 외쳤다.

"레비엥의 단두대가 너구나!"

엔벨데 저택에서 기쉬 놈도 날 저렇게 부르더니. 아무래도 저게 내 별명이 되어 버린 듯하다.

진짜 왜 나만 내 별명을 모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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