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21화 (221/412)

출발은 평범했으나 도시로 향하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분명 똑같은 인원이 똑같이 움직이는데 왜 올 때랑 다르냐고? 그야 우리 말 뒤에 실린 짐 때문이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에 불과했던 우리 파티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보물 고블린으로 둔갑했다고 여긴 돌대가리들이 열심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이 주변 치안은 어떻게 돼먹은 거냐?"

"요즘... 좀 개판이긴 했는데..."

"아니, 명색에 관문 도시라고 불리는 놈들이 어떻게 죄다 이 모양이지? 치안 유지 비용으로 받아 먹는 세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건데?"

개 같은 판타지 세상. 평원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모험가와 일반인보다 도적 새끼들이 더 많은 꼬라지 하고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지만 남쪽 관문 도시이자 센 일행의 주 활동 무대라고 하는 엔글렘에 인접해질수록 치안이 점점 더 개판이었다. 저 멀리서 도시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는 위치까지 오는 동안 베어 죽인 도적들만 열다섯 명에 육박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루에 다섯 명 씩 죽인 꼴이다. 이 정도면 누군가가 일부러 우리를 노리고 사람을 보내는 경우를 의심해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친김에 말을 꺼내보았다.

"누군가 원한 관계에 의해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거나, 저지른 일이 많아서 목숨의 위협이 좀 있었던 거 같다. 거수."

잠시 몸을 녹일 겸 지핀 모닥불에 둘러앉은 일행들 앞에서 시범 삼아 손을 들어 올렸더니 열 명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로 쏠릴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과 나만 손을 들고 있는 상황이 의미하는바가 너무나도 명확해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아이 씨, 내가 범인인가?"

"푸흡!"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뭐라 반박을 못 하겠네.

난가? 진짜 난가?

내가 중얼거린 한 마디에 빵 터진 아실리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래도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해준 것인지 떨떠름한 표정으로나마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딱히 습격해온 도적들에게 공통점이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지. 우연 아니겠는가?"

"저도 긴 씨와 비슷한 의견이지만... 확실히 엘드미아의 말대로 빈도가 좀 이상한 수준이긴 합니다. 굳이 따지면, 자연스럽지는 않다에 가깝죠."

"공통점이라고 하기엔 좀 미묘한데 도적놈들 치고 장비가 좋지 않았어요? 그냥 내다 버린 것보다 짐에 포함된 게 더 많았는데."

"묘하게 결집력이 있어 보이는 것도..."

멋진 토론의 장이 열린 건 좋았지만 뭔가 이거다 싶은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 갔다. 진즉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면 도망치는 거 하나라도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해 보는 거였는데.

결국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은 토론을 마친 우리는 일단 엔글렘에 입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결국은 돈 되는 걸 잔뜩 들고 다니는 게 문제이니, 이것들만 다 처분한다면 다시 평화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더랬죠."

그딴 건 없었다.

대신 분노로 눈이 돌아가서 방방 뛰는 센과 그걸 말리는 칼스가 있을 뿐.

"아니 씨발 지금 장난합니까!? 나 키쿠이델 센이라고! 모험가 길드 소속 적급 모험가! 신분증도 있는데 뭔 신원을 알 수 없는 모험가야 이 씹새야!"

최근 내 앞에서 얌전히 있어서 잊고 있었는데 쟤도 성질머리와 입담에 브레이크가 없는 편이었지. 상대방이 경비병임에도 자신이 당한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할 줄 아는 태도만큼은 참 마음에 든다.

당연히 경비병은 그런 그녀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카악 퉷! 아무리 난리를 쳐도 못 들어가. 지금 엔글렘은 모험가 출입 금지다."

진귀한 구경거리를 자처하고 있는 센을 향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관문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걸 슥 훑어본 경비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닥에 침을 뱉으며 일방 통보할 뿐이었다.

"이!! 씨발!! 개!!"

센의 입에서 한 무더기의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경비병은 귓구멍만 후빌 뿐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런 반응으로 일관하는 게 이상하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할 만도 한데 가만히 있다니, 딱히 정식적인 절차를 밟고 길을 막아서는 게 아닌 건가?

내가 기억하는 법 조항을 떠올려보면 이런 식으로 모험가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 건 도시가 포위되거나 적법한 권한을 지닌 권력자의 명령이 있을 때만 가능하니 사실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한데 말이지.

"세네란. 혹시 신분 증명서 같은 거 있으십니까?"

"아니. 나도 옛날에 따 놓은 모험가 인식표만 들고 나왔는데."

흠. 아쉽구만. 마도서관의 주인인 걸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호위라는 명목으로 그냥 밀고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밖에 천막을 펼친 채 이 어이없는 봉쇄가 풀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딱히 우리한테만 으름장을 놓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이대로 그냥 수도까지 달려가자니 또 도적놈들이 게거품을 물며 달려들 거 같아서 귀찮아 죽겠고...

에잉. 역시 난 어딜 가도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놈이 맞나보다. 가만히 있어서 해결되지 않으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실례합니다. 혹시 봉쇄령이 내려진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오자 거짓말처럼 센이 쏟아 내던 욕설의 파도가 뚝 하고 끊겼다. 그게 나름 효과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반응을 본 경비병은 센을 대할 때보다는 아주 조금 기가 죽은 반응을 보이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최근 일부 모험가와 손을 잡은 도적들이 내부로 들어와 좀 큰 사고를 저질렀수다. 거기에 된통 데인 귀족 나리께서 지금 눈이 뒤집혔지. 내 말 믿으쇼. 댁들은 지금 좀 좆같더라도 여기서 천막치고 귀족 나리 화가 식을 때까지 비바람을 맞는 게 훨씬 나을 거요. 원래 도시 내에 있던 모험가들조차 숙소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니까."

범인 색출을 위해 도시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것일까? 의외로 봉쇄령 자체는 합법적인 절차로 이루어진 건데 경비병이 착해서 센의 공무집행 방해죄에 버금가는 욕설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던 모양이다.

막무가내로 대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나름의 친절을 베풀려고 한다면 이쪽도 정중하게 나가줘야지.

"배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서요. 사정을 알게 됐으니 들여보내달라고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엔글렘 모험가 길드에 이야기만 전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례는 당연히 하겠습니다."

"...뭐, 이야기만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술값을 벌 수 있다면야."

말이 통하는 친구인 것인지, 내가 슬며시 내민 은화 한 개가 말을 통하게 만들어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수도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 엔그림에게 비밀 의뢰를 수주받았던 엘드미아 에가가 신원 증명을 원한다고 엔글렘 모험가 길드에 전달해주시면 됩니다."

엔글렘. 엔그림. 그러고 보니 비슷하군. 뭔가 연관이 있진 않겠지.

처음엔 그냥 교대 시간에 맞춰 가주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경비병은 은화 한 개 값만큼은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며 바로 다른 이에게 대타를 부탁한 뒤 자리를 비웠다.

"어... 엘드미아? 그거로 먹힐까?"

길을 막고 있어 봤자 어차피 뚫리지도 않는 거 옆으로 비켜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예카트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글쎄요라니... 안 통하면 은화 한 개가 그냥 날아가는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아마 될 거 같아요."

그래도 명색에 왕실에서 직접 의뢰를 받아 보고하는 아저씨인데 내가 사방팔방 깽판 쳐놓았던 것 정도는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굳이 가엔달 일행들을 모두 언급하지 않고 내 이름만 써먹은 건 그런 의도가 있어서 였는데 결과가 '그래도 안 된다는데요?' 라면 되게 뻘쭘할 거 같다.

"확실히 길드장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쉽게 진입할 수 있겠지. 그런 의뢰를 받았다는 것부터 이미 어느 정도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가능성이 보이는군."

"길드는 도서관과 협업해서 연락망도 구축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거 잘 기억해 두면 언젠가 한 번 정도는 더 써먹을 기회가 있을 거 같군요."

심지어 마치 이미 도시에 들어가는 게 기정사실인 것처럼 가엔달과 긴 씨가 멋대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해서 괜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랬는데 못 들어가면 눈치 좀 보이겠다."

"...내 말이."

나랑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아실리에의 의견에 동조하며 삼십 여분 정도 더 기다렸을까. 자리를 비웠던 경비원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그는 혼자 돌아오지 않았다. 길드 접수원들이 입고 다니는 의복 위에 가벼운 망토를 걸친 남자가 그의 곁에서 함께 뛰어오고 있었다. 내가 그를 발견하자 일행들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와중에 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 접수원 쿤즈. 저 친구 경력 좀 있어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데 말이죠. 느낌이 좋은데요?"

"그런 것 치고... 좀 과하게 반기는 분위기 같지 않아?"

이번만큼은 나도 메르델라와 비슷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은 조금 덜 진상인 손님의 귀찮은 에스코트에 불과한 일인데 왜 저런 반응일까.

"엔글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엘드미아 님! 길드까지의 안내를 맡게 된 쿤즈라고 합니...어라? 센 님과 다른 일행 분들도 함께 계셨군요?"

나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건네면서도 능숙하게 센에게 인사를 건네는 쿤즈는 묘하게 긴장하고 있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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