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질문이었다. 동시에 인간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한 질문이기도 했다.
마족을 향한 인간들의 분노와 멸시는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전쟁 이전에 그나마 정상적인 교류를 했던 당시에도 다른 종족들, 특히 인간은 마족을 꺼려했다.
데오니 비레 역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력과 뿔이라는 차이는 마족들에겐 종족의 특징에 불과했으나 인간들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뒤로 그 차별이 더욱 심해졌다는 건 말할 가치도 없는 수준의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냉정한 반응은 오히려 신선했다. 마치 둘 중 하나인 경우 자신은 싸울 이유가 없다는 듯한 태도는, 그가 풍기고 있는 위험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저희는 마신교의 이단 심판관입니다."
"이 악마 숭배자 놈들이 마신교를 사칭하고 다녔으니 그럴 만 하긴 했지. 근데 방금 그쪽이 작살낸 놈들이 여기 수뇌부이자 마지막 남은 전투인원이었거든? 혹시 다른 용무가 있으신가?"
"...이들은 적지 않은 규모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된 거죠?"
"다 죽였지."
그때 남자의 뒤편에서 미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남자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말을 정정했다.
"...대부분은."
일행이 있고, 그들은 사교도와 적대적이었다. 복장만 놓고 본다면 모험가에 가까웠으니 어쩌면 다른 이유로 의뢰를 받아 움직인 것일지도 몰랐다. 굳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 상대의 경계를 살 필요가 없다고 여긴 데오니는 무기를 살짝 내림으로써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희의 용무는 끝입니다."
하지만 방패는 여전히 남자를 향해 세운 채, 데오니는 남자의 반응을 살폈다.
인상 깊은 덩치와 근육을 지닌 인간이었다. 다른 때였으면 그냥 인상적인 수준에서 그쳤겠으나 지금은 피칠갑이 된 상태라 굉장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신성력을 통해 어지간한 이들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닌 그녀였음에도 묘한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신경 쓰이는 것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잔향이었다.
인간에게서 느껴져서는 안 되는 기운. 느껴질 수 없는 기운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와 닿았다. 어쩌면 계시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당장 에파가의 뜻을 헤아리고 싶었으나, 인간들의 영역에서 에파가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신과의 교감은 아쉽게도 그 한정된 권능에 포함되지 않았다. 데오니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세 가지만 좀 물어보자?"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만."
"있을 걸? 대답 안 하면 바로 여기서 나랑 칼춤을 춰야할 테니까. 뭐, 그쪽은 철퇴니 칼춤은 나 혼자 추게 되겠지만."
네 명의 이단 심판관들이 불쾌감을 표출하며 움찔거렸으나 남자는 오히려 그 반응을 고깝게 여기는 표정과 함께 먼저 무기를 고쳐쥐었다.
"뭐. 어쩌라고. 꼬우면 덤비던가."
어처구니가 없는 반응에 솔직히 데오니는 할 말을 잃을 뻔 했으나 일단 동료들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는 혼자였으나 뒤에는 많은 동료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겨우 불쾌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위험을 감수하느니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나았다.
"물어보시죠. 가능한 선에서 대답하겠습니다."
"바람직하네. 우선 첫 번째 질문. 7년 전 여기 이티스엘 서부를 침공한 마왕군에 대해서 아는 거 있냐?"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군요. 전쟁이 처음 시작된 그날에도 전선이 거기까지 밀린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분명 전쟁이 발발한 것은 7년 전이었으나, 마왕군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인간들의 영토에 침범한 적이 없었다. 군부대의 비밀 작전이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애당초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 마신교가 그런 기밀을 알 방법은 없었다.
"모르면 됐어. 그럼 세 번째. 내가 나중에 전선에 나가서 마왕군을 좀 많이 죽이게 될 놈이거든? 어떻게 생각하냐?"
"...두 번째는요?"
"첫 번째 대답 때문에 필요 없어졌어."
그럼 지금 그냥 지금 두 번째라고 질문하고 세 번째 질문을 없애면 되는 거 아니었나...?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온 의문을 겨우겨우 삼키며 데오니는 일단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그게 전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슬픈 일이지만... 마신교는 이번 전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쟁?"
"마왕과 용사가 대립하게 될 전쟁. 마신교는 그 전쟁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왜?"
"...질문은 끝 아니었나요?"
"옘병. 그러네? 두 번째라고 할걸. 근데 그런 이유로 지금 날 방치한다고?"
"'빌어먹을 신들. 언젠가 죽여 버릴 거야.' 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신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리 죽이진 않으니까요."
묘한 태도의 남자였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믿기 힘들었지만, 남자는 마족에게 아무런 적개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데오니가 역으로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자신들을 아주 평범하게 대하고 있었다. 사실은 뿔을 자른 마족이라도 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평범한 반응이었다.
"하하. 그렇지. 마음에 드네. 나중에라도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수다. 가보쇼. 내 동료들은 댁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으니까."
진심으로 웃어 보이며 손을 내젓는 남자의 반응에 결국 데오니는 의문을 참지 못했다.
"저희는 마족인데요?"
"그 멋들어지게 휘어진 뿔이라도 감추고 말하던가. 나 두 눈 멀쩡해."
"...아니, 그런 의미가..."
남자는 데오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그가 자신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는 것을 깨달은 데오니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을 검집에 집어넣기까지 하며 어깨를 으쓱인 남자가 말을 이었다.
"댁이 말했잖아. 전쟁이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나도 같은 생각이외다. 마족이나 엘프나 드워프나 다를 게 뭐야. 그냥 전쟁 때문에 싸우는 건데 마족 자체를 싫어할 이유는 없지. 그쪽이 전쟁 옹호자이자 인간 혐오자였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서로 이 시대의 양식있는 지성인 같으니... 각자 할 일 하고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
어쩌면, 정말로 이 남자가 계시의 이유 아닐까. 에파가께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실마리를 던져 주신 것이 아닐까?
갑자기 샘솟는 의문과 호기심이 시키는 대로 남자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었던 데오니는 마음대로 벌어지려던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뒤에서 이어지던 희미한 비명이 완전히 그쳤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다 죽였군. 그쪽은 손 안 대고 코풀어서 좋고, 우리는 의뢰를 완수해서 좋고. 바람직하네."
"...동료를 신뢰하는군요."
"이딴 놈들 상대하는데 신뢰라는 말을 쓰면 동료들에게 실례라고만 해 두지."
첫 대면에서 느껴졌던 거와 달리 퍽 대화하는 재미가 있는 상대였다. 다른 이단 심판관들은 자신들 전부와 혼자 싸우려고 했던 게 괘씸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으나, 그래도 그들 역시 무기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은 뺀 상태였다.
"어쩌면 에파가께서 이 작은 만남을 위해 인도해주신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유익한 대..."
순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데오니는 저도 모르게 말을 끊고 방패와 무기를 고쳐쥐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이단 심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뭐야?"
유일하게 남자만이 무기를 뽑아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들과 같은 것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태연한 것인지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반응이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반쯤 무너진 제단을 향해 사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악마 새끼. 별 짓을 다 할 줄 아네."
남자가 갑자기 데오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제단 인근 뿐만 아니라 남자가 있던 뒤쪽 통로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흘러오는 피의 강에 놀라 제대로 반응조차 못하고 있던 데오니가 뒤늦게 고개를 돌리자, 정확하게 눈이 마주친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외쳤다.
"방패 올려! 파편 맞는다!"
파편?
일단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외친 경고인 건 확실했기에 데오니를 비롯한 다른 이단 심판관들은 반사적으로 그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제단에 거의 다다렀을 즈음 한껏 상체를 뒤로 젖혀진 남자의 주먹이 제단으로 날아들었다.
-콰앙! 쾅! 콰앙!
도저히 사람의 주먹으로 돌을 후려쳐서 날 소리가 아니었으나 남자는 거침없이 제단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한 번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뭉텅뭉텅 깎여 나가는 제단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할 만했지만 남자는 그런 걸 감상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주먹질을 반복할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데오니가 뒤늦게 남자의 행동을 이해했다.
"형제님들! 제단을 공격하십시오!"
원래 거대한 석상이 있었던 것처럼 거대한 제단이었다. 남자의 주먹질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데오니는 명령과 동시에 제단을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주먹과 신성력이 담긴 철퇴가 사정없이 제단을 파괴해 나갔지만 제단이 무너지는 것보다 역류하던 피의 강이 제단 속으로 사라지는 게 더 빨랐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이 제단 안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의 공격에 깎여나가던 제단에 붉은빛이 돌았다.
"씨발."
그리고 남자가 나직이 내뱉은 욕지거리에 반응하듯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며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