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태의 장비가 가져다주는 고양감이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전생에서 즐겨 했던 게임의 보상과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른다. 내 능력과 연관되어 확실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로 스펙업을 한다는 느낌에 가깝긴 하니까.
차이가 있다면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전이라는 것이고, 그렇다 보니 내 명줄을 지켜 줄 좋은 장비가 안겨 주는 즐거움이 몇 배는 더 크다는 점 정도겠다.
들뜬 기분을 유지하며 수도를 벗어나 사교도들의 본거지로 향하게 된 나는 그 사이 발쿤 씨가 만들어 준 '단검'을 능숙하게 쓰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사교도들을 상대하기 전에 연습삼아 써먹긴 힘들어 보인다는 점 정도?
그 부분은 기술적인 요인보다 환경적인 요인 탓이 컸다.
"하필 이럴 땐 바퀴벌레 같은 도적놈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참 기이하단 말이지."
수도를 떠난 지 벌써 3일 째. 우리는 보기드물 정도로 안정적인 여행길을 만끽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사실 10명이나 되는 무장 인원이 말타고 우르르 몰려 다니면 누구라도 일단 피하고 볼 것이니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누가 봐도 마법사인 게 분명한 메르델라와 세네란에, 과장 좀 보태서 자기 덩치만한 워해머를 등에 멘 채 말도 크고 튼튼한 놈으로 타고 있는 예카트리나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놈들은 자발적으로 피해가게 만드는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으니까.
심지어 머리를 모자걸이 정도로만 쓰는 삼류 도적놈들이 아닌 이상에야 엘프인 아실리에도 종잡을 수 없는 위협으로 취급할 테니, 여기서 습격을 당한다면 오히려 습격자의 기개를 높이 사서 박수를 쳐야할 수준이다.
"도적들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면 인원을 반 이상 줄였어야지."
그저 실없는 혼잣말에 불과한 걸 기어이 주워듣고 태클을 거는 세네란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도 난 마력 운용을 멈추지 않았다.
"그거 뭐라고 부르는 무기야?"
"뒤틀린 황천의 바늘이요."
"...진짜 그런 이름이라고?"
"농담이죠. 그냥 제 주문에 맞춰 발쿤 씨가 만드신 거라 평범하게 바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뜨개질 바늘보다도 큰 걸 그냥 바늘이라고 부르니 기분이 참 오묘하네."
딱히 손을 대지 않아도 허공에 뜬 채 제멋대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바늘을 바라보고 있는 건 세네란 뿐이었다. 그녀가 계약 운운하며 마치 마법사들의 비밀 수업과도 같은 형태로 사람들한테 알리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해준 덕이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밀은 비밀이었으니. 덕분에 3일 간 눈치 안 보고 마력으로 바늘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람이 많다 보니 불침번 걱정도 없을뿐더러 다들 알아서 척척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한없이 완벽한 파티 플레이 속에서 내 바늘 다루는 솜씨는 일취월장 할 수 있었다.
"근데 휘파람은 왜 부는 거야?"
"멋모르는 놈들이 보면 휘파람으로 조종하는 투사체 마도구라고 오해할 테니까요."
"오... 겉으로 보기엔 죄다 힘으로 해결할 거 같은데 굉장히 머리를 쓰는 쪽이구나?"
대놓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놀라는 모습이 심히 꿀밤 마려운 세네란이었으나 이어지는 한 마디 때문에 참기로 했다.
"그럴 거면 아예 간단한 마법을 만들어서 써볼래?"
"예? 뭘 만들어요? 마법?"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음유시인들의 찬트를 개량해서 손 좀 보면 가능할걸?"
뭐지? 이 사람 혹시 천재인 건가? 마법이라는 게 그렇게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내 눈초리가 굉장히 불신에 가득 차 있었던 탓인지 세네란이 도끼눈을 뜨며 설명을 덧붙였다.
"문외한들이 흔히 하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군. 마법은 입문과 심화가 어려운 거지 중간은 별거 없어.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고. 기존에 있는 마법들과 비교하며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하면 머리 아프지만 어차피 너만 쓸 거잖아? 그런 간단한 마법 한두 개 정도는 굉장히 쉽게 만들 수 있다고."
"그거참 남들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재능 없는 이들을 기만할 때 자주 쓸 법한 대사네요."
"진짜라니까 그러네. 넌 마력이라서 효율에 대한 부분도 반쯤 눈 감아도 되니까 더 쉬워. 물론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해 줄 순 없지만, 이론만큼은 확실히 제공해 줄 수 있어."
세네란은 마력을 느낄 수만 있다. 위드라 씨처럼 극소량의 마력도 다룰 수 없다. 그랬기에 이론을 파고들었다. 이론과 실전은 별개라고 하지만, 이미 내가 구입했던 오르골부터가 그런 이론의 결과물이라고 하니 딱히 못 미더울 건 없어 보인다.
"솔직히 내가 마력을 통해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니 반드시 된다고는 못하지만... 원자재라고 할 수 있는 마력과 마나의 차이만 잘 손 보면 주문의 공식은 비슷할 거라는 게 내 가설이야."
딱히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선은 확실히 긋기 위해 내뱉은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마나 쓰던 붉은 머리 마족 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놈이 수다스러울 때 마법은 무슨 마법을 쓰는지 물어나 볼 걸 그랬군.
"까짓거, 해 보죠."
어차피 손해 볼 건 없으니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실패해도 그만이고, 잘되면 좋은 거니까. 딱 그 정도 마인드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이 더 지나 해가질 무렵에 야영지를 세우던 도중.
난 내가 안일하게 내린 결정이 개쩌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땅이 울리는군."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건 예카트리나와 아실리에였다. 솔직히 아실리에가 귀를 까딱거리며 소리에 반응하기가 무섭게 예카트리나가 중얼거려서 난 다시 한번 그녀의 신체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진짜 오러를 개화하지 못한 사람의 감각이라고?
"말발굽 소리로는 열 명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우리가 가는 방향이네?"
아실리에가 나직이 읊조린 말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인지 이해한 나와 센 일행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에 들어갔다.
"되게 웃기네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발 아니길 빌었는데 지금은 제발 추격대이길 빌고 있네."
사교도들의 추격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가엔달 일행은 센의 농담을 듣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홀로 여유와 태평함을 두르고 일말의 긴장도 하지 않고 있던 세네란이 내게 말했다.
"적이면 좋겠네.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마법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내가 천재였던 것인지, 세네란의 말대로 마법을 새로 만드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게 아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겨우 3일 만에 나는 그녀의 말대로 새로운 마법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더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최소한 직선으로 바늘을 쏠 때만큼은 내가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마력을 소비하니 충분히 성공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위력을 알 수 없다는 점이죠."
"마법 만들기 전에도 대장간 목판에 박힐 정도까지는 사용할 수 있었잖아. 충분하겠지."
유일한 단점이라면 그 3일간 우리가 열심히 달려온 게 돌멩이 하나 찾아보기 힘든 허허벌판이었던 탓에 아직 정확한 성능 테스트를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눈으로 보기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땅에도 나름 깊숙이 박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테스트에 불과하다보니 위력도 많이 낮춘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실전에서 방어구나 몬스터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얀 로브 같은 거로 통일된 복장에... 뭔 복면인지 가면인지 알 수 없는걸 쓰고 있는 친구들이로군.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데?"
"수상한 거 맞습니다. 사교도들이네요."
굳이 시력을 강화하지 않아도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해 놓은 것처럼 똑같은 열 명의 기수들의 모습은 허허벌판 위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잘 들어왔다. 거리는 꽤 있어 보이지만 저대로 달리면 5분도 되지 않아 우리와 마주칠 것이 확실했다.
"그럼 어디 시험 좀 해볼까."
"드디어 몰래 연습하던 마법을 보여주는 건가요?"
나와 세네란의 비밀 수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렐리에가 유독 두 눈을 빛내며 집중하기 시작하는 걸 웃음으로 무마하며 나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기에 맞춰 내 허리춤에 달려 있던 바늘이 발쿤 씨가 특별히 만들어 준 가죽 케이스에서 튀어나와 내 귓가에 수평으로 고정되며 주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오...?"
세네란의 도움을 받아 만든 마법은 사실 마법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조준과 회전 그리고 사출과 회수로 구성된 지극히 단순한 마법. 하지만 복잡한 기능없이 단순 기능에 치중한 덕에 성능과 안전성만큼은 확실하다.
조준은 내 두 눈이 집중하고 있는 곳에 정확히 떨어지고, 회전은 최대로 가속할 경우 좀 무서울 정도로 팽팽 돌아가며, 사출과 회수는 석궁에서 쏘아진 볼트처럼 빠르다.
단순히 속도만 놓고 보면 석궁만큼의 위력은 충분히 발휘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미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바늘에 내가 검에 마력을 부여한 것처럼 일회용 전기톱이 갈갈갈갈 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도무지 위력을 종잡을 수 없다.
"거리도 좀 있으니까 시작은 출력을 올려서 하는 게 낫겠다."
옆에서 세네란이 넌지시 조언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나는 강화된 시야에 잡힌 선두의 가슴팍에 집중했다. 사실 가장 힘든 건 조준이다. 자꾸만 사방팔방 날뛰려는 내 동공을 집중해서 한곳에 잡아 둬야 했으니까. 익숙해져서 개량을 거치면 시선이 아니라 의사에 따라 목표를 지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휘익!"
그 뒤 별생각 없이 사출했다. 쟤들 옷 안에 갑옷도 껴입고 있었으니 최소한 반절 정도는 박혀서 확실하게 죽지 않을까 정도만 생각하면서.
-텅!
"...!!"
그렇게 안일한 판단을 한 탓에 마치 쇠망치에 후두려 맞은 것처럼 펄쩍 튕겨날아가 바닥을 나뒹구는 사교도를 보고는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
거리가 있다고는 해도 강화된 시력은 사교도의 가슴에 뻥하고 뚫린 구멍을 확실하게 캐치해낸다. 예상 밖의 결과에 나도 모르게 휘둥그레진 눈알을 굴려 세네란을 바라보자, 정확히 나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출력을 올리라면서요 선생님."
댁이 놀라면 어떻게 합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는 찰나 세네란이 먼저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몰라... 뭐야, 저거... 위력이 왜 저렇게 되는건데..."
쯧쯧. 이론 마법사의 한계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