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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25화 (225/412)

확실히 우리가 도시를 거니는 동안 돌 맞을 일은 없었으나 드문드문 여관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싸늘한 시선 속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흐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저러니 좀 고깝긴 하네."

뚱한 표정으로 주변을 흘겨보던 세네란이 기어이 참지 못하고 작지 않은 목소리로 한 마디 입에 담았지만 시민들은 딱히 그런 그녀의 반응에 역정을 내거나 분노하기보다 그냥 못마땅한 것처럼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 반응 속에는 증오와 짜증 외에 미묘한 두려움도 함께하고 있는 듯하다. 시민들의 그런 모습을 코를 찡그리며 바라보던 세네란이 물었다.

"이 정도로 도시 전체가 모험가에게 불만을 가지려면 대체 얼마나 털어간 걸까?"

"약탈보다는 대량 학살이 문제이지 않을까요?"

대답은 의외로 아실리에의 입에서 나왔다. 나랑 세네란이 눈빛으로 질문하자 아실리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외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응? 그런 반응을 보일만 한 내용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 두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하필 대량 학살? 왜?"

살인과 약탈이라는 두 정보 속에서 굳이 대량 학살을 콕 집어서 말하는 이유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아 되물었더니 아실리에는 볼을 긁적이며 설명해주었다.

"생각해 보렴. 기껏 힘들게 도시로 잠입해서 일반적인 가정집을 약탈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니."

"그야...그렇겠지?"

"도시의 부호, 혹은 그에 준하는 부자들을 노리고 들어왔을 텐데 보통 그런 이들의 재산을 터는 건 이렇게까지 반감을 가질 수 없어. 보통 시민들은 부자들이 피해를 입으면 가십거리로 여기지 같이 분노해주지 않으니까. 심지어 이곳의 도시 순찰대, 경비대는 도적들의 습격과 약탈을 넋 놓고 방치할 정도로 만만한 사람들도 아니지. 봤잖니?"

그러고 보니 성문 경비병들은 정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었지. 많은 반복 훈련을 거쳐 몸에 익은 움직임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니까 누나 말은... 도적놈들이 모종의 방법을 통해 도시에 진입해서 약탈을 시행하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시민들을 학살하는 일이 생겼고 그로 인해 이런 반감이 생겼을 거라는 말이네?"

"그게 나름 합당한 판단이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나야 한낱 도적놈들에게 그딴 능력이 있을 거라는 발상조차 없었지만, 아실리에 입장에서는 도적들이 도시의 물류를 장악했다던가 사교도로 전직해서 마을의 처녀를 죄다 잡아갔다던가 하는 식의 내용이 허황된 것이지 놈들이 유일하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살인과 약탈을 가지고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웠다는 건 그다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실리에 씨 말대로 도적들이 일반 시민을 학살한 게 원인이라면 이런 분위기를 포함해 도시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수사 중인 것도 납득할 수 있긴 하죠. 이미 이런 기습을 허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신이 깎여 나갈 테니 어떻게든 빠르게 수습하고 싶을 테니까요. 하지만... 불의의 기습은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건 어째서일까요?"

심지어 길드에서 의뢰를 할 정도라니 자기 집 앞마당에서 물건 못 찾는다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상황이긴 했다. 무슨 비밀 땅굴을 파놓고 오고 간 게 아니라면 세네란의 의문처럼 진즉에 상황이 종료되어야 했다. 하지만 아실리에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탈영병이 도적들 사이에 끼어들어가서 군사적인 지식이라도 제공한 게 아닐까요? 엔글렘이 고대에 존재했던 지하 수로 위에 지어진 도시니까 어쩌면 밖에서부터 이어지는 길을 알아낸 것일지도 모르죠."

"으으음. 그런 걸 알아냈다면 도시를 습격한다는 대담한 발상을 하고 실행에 옮긴 것도 납득은 되는데..."

역사가 깊은 도시였군. 그나저나 고대의 지하 수로라니. 어딘가에 몬스터가 똬리를 틀고 앉아 도시를 뒤엎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 아니려나 모르겠...

"잠깐, 군사 지식?"

스쳐 지나가듯 내뱉은 가능성에 불과했지만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내 반응을 본 아실리에도 같은 가능성이 떠올랐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엔벨데."

그 슈퍼 겁쟁이가 끌어 모았던 반란 세력. 개중 상당수는 지천에 널려 있는 도적과 산적놈들이었다. 만약 놈이 녀석들을 훈련시키면서 반란에 협조하지 않는 도시들을 점령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대비를 했다면?

"뭐니? 거기서 엔벨데가 왜 나와?"

직접적인 연이 없던 세네란은 맥락을 이해 못 하고 의문을 표했으나 발품까지 팔아가며 수도 인근에 있는 도적들을 싹 다 도륙냈던 나와 아실리에는 이게 상당히 가능성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우리가 손이 닿는 곳의 산적들을 박살 내다시피 하긴 했지만, 그걸 두고 박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놈들은 어디까지나 노예 상인 놈들과 거래하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그놈이 반란세력이라며 규합하고 이용하려 했던 잡것들 중 범죄자 새끼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그 과정에서 군사 지식에 준하는 교육이나 도시 점령에 도움이 되는 기밀을 전달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과연 장사로 돈 많이 버는 사람답게 세네란은 이해가 빨랐다.

"근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유능한 인연이 하나 있었고 운이 좋았죠. 누나, 이건 좀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

"개입하려고?"

넌지시 물어보는 아실리에의 질문에 난 긴 고민 끝에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상황봐서."

정말 엔벨데와 연관이 있다고 해도 이런 짓거리를 놈을 향한 의리로 이어 나가는 건 아닐 것이다. 도적은 결국 도적이다. 엔벨데가 사라지고 놈이 전해준 지식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런 놈들이 취할 행동은 뻔했고, 지금 상황과 매우 잘 맞물리기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꿈도 꾸지 못할 도시 습격을 가능케 해주는 완벽한 계획이 지들 품에 있는데 눈앞의 도시를 안 털 정도로 자제력이 넘치는 놈들이 도적질을 하고 있을 리 없잖은가.

"일단은 조사부터 좀 하자. 어쩌면 묘지기도 좀 만나 봐야 할 거 같네."

당장 도시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이들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고역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시작한 건 가엔달 일행의 노력으로 우리를 받아줄 정도로 규모가 있는 여관에 자리를 잡게 된 다음이었다.

쿤즈의 말대로 여관주인은 때아닌 호황에 참으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거기에 대량의 식사까지 주문하고 나니 묘지의 위치와 이번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담 정도는 뽑아낼 수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실리에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무리들이 귀족의 저택을 털려다가 사병을 비롯한 도시 경비대와 충돌했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들을 살해하거나 인질로 삼은 뒤 가차 없이 죽였다는 내용까지 주워들은 나는 일단 일행들과 떨어져서 아실리에와 함께 묘지로 향했다.

"빌어먹을."

못해도 백여 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시체를 제대로 매장조차 하지도 못하고 있는 묘지로 말이다. 아실리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묘지기와 성직자들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길드에서 왜 굳이 의뢰를 하려는지 알 것 같기도 하네."

나도 아실리에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시체가 아니라 그들의 사인死因으로 짐작되는 상처 때문이었다.

마치 짐승이 아무렇게나 물어뜯은 것처럼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상처는 피해자들의 육신이 지푸라기라도 되는 것처럼 갈가리 찢어놓았다.

"도적들이 맞기는 한 걸까?"

"...글쎄."

묘지에 있는 이들은 딱히 우리를 막지 않았다. 이미 우리 말고도 몇몇 시민들이 겨우겨우 구색을 갖추고 있는 시체들 사이에서 죽은 가족을 찾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실제로 그들 사이에는 모험가로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상처가 굉장히 이질적이네."

"왜?"

"저기 봐봐."

아실리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젊은 남성의 시체였다.

딱 봐도 모험가인 남자는 그나마 시체가 깔끔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누가 검에 폭발 마법이라도 부여했나."

좌측 승모근부터 심장까지 대각선으로 내려온 깔끔한 검상과 달리 심장에서부터 우측 허리부근까지 이어진 것은 예의 물어뜯긴 것 같은 상처였다. 처음엔 우연히 두 번의 공격을 당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조금 더 살펴보자 생각보다 그런 상처를 지닌 시체들이 많이 있었다.

대체 뭔 짓거리를 한 것인지 감도 안 오는 마당에 한참 상처를 살펴보던 아실리에가 보기 드물게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마검일지도 몰라."

차마 농담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아실리에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심쩍을 표정을 지으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마검?"

"응. 진짜 마검. 이것과 비슷한 상처를 남기는 마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그녀가 말하기를, 굳이 '비슷한' 이라는 설명을 덧붙일 정도로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마검 외에 이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것 역시 사실이었기에 그런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덕분에 격렬하게 목격자의 증언이 듣고 싶어졌지만... 나도 아실리에도 차마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정보를 캐는 쓰레기 같은 짓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묘지에서 알아낸 것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기이한 상처와 대량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는 것. 그리고 시체가 덜 부패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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