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바늘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입구를 향해 날아가고, 같은 속도로 돌아온다.
급소만 노리는 정조준을 할 수는 없어서 목보다는 상체를 노리는 형태로 쏘아낸 공격만으로 눈에 보이는 열 명 정도 되는 사교도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졌다. 일격에 죽은 녀석들도 적지 않겠지만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려는 녀석들도 꽤 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예카트리나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으아, 아, 안..."
예카트리나는 기합을 외치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그저 짧은 호흡과 함께 자신의 워해머로 바닥을 긁으며 크고 낮게 횡으로 휘두를 뿐. 그것만으로 흙바닥이 갈리고 터져 나가며 무방비한 사교도들까지 함께 휩쓸어 버린다. 운이 좋으면 사람이 통째로 날아가지만 재수가 없으면 팔다리가 뜯겨 날아가는 살벌한 일격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며 위협적이다.
그 기습 한 번으로 인해 입구 깊은 곳에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과 비명이 터져 나오며 마치 망자들이 뛰쳐나오려는 지옥문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적습! 적습이다!"
"방패병! 방패병 전진!"
"틀렸어! 방금 공격은 방패도 뚫는다! 일단 붙어야 해!"
"전사가 돌진했다! 저 공격은 준비가 필요한 게 분명해! 지금 돌격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분명 전장에서 도망친 이들이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자 그들은 습관적으로 군인처럼 명령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죽어서 마족으로 환생할 수 있을 거라 믿는 비이성적인 대가리를 써서 내 한 번의 공격 후 예카트리나가 달려들었으니 내가 바늘을 자주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예리한 추리를 하는 놈까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딜레이 같은 건 없지만.
저렇게 오해하길 바라면서 시도한 블러핑이긴 했으나,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아직 놈들의 소굴 깊숙한 곳에 있는 정체불명의 지휘관에 불과했지 얘네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 있는 놈들에게 내가 바랐던 것은 공포로 인해 혼비백산 하는 모습이었는데 말이지.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나."
검을 뽑아 드는 동안 내 뒤편에서 입구를 향해 쉴 틈 없이 화살이 날아들었다. 나와 예카트리나를 중심에 두고 좌우로 매복해 있던 일행들의 위치에서는 매직 미사일 같은 마법이 날아든다. 얼핏 보면 앞에서 날뛰고 있는 예카트리나가 참으로 위태롭게 느껴지는 광경이었지만 화살도 마법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녀를 피해 적들만 노린다.
아주 믿음직스러운 연계다. 역시 가엔달 일행과 함께 하면 일이 쉬워진다.
"이대로 돌파하겠습니다! 긴, 칼스, 바이제, 센은 마법사들의 보호를! 가엔달 씨는 저와 함께 예카트리나의 엄호를!"
숙련된 적급 모험가답게 그들의 대답은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
"흐아악?!"
앞서가던 20번의 뒤통수를 뚫고 튀어나온 투사체가 튀긴 피와 살점을 보고 21번이 보일 수 있었던 반응은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검지 손가락만큼 삐죽 튀어나온 송곳과도 같은 물건은 20번의 머리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자아내며 회전하다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21번은 방금 자신이 목격한 게 84번이 공포에 떨며 설명했던 투사체라는 것을 조금 늦게 이해했다. 그리고 그게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게 아니라 다시 사용자를 향해 돌아갔다는 것도. 방금 그 일격으로 자기 앞에 있던 형제들이 대부분 쓰러져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도.
분노, 경악, 당황 등의 감정이 담긴 외침과 함께 다른 형제들이 앞으로 뛰쳐나가고 투사체에 이어 나타난 여전사가 휘두른 쇳덩이에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는 지옥도 속에서 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몸을 돌려 자기가 왔던 통로를 미친 듯이 달리는 중이었다.
'보, 보고! 보고해야 해!'
계획이 틀어졌다. 그러니까 이상 사태를 빨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절대 형제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게 아니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은 수많은 변명들을 속에 품으며 21번은 교단의 심층부를 향해 달렸다. 잔뜩 긴장한 탓에 호흡을 조절하지 못해 순식간에 숨이 차 올랐지만 그는 멈추지 못했다.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음에도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파열음이 도무지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적들이 말 그대로 형제들을 '쓸어 버리며' 돌격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은 21번이 목청 껏 외쳤다.
"습격이다! 적습이다!"
원래 있던 제단과 공간을 임의로 개축하여 만든 교단 내부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그가 소리친 것만으로도 이번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바짝 긴장하고 있던 형제들이 당장 무기를 고쳐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형제들은 경고에 제대로 반응했다. 그리고 열성적으로 입구 쪽으로 달려가,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죽음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21번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에게 형제들을 제물로 바친다는 자각을 애써 지워가며 심층으로 향했다.
이전까지는 웅장하게만 느껴졌던 교단의 내부가 거대한 돌무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차 줄어가는 형제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는 그저 달렸다. 그의 외침에 응한 형제들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달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열성적으로 침입자를 막기 위해 반대로 달릴 뿐.
그래도 죽음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대사제님! 습격자가 내부로 침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가 교단의 예배당에 도착하여 본 것은 대사제를 비롯한 10번 대의 형제들의 침착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이 모든 소란 속에서도 침착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21번은 그들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깊은 안도감이 샘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21번 형제여. 그대는 기습에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그, 그들이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지금도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휘이익!
그 순간 뒤에서 끔찍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그의 옆을 지나 무언가가 제단을 향해 날아들었다.
"84번이 말했던...!"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형제들의 모습보다도 먼저 21번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근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대사제의 미간에 뚫린 구멍이었다. 큰 충격에 뒤로 확 젖혀진 대사제의 머리가 반동으로 인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하더니 그대로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교단의 최고 권력자인 대사제는 그렇게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역시 기습은 언제나 옳다니까. 불에 뛰어드는 나방들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뒈져나가잖아?"
21번은 그대로 주저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전력으로 달렸음에도 습격자가 자신과 거의 같은 속도로 예배당에 당도했다는 사실에 사고가 마비되어 버려 그 외의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반갑다 악마 숭배자 새끼들아. 84번은 어디 갔냐? 그 새끼 마지막에 죽이기로 했거든. 오는 길에 실수로 죽인 게 아니면 좋겠는데."
거기엔 피칠갑을 한 채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온 투사체를 한 손으로 쥔 습격자 한 명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투사체를 쥐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은 듯했다. 하긴, 이미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엔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21번의 뒤쪽에서 10번대 형제들이 검을 뽑아 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기랄! 공격..."
-콰앙!
하지만 그들은 습격자를 향해 뛰어들지 못했다. 이번엔 제단 뒤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던 것이다.
21번의 머릿속에 양동작전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교단의 비밀 출구가 있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너무나도 오래되고 쓸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졌던 기억이었다.
"뭐야 저건?"
하지만 습격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터져 나간 제단의 뒤편을 경계했다. 습격이 아니라고? 그럼 대체 저 폭발은 무엇이란 말인가?
"에파가의 이름으로!"
"신성모독의 대가는 목숨으로 치르게 되리라!"
의문에대한 해답을 외치며 폭발 속에서 마족들이 나타났다.
◈
데오니 비레는 벽을 부수기 위해 방패를 치켜들고 돌진했던 자세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사교도 하나를 들이 받으며 철퇴를 휘둘렀다.
신성력으로 강화된 육체는 번개와도 같았고, 방패에 맞은 사교도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사이 미처 반응하지 못했던 다른 사교도의 두개골이 깨지며 명을 달리하는 것까지 확인한 그녀는 묵직한 철퇴를 마치 검처럼 휘두르며 사교도들 사이를 휘저었다.
그녀와 함께 온 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숙련된 이단 심판관들이었으니까. 열 명도 채 되지 않은 사교도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 해 보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성녀님. 뭔가 이상합니다."
"그러게요."
당장 엄청나게 많은 사교도들을 상대하게 될 거라 여기고 진형을 갖추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들을 향한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눈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바닥을 기고 있는 사교도 하나, 그리고 전혀 다른 복장을 한 채 피칠갑을 한 정체불명의 남자 뿐이었다.
끔찍한 모습이긴 했다. 사람 하나 죽이고 일부러 피를 뒤집어 쓴게 아니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며 이곳에 도달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남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덤덤하게 앞으로 걸어나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교도의 목을 일격에 베어버릴 뿐이었다. 그 뒤에야 남자는 제대로 데오니와 눈을 마주쳤다.
순서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불과한 것과도 같은 사무적인 태도로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입을 열었다.
"마왕군? 아니면 그냥 마신교?"
대답에 따라 생사가 갈릴 것 같은 강한 위기감 속에서, 데오니는 저도 모르게 무기를 고쳐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