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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19화 (219/412)

시간이 지나 의식을 잃고 있던 이단 심판관들이 정신을 차리고 성녀님을 통해 상황을 전달받아 중립적인 태도를 고수할 때 쯤, 사교도 소굴의 탐사도 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피가 빨려 나간 시체들 덕에 손쉽게 탐색을 마무리 지은 우리는 전리품들을 옮기느라 처음 위치했던 야영지와 사교도 소굴을 몇 번이나 왕복해야 했다. 제물로 바쳤던 피해자들의 유품들 중에서도 돈이 된다 싶은 것들은 열심히 모아 뒀던 것인지 그 양이 상당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나 때문에 서른 마리나 되는 말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열 마리의 말들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놈들을 후원하는 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침통한 듯 중얼거리는 가엔달의 의견은 지극히 타당했다. 전장에서 말을 타고 도망쳤을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마흔 마리나 되는 말들의 유지비라는 건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따로 제물을 쌓아 두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장물아비나 다른 불법적인 세력과 엮여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나중에라도 길드에 알려서 이야기를 해두는 편이 낫겠네요."

비슷한 결론을 내린 것인지 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단순 장물아비일수도 있지만 분업화된 악마 숭배집단일수도 있으니 경고해주는 편이 낫겠지. 어차피 전리품이 넘쳐나다보니 올 때와 달리 적당한 도시에 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때 이야기를 전달하기로 했다.

그렇게 전리품들을 야영지까지 전부 가져와 분류하고 정리하는 동안 악마가 남기고 간 부산물을 세네란에게 보여줬더니 상당히 흥미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악마들이 종종 죽을 때 남긴다는 부산물이네."

딱히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일단 보여 주기만 했는데도 정확하게 역겨운 덩어리의 정체를 간파한 세네란은 이리저리 돌려보면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역겨운 살덩이를 용케도 아무렇지 않게 살펴보시네요."

금방이라도 꿀렁거리며 움직일 거 같은 덩어리를 면밀히 살펴보는 모습이 새삼 대단해서 나도 모르게 옆에서 한 마디 거들자, 세네란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네 손에 썰려 나간 사람들의 시체가 더 역겹다고 생각 안 해?"

"그건 타는 쓰레기에 불과한 악마 새끼가 남기고 간 노폐물이잖습니까. 엄연히 세상의 일부인 시체에 거부감이 드는 것과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사악한 무언가를 비교하다니. 실례라고 생각됩니다만."

"와, 너처럼 영혼에 악마에 대한 혐오감이 각인된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당장 성직자인 마신교의 이단 심판관도 너보다는 양호한 반응인데 말이야."

실제로 성녀님은 내게 동조하기보다 세네란과 함께 내 악마 혐오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바퀴벌레와 모기보다도 질이 나쁜 새끼들인데 오히려  내 반응이 지극히 정상인 거 아닌가? 납득을 못 하겠네.

"어쨌든, 이건 네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서 굉장히 귀한 물건이야."

내 눈엔 놈이 싸지르고 간 똥덩어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덩어리를 면밀히 살피면서 세네란은 말을 이었다.

"너도 싸워 봐서 알겠지만 현신한 악마의 육체는 굉장히 튼튼해. 겉으로 보기엔 생명체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실속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인공물에 가깝지. 문제는 그런 주제에 죽으면 시체는커녕 육체의 파편조차 제대로 안 남는 경우가 허다해서 여러모로 굉장히 손해보는 장사를 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거야."

그래서 악마 토벌 의뢰 같은 건 확실히 검증된 모험가들에게 마도서관에서 제작한 기록장치를 지원한 뒤 그걸 의뢰 완료의 증거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장비의 지원이 여의치 않은 지역은 토벌 후 조사단을 파견하여 확실한 흔적을 발견할 때까지 보수가 체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걸 핑계로 모험가를 등처먹으려고 들었다가 정수리부터 쪼개지는 사례도 왕왕 있을 정도니, 세네란의 평가는 꽤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극히 일부의 악마들이 이런걸 남기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아. 악마의 강약을 떠나서 워낙 불분명하게 튀어나오거든. 일부는 마력을 모아 육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서두를 경우 높은 확률로 생겨난다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사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귓구멍을 파며 심드렁하게 내뱉은 말은 그녀의 태도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정도 크기의 부산물에, 그것도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경매에만 내놔도 상단 금화 다섯 개 이상의 가격에서 움직일 물건이야."

"...에? 뭐요?"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상단 금화라고 들은 거 같은데?

주변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다른 이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가며 우리 쪽으로 쏠리는 걸 보아하니 제대로 들은 게 맞나보다. 정작 세네란은 그런 주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너무나도 평온한 태도로 악마의 부산물을 캐치볼 하듯 가벼운 동작으로 내게 던졌고, 난 혹시라도 떨어트려 망가질까 싶어 황급히 온몸으로 받아 냈다.

이젠 똥덩어리가 아니라 금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해서 아무런 혐오감도 느낄 수 없다!

"수요는 확실한데 공급이 부족한 물건이라는... 아, 단어가 좀 어려우려나?"

"그 정도는 압니다. 그보다 이게 그렇게나 인기 상품이라는 게 납득이 안 가는데요?"

어딜 감히 대학까지 나온 현대인에게 한낱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어로 학력부심을 부리려고. 현대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뻔한 터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세네란은 이미 부산물에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어기적 어기적 자신의 침낭 위에 몸을 뉘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화려하게 마법을 쏘아 댔다고 하더니 적잖게 피곤한 모양이다.

"일부 마법사들에겐 보석과도 같은 거라 생각하면 돼. 장식용이 아니라 연구용이다 보니 소모품이고, 구하기는 힘든데 매번 나오는 매물들은 소모돼서 사라지니 당연히 비싼 거지."

그런 물건을 이렇게 막 대한다고? 과연 황금의 마법사답다.

대체 어디에 쓰길래 그렇게 인기가 좋은 건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으나, 그녀와의 대화를 주워들은 다른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부산물을 구경하기 시작해서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가 된 탓에 적당히 가엔달 씨에게 악마의 부산물을 넘겨 준 뒤 일단은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그럼 데오니 비레 이단 심판관님? 일단은 저희도 좀 휴식을 취하고 상세한 이야기는 일행분들과 상의 후 나누기로 할까요?"

"비레로 충분합니다 엘드미아 님. 우선은...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도 고민할 시간이 좀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마친 성녀님은 그렇게 다른 이단 심판관들이 열심히 세우고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어차피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자고 일어난 뒤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낫겠지. 나도 여러모로 피곤한 상황이라 일단 아실리에가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이야기는 끝났니?"

신발을 벗은 채 마치 잠든 것처럼 누워 있던 아실리에는 근처에 다가가는 소리만 듣고도 나라는 걸 눈치채며 눈을 떴다. 이 누나도 정령술과 마법을 병행하며 무리를 좀 해서 먼저 쉬고 있었던 모양이다.

렐리에도, 메르델라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걸 보면 속전속결로 끝내지 않았을 경우 여러모로 귀찮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응.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일 하게 될 거 같아. 오늘은 서로 피곤해서 적당히 마무리 지었어."

"흐응. 사람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운 건 왜 그런 거야?"

"오늘 잡은 악마 놈한테 뭐가 떨어졌는데 그게 굉장히 비싼 물건이더라고. 최소 상단 금화 다섯 개라나? 다들 신기해서 구경 중."

신발을 벗고 대충 장비를 벗은 채 옆에 몸을 뉘이자 꼼지락꼼지락 움직여서 공간을 만들어 준 아실리에가 그 액수에 놀라며 작게 웃었다.

"정말 엘디는 가는 곳마다 사건에 휘말리네. 그래도 이번엔 큰 보상이 딸려왔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 솔직히 가엔달 일행이랑 센 일행을 데려와서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야. 우리만 왔더라면 저 물건들 대부분은 못 챙기고 갔을 테니까."

"싸우는 게 힘들었을 걸 걱정하기보다 전리품부터 걱정하다니, 엘디는 이번에 그리 힘들지 않았나 봐? 악마였잖아."

"음... 솔직히 그랬지."

악마 놈은 극 하드 카운터에 가까운 상성 때문에 오히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버렸고, 사교도들은 나름 칼 좀 쓴다 하는 수준이긴 했어도 결국 탈주병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변수라고 할 수 있었던 놈들조차 성녀님 일행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박살 나버렸고 말이지.

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악마를 상대한 이야기와 성녀님에 대한 이야기도 아실리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내가 악마들의 극 하드 카운터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내 지금까지 나름 믿고 기도해왔던 신님이 마신 에파가 님이었다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은 아실리에는 '흐응'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아직은 다 말해주기 힘들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스킵했는데도 너무 자연스러운 그 반응에 오히려 내가 의아해졌다.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솔직히 엘디가 마력을 쓰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족의 신이 가호를 내렸다고 하니 납득이 되는 걸?"

과연. 지당하고 합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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