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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20화 (220/412)

자신의 침낭에 몸을 뉘인 세네란은 주변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심상으로 빠져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마신교의 이단 심판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우선시 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엘드미아와 방금 나눴던 대화로 인해 묘한 의문이 생겨 버린 탓이었다.

'악마를 향한 과도한 적의... 뭐가 원인일까?'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녀는 일행들과 상당히 활발하게 대화했다. 단순히 파티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엘드미아를 파악하기 위해. 아실리에는 일행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당사자인 엘드미아는 훈련에 집중하느라 자주 어울리지 못했으나 다른 이들과의 교류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한 정보를 모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악마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분명 악마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는데.'

악마는 마수와 같은 토벌 대상이다. 인간에게 이로울 게 하나 없는 존재이다 보니 당연히 절대 다수의 종족에게 호감보다 비호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아무런 접점도 없는 존재에게 저렇게 일방적인 증오를 품는다는 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예 사교도와 악마를 향한 적의를 주입식 교육으로 배우는 이단 심판관들조차 저러기가 쉽지 않는데 어떻게 일반적이겠는가.

설령 그렇게 교육을 받더라도 증오 뿐만 아니라 미지에 대한 공포심과 거부감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엘드미아와 같은 맹목적인 적의라는 건... 결코 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간 수집했던 정보들이 하나하나 모양을 갖추며 맞물리기 시작했다. 레비엥의 단두대, 모험가 길드의 광견, 엔벨데 저택의 대학살. 루드라의 젊은 사자와의 결투. 센이라는 풀링과 엮이게 된 계기.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사악한 무언가라...'

수도에 만연한 엘드미아의 소문은 굉장히 이중적이다.

일각에서는 신사적이고 지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당장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발쿤 마저도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으니 그 점은 분명 의심해볼 여지도 없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미치광이 살인마로 취급받는다. 그러한 소문을 뒷받침할 만한 많은 사건을 몰고 다녔음에도 정작 그로 인한 법적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그가 저지른 과감한 사건들은 대부분 사실이다. 왕족이 오더라도 그렇게까지 막무가내로 일을 저질렀으면 규탄을 피할 수 없을 것임에도 그가 멀쩡히 지내고 있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계산을 하고 움직여.'

엘드미아는 자신에게 정당성이 부여될 때 움직인다. 설령 그로 인해 군대를 적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정당성'만' 있다면 일단 움직이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여서 검을 휘두르는 대상들은 그에게 해를 가하거나, 해를 가하려던 인물들이다.

행동만 놓고 보면 인간의 지성을 지닌 맹수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자신을 향한 공격과 적의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맹수보다 위험하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인물, 혹은 무조건 해를 가할 거라고 확신이 있는 인물을 배제하려 든다고 가정하면... 납득이 되긴 해.'

악마는 백해무익하니까. 죽어야만 비로소 이로운 쓰임새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존재니까. 거래나 계약을 통해 일시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을지언정, 결국 악마는 그런 이익은 사소한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큰 대가를 요구하고 기어이 징수한다. 심지어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면 만만히 볼 수 있는 대상조차 아니다.

그와 레비엥 변경백의 관계가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엔벨데가 레비엥 변경백을 건드렸다가 명을 달리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엘드미아는 자기 주변의 특정 인물들을 향한 위협에도 반응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걸 좀 더 넓혀서 인간, 즉 자기 주변 인물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는 해악을 끼칠 것이 기정사실에 가까운 악마의 존재를.

엔벨데의 경우처럼 실질적인 위협이라 여기고 배제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면.

'엘드미아의 악마를 향한 적의와 분노도 납득할 수 있어.'

존재 자체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생명체. 심지어 단순히 괴롭히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이용해 먹고 적나라한 고통을 주고자 열과 성의를 다 하는 뒤틀린 존재.

엘드미아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기만 해도 찢어 죽이고 싶어서 몸서리칠만 하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면에서 그의 행동 원리와 맞부딪치는 존재일 테니까.

'...굉장히 조심해야겠네.'

태연한 척 누워 있었지만 전신에 소름이 돋는 감각 속에서 세네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네란은 마법사이면서 상인이었다.

두 직업의 공통점이 있다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짓없이 상대방을 교묘히 농락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세네란은 뛰어난 마법사요, 위대한 상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엘드미아와 그 주변에 위협적인 공작을 가할 의도가 있었다. 어차피 나중에 눈치채더라도 자신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두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

오산이었다. 너무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게 들통나는 순간 그녀의 머리는 몸통과 작별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그 상황을 막기 위한 족쇄? 글쎄, 그런 게 있을까.

당장 그가 바늘이라고 불리는 무기를 전력으로 사출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나는 죽고 시작할 텐데.

거기까지 사고를 마친 세네란은 한결 편해진 마음가짐으로 새로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문이 풀렸으니 이젠 구체적인 미래를 다시 계획할 차례였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엘드미아가 보호하려는 '주변 인물'이 될 수 있을까?

그 고민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유쾌한 고민이었다.

"잠깐 괜찮으시겠습니까."

전사들로만 이루어진 불침번 끝에 찾아온 아침을 맞이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도중에 나에게 다가온 사람은 성녀님이었다.

"예. 무슨 일이시죠 비레 이단 심판관님?"

"...그냥 비레로 충분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에파가 님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나와 아실리에가 사용 중인 천막은 다른 이들하고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었지만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인지 성녀님의 목소리는 굉장히 작았다.

"뭐, 그러죠. 누나,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게."

"그러렴."

능숙하게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구우며 병조림으로 보관된 야채들을 꺼내는 아실리에를 뒤로하며 조금 거리를 뒀더니 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성녀님이 질문을 던졌다.

"일행분은... 하이 엘프 아니십니까?"

"...글쎄요? 물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실리에가 하이 엘프였나? 솔직히 하이 엘프라는 부류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일반적인 엘프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는지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두리뭉실한 답변 뿐이었다.

"...아닙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다름이 아니라 잠시 상황을 정리하고 당신에게 제대로 된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단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이쪽 동네에서 마족은 목에 노예 목걸이를 차고 있는 친구들도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녀가 저 굵직한 뿔을 톱으로 잘라 내지 않는 이상 여기에 남아 날 돕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어? 성녀님 뿔 한쪽 끝이 원래 조금 잘려 있었던가?

"차후 제가 먼저 연락책을 보내겠습니다. 그때 이걸 연락책에게 보여주도록 하세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기가 무섭게 성녀님이 잘린 뿔조각을 내밀어 건네주었다.

와, 진짜 적응이 안 되네.

"수인들은 이빨을 뽑아서 주질않나 마족은 뿔을 잘라서 주질 않나. 받는 사람 기분도 좀 생각해주시면 안 됩니까?"

"이, 이건 아무한테나 막 주는 게..."

"아니, 그게 아니라. 신체의 일부를 그렇게 주면 받는 입장에서 엄청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 노예 상단에게서 구해 준 크룰도 그렇고, 저 뿔도 결국은 다시 멀쩡히 자라니까 잘라서 주는 거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지게 부담스럽다. 어떻게 멀쩡한 징표보다 신체의 일부가 더 많아.

"...흠흠. 문화적 차이를 배려하지 못했군요. 실례했습니다."

"그, 비레 님이 절 배려하고 신경 쓰기 위해 그러신 건 알겠지만... 에휴, 저도 문화적 차이를 배려하는 게 맞겠죠."

어차피 잘린 건데 안 받을 수도 없고, 일단은 받아서 크룰의 송곳니가 들어 있는 파우치에 조심스럽게 넣어 두기로 했다.

"음? 그건 수인족의 징표입니까?"

"예. 방금 말한 그 수인이 뽑아준 이빨이 이겁니다."

그 짧은 틈을 타 용케도 파우치의 내용물을 살펴본 성녀님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혹여 호기심이 재발한 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혹시 그 징표를 건네준 이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어쩌면 연락책을 구하기 수월할 거 같아서요."

"어... 크룰... 피탈리 바자소였나? 비탈리 비자소였나. 그런 이름의 수인이었습니다만."

"앞의 이름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다행이군요. 좀 더 수월하게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성녀님은 그 뒤로도 예상 접선일을 어림잡아 알려 준 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는 짧은 인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자신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제 3자에게 들킬 경우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어서 배려한 느낌이 강했다.

"으아?! 마족! 왜 없어?!"

많이 피곤했던 것인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버린 세네란이 뒤늦게 일어나서 떼 쓰는 어린아이처럼 찡찡거리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그 외에는 식사를 모두 마치고 짐 정리가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도시로 가서 돈을 벌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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