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은 원래 구두보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쉴 틈 없이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치고는 굉장히 의외라고 할 수 있겠으나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할 말을 정리해서 핵심만 말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고, 센은 후자엔 영 재능이 없는 편에 속했다.
물론 재능이 없다고 해서 항상 기피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닌지라 이곳저곳에 치여가며 연습한 덕에 아예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취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센. 사교도 토벌이 길드의 정식 의뢰로 넘어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여기서는 이만한 위협을 조금이라도 일찍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해야겠죠."
그 탓에 이제 막 보고를 마친 센은 매우 지친 상태였다. 열심히 단어를 정리하고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온 터라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그나마 막힘없이 진행된 대화의 기록을 마친 쿤즈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마저도 사람 좋아하는 센에게 고객 만족이라는 건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감상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벌었지.'
굳이 그 자리에서 보고하겠다고 쿤즈를 끌고 올라 온 이유는 단순했다. 도시의 미묘한 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일행들이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 십수 년을 엔글렘에서 활동해 온 그녀에게도 지금의 도시는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녀만의 감상도 아닌 듯했다.
"그와별개로 이건 상당히 흥미로운 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완전한 형태라고는 해도 악마를 처치한 거니까요. 혹시 직접 목격하셨습니까?"
"아니. 우린 잔당 처치하느라 바빴거든."
마족을 빼고 이야기하려니 엘드미아 혼자 악마를 때려잡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속여야 했지만 센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그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드워프 장인과 마법사가 합작해서 만든 투사체까지 생기고 나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혼자 군대도 상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럼 엘드미아 님 혼자 악마를 비롯해 그곳에 있던 수뇌부들까지 처리한 것이네요. 분명 길드 평가로는 청급인데..."
"우리보다 강한 건 확실해. 애초에 모험가가 본직인 거 같지도 않고, 그냥 승급을 안 한 거겠지."
그 실력에 굳이 모험가를 할 이유도 없어 보였지만, 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어차피 운명 공동체가 돼버린 입장인 센은 불필요한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최대한 관심 없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쿤즈는 엘드미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수도 모험가 길드장의 평가가 굉장히 좋은 편에 속하는 인물이 실력도 뛰어나다니 저희도 의뢰를 좀 맡기고 싶을 정도군요. 혹시 다리를 놓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의뢰를 거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소개를 부탁하다니, 누가 봐도 길드 내의 비밀 의뢰였다.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걸. 돌려 말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일행들도 주춤거렸고, 센도 원치 않았다. 다리를 놓긴 뭘 놓는단 말인가? 그들은 노예 계약에 가까운 상태인데. 도시 상태가 멀쩡해 보이고 좋은 의뢰였다면 좋다고 달려가 볼 의향이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길드에서 비밀 의뢰를 내건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길드를 위해서도 이 의뢰는 엘드미아가 받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경비대와 길드의 알력 싸움이 있든, 알 수 없는 뒷공작이 있든 뭐든 간에.
잘 드는 칼은 무릇 욕심이 나기 마련인데... 저 칼은 욕심 부리는 사람의 목부터 치고 보는 마검이니까.
하지만 멋쩍게 웃어 보인 쿤즈는 의뢰 내용의 일부만이라도 전달하길 부탁했다. 사실 그것조차 영 내키진 않았지만, 어차피 조금 듣는 거로 엮일 일은 없었기에 센은 적당히 타협하고 그간의 친분을 생각해 그 부탁을 수락했다.
큰 보수, 비밀 엄수, 그리고 알력 다툼 속 비밀스러운 일 처리. 대놓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한 비밀 의뢰 다운 내용을 전해 들은 센과 일행들은 기존 의뢰의 보수를 받자마자 1층으로 내려와 엘드미아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내용을 전달했다.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던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나이는 분명 가장 어릴진데 아무도 그가 그릇된 판단을 내릴 거라 의심하지 않는 게 새삼 신기했다.
살짝 눈을 내리깔며 고민하던 엘드미아의 입에서 짧은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귀찮다. 안 해."
그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
센이 전달해준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우리의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는 수준은 됐다.
도시 습격 용의자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가서 좀 잡아달라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알면 니들이 알아서 해야지 왜 나한테 그걸 맡기려고 해?' 라는 의문이 드는 수준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내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미심쩍은데 심지어 경비대랑 같이 엮여? 내가 씨발 수도에서도 그 되도않는 정치판에서 이를 갈아야 했는데 여기서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괜히 길게 있어 봤자 쓸데없이 억지로 엮이게 될 거 같다. 센. 넌 일단 너희 파티랑 함께 저 물건 받아줄 거래처부터 알아봐.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말은 일단 길드에 맡겨둘 거니까 몸만 움직여. 여관은 우리가 발품을 팔아서 적당히 찾을게."
"어,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뭐겠어. 정 불안하면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여관 있으면 몇 개 알려주던가."
"아니 그게 아니라, 밖에서 시비가 붙지 않겠어요?"
우리들이 단독행동을 하더라도 여기서 맞고 다닐만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센의 우려는 타당했다. 걸어오면서 우리를 향한 시선은 돌을 던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동시에 가능성 낮은 걱정이기도 했다. 결국 돌이 날아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내 나름대로 세운 가설을 입에 담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설령 맞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만, 아마 괜찮을 거야. 이 사건의 주도권은 길드가 쥐고 있을 가능성이 커."
오면서 봤던 주변의 시선과 반응들. 대놓고 적의를 표하는 시민들과 달리 순찰대와 경비병들은 오히려 무감정에 가까웠다. 조용한 길드 내에서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봐 왔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순찰대와 경비대를 무시하고 돌이 날아왔다면 모르겠는데, 명백하게 적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건 공권력에 대한 믿음 혹은 두려움이 멀쩡히 살아 있기 때문일 뿐더러 그러한 형태의 폭력행위를 그들이 방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라고 본다."
실제로 누군가가 돌을 맞거나 집단 구타를 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반 시민들이 그만한 적의를 대대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째려보는 거로 그칠 수 있는 이유는 그거밖에 없어 보였다.
그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적의는 결코 길드 사람 하나 붙는다고 수그러들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경위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었을 게 분명하다.
"내가 보기에는 경비대가 사건의 계기를 제공한 거 같아. 길드는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자신들이 대신 덤터기를 쓰는 대가로 다른 무언가를 얻어 이득을 본 상황이고. 그게 돈이 됐든 뭐가 됐든 당장 우리한테 중요한 건 아니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그 덕에 사람들의 적의가 공권력이 아닌 무지렁이 모험가들에게 향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왜 둘이 협력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확실히 일이 그렇게 굴러 갔다고 하면 나름 납득이 되는 거 같기도 하네요."
다행히 완전히 허황된 의견은 아니었는지 센은 깊게 고민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체면은 지키게 된 공권력이 순찰 인원과 경비 인원을 대폭 증가 시키는 형식으로 사건을 진압하는 시늉을 하되, 시민들의 분노가 직접적으로 모험가들에게 쏠리는 것을 막는 울타리 역할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는 거군요?"
"정확해. 내가 생각한 건 딱 거기까지야."
내가 깔아둔 전제가 맞다면 경비대와 순찰대는 모험가와 모험가 길드를 향한 물리적인 범법행위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길드가 진실을 까발릴 수 있으니.
내 의견을 한 차례 되씹어보던 센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방금 전달한 쿤즈의 의뢰도 결국 도시로 하여금 길드에게 빚을 지게 만들려는 목적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내 가설과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가정하에서 말이지. 솔직히 적중률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 애매하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매번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세상만사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이더라고.
그래도 내 뇌피셜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일단 가설로 깔고 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은 움직여야 하잖나. 내 보기에도 엘드미아의 가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여. 이번에 따로 움직이면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
긴 씨의 주장에 다른 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단 내 가설을 기반으로 탐문을 병행해보는 식의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어려울 건 없었다. 이미 다들 모험가 짬밥 어디 안 가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둘 씩 찢어져 움직일까? 그렇게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으려나?"
"아뇨. 괜찮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센과 달리 이 도시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하니까요. 세네란 씨는 저랑 아실리에와 함께 움직이기로 하죠."
그렇게 가엔달은 긴 씨와 함께. 예카트리나는 렐리에랑 행동하기로 결정한 뒤 우리는 지체할 것 없이 길드를 벗어났다.
머릿속 한 켠에서 대체 어떻게 한낱 도적들이 겨우 모험가와 조금 손잡은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피어올랐으나, 일단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