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사람까지 나와서 안내를 하는 건 굉장히 극성인 게 아닌가 싶은데, 주변에 쏟아지는 묘한 시선을 보아하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보다.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조사 의뢰 이후 소식이 없어서 안 그래도 조마조마 했던 참입니다. 다들 무사하신 거 같아 다행이군요."
하지만 그런 불편함과 별개로 쿤즈는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센이 사교도 놈들과 엮였다가 나에게 시달리며 여기까지 온 게 벌써 몇 주 전 일인데 그걸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 분명 길드 내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으로 분류될 인재일 것이다.
"말도 마. 진짜 죽을 뻔 했어. 이 분 없었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걸?"
결국은 길드에 정식으로 보고를 해야하니 간단하게 담소만 나눈 쿤즈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인사 중에 실례 했습니다 엘드미아 님. 엔글렘 모험가 길드 소속 접수원 쿤즈 라고 합니다. 요청하신 사안이 통과되어 길드까지 안내해드리고자 이렇게 마중 나왔습니다."
여러모로 판단이 빠른 사람이었다. 처음 바짝 긴장한 상태로 왔을 때와 달리 센과의 대화를 마친 쿤즈에게서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수도 모험가 길드에서 어떤 답변이 날아왔는지는 몰라도 여기 오는 동안 나에게 편견을 가질 정도로 강렬한 소식을 전해 들었나 보다.
"반갑습니다 쿤즈. 반신반의 했는데 이야기가 잘 진행된 거 같아 다행이군요. 하지만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실 거라는 건 예상 못한 일이다 보니 조금은 당황스럽네요."
분명 뭔가 다른 게 엮여 있을 거 같아서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더니 쿤즈는 조금 난처하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 도시 내부에서 모험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길드 직원이 같이 있지 않으면... 좀 많이 귀찮아질 정도로 말이죠."
허어어어. 개판인데? 이거 괜히 아득바득 들어가겠다고 했나?
그래도 무거운 짐을 싣고 움직일 말들의 피로도를 생각하면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긴 했는데.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직원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 일은 피해서 갈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들어가시죠."
뭐, 자신이 있으니 직원 한 명만 나와서 안내를 해주려는 거겠지. 진입조차 못 했던 거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니 별다른 불만 없이 따라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이보쇼. 지금 장난 합니까? 우리는 못 들어가고 저쪽은 들어갈 수 있다고?"
그리 큰 소리로 대화한 것도 아닌데 뭔가 낌새를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 모험가로 짐작되는 차림의 남자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일행으로 보이는 네 명 정도 되는 이들이 같이 우르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분명 똑같은 모험가에 저 반토막이만 하더라도 우리랑 똑같은 적급이라고 하던데,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길래 이렇게 특별 대우요?"
다섯 명 전부 적급 모험가인 걸까. 장비 같은 건 확실히 좋아 보이는데, 어째 이런 상황을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움직이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장 선두에 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던 남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나에게 다가오며 조금씩 언성을 높였다.
"미천한 우리들한테 말 좀 해주시지? 어디 귀족 나리라도 되시나?"
길드 소속에게 불만을 표하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지랄이라, 쿤즈 씨가 사이에 끼어들어 말릴 틈도 없이 훅 다가오는 걸 보아하니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게 꽤나 익숙한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처럼 불만 가득한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제국 황녀 애인되신다."
"프흡!"
"아하하핫!"
아실리에는 사레가 들렸고 단순 농담이라고 받아들인 센은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일행의 극적인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하핫, 어? 왜들 그러세요? 나만 웃겼나?' 라고 중얼거리는 센의 목소리를 들어 보니 에스뮈에의 편지를 잠깐 봤던 가엔달 일행은 이걸 마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어? 뭐?"
"꼬우면 너도 애인 잘 사귀어보던가."
원래대로라면 지들끼리 웃으면서 날 조롱하려고 분위기를 잡던 녀석들의 표정은 센의 반응 때문에 급격히 썩어들어갔다. 누가 먼저 웃느냐로 의미가 상황이 바뀌어 버리다니, 의사소통이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라니까.
"이 새끼가!"
하지만 그보다 더 신기한 건 놈들의 반응이었다. 뭐가 목적인지 몰라도 당장 이 자리에서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손을 뻗은 것이다. 경비대를 우습게 여기는 건가? 어쩌면 이런 반응조차 도시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거고, 일단 손목부터 부러뜨리고 시작하려던 찰나 옆에서 냉담한 목소리와 함께 내질러진 창 한 자루가 놈의 동작을 막았다.
"동작 그만. 지금 왕국 경비대와 모험가 길드원을 앞에 두고 쌈박질을 시도해? 도시가 아니라 감방에 들어가고 싶냐?"
과연. 경비병은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 공권력의 상징인 창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아무 연관 없는 이들조차 괜히 엮이지 않기 위해 잠깐 거리를 두고 물러난다. 내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던 녀석도 경비병을 한 번 바라본 뒤 퉤 하고 침을 밷으며 손을 치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치우는 척을 했다. 놈은 손을 뒤로 빼는 듯 하다가 재빠르게 경비병의 창을 낚아챈 것이다!
"니미 좆끄얽?!"
존나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쌍욕을 내뱉으며 죽빵을 갈겨 버렸다. 마력을 끌어올리지는 않은 탓에 턱이 날아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녀석의 의식을 날아가게 하기엔 충분한 펀치였다.
"워, 씨벌 이거 완전 막 나가는 미친 새끼였네!"
"어...? 어?"
창을 뺏자마자 휘두르는 게 아니라 바닥에 내동댕이 치려던 놈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으니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치 녀석이 창을 뺏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나오려던 놈들이, 쓰러진 미친놈을 보고 뒤로 주춤거리며 낸 소리였지.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몰라도 그냥 홧김에 시비를 건 게 아니라 작정하고 소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것을.
정작 경비병은 그런 사실보다 자신의 창을 빼앗겼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였지만 말이다.
"이 새끼들! 법 알기를 아주 개좆으로 알지?!"
분노에 몸을 떨며 품속에서 호루라기를 꺼낸 경비병이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입을 가져다 댔다.
-삐이이이익!
분노의 호루라기에 반응한 열댓 명의 경비병들이 창을 들고 성문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좌측 모험가 넷! 갈색 머리, 노란 머리, 덩치, 뻐드렁니! 조져!"
그리고 순식간에 상황을 전달한 경비병의 명령에 맞춰 허리 춤에 차고 있던 몽둥이로 무장을 바꾼 뒤 그야말로 개처럼 패기 시작했다. 저항이고 나발이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애당초 맨손 싸움을 시도하려 했던 놈들은 재빠르게 움직인 경비병들의 몽둥이찜질에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 해 보고 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어찌 보면... 상황이 틀어지자마자 처벌을 가볍게 받을 수 있는 선택지를 재빠르게 고른 게 아닐까 싶은 움직임이었다.
"모범적인 진압이로군요. 여기, 창 받으시죠."
덕분에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지만, 우선 올해의 우수 경비병 상을 받아도 될 만큼 깔끔하게 대응해 준 경비병에게 떨어져 있던 창을 건네주며 말을 건네자 씩씩 거리던 그가 숨을 한 번 고르며 창을 받아들었다.
"후우, 고맙수다. 이거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 그나저나 주먹질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신데?"
"무기를 뽑지 못할 때도 몸은 지켜야 하니까요.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가볍게 던져 본 질문에 경비병은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갑자기 저런 놈들이 늘어난다 싶더니 이 사달이 났수다. 자기 입으로 적급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위조일지도 모르지. 도적놈들과 손을 잡았던 모험가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으니까."
"...여러모로 좋지 않군요."
"누가 아니랍니까. 어쨌든 댁 덕분에 이번엔 쉽게 끝났지. 혹시 묵고 갈 겁니까?"
"처분할 물건들도 많다 보니 아무래도 그럴 거 같습니다. 따로 신고해야 할 게 있을까요?"
"아니. 도움받았으니 좋은 여관이라도 알려주려고 그러지."
"어어? 나 여기 토박이라고 이 새끼야!"
두들겨 맞고 있는 놈들을 신나게 비웃다가 말고 갑자기 끼어드는 센을 보며 경비병이 웃어 보였다. 어쩌면 정말 다짜고짜 되도않는 발차기를 날리려는 센을 막는 칼스 때문에 웃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 그랬지. 거 존나 미안하게 됐수다. 우린 저쪽 길드 양반처럼 댁들 얼굴 다 기억 못하거든. 아무튼 그쪽 분들은 전부 통과요. 쿤즈씨! 조심히 모셔가쇼!"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대놓고 욕지거리를 내뱉는 센에게도 웃는 낯으로 화답하는 걸 보면 됨됨이가 굉장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거 면목 없습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따라와놓고서는 오히려 사건을 만들어 버렸군요."
"저런 걸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는 구석 하나 없는데도 미쳐 날뛰는 놈을 어떻게 예측해?
난 웃는 얼굴로 쿤즈를 위로하며 동의를 구하기 위해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일행들의 시선이 '니가 그런 말을?'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